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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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지은 작성일 16-09-12 20:00본문
*출처 : 영국 진리의깃발
*저자 : 제프 토마스(Geoff Thomas)
교회와 음악 (원제 : Sound of Music)
현대의 복음주의 교회들은 음악으로 모든 것을 하려고 하고 있다. 심지어는 설교의 마지막을 부분을 부드러운 화음과 멜로디로 끝내기도 한다. 음악은 회중이 느끼고 있는 감정에 작용하여 강력한 조종력을 행사할 수 있다. 마치 시내의 상점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느슨하게 만들어 지갑을 열고 카드를 꺼내게 하는 데에 음악을 이용하는 것과 유사하게 말이다.
심리학자들은 음악이 정서(affection)에 소구한다는 것과 음악이 사람의 감정(emotion)을 끌어낸다는 데에 일치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한 증거는 과학적으로 예증되고 있다. 최근 코넬 대학교의 연구에 의하면 어떤 음악들은 생리학적으로 몸의 변화를 유도한다고 한다. 단조 선율의 음악은 맥박을 이완 시키고 혈압의 증가 및 체온의 하락을 만들어 내는데 이 상태는 바로 슬픔의 감정에 휩싸였을 때 일어나는 현상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반면 “박수 치며 왁자지껄한” 노래들은 그 반대의 현상으로 쾌활한 기분을 유도한다. 어떤 형태이든, 음악은 예민한 감정 회로에 작용할 수 있어서 특정한 감정 상태를 각성시키는 힘이 있다.
이렇기에 설교자가 회중에게 슬픔의 감정은 죄에 대해 각성시키는 성령의 특별한 은사이고 행복한 감정은 그들이 참된 신자라는 확신을 주시는 성령의 임재의 결과라고 설명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것이다. 많은 곳에서 성령의 임재와 행하심에 대해 자신 있게 언급하는 이런 설교들이 행해지고 있다.
음악 심리학자인 Leicester 대학교의 Adrian North박사는 지난해에 스태퍼드셔 (잉글랜드 중부의 주) 십대들을 대상으로 어떤 음악을 들으며 왜 듣는지를 조사하였다. 소녀들은 그들의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음악을 듣는다고 답했고, 반면 소년들은 친구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음악을 듣는다고 답했다. 그들에게 음악이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정체성의 배지”와 같은 것이다. 각 개인의 음악적 선택은 매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만약 여러분이 Graham Kendrick와 같은 현대적 찬송 작곡가를 선호한다고 말한다면 Isaac Watts 나 Augustus Toplady의 찬송을 좋아한다고 말할 때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Steven Pinker는 음악이란 “청각을 위한 치즈 케익”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우리의 뇌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능력을 깨우는, 소리로 만들어진 케익이라는 의미이다. “가사를 가진 노래들은 언어에 익숙한 뇌에 작용하고, 새들의 노래나 심지어 천둥소리와 같은 자연세계의 소리와 화음에 민감한 우리의 귀에도 어필한다. 우리는 일정한 패턴과 리듬과 반복되는 소리들로부터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데, 이러한 반복되는 소리는 유행가처럼 우리의 귀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Anjana Ahuju, “왜 우리는 음악의 소리에 반응하는가”, 타임지, 2000/2/23)
음악이 어떻게 우리를 움직이는가에 대한 맨체스터 대학교의 과학자들의 보고서에 의하면, 큰 소리의 음악은 sacculus라고 하는 귀 안쪽의 기관을 자극하는데, 이것은 뇌에서 쾌감을 느끼는 부위인 시상하부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왜 음악이 기분을 환기시키고 즐거움을 주는지는 설명해 주는 부분이다. Sacculus는 오직 음악에만 반응한다는 사실은, 다른 형태의 소리, 예를 들어 설교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오직 음악만이 사람의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설명해 준다.
