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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BS_Nehemiah_느헤미야 제2과

공부할 내용: 느헤미야 1장 6절 - 2장 4절

본문

20227월 10(주일) 오후 4 줌zoom그룹성경공부

 

1.느헤미야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이제 종이 주의 종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이스라엘 자손의 주 앞에 범죄함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셨나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느헤미야는 신명기 30:1-5을 인용하면서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잊지 말아 달라고 다음과 같이 간청하였습니다.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서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찌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컨대 기억하옵소서여기 신명기 30:1-5을 인용하는 느헤미야의 기도에서 우리들이 배워할 점은 무엇입니까? (1:6-9, 14:17, 119:49)

  )매튜헨리주석-. 느헤미야가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기도와 자복을 들으시고 받아 주실 것을 간구함(6). “종이 주 앞에 기도하는 것에 주는 귀를 기울이소서. 또 주는 눈을 여시사 기도하는 심령과 모든 형편을 보소서." 눈을 만드시고 귀를 빚으신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런 하나님이 밝히 보지 않으시며 귀 기울여 들으시지 않으시겠는가? .느헤미야가 죄를 자복함. 이스라엘만 범죄한 것이 아니라(그에게 있어 이것을 인정하는 것은 크게 부끄러울 일이 아니었다),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였나이다(6). 느헤미야는 이와 같이 자복하면서 스스로를 겸비케 하며 수치를 자취했다. 우리가 (특별히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였나이다(7). 죄를 자복함에 있어 우리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두가지, 즉 죄는 첫째로 우리 자신을 더럽히는 것이며, 둘째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범죄하는 것은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명령과 상반되게 타락시키는 것이다. IV.느헤미야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탄원함. 1.느헤미야는 하나님이 옛적부터 말씀하시고 행하신 법칙을 기억해 달라고 탄원한다(8,9). 하나님은 만일 그들이 언약을 깨뜨리면 그들을 여러 나라 가운데 흩을 것이라고 실제로 말씀하셨으며, 그러한 경고는 그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것에서 성취되었다. 이 때의 이스라엘처럼 천지사방으로 흩어진 민족은 일찍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경고의 말씀에 덧붙여, 만일 그들이 돌아오면 그들을 다시 모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지금 그들은 우상 숭배를 버리고 성전 예배를 지키면서 그렇게 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느헤미야는 신명기 30:1-5을 인용하면서 그 약속을 부디 잊지 말아 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한다. “이제 청하건대 그 말씀을 기억하옵소서. ‘이는 주께서 나로 기억하게 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나이다.” 또 느헤미야는 자신들이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음을 고백한다(7).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께 그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기억해 달라고 간청한다(8). 그가 여기에서 이와 같이 말한 것은 언약이 종종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으로 일컬어지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가 그분의 계명을 기억하는 것 이상으로 당신의 약속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파멸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최선의 탄원은 하나님의 약속 곧 우리로 하여금 소망을 갖게 하신 바로 그 말씀을 붙잡는 것이다(119:49).

 

2.느헤미야는 기도하는 가운데 아닥사스다 왕을 이 사람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이 표현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11, 3:19, 9:20, 146:3-4)

