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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BS_2Kings_열왕기하 제30과

공부할 내용: 열왕기하 16장 12절 - 17장 6절

본문

20211010(주일) 오후 330분 줌zoom그룹성경공부


1.아하스 왕은 다메섹에서 돌아와서 새로운 제단 앞에 나아가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기존에 있던 놋 제단을 북쪽의 외진 장소로 옮기고, 그 자리 즉 성소 앞에 새로운 제단을 놓았습니다. 아하스 왕이 제사장 우리야에게 아침 번제와 저녁 소제와 왕의 번제와 그 소제와 모든 국민의 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를 다 이 큰 단 위에 불사르고 또 번제물의 피와 다른 제물의 피를 다 그 위에 뿌리고 오직 놋단은 나의 물을 일에[내가 주께 여쭐 일에만] 쓰게 하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제사장 우리야는 아하스 왕의 모든 명령대로 행하였습니다. 여기서 아하스의 희생제물들은 누구에게 바친 것인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또한 아하스 왕은 놋 제단을 희생제물을 드리는 본래의 용도가 아닌 신탁[신이 사람을 매개자로 하여 그의 뜻을 나타내거나 인간의 물음에 대답하는 일]의 용도로 바꾸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거룩한 규례를 변경시키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하여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왕하16:1216, 대하28:22-23, 1:7-8)

  )매튜핸리주석-.새 제단의 봉헌 왕의 마음을 간파한 우리야는 왕이 돌아오기 전에 새 제단을 완성시켰다. 그리고 그것을 기존의 놋 제단 가까이에 두었다(성전 문으로부터 좀 더 떨어지고 좀 더 낮은 곳에), 왕은 그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면서 최고의 경의를 표하며 다가가 그 위에 번제물과 다른 제물들을 드렸다(12,13), 그러나 그의 희생제물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드린 것이 아니라 다메섹의 신들에게 드린 것이었다(대하28:23에 나타난 것처럼), 아람의 제단을 빌려올 때 그와 함께 그들의 신들까지 빌려온 것은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 아람 사람 나아만이 제단을 만들기 위해 이스라엘 땅으로부터 흙을 취했을 때,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까지 취한 것이다. IV.새 제단을 위해 하나님의 제단을 옮김. 우리야는 자신이 만든 새 제단을 성전 마당의 낮은 자리에 두고 기존의 하나님의 제단은 본래의 자리 즉 새제단과 여호와의 성전 사이에 그냥 두었다(14). 그러나 아하스는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는 하나님의 제단을 마당 북쪽의 외진 장소로 옮기고, 그 자리 즉 성소 앞에 자신의 새 제단을 놓았다. 그는 자신의 새 제단이 훨씬 더 웅대하고 보기에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제단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장소로 치워져야만 하였다. 그의 미신적인 창작물(새 제단)이 처음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규례(본래의 제단)와 다투더니 마침내는 그것을 밀어내고 말았다. 하나님을 전부로 여기지 않는 자는 곧 하나님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여기게 될 것이다. 아하스는 감히 놋 제단을 때려 부수지는 못했다(그것은 아마도 백성들을 두려워해서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모든 제물을 오직 새 제단에서만 드리라고 명령하면서, 놋 제단은 자신이 주께 여쭐 때에만 쓸 것이라고 선언했다(15). 아하스는 하나님의 제단과 관련하여 그것의 본래의 용도는 폐기시키면서 마치 자신이 그것을 더욱 발전시키는 것처럼 꾸미고 있는데, 이런 일은 미신적인 사람들에게 있어 흔히 있는 일이다. 제단은 결코 신탁(oracle)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하스는 그렇게 사용하겠다는 것이었다. 로마교회는 외견상 그리스도의 성례들을 높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크게 타락시킨다. 어떤 이들은 아하스의 마음속에 다른 목적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놋 제단에 대하여는 내가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생각하고 나서 나중에 명령을 하달하겠노라." 유대인들은 그가 나중에 제단의 놋으로 아하스의 해시계로 불리는 유명한 해시계를 만들었다.고 말한다(20:11). 그리고 이어서 타락한 왕에게 맹종한 가련한 제사장이 다시 한 번 언급된다(16):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의 모든 명령대로 행하였더라. 어떤 왕이나 대인들에게 있어 그들이 죄를 범할 때 마땅히 견책해야 할 자들이 도리어 그들의 죄를 옹호하며 맹종할 때, 그것은 그들 자신들에게도 너무나 불행한 일이다.