1993년에 카톨릭 사제인 Basil Cole에 의해서 “음악과 도덕: 도덕과 음악의 심리적 효과에 대한 신학적 소고”라는 책이 출판되었다. 그는 젊은 시절에 재즈 즉흥곡들의 연주가였는데 음악가로서 음악이 청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잘 알고 있기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여기서 음악은 중립적이 아니며 그 안에는 도덕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공자와 같은 고대의 철학자들의 사상을 분석함으로써 그들 모두가 다양한 형태의 음악은 사람의 영혼에 좋거나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이 책은 140페이지 분량 정도로 짧은 책이다. 카톨릭의 시스템이나 사제직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배제하고라도 음악에 대한 그의 통찰은 귀 기울일 만 하다.
왜 특정 교회들은 그렇게 많은 음악들을 사용하고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음악을 그 교회들에 두셨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대략 십여 년 전에 젊은 음악가들이 설교자와 회중들에게 예배 중에 더 많은 음악이 필요하다고 선전한 결과이다. 진짜 이유는 자아를 부추키는 음악과 새로운 음악들이 주변에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회중 앞에 서서 설교와 기도, 또는 성경교독을 마무리 하기 위해 노래하는 남녀들과 연주가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형태의 ‘사제직”이 생겨난 것이다. 이들의 열정적인 모습은 사람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들은 자신들을 하나님께서 그분의 교회를 구하시기 위해 제정된 새로운 종류의 레위인과 같은 사제직으로 생각한다. 스스로를 ‘창의적인 사람들’로 여기며 여타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만약 교회에서 회중 앞에서 긴 시간 동안 뽐내며 서 있는 젊은이들이 타당한지 근본적인 질문을 한다면, 이들은 아마도 깊은 상처를 받고 회중 내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에 저항하기 위해 비밀스런 기도 모임을 소집할지도 모른다.
Ian D. Elsasser는 필자에게 편지를 보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밴드 및 과도한 합창단과 같은 현대 음악의 경향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저는 다음과 같은 부분을 사람들에게 종종 말하곤 합니다. 저 자신이 음악가였고 저녁 예배에서 이와 같은 것을 사용했던 침례교회에서 십대의 시기를 보냈으며, 이러한 다양한 일들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교회가 이러한 형태의 “예배”를 개발하도록 도왔던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양심에 따라, 더 이상 이러한 예배 방법이 주일날 교회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지지할 수 없습니다. 예배의 절차 중에는 합창의 사용이 필요한 곳이 있고, 교회는 성경을 가르침을 잘 반영하고 믿음의 관점을 건전하게 보여주는 “선한” 현대 찬송들을 추구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워쉽팀이 가진 정신과 그들의 예배의 과도한 개입이 결국에는 해로운 것으로 입증될 것입니다. 주님, 당신의 이름의 자비와 영광을 위하여 교회를 이 해로움으로부터 구해 주소서. 그들 자신은 물론, 다음 세대가 성경적인 관점에서 교회의 일을 진행할 때 필요한 바른 판단을 잃게 되지 않도록 교회를 구해 주소서."
건전한 찬송 작곡가인 Chris Idle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대교와 로마 카톨릭의 사제들이 성도들을 하나님께로 가깝게 이끌기 위해서는 전 예배과정에서 자신들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현대에는 음악이 우리의 모임과 듣는 것과 지출을 지배하게 되었다. 음악가들은 목적에 맞게 적절하게 말하고 옷을 입고 포즈를 취한다. 음악이 하나님의 실제적인 임재로 가는 새로운 길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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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 성경공부 시간에, 사울이 악신으로 인한 고통을 달래기 위해 음악을 사용한 부분에 대해서 토론을 했었습니다.
음악 자체는 얼마나 아름답고 우리에게 많은 기쁨을 주는 것인지 모릅니다. 음악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반 은총의 하나이며 하나님의 창조성이 반영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하고 간구해야할 때에 대신할 방법으로서 음악에 의존한다면 그것은 옳지 않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들이 많이 추구 하고 있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방법을 벗어나 인간에게 촛점을 맞춘 예배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음악으로 사람들의 감정을 터치하며 성령의 은혜와 혼돈하게 만드는 예배는 얼마나 해로운 것인지 제프 토마스 목사님의 글을 통해서 되돌아 봅니다. 음악으로 감정만이 움직인 예배는 어떠한 변화도 경건도 이루어 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