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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BS_Ezra_에스라 제2과

공부할 내용: 에스라 2장 1-70절

본문

20223월 13(주일) 오후 330분 줌zoom그룹성경공부

 

1.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유대 백성들 가운데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자들은, 첫째로 지도자들은 스룹바벨, 예수아, 느헤미야, 스라야, 르엘라야, 모르드개, 빌산, 미스발, 비그왜, 르훔, 바아나 등이며, 둘째로 일반백성들은 바로스 자손이 이천일백칠십이 명, 스바댜 자손이 삼백칠십이 명, 아라 자손이 칠백칠십오 명 등이었습니다. 여기 바벨론으로부터 포로귀환하는 이름들이 열거되어 있는데, 이 말씀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은혜로 세상으로부터 구원받아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영광스러운 이름들에 대하여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2:1-35, 3:16, 4:3, 20:12, 21:27)

  )매튜헨리주석-1.우리는 여기에서 포로로부터 나온 가문들과 각 가문에서 나온 자들의 숫자가 기록으로 보존된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그들의 믿음과 용기와 하나님을 신뢰하며 자신의 땅을 사랑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서 그들을 존귀케 하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선한 모범을 따르도록 격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자신을 존귀케 하는 자들을 존귀케 하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원의 초청을 받아들인 모든 믿음의 백성들은 이것보다 더 거룩한 기록인 어린 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될 것이다. 포로로부터 돌아온 가문들의 기록이 보존된 것은 또한 후손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이 어느 가문의 후손인지 알 수 있었다. 2.우리는 여기에서 유다가 유다 도(the province of Judah)로 불리는 것을 보게 된다(1). 유다는 과거 화려하고 강력한 왕국으로서 다른 왕국들을 도(provinces)로 삼고 지배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유다가 도가 되어 바사 왕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죄가 나라를 얼마나 비천하고 미약하게 만드는지 보라. 그러나 그들은 이와 같이 종이 됨으로써 더 나은 나라 다시 말해서 결코 요동치 않고 도(province)로 전락할 수 없는 영원한 하늘나라를 바라보도록 일깨워졌다(11: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3.그들은 각기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갔다. 그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그들이 처음 그 땅에 정착했던 때, 즉 여호수아 때에 지정받은 성읍이었다. 그들은 각자 바로 그 곳으로 (그리고 가능한 그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들이 없는 동안 아무도 그 곳에 정착하지 않았음을 보게 된다. 4.제일 먼저 지도자들이 언급되었다(2),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그들에게 있어 모세와 아론이었다. 스룹바벨은 그들의 지도자였으며 예수아는 제사장이었다. 또 우리는 여기에서 느헤미야와 모르드개의 이름을 보게 되는데, 어떤 이들은 이들이 우리가 나중에 만나게 되는 그 유명한 자들과 동일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이들이 그들과 동일 인물이었으며 지금 예루살렘에 왔다가 나중에 다시 바벨론 궁중으로 돌아갔을 것으로 추측한다. 5.이들 가문들 가운데 어떤 가문들은 그들의 조상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반면 또 어떤 가문들은 그들이 예전에 거주하던 장소의 이름으로 불린다. 그것은 오늘날 많은 영국인들의 성이 어떤 경우에는 조상의 이름으로 또 어떤 경우에는 지명으로 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6.어떤 가문의 숫자에 있어 여기의 기록과 느헤미야 7장의 기록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아마도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처음에는 가겠다고 명단을 제출했다가 나중에 취소하면서 가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런가 하면 처음에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가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 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숫자가 줄었을 것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늘었을 것이다. 7.여기에 엘람 자손으로 불리는 가문이 둘 나오는데(7절과 31), 특이하게도 두 가문의 숫자가 동일하게 1,254명이다. 9. 베들레헴 자손은 고작 123명뿐이었다(21). 베들레헴은 다윗의 성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다 중에 작은 성읍이었는데, 바로 이 곳으로부터 메시야가 나올 것이었다(5:2). 10.아나돗은 베냐민 지파에서 유명한 성읍이었지만 그 숫자는 고작 128명에 불과했다(23). 그것은 아나돗 사람들이 자기 성읍 출신인 예레미야를 핍박함으로써 스스로 하나님의 저주를 초래했기 때문이었다. 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남는 자가 없으리라 내가 아나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리라(11:21,23). 또 이사야 1030절을 보라. 선지자를 핍박하는 것이야말로 멸망을 가져오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이다.