  )매튜헨리주석-2. 느헤미야는 그들과 하나님 사이의 오랜 관계를 기억해 달라고 탄원한다. “이들은 주께서 구별하시고 언약을 맺으신 주의 종들이요 주의 백성이니이다(10). 주께서는 주의 철천지원수들이 주의 사랑하는 종들을 짓밟고 압제하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두실 것이나이까? 주께서 주의 백성을 위해 나서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구를 위해 나서실 것이나이까?" 이사야 6319절을 보라(우리는 주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자 같으며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지 못하는 자 같이 되었나이다).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종이라는 증거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11). “그들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자들이나이다.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자들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이나이다. 그들은 지금 주의 뜻에 따라 오직 주만을 섬기며 참 마음으로 주를 경외하나이다. 그들은 이와 같이 주를 경외하는 가운데 모든 일을 행하기를 열망하는 자들이나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나타낸다. (1)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대한 선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 “그들은 항상 하나님 앞에 자신들의 의무를 행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또 그렇게 노력하고 있나이다. 비록 많은 경우에 부족한 점이 많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것을 목표로 삼고 있나이다.” (2)그들이 하나님 경외하기를 즐거워한다는 사실. “그들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것으로 즐거움을 취하나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무를 행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즐거이 순복하나이다.” 참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열망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온전히 열납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열망이야말로 하나님 자신의 일이기 때문이다. 3.느헤미야는 하나님이 전에 그들을 위해 행하셨던 큰 일들을 기억해 달라고 탄원한다(10). “이들은 옛적에 주께서 구속하신 자들이니이다. 주의 권능은 지금도 동일하나이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그들을 구원하사 그들의 구원을 완전케 하시지 않으시려나이까? 무한한 권능의 하나님을 자기편으로 삼고 있는 자들이 원수들에 의해 수치를 당하지 말게 하옵소서.” V.느헤미야가 하나님께 자신의 일을 형통케 하시고 특별히 왕에게 은혜를 입게 해 달라고 간청함. 그는 바사 왕을 이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가장 큰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왕이라 할지라도 스스로가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만 하며(9:20), 다른 사람들 역시도 그러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 네가 뉘기에 사람을 두려워하느뇨? 느헤미야는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해 달라고 간구했는데, 그것은 왕의 은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왕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사람의 호의 역시도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럴 때 사람의 호의는 우리에게 더 큰 위로와 기쁨이 될 것이다.


3.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에게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라고 말하였을 때에, 느헤미야는 크게 두려워하면서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불에 탔음]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때 왕이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물었을 때에, 느헤미야는 답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잠깐 묵도[기도]하였습니다.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So I prayed to the God of heaven]” 여기 느헤미야가 왕 앞에서 하나님께 순간적인 기도를 드렸는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2:1-4, 살전5:17, 4:2)

