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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BS_2Kings_열왕기하 제29과

공부할 내용: 열왕기하 16장 1-11절

본문

2021103(주일) 오후 330분 줌zoom그룹성경공부


1.요담의 아들 아하스는 20세에 유다 왕이 되어서 예루살렘에서 16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그는 다윗과 같지 아니하였고,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는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고, 또 산당들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습니다. 여기서 이방 사람들을 본받아서 가증한 일을 행한 아하스가 자기 아들들을 단지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만 한 것입니까? 또한 요담 왕이 산당을 제거하지 아니하였기에 그의 아들 아하스가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는데, 여기서 부모가 죄를 묵인하는 것이 자녀에게 어떻게 올무가 되는지에 관하여 서로 토론해 보십시오. (왕하16:1-4, 대하28:3, 7:25-26)

  )매튜핸리주석-우리는 여기에서 아하스의 통치의 전반적인 특성을 보게 된다. 한 마디로 그의 생애는 짧고 악했다. 그는 고작 36년을 살고 죽었다. 또 그의 생애가 악했던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 때문이었다. 1.그가 다윗처럼 정직히 행하지 않은 사실(2). 그는 다윗과는 달리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일에 별다른 관심과 애착을 갖지 않았다. 그는 성전에 대한 사랑도 없었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의식도 없었으며,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서도 무관심했다. 바로 이 점에서 그는 다윗과 같지 않았다. 다윗의 혈통을 따라 난 것은 그에게 있어 큰 영예였다. 그리고 그가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이 예전에 다윗과 맺은 언약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은 도리어 그의 악을 더욱 가중시켰다. 결국 그는 다윗의 가문에 있어 수치스러운 존재였다. 그러나 동시에 다윗의 가문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 역시도 그에게 있어서는 영광스러운 것이 아니라 수치스러운 것이었다(좋은 혈통이라는 것은 타락한 자손에게는 수치스러운 것이다). 아하스는 다윗의 경건의 은덕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길을 따라 행하지 않았다. 2.그가 이스라엘의 왕들의 길로 행한 사실, 그들이 모두 금송아지 우상을 섬긴 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렇게 했다. 아합의 집과 혼인관계를 맺은 여호람과 아하시야와는 달리, 아하스는 이스라엘의 왕들과 특별한 혼인관계를 맺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와 같은 특별한 끈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들의 길을 따랐다. 이스라엘의 왕들이 행한 금송아지 우상 숭배에는 나름대로 정책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그러나 아하스에게는 그런 것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가 이스라엘의 왕들의 길로 행한 것은 너무나 비합리적이며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그의 적이었으며, 우상 숭배로 인해 그들끼리도 서로 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하스는 그들의 길로 행했다. 3.그가 쓰레기 같은 신들을 존귀케 하기 위해 자기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한 사실, 역대하 283절은 그가 자기 자녀들을 불살랐다고 분명하게 언급한다. 자신의 우상에게 바친다는 표시로 아마도 어떤 아들은 불사르고, 또 어떤 아들은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거나 혹은 불 속을 통과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히스기야조차도 제외되지 않았을 것이다). 4.그가 여호와께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들을 따라 행했다는 사실. 자기 눈앞에서 멸망의 구덩이로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그들을 따라 행할 만큼 그는 어리석은 자였다. 또 하나님이 가증하다고 선언하신 그들의 악한 행습들을 따르며, 하나님이 쫓아내신 자들의 본을 따름으로써 하나님과 정반대의 길로 행할 만큼 그는 불경건한 자였다. 5.그가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다는 사실(4). 만일 선왕인 요담이 산당들을 제거해 버렸더라면, 자기 아들의 타락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죄를 묵인하는 자는 자신의 그러한 행위가 이후 세대에 얼마나 위험한 올무를 놓는 것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는 하나님의 집을 외면했으며, 왕자 시절에 종종 참예하곤 했던 성전에 대해 싫증이 났다. 대신에 그는 전망 좋은 산당과 쾌적한 그늘을 제공해 주는 푸른 나무 아래서 제사를 드렸다. 이것은 믿음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취미를 따르는 것으로서 올바른 신앙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었다.


