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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BS_2Kings_열왕기하 제33과

공부할 내용: 열왕기하 18장 17-35절

본문

2021117(주일) 오후 330분 줌zoom그룹성경공부


1.랍사게가 엘리야김과 셉나와 요아에게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고하라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희의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 네가 싸울 만한 계교와 용력이 있다고 한다마는 이는 입에 붙은 말뿐이라 네가 이제 누구를 의뢰하고 나를 반역하느냐 이제 네가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 손에 찔려 들어갈찌라 애굽 왕 바로는 무릇 의뢰하는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라고 말하였는데, 여기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이라는 말이 우리들에게 주는 영적인 교훈은 무엇입니까? (왕하18:17-21, 146:3-4, 17:5-8)

  )매튜핸리주석-I.예루살렘이 산헤립의 군대에게 포위를 당함(17). 앗수르 왕 산헤립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기 위해 세 명의 장군을 보냈다. 이 사람이 대왕으로 일컬어지는 위대한 앗수르 왕인가? 아니다. 우리는 그를 결코 그와 같은 이름으로 부를 수 없다. 도리어 그는 야비하고 거짓되며 약속을 지킬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군대를 퇴각시키는 조건으로 히스기야로부터 막대한 돈을 받았다. 그러고서도 군대를 되돌리기는커녕 도리어 예루살렘으로 대군을 보냈다. 그들은 정말로 악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약속을 지키는 것보다도 당장의 이익을 좇는 자들이었다. 지금 히스기야는 산헤립과 더불어 맺은 화친조약에 크게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그로 인해 그는 극도로 빈핍해졌을 뿐 조금도 안전해지지 못했다. .히스기야와 신하들과 백성들이 랍사게로부터 조롱을 당함. 랍사게는 산헤립이 보낸 세 명의 장군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빈정거리며 조롱하는데 특출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틀림없이 산헤립으로부터 무슨 말을 할 것인지에 대한 지시를 받았을 것이며, 그를 통해 산헤립은 히스기야와 더불어 새로운 다툼의 빌미를 얻고자 했을 것이다. 막대한 액수의 돈을 받고 군대를 철수시키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산헤립은 체면상 즉시 예루살렘을 공격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그렇게 하는 대신 그는 랍사게를 보내 히스기야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포기하도록 설득했다. 만일 그가 거절한다면 그러한 거절은 그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공격할 명분이 되어줄 것이었으며(매우 빈약한 명분이기는 하지만), 계속해서 저항한다면 그는 강제로 도성을 점령할 것이었다. 랍사게는 극도로 오만하여 성벽조차도 없는 윗못 수도 곁에서 히스기야 왕을 만나고자 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신중한 사람이었으므로 그러한 제안을 거절하고 대신에 세 명의 대신을 사신으로 보내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듣도록 했다. 그러면서 히스기야는 사신들로 하여금 랍사게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말도록 지시를 내렸는데(36), 그것은 그들이 그를 설득하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더욱 자극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히스기야는 자기 조상 다윗처럼 자신은 듣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은 들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었다(38:13-15), 사신들은 랍사게에게 부디 아람 말로 말해 달라고 간청한다. 왜냐하면 그의 메시지를 자신들이 심사숙고하고 또 왕에게 전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그에게 만족할 만한 답변을 주지 못한다면, 그 때 가서 유다 말로 백성들에게 직접 호소할 수 있을 것이었다(26), 이것은 합리적인 요청일 뿐만 아니라 협상에 있어서의 일반적인 관례와 부합되는 것이었다. 전권을 위임받은 사신들은 먼저 자신들끼리 모든 문제를 다 매듭짓고 난 연후에 백성들에게 공표하는 법이다. 사신들은 랍사게가 비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만일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러한 요청을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합리적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요청을 한다면 도리어 그를 더 격앙시켜 더욱 사납고 거칠게 만들 뿐이었을 것이다(27), 사신들을 정중하게 맞이하며 더불어 진지하게 대화하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랍사게는 그들에게 왕을 배반하고 항복할 것을 설득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저항하면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협박하면서 히스기야와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예루살렘을 포기할 것을 종용했다. 이 일을 위해 그가 어떻게 했는지 관찰하라. 1.그는 자기 주인인 앗수르 왕을 지극히 높인다. 두 번에 걸쳐 그는 앗수르왕을 대왕(that great king)이라고 부른다(19,28). 그는 피조물에 불과한 통치자를 우상으로 만들었다. 