  )매튜헨리주석-자기 백성들의 안위를 위해 기도할 때(어쩌면 그는 시51:8의 다윗의 말을 인용하여 기도했을는지도 모른다.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느헤미야는 나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사오니 이제 하나님께서 행하소서라고 기도하지 않고 그 일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우리의 기도는 진지한 노력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다. 느헤미야가 왕에게 예루살렘에 가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청원하기까지는 거의 4개월이 흘렀다(기슬루월에서 니산월까지, 11월에서 3월까지). 이와같이 많은 시일이 걸린 것은 겨울철은 여행하기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실제로 예루살렘으로 여행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기 때문이든지 아니면 왕의 부름을 받기 전에는 결코 왕 앞에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4:11). 어쨌든 지금 그는 왕의 식탁에서 시중을 드는 가운데 왕에게 자신의 소원을 말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우리가 만왕의 왕 앞에 나아가 아룀에 있어 이와 같은 제한이 없다는 사실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우리는 언제든지 그 앞에 나아갈 자유를 갖고 있다.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기에 적합하지 않은 때는 없다. 이제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게 된다. I.느헤미야의 얼굴에 수심이 있음. 그의 얼굴에 나타난 수심은 왕으로 하여금 그 이유를 묻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왕이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고자 할 때는 갑자기 용무를 꺼내지 말고 이와 같이 우회하는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용무를 말하기에 앞서 먼저 왕의 기분이 어떠한지 시험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그는 포도주를 취하여 왕의 잔에 따라주면서 왕으로 하여금 자신의 얼굴을 보도록 만들었다. 지금까지 그는 왕 앞에 한 번도 슬픈 기색을 보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왕궁에 있는 자들은 결코 슬픈 기색을 띠어서는 안 되는 것이 왕궁의 법도였기 때문이었다(4:2). 그는 포로요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편안하며 쾌활하게 생활했다. 믿음의 백성들은 세상으로 하여금 신앙적인 생활이 즐거운 길임을 알게 하며 그들에게 덧씌워진 '신앙적인 사람은 우울한 표정을 짓는 사람' 이라는 편견을 깨뜨리기 위해 가능한 한 쾌활하며 즐겁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만사에 다 때가 있는 법이다(3: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지금 느헤미야에게는 슬퍼하고 또 슬픔을 나타낼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예루살렘의 처참한 상태는 그로 하여금 슬퍼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으며, 그의 슬픈 표정은 왕으로 하여금 그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가 거짓으로 슬퍼하는 척 꾸민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요셉의 환난으로 인해 정말로 슬퍼하였으며, 고의로 자기 얼굴을 흉하게 하는 위선자들과 같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필요한 상황에서는 자신의 슬픔을 감출 수도 있었다(마음은 스스로의 괴로움을 알며, 웃음 가운데에도 종종 슬픔이 있는 법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자신의 슬픔을 나타내는 것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는 술 관원의 직책에 따라 왕에게 포도주를 따라주기 전에 먼저 자신이 그것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이스라엘이 고통 가운데 있는 한, 왕의 포도주조차도 그의 마음을 기쁘게 만들 수 없었다. .왕이 느헤미야의 얼굴에 수심이 있는 것을 보고 그 이유를 물음(2).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 다음을 주목하라. 1.우리는 기독교적 사랑의 원리로부터 다른 사람들의 슬픔이나 괴로움에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심지어 아랫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하며,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주인은 종들의 슬픔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말고 그들을 편안하게 해주기를 바라야 한다. 크신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낙담과 괴로움 가운데 있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즐거움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기쁨으로 자기 양식을 먹는 것을 기뻐하신다. 2.병든 사람이 슬픈 기색을 띠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병은 명랑하고 쾌활하던 자들까지도 금방 괴로운 표정을 짓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음의 백성은 심지어 병에 걸렸을 때조차도 자신의 모든 죄가 사하여졌음을 기억할 때 즐거워할 수 있다. 3.병으로부터 자유한 것은 큰 은총이다. 그러므로 특별한 병이 없이 지낸다면, 설령 다른 어떤 외적인 짐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으로 인해 과도하게 낙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와 다른 사람들의 죄로 인해서는, 특별히 하나님의 교회가 고통을 당하는 것으로 인해서는, 설령 우리에게 어떤 병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는 마땅히 슬퍼해야 한다. .느헤미야가 왕에게 자신의 슬픔의 이유를 설명함. 왕에게 이야기함에 있어, 1.그는 두려움으로 말했다. 느헤미야는 지금 자신이 크게 두려워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왕의 진노였든지(당시 동방의 군주들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절대적인 권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2:12-13,5:19), 아니면 혹시라도 말을 잘못하여 자신의 청원이 허락되지 않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는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라도 잘못 말하지 않을까 매우 조심했다. 