2.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베가가 연합하여 예루살렘까지 올라와서 아하스를 에워샀으나 이기지 못하였습니다. 아하스는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어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컨대 올라와서 나를 그 손에서 구원하소서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아하스는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취하여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내었습니다. 앗수르 왕은 그러한 요청을 듣고서는 곧바로 아하스를 도와주었습니다. 앗수르 왕이 다메섹(Damascus)을 쳐서 취하여 그 백성을 길(Kir)로 옮기고 또 아람 왕 르신을 죽였습니다. 여기 환난의 날에 아하스는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청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 관한 어떤 진리를 우리들에게 가르쳐 줍니까? (왕하16:5-9, 13:30-31, 146:3-5)

  )매튜핸리주석-1.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동맹을 맺고 유다를 침략함. 그들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그곳에 자신들의 마음에 맞는 왕을 세우려고 생각했다(7:6), 비록 그 일을 도모하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그러나 아람 왕은 성공적으로 엘랏을 되찾을 수 있었다(엘랏은 홍해에 위치한 중요한 항구로서 아마샤가 아람으로부터 빼앗은 곳이었다,14:22), 신앙을 잃은 자들이 무엇인들 지킬 수 있겠는가? 그들은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2.아하스가 그들을 물리칠 계획을 세움. 하나님을 버린 그는 더 이상 적과 맞설 힘도 용기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담대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할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앗수르 왕에게 도움과 구원을 간청하기로 작정했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환난 날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곳을 찾을 것이다. 앗수르왕에게 도움을 청한 것은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기 때문이었는가? 그가 이와 같이 부러진 갈대에 의지하려고 한 것은 영원한 반석이 떠났기 때문이었는가? 그의 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었는데, 그것은 또한 그에게 임한 징벌이기도 했다. 그의 목적이 이루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앗수르 왕이 그의 청을 듣고 곧 다메섹을 공격했기 때문이었다(9), 이로 인해 아람 왕은 큰 타격을 받게 되었으며 따라서 유다를 점령하고자 했던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아모스 15절에 예언되었던 것처럼, 앗수르 왕은 아람 백성을 사로잡아 기르로 끌고 갔다(아람 백성이 사로잡혀 기르에 이르리라).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는 잘못된 거래를 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하기 위해 (1)그는 스스로 종이 되었기 때문이었다(7):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다시 말해서 당신이 내게 이와 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면 나는 당신을 주인과 아버지로 섬기며 순종하겠나이다. 만일 그가 하나님께 이와 같이 스스로를 겸비케 하며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했다면, 그는 훨씬 쉬운 조건으로 구원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굳이 많은 돈을 들일 필요도 없었을 것이며, 단지 죄로부터 떠나기만 하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집을 버리고 떠난 탕자는 곧 가장 악독한 주인의 종이 되고 말았다(15:15), (2)그는 막대한 비용을 치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성전과 왕궁의 곳간으로부터 은과 금을 취하여 앗수르 왕에게 보냈다(8), 교회와 국가의 모든 재정은 자신들의 새로운 보호자를 기쁘게 하기 위해 고갈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도대체 무슨 권세로 교회와 국가의 공적 재산을 이와 같이 자기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었단 말인가? 나는 그가 무슨 권세로 이렇게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한 가지 죄로 인해 곤경에 처한 자가 또 다른 죄를 통해 그러한 곤경에서 빠져 나오려고 하는 것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버린 자가 무엇인들 지킬 수 있겠는가?


3.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거기 있는 제단을 보고 그 구조와 제도의 식양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내었습니다. 제사장 우리야는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모든 것대로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첫째로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본 우상의 제단은 솔로몬 성전의 제단과 비교해 보았을 때에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까? 둘째로 우상의 제단에 현혹된 아하스 왕의 마음 상태는 어떠하였을까요? 셋째로 제사장 우리야는 아하스가 우상의 제단 구조와 식양을 보내주었을 때에 제사장으로써 마땅히 어떠한 반응을 보였어야 했습니까? 우리야의 죄악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고 또한 오늘날 예배의 규정적 원리를 파괴하는 자들의 죄악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해 보십시오. (왕하16:10-11, 25:9, 4:24)