  답)박윤선주석-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와서단 앞에 나아가 그 위에 제사를 드리되 자기의 번제와 소제를 불사르고 또 전제를 붓고 수은제 짐승의 피를 단에 뿌리고(왕하16:12-13). 아하스가 다메섹에서 돌아와 새 제단 위에 일체의 제물을 드렸는데 그것은 이방의 우상을 섬긴 것이고 여호와를 섬긴 것이 아니었다. 전 앞에 있던 놋단을 옮기되 새 단과 여호와의 전 사이에서 옮겨다가 그 단북편에 두니라(왕하16:14). 아하스는 본래 있던 여호와의 번제단을 북쪽 모퉁이로 옮겨 놓았으니, 그것은 새 단에서만 제사를 드리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진리의 제단을 폐지시키는 망령된 처사이고, 하나님을 대면하여 모독하는 가증한 행동이다(참조,대하 28:22-25). 아하스 왕이 제사장 우리야에게 명하여 가로되 아침 번제와 저녁 소제와전제를 다 이 큰 단 위에 불사르고오직 놋단은 나의 물을 일에 쓰게 하라 하매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의 모든 명대로 행하였더라(왕하16:15-16). 제사장 우리야는 왕의 잘못된 지시에 맹종하였으니, 그는 하나님보다 권세를 두려워한 악한 종이다. 마땅히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할 신자가 세상의 다른 것들을 두려워하면 그 심령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죄악으로 떨어지게 된다. “놋단은 나의 물을 일에 쓰게 하라”. 이것은 다음과 같이 개역된다. , “놋단에 대하여는 내가 그것을 어떻게 할지 생각하게 두라라고, 이 말은 그가 후에 놋단은 적당히 처리하겠다는 뜻이다.


2.아하스 왕은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어내고 물두멍을 그 자리에서 옮겼습니다. 그리고 또 그는 놋바다를 놋소 위에서 내려다가 돌판 위에 두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는 안식일에 쓰기 위하여 성전에 건축한 낭실과 왕이 밖에서 들어가는 낭실을 앗수르 왕을 위하여 여호와의 전으로 옮겨 세웠습니다. 아하스는 성전의 기물들을 훼손시키고 또 자기 마음대로 변경하였는데, 그가 왜 그렇게 행동하였습니까? (왕하16:17-20, 삼상2:12-14, 1:28)

 

)매튜핸리주석-I. 아하스가 성전의 기물들을 자기 마음대로 변개함. 1.그는 물두멍이 놓여지는(왕상7:28,29) 받침을 훼손시키고 놋 바다를 내려놓았다(17). 그것은 제사장이 손을 씻을 때 사용한 것이었는데, 이렇게 볼 때 아하스는 그것에 대해 특별한 적의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호와의 일꾼인 제사장을 정결케 하는 것을 훼방하는 것은 얼마나 악독한 일인가? 2.그는 안식일에 쓰기 위한 낭실을 옮겼다. 그것은 안식일을 기념하는 제사장들의 편의를 위해 만든 것이었다. 왜냐하면 안식일에는 평일보다 더 많은 제사가 드려졌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이었든지 간에, 그가 낭실을 옮긴 것은 안식일을 경멸하는 것이었으며 그로 인해 온갖 종류의 불경건한 것들이 들어올 수 있는 넓은 문을 열어놓는 것이었다. 3.그는 왕이 들어가는 입구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그것은 여호와의 전으로 통하는 입구로서, 왕과 왕의 가족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다(아마도 스바 여왕이 보고 크게 감탄한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는 층계가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왕상10:5). 그가 이렇게 한 것은 자신은 더 이상 여호와의 전에 출입할 뜻이 없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또 그가 이렇게 한 것은 앗수르 왕을 위해서였다. 아마도 앗수르 왕은 아하스의 방문에 대한 답방으로 예루살렘에 왔을 것이며, 그러는 중에 이것(왕이 들어가는 입구)을 보고 여러 가지로 불편한 것이라고 흠을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이미 가지고 있던 자가 어떤 사람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해 그것을 다른 쪽으로 돌린다면, 그는 멸망의 내리막길로 급히 치닫고 있는 것이다. II.아하스가 36세의 한창 나이에 죽음(19), 그리고 그의 왕권은 그의 아들 히스기야에게 이어졌는데, 히스기야는 자기 아버지와는 달리 성전을 사랑하며 가까이했던 선한 사람이었다. 아마도 아하스는 히스기야까지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함으로써 몰록에게 바쳤을 것이다. 그러나 은혜 가운데 하나님은 마치 불 가운데 꺼낸 나무처럼 그를 그곳으로부터 끄집어 내셨다.