 

2.제사장의 자손들[아론의 후손들] 중에는 하바야 자손, 학고스 자손, 바르실래 자손이 있었는데, 바르실래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 중에 하나로 아내를 삼고 바르실래의 이름으로 이름한 자입니다. 이 사람들은[하바야 자손, 학고스 자손, 바르실래 자손] 보계[족보, 계보]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부정하게 여김을 받아서 제사장의 직분을 행할 수 없었습니다. 방백이 그 사람들에게 명하기를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2:3지극히 거룩한 것,the most holy things]을 먹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왜 이 사람들은 계보에서 자기 이름을 찾을 수 없었습니까? 이것이 주는 영적인 교훈은 무엇입니까? (2:61-63, 6:24, 요일2:15-16)

  )매튜헨리주석-I. 돌아온 제사장들에 대한 설명. 그들은 전체 무리의 10분의 1에 달할 정도로 매우 많은 숫자였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전체 백성의 수는 42,360명이었는데(64), 그 중에 제사장 네 가문 출신이 4,200명이 넘었다(36-39), 이와 같이 하나님의 몫이 10분의 1이 되는 것은 매우 축복된 비율이었다. 여기에 제사장의 조상으로 거명된 세 사람은 각 반차의 우두머리였다(대상24:7-8;24:14). 그리고 네 번째로 언급된 사람은 바스훌이었다(38), 만일 이들이 예레미야를 핍박했던 그 바스훌의 후손이었다면(20:1), 그토록 악한 사람에게서 이토록 선한 후손이 많이 나온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돌아온 레위인들에 대한 설명. 나는 이들의 숫자가 매우 적은 것에 대해 참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노래하는 자와 문지기까지 포함해서 채 350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40-42), 이들은 예전에 제사장들보다 더 열정적인 적도 있었지만(대하29:34),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은 바뀌는 법이다. 바람은 임의로 불며 방향을 바꾼다. .돌아온 느디님에 대한 설명. 이들은 기브온 사람들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은 처음에 여호수아로부터 레위인의 감독 아래 하나님의 성전에서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등의 일을 부여받았다(9:27). 그러다가 사울에 의해 쫓겨났다가 다윗에 의해 다시 회복되었다(8:20). 이들은 여기에서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들과 함께 성전에서 수종드는 자로서 함께 계수되었다(55,58). 하나님의 전에 속한 것은 너무도 축복된 일이라는 사실을 주목하라 - 비록 그곳에서 가장 비천한 일을 맡았다 할지라도. .또 신분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없는 자들도 있었다. 1.스스로 이스라엘 백성임을 입증할 수 없는 자들이 상당수 있었다(59,60). 그들은 스스로 야곱의 후손이라고 주장했지만 그러나 자신들의 족보를 제시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과 백성들을 사랑하여 기꺼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왔다. 이들은, 혈통으로는 이스라엘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그러나 유다의 허리에서 나온(48:1) 참 이스라엘 사람으로는 불려질 수 없는 자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2.아론의 자손으로 추측되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것을 입증할 수는 없었던 자들도 있었다. 기록으로 보존되지 않은 것은 곧 잊혀지고 마는 법이다. (1)어떻게 그들은 자신들의 증거물을 잃어버렸나? 그들의 조상들 가운데 한 사람이 바르실래의 딸과 결혼했다(바르실래는 다윗 시대에 큰 세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바르실래 가문과 결혼하게 된 것을 크게 자랑했으며, 제사장 가문의 일원이 되는 것보다 바르실래 가문의 일원이 되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 자녀들을 바르실래의 이름으로 일컬어지도록 했으며, 자녀들의 계보를 아론 가문이 아니라 바르실래 가문의 계보에 기록하여 보존시켰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아론 혈통의 계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바벨론에서는 제사장직으로서 특별히 얻을 것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그것을 크게 개의치 않았다. 거룩한 직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들은 "내가 나의 직분을 존귀케 하노라라고 말씀하신 자를 잊고 있는 것이다. (2)이들은 그것과 함께 무엇을 잃어버렸나? 이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입증해줄 수 있는 증거물을 제시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들을 무작정 제사장으로 받아들여 줄 수 있단 말인가? 이들은 제사장으로 받아들여지기는커녕 도리어 부정하게 여겨져 제사장직을 행할 수 없게 되었다. 지금 제사장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회복했으며, 예전처럼 다시 제단에 의지해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제사장으로 기꺼이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들은 세상적인영광을 위해 자신들의 권리를 팔아 버렸으며 따라서 제사장으로 임직되지 못하고 지성물을 먹는 것이 금지되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는 자신과 자신을 섬기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는 자들을 부끄럽게 여기실 것이다. 이들로 하여금 제사장의 직분을 취하지 못하게 한 사람은 방백(혹은 총독)이었다(63). 어떤 이들은 이 사람이 지금 총독인 스룹바벨이었다고 생각하는 반면 또 어떤 이들은느헤미야로 생각한다. 느헤미야 역시도 총독이라는 칭호를 불렸으며(8:9;10:1), 그는 몇 년 후 예루살렘에 와서 이러한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이러한금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직무정지와 같은 것이었다. 그들의 제사장 직무가 금지되는 것은 우림과 둠밈을 가진 대제사장이 일어날 때까지였다. 그들은 우림과 둠밈을 가진 대제사장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아마도 당시 유다 백성들은 우림과 둠밈을 가진대제사장이 세워지기를 기대하며 열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들이 제2성전 하에서 그러한 축복에 참예한 것으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우림보다 더 나은 구약 정경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우림과 둠밈의 신탁이 없는 것을 통해 그들은 가장 위대한 신탁이신 메시야를 대망하도록 가르침을 받았다(우림과 둠밈은 메시야의 한 모형에 불과했다). 또 제2성전에 언약궤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옛 것인지 아니면 새로 만든 것인지 등도 역시 나타나지 않는다. 실체가 가까이 다가옴과 함께 그러한 그림자들은 점차로 사라져 갔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자기 백성들에게 언약궤가 없는 것으로 어떤 손해도 입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셨다(3:16,17), 예루살렘이 그들에게 여호와의 보좌라 일컬음이 되며 모든 열방이 그리로 모일 때, 사람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하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하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다시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왜냐하면 언약궤가 없어도 아무 문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3.어떤 족장들은 폐허와 돌무더기가 된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터에 이르렀을 때에, 그곳에 성전을 세우기 위하여 예물을 즐거이 드렸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에 따라서 역사하는 곳간[the treasure of the work]에 금 육만 일천 다릭, 은 오천 마네, 제사장의 옷 일백벌을 드렸습니다. 여기 족장들이 성전 건축을 위하여 드린 예물과 다윗 왕때 성전 건축을 위하여 방백들과 백성들이 드린 예물(대상29:1-9)을 비교해 보십시오. 또한 즐거이라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를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2:68-69, 21:3-4, 고후9:7)