  )매튜핸리주석-아하스가 산당들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는 동안에도(4), 하나님의 제단은 계속해서 본래의 자리에서 사용되고 있었고 윙의 번제물과 소제물이 그 제단에서 수종드는 제사장들에 의해 드려지고 있었다(15).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악한 아하스 왕이 그 제단을 버리고 다른 제단 즉 우상 숭배적인 제단으로 그것을 대체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제까지 어떤 악한 왕도 하나님의 종교를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공격한 적은 없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게 된다. I.아하스 왕이 다메섹의 제단을 본떠 새 제단의 모형을 그림(10). 앗수르 왕이 다메섹을 점령하자, 아하스는 그의 승리를 축하하고 자신의 간청을 들어준 것에 대해 사의를 표하며, 또 신복과 아들로서 그의 명령을 하달받기 위해 그 곳으로 갔다. 만일 그가 하나님께 신실했다면, 그는 이방 왕에게 이렇게까지 굽실거릴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다메섹에서 그는 자신의 눈을 휘둥 그렇게 만드는 한 제단을 보았다(다메섹의 진귀한 물건들을 살펴보는 가운데 우연히 보게 되었든지, 아니면 그들의 제사의식에 동참하는 가운데 보게 되었을 것인데, 아마도 후자의 가능성이 좀 더 높아 보인다). 그것은 그가 예루살렘에서 종종 참례하곤 했던 구식의 평범한 제단이 아니라 각종 형상으로 공교하게 조각되고 장식된 화려한 제단이었다. 그리고 그 제단 주위에는 그가 생각하기에 매우 아름답고 놀라울 뿐만 아니라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 그리고 사람의 종교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아름다운 것들이 많이 있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 제단을 만든 천재적인 장인과 비교할 때 솔로몬은 하잘것없는 상상력밖에는 갖고 있지 못했다. 그는 이와 똑같은 제단을 갖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즉시 그 제단의 모든 구조와 제도의 양식을 그렸다. 그는 자신이 돌아갈 때까지 제단 만드는 일을 늦출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제사장 우리야에게 이것과 똑같은 제단을 만들라는 암시(?)와 함께 그 모형을 보냈다.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보여주신 혹은 성령으로 다윗에게 보여주신 모형은 다메섹으로부터 보내진 이러한 모형과는 비교조차 될 수 없는 것이었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의 마음은 자신들의 눈을 따라 행하는 법이다(그래서 음란한 눈으로 우상을 섬긴다고 언급된다,6:9). 그러나 참된 예배자는믿음으로 참된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긴다. .제사장 우리야가 새 제단을 만듦(11). 아마도 여기에 등장하는 우리야는 이 때 성전 예배를 주관하던 주임 제사장 (chief priest, 대제사장인 highpriest와는 구별됨)이었을 것이다. 그에게 아하스 왕은 이러한 모형을 따라 제단을 만들라는 암시를 보냈다(본문 속에 제단을 만들라는 분명한 명령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우리야는 아무런 갈등이나 거리낌도 없이 즉시 제단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어쩌면 그 역시도 왕처럼 다메섹의 제단을 보고 눈이휘둥그레지면서 그것을 좋아했을는지도 모른다. 최소한 그는 기꺼이 왕의 비위를 맞추고자 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행동 즉 왕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새제단을 만든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핑계를 댈는지 모른다. “내가 그렇게 한것은 왕으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전을 더욱 가까이 하도록 만들고자 한 것이었도다”(왜냐하면 왕이 산당과 푸른 나무에서 제사 드리는 것을 좋아하는 나머지 예루살렘 성전을 완전히 외면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야는 생각한다. “우리가 그의 뜻대로 하여 그에게 은혜를 베풀자. 그러면 그가 자신의 모든 희생제물을 우리에게 가져올 것이 아닌가? 그러면 우리의 생계도 더욱 든든해질 것이 아닌가?” 그러나 무슨 핑계를 대든지 간에 제사장인 그가 우상 숭배적인 군주에게 맹종하면서 이와 같은 제단을 만든 것은 너무도 추하고 악한 죄가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1.그는 자신의 권위를 팔고 제사장직을 더럽혔으며 스스로를 사람의 정욕의 노예로 만들었다. 제사장에게 있어 이와 같은 악한 명령에 굴종하는 것보다 더 큰 수치가 어디 있겠는가? 2.그는 자신의 직무를 배반했다. 제사장으로서 그는 하나님의 규례들을 지키며 유지시켜야 할 책임이 있었다. 어떤 이유로든 하나님의 규례들을 바꾸고 변개를 시키는 것에 대해 그는 단호히 반대했어야 했다. 따라서 그가 왕과협력하여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만들어진 제단과 맞서는 다른 제단을 만든 것은 영원한 오명을 뒤집어쓰기에 합당한 배신이요 변절이었다. 왕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단지 묵인한 것일 뿐이었다면, 왕으로 하여금 그 일을 단념시키고자 조금의 노력이라도 했다면, 최소한 왕이 돌아올 때까지 그 일을 늦추기라도 했다면, 이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와 같이 왕의 비위를 맞출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기꺼이 그 일에 착수했는데, 그것은 일말의 변명의 여지도 없는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었다.


*참고성경구절

대하28:3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능한 일을 본받아 그 자녀를 불사르고

7:25-26 너는 그들의 조각한 신상들을 불사르고 그것에 입힌 은이나 금을 탐내지 말며 취하지 말라 두렵건대 네가 그것으로 인하여 올무에 들까 하노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가증히 여기시는 것임이니라 너는 가증한 것을 네 집에 들이지 말라 너도 그와 같이 진멸당할 것이 될까 하노라 너는 그것을 극히 꺼리며 심히 미워하라 그것은 진멸당할 것임이니라

13:30-31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146:3-5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25:9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찌니라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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