그가 보기에 산헤립은 작은 신이었다. 그는 유다.백성들도 자기처럼 산헤립을 경외하도록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하면 그를 두려워하여 결국 그에게 항복할 것이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영광과 권세 가운데 앉아 계신 만왕의 왕을 보는 자들에게는 앗수르의 왕조차도 보잘것없는존재로 보일 따름이다. 하나님과 비교할 때 혹은 하나님이 그들과 다투실 때,사람의 위대함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82:6-7). 2.그는 유다 백성들에게 항복하는 것이 유익임을 믿게 하려고 애쓴다. 만일 계속해서 저항한다면, 그들은 결국 자신들의 대변을 먹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을 완전히 포위함으로써 모든 양식의 공급을 차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항복하기만 하면 그래서 예물을 바치며 그의 호의를 구하며 그의 처분 하에 맡긴다면, 그는 그들을 매우 잘 대해 줄 것이다(31). 얼마 전에 그의 주인은 히스기야와 더불어 맺은 약속을 여지없이 깨뜨려버리고 말았다(14). 그런 마당에 지금 랍사게는 무슨 얼굴로 그와 같은 약속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토록 약속을 지킬 줄 모르는 자들에게 무엇을 기대할수 있단 말인가? 쇠사슬을 금박으로 입혀라. 그러면 백성들을 결박할 수 있을 것이다. 항복하기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약속으로 그는 유다 백성들을 회유하려고 생각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그들을 설득한다. (1)항복하는 것이 그들에게 이득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각자 자신의포도와 무화과를 먹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31). 설령 그들의 땅의 소유권은 정복자들에게 귀속된다 할지라도, 그러나 그들은 그 땅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2)포로로 끌려가는 것은 그들에게 더 큰 이득이다. 내가 너희를 너희 본토와같은 지방으로 옮길 것이라(32). 아무것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마당에 무엇이 더 큰 이득이란 말인가? 3.그는 그들에게 계속해서 저항하는 것이 아무 소용 없는 일임을 깨닫게 하고자 애쓴다. 그는 네가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고 물으면서 히스기야를 모욕한다 (19). 또 그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29).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그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리라. 너희는 항복하든지 아니면 멸망을 당해야 할 것이니라.” 죄인들이 이러한 논증에 설복되어 하나님과 화목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왜냐하면 그분과 더불어 다투는 것은 아무 소용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저항하며 반항하는 자들이 의뢰하는 이 의뢰는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가 하나님보다 강한가? 사르는 불 앞에 가시와 찔레를 놓은들 그것으로부터 우리가 무엇을 얻겠는가? 그러나 여기에서 랍사게가 표현하는 것처럼 히스기야가 그렇게 고립무원 상태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히스기야가 의뢰할 만한 것과 관련하여 여기에서 랍사게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상정하면서, 그것들이 아무 소용없는 것임을 드러내려고 애쓴다. (1)그 자신의 군사적 준비: 네가 싸울 만한 계교와 용력이 있다고 한다마는(20). 우리는 실제로 히스기야가 그와 같이 한 것을 발견한다(대하32:3, 그의 방백들과 용사들과 더불어 의논하고 성 밖의 모든 물 근원을 막고자 하매), 그러나 랍사게는 그것을 일소에 붙인다. “이는 입에 붙은 말 뿐이라. 너희는 우리의 상대가 되지 못하느니라.” 극도의 오만과 멸시의 태도로 랍사게는 히스기야에게 말을 다룰 줄 아는 사람 2,000명을 데려오라고 도전한다(23). 만일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자신이 기꺼이 말 2,000마리를 주겠노라고 큰 소리를 쳤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히스기야에게 변변한 병사가 없음을 은근히 암시한다. 이와 같이 랍사게는 히스기야 따위는 가볍게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기 주인의 휘하에 있는 가장 작은 지휘관조차도 그와 그의 모든 군대를 물리칠 수 있노라고 떠벌인다. (2)애굽과의 동맹. 랍사게는 히스기야가 애굽의 병거와 기병을 의뢰한다고 상정한다(24).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왕이 그렇게 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애굽을 의뢰하는 것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애굽은 상한 갈대 지팡이라(21). 애굽은 자기를 의뢰하는 자를 지켜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의 손을 찌르고 어깨를 찢을 것이라.” 에스겔 선지자도 애굽에 대하여 이와 비슷하게 말했다(29:6-7, 애굽은 본래 이스라엘 족속에게 갈대 지팡이라 그들이 너를 손으로 잡은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어깨를 찢었고 그들이 너를 의지한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허리가 흔들리게 하였느니라), 실제로 애굽 왕은 그러했다. 그러나 그것은 앗수르 왕도 마찬가지였다. 선왕인 아하스가 앗수르 왕을 의뢰했을 때 앗수르 왕 역시도 상한 갈대 지팡이 같았다(대하 28:20), 육신의 힘을 의지하는 자들은 그것이 고작 상한 갈대에 불과함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