  답)박윤선주석-아하스 왕이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어내고 물두멍을 그 자리에서 옮기고 또 놋바다를 놋소 위에서 내려다가 돌판 위에 두며(왕하16:17) 아하스는 자기 마음대로 성전의 물두멍바다를 다른 데로 옮겨 놓았다. 이것은 그의 참람된 행위이니, 성전과 그 시설을 파괴하는 것보다 더 큰 죄악이다. 그 이유는 그의 이 행동은 성전과 그 시설을 우상 섬기는 데 편리하도록 고쳐 꾸민 것이기 때문이다. 왕이 밖에서 들어가는 낭실을 앗수르 왕을 인하여 여호와의 전에 옮겨 세웠더라(왕하16:18). , 왕궁에서 성전으로 들어가는 통로에 있는 낭실을 다른 데로(왕궁과 관계없이 성전에만 별도로) 시설하였다는 의미이다. 아하스는 이렇게 하여 그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하여 등한히 한다는 인상을 앗수르 왕에게 준 것이다. 이것은, 그가 참된 하나님 여호와를 부끄러워하고 이방 왕에게 아첨한 처사였다. 아하스 왕의 이 같은 행위는, 왕궁에서 여호와의 전으로 올라가는 층계를 자랑하였던 솔로몬(왕상10:5)과 정반대이다.


3.호세아가 이스라엘 왕이 되어 9년을 다스렸는데,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지만 그러나 이스라엘 이전의 왕들처럼 악하지는 않았습니다.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이스라엘을 침략하였을 때에 호세아는 그에게 조공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호세아가 애굽 왕을 의지하면서 앗수르를 배반하였습니다. 앗수르 왕은 크게 격분하여 기습 공격하여 호세아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를 3년 동안 포위하여 결국 함락시켰습니다. 앗수르 왕은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 잡아 앗수르로 끌고 가서 할라, 하볼, 그리고 메대의 여러 고을들에 두었습니다.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였고, 그렇게 함으로써 한 나라로서의 이스라엘은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땅에서 쫓겨난 이유는 과연 무엇입니까? (왕하17;1-6, 50:22, 7:9-10)

 