  )매튜헨리주석-.그들이 성전 건축을 위해 예물을 드림. 68절과 69절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1.그들은 예루살렘의 여호와의 전으로 올라왔다. 그러나 그토록 거룩하고 아름답던 성전이 지금은 폐허와 돌무더기가 되었다. 제단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브라함처럼 본래 제단이 있던 자리로 나아왔다(13:4,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이와 같이 시온의 티끌까지 사랑하는 태도야말로 시온의 참 아들들의 특성이다(102:14). 2.그들은 그곳에 성전을 세우기 위해 예물을 드렸다. 그들이 먼저 하나님의 전을 세우고자 서로 의논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이제 막 긴 여행을 마쳤으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출발점에 서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자원해서 예물을 바쳤다. 신앙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아깝게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된다. 우리는 그렇게 할 때 훨씬 더 큰 이익이 따를 것이란 사실을 굳게 믿어야 한다. 그들이 드린 예물은 다윗 시대의 방백들이 드린 예물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때는 달란트 단위로 드렸지만(대상29:7), 지금은 적은 단위로밖에는 드릴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적은 예물도 마치 과부의 두 렙돈처럼 달란트 단위의 예물 못지않게 하나님이 받으심직한 것이었다. 컴버랜드(Cumberland)의 계산에 따르면, 61,000다릭은지금의 영국 화폐단위로 상당한 액수에 달한다. 그는 1마네를 60세겔(30온스)로 환산한다. 그렇다면 1마네는 7파운드가 조금 넘을 것이며, 5000 마네는37,000파운드 정도가 될 것이다. 하나님은 바벨론에서 그들의 숫자만 증가시킨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재물도 증가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을 번성케 하신 것처럼 그들도 하나님의 전을 다시 건축하는 일에 즐거이 드렸다. 3.그들은 각자의 성읍에서 살았다(70). 그들의 성읍은 아직 수리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정해주신 자신들의 성읍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각자 자신들의 성읍에서 사는 것을 만족하게 여겼다. 그들은 외적인 화려함이나 풍성함이나 권세는 갖지 못했지만 그러나 자신들에게 주어진 소유와 자유로 인해 크게 감사했다. 그들은 매우 가난했지만 그러나 한 마음으로 그러한어려움을 선용하며 잘 극복해 나갔다. 지금 여기에는 그들 모두를 위한 충분한공간이 있었다. 따라서 그들 사이에 어떤 다툼도 없었으며 모두가 한 마음을가졌는데, 이것은 그들이 이 곳에 잘 정착할 것을 보여주는 복된 전조였다.


*참고성경구절

3:16 그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4:3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21:27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요일2:15-16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21:3-4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 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고후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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