2.랍사게는 너희가 혹시 내게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의뢰하노라 하리라마는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산당과 제단을 제하고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명하기를 예루살렘 이 단 앞에서만 숭배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 히스기야가 산당과 제단을 없앤 것에 대한 랍사게의 해석이 옳은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거짓으로 왜곡하는 자들의 특징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왕하18:22, 벧후3:16, 딤후3:3)

 

)매튜핸리주석-(3)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 이것은 히스기야가 진실로 의뢰했던 것이었다(22). 그는 하나님의 권능과 약속을 의지하여 스스로를 굳게 했으며, “여호와께서 반드시 우리를 건지실지라는 믿음으로 자신과 자기 백성들을 격려했다(30,32). 랍사게는 바로 이것이 그들의 버팀줄이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러므로 그는, 다윗의 원수들이 다윗에게 그렇게 했던 것처럼(3:2,11:1), 그리고 그리스도의 원수들이 그리스도께 그렇게 했던 것처럼(27:43), 그것을 흔드는데 집중했다. 랍사게가 그들의 믿음을 좌절시키려고 제시한 세 가지는 모두 그릇된 것이었다. [1]히스기야가 산당들과 제단들을 제거함으로써 하나님의 보호를 잃어버렸다(22). 여기에서 랍사게는 많은 제단과 신전이 있는 것을 좋아하는 이방 신들의 기준으로 하나님을 판단한다. 그러면서 히스기야가 자기 백성을 오직 하나의 제단에만 한정시킴으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결론짓는다. 이와 같이 그가 행한 최고의 선행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율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 의해 불경하고 패역한 행동으로 곡해되었다. 진실로 선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일이 무지하고 악의적인 사람에 의해 악하고 불경스러운 일로 폄훼될 때, 우리는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3.랍사게는 성 위에 있는 백성들에게 유다 방언으로 크게 소리 지르면서 너희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왕의 말씀이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저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리라라고 말하였고 또한 열국의 신들 중에 그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하맛과 아르밧의 신들이 어디 있으며 스발와임과 헤나와 아와의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사마리아를 내 손에서 건졌느냐 열국의 모든 신 중에 누가 그 땅을 내 손에서 건졌기에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내 손에서 능히 건지겠느냐 하셨느니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 앗수르 왕의 신에 대한 관념이 어떠합니까?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앗수르 왕의 교만과 신성모독에 대하여 서로 토론해 보십시오, (왕하18:33-35, 14:12-14, 고전8:5-6)

  )매튜핸리주석-[2]하나님이 내게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라고 명령하셨다(25): 내가 어찌 여호와의 뜻이 아니고야 이제 이 곳을 멸하러 올라왔겠느냐? 이것은 전적으로 희롱하며 비아냥거리는 말이었다. 그는 자기가 한 일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한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성 위에 있는 백성들을 속이며 두렵게하기 위해 그와 같이 꾸민 것이었다. 어쩌면 랍사게는 이스라엘 열 지파가 멸망한 것이 그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는 어떤 선지자의 글을 접하고 그로부터 이와 같이 말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3]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자신의 백성들을 앗수르 왕의 손으로부터 보호할 수 없다(33-35). 이것은 참으로 신성모독적인 언사였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자기가 정복했던 나라들의 신들과 비교하면서 하나님을 이방신들과 동일한 수준에 놓았다. 그러면서 그들이 자기를 숭배하는 자들을 구원해 주지 못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하나님도 그러할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여기에서 다음을 보라. 첫째로, 그의 교만, 어떤 성읍을 정복했을 때 그는 그 성읍의 신들까지도 정복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그 신들보다 더 강하다고 여겼다. 그는 우상들을 대단한 존재로 여겼으며, 그러한 사실은 역설적으로 그 스스로를 대단한 존재로 여기도록 만들어주었다. 둘째로, 그의 신성모독.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지역신(local deity)이 아니라 온 땅의 하나님이시며 홀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이시며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Ancient of days)이시다. 하나님은 종종 자신을 모든 신들 위에 계신 존재로 드러내셨다. 그러나 랍사게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하맛과 아르밧 따위의 허구의 우상들과 동일한 수준에 놓았다. 그러면서 그는 모든 종교의 신들은 다 똑같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그러한 신들 위에 놓았다. 유대인들의 전승에 따르면 랍사게는 배교한 유대인이었다. 그가 유다 말에 능통한 것이 바로 그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그의 무지는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으며 하나님에 대한 그의 적대감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배교자가 하나님에 대해 가장 야비하고 악의적인 적대감을 갖는 것은 너무도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랍사게의 이러한 말 속에 많은 기교와 재치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속에 교만과 악의와 거짓과 신성모독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진실함이라는 한 개의 알곡이 모든 기교와 화려한 수사보다 더 값진 법이다.

 

*참고성경구절

146:3-4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17:5-7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찌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벧후3: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딤후3: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14:12-14 너 아침의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고전8:5-6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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