)매튜핸리주석-.호세아는 앗수르의 멍에를 벗어버리려고 하다가 도리어 화를 자초했다(4). 만일 이스라엘의 왕과 백성들이 하나님과 화해하고 그분께 기도하며 도움을 호소했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자유와 평화와 명예를 되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애굽 왕을 의지하는 가운데 앗수르를 배반하면서 조공을 드리지 않았다. 설령 이러한 책략이 성공을 거둔다 할지라도, 그러나 이것은 단지 압제자를 바꾸는 것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러나 애굽은 그들에게 상한 갈대에 불과했다. 이 일로 인해 앗수르 왕은 크게 격분하여 더욱 혹독하게 이스라엘을 짓밟았다. 사람이 그물과 싸워 무엇을 얻겠는가? 더욱 뒤엉키고 말지 않겠는가? V.마침내 이스라엘에게 완전한 멸망이 임했다. 1.이스라엘 왕이 포로가 됨. 그는 결박되어 옥에 감금되었는데, 아마도 사마리아가 포위되기 전에 갑작스러운 습격으로 사로잡힌 것으로 보인다. 2.이스라엘 땅이 앗수르의 노략물이 됨. 앗수르 왕의 군대가 올라와 그 땅을 점령하고(5), 이스라엘 백성을 정당한 적으로서가 아니라 공의의 칼로 응징되어야 할 반역자로서 취급했다. 3.이스라엘의 왕도가 포위되고 마침내 함락됨. 이스라엘 땅이 앗수르에 의해 점령된 중에도 왕도는 3년 동안 저항했다. 여기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기간 동안 엄청난 고통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이 짤막하게 언급되면서 가볍게 지나간 것은 추측컨대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졌으며 이제 하나님은 더 이상 이스라엘의 고통을 괘념치 않으셨음을 암시한다. 4.이스라엘 백성이 앗수르에 포로로 끌려감(6), 특별히 대부분의 중요한 인물들이 정복자의 나라로 끌려가 거기에서 노예와 구걸하는 자가 되었다. 이와 같이 하여, (1)앗수르 왕은 이스라엘에 대한 통치권을 확실히 하였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의 처분 하에 떨어지고 말았다. (2)앗수르 왕은 자신의 멍에를 벗어버리고자 반란을 행한 백성들을 응징했다. 그들은 낯선 나라로 끌려감으로써 자신들의 모든 땅과 소유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참담한 고통과 수치 아래 떨어지게 되었다. (3)앗수르 왕은 미래에 있을지 모를 모든 반역 시도를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자신의 나라를 굳게 했다. (4)앗수르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 있게 되었다. 마치 바로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했던 것처럼 그는 그들의 노동력을 값싸게 취할수 있었다. 이와 같이 이 무익한 백성은 다시 노역과 압제의 멍에 아래로 돌아가고 말았다. (5)앗수르 왕은 자기 백성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그 아름다운 땅에 정착하여 살도록 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앗수르 왕은 이스라엘 열 지파를 정복하고 포로로 끌고 감으로써 많은 이득을 얻었다. 그리고 그들을 끌어다가 할라와 하볼이라는 지역에 두었는데, 아마도 두 곳은 서로 멀리 떨어진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서로 연락을 취함으로써 다시 연합하여 자신에게 맞서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그들은 시간이 흐름과 함께 여러 나라의 백성들과 혼합되어 스스로를 잃어버리고 말았다(즉 이스라엘의 이름이 더 이상 기억되지 않게 되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잊어버린 그들은 스스로 잊혀지고 말았으며, 열방과 같아지려고 애썼던 그들은 결국 열방 가운데 묻혀지고 말았다. 그리고 자기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지 않았던 그들은 낯선 땅에서 원수들을 섬기게 되었다. 포로로 끌려간 자들은 대체로 어느정도 재산도 있고 명예로 있었던 자들이었다. 반면 낮은 신분의 사람들은 뒤에남아 유다로 가거나 앗수르가 다스리는 식민지의 백성이 됨으로써 그들의 후손은 갈릴리인 혹은 사마리아인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한 나라로서의 이스라엘은 끝나고 말았다. 이제 그들은 로암미(백성이 아니다)와 로루하마(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다)가 되었다. 이제 가나안은 그들을 토해냈다. 눈의 아들 호세아(여호수아와 호세아는 같은 이름임) 아래 가나안에 들어간 그들이 엘라의 아들 호세아 아래 그 땅에서 이렇게 쫓겨나게 될 줄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마치 아우구스투스 때의 로마의 영광이 오랜 후 아우구스툴루스 때에 사라지고 만 것과 비슷했다.


*참고성경구절

대하28:22-23 이 아하스 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가로되 아람 열왕의 신들이 저희를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 하였으나 그 신이 아하스와 온 이스라엘을 망케 하였더라

1:7-8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삼상2:12-14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습관이 이러하니 곧 아무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 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그것으로 남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고서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취하되 실로에서 무릇 그곳에 온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 뿐 아니라

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50: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7:9-10 저는 이방인에게 그 힘이 삼키웠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얼룩얼룩할찌라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에 증거가 되나니 저희가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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