우리 역시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 어떤 일에 확신을 갖는 것은 그 일을 이루는데 매우 중요하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스스로 겸비하며 조심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2.그는 온유함으로 말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주인인 왕에게 모든 존경과 경의와 선한 뜻을 가지고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왕은 지혜롭고 선하신 분이시며 이 세상에서 통치자로서 가장 합당하신 분이로소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겸손하게 반문한다.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 슬픔과 우울함 가운데 있으면서도 자기가 왜 슬퍼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은 부당하며 불합리한 슬픔으로서,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를 꾸짖어야 한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왕에게 자신의 슬픔의 이유를 분명하게 말할 수 있었다. 다음을 관찰하라. (1)그는 예루살렘을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곳 즉 그의 조상들이 묻힌 곳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때때로 우리 조상들의 묘실을 생각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조상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흔히 그들의 명성이나 직함 혹은 집이나 재산 따위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와 함께 우리는 그들의 묘실에 대해서도 생각하면서 먼저 온 자는 먼저 간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 또한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기념물에 대해서도 소홀히 여기지 않으면서 그것이 훼손되지 않도록 잘 보존해야 한다. 대부분의 나라는 죽은 자의 부활을 전혀 기대하지 않는 나라들까지도) 조상들의 묘실을 어느 정도 신성시하며 침범되어서는 안되는 곳으로 여긴다. (2)그는 자신의 슬픔을 정당화한다. “지금 종이 슬퍼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 하나이다. 어떻게 지금 종이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아무리 경건하며 형통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슬프거나 혹은 슬픔을 나타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선한 자라 할지라도 모든 슬픈 생각을 쫓아냄으로써 천국을 앞당길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지나가는 세상은 눈물 골짜기이며, 우리는 일기뿐만 아니라 우리의 감정에도 순응해야 한다. (3)그는 자신이 슬퍼하는 이유가 다름 아닌 예루살렘의 황폐 때문이라고 말한다. 교회의 모든 고통, 특별히 교회의 황폐가 모든 선한 백성들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모든 자들과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의 지체인 자들에게 큰 슬픔과 비통의 원인이 되는 사실을 주목하라. 그들은 시온의 티끌까지도 소중히여긴다(102:14). IV.왕이 느헤미야에게 원하는 것을 말하라고 함(4). 왕은 그에게 매우 호의적이었으며 그가 슬퍼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아마도 그는 유대 종교에 대해서도 호의적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전에 에스라를 등용한 것에서나 지금 느헤미야를 등용한 것에서 어느 정도 추측할 수있다(특별히 에스라는 익숙한 서기관으로서 유대 율법에 정통한 자였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어떻게 예루살렘을 도울 수 있을지 알고자 하여 느헤미야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지금 네가 하고자 하는 것 그것이 무엇이냐?” 느헤미야는 크게 두려워했었지만(2), 왕의 이러한 질문으로담대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느헤미야가 바사 왕의 격려로 담대한 마음을 가질수 있었다면, 하물며 응답의 약속과 함께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는 그리스도의 초청은 우리로 하여금 얼마나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만드는가? 이에 느헤미야는 즉시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면서, 자신에게 지혜를주사 합당한 것을 구하게 하시며 또 왕의 마음을 움직이사 자신이 구하는 것을 허락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왕의 은총을 얻고자 하는 자는 먼저 만왕의 왕의 은총을 얻어야 한다. 그는 하늘의 하나님, 즉 이 큰 바사 제국보다도 무한히높으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것은 격식을 갖춘 기도 (solemn prayer)”가 아니라(지금은 그렇게 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은밀한 가운데 드린 순간적인 기도(ejaculation)”였다. 그는 마음의 언어를 아시는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올려드렸다. “여호와여 종에게 구변과 지혜를 주소서. 여호와여 이 사람 앞에서 종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때때로 이와 같은 순간적인 기도를 드리는 것은 너무도 좋은 일이다. 특별히 지금과 같은 특별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와같은 순간적인 기도는 아무 일도 방해하지 않는다. 도리어 우리의 일을 더욱 촉진시킨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간순간 이와 같이 기도해야 하며, 아무것도 그것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느헤미야는 얼마 전에 이러한 상황을 예상하면서 기도했었다(1:11). 그 때의 기도는 격식을 갖춘 기도(solemn prayer)였다. 그리고 이제 그 순간이 다가왔으며, 그리하여 그는 또다시 기도했다. 지금의 기도는 순간적인 기도(ejaculation)였다. 이와 같이 격식을 갖춘 기도순간적인 기도는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피차 각자의 위치를 갖고 있는 것이다.


*참고성경구절

14:17-18 이제 구하옵나니 이미 말씀하신대로 주의 큰 권능을 나타내옵소서

119:49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나로 소망이 있게 하셨나이다

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거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9:20 여호와여 저희로 두렵게 하시며 열방으로 자기는 인생뿐인 줄 알게 하소서(셀라)

146:3-4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살전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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