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적은 수만이 구원받는다- 세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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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일 작성일 16-07-17 13:26본문
J C 라일목사 씀
3. 세번째로 성경이 구원받은 자의 숫자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 알아보자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할 진리와 오류에 대한 기준이 있다. 그 기준은 성경이다. 거기에 무엇이 기록되어 있든지 우리는 반드시 받아들이고 믿어야 한다. 성경에 의해서 증명될 수 없는 것은 무엇이든 거부해야 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이 말에 동감할 수 있는가? 할 수 없다면 그는 내 말 어느 부분에도 동감할 기회를 찾지 못할 것이다. 만일 그가 할 수 있다면 내게 몇 분을 달라 그렇다면 내가 몇가지 엄숙한 일들을 말해주리라.
먼저 성경의 한 구절을 찾아보자. 그리고 그것을 잘 살펴보자. 마태복음 7:13, 14에 그곳이 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이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이것이 진정 하나님이셨던 그 분의 말씀이며 그의 말씀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아셨던 분의 말씀이며 그는 앞으로 올 것과 지난 일들에 대해 잘 아셨다. 그는 또한 그가 마지막 날 사람들을 심판하러 오실 것도 아셨다. 그렇다면 이 말들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 말씀은 꼭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한 자들만 이해할 수 있는 말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 말씀들은 숨겨있고 아직 성취되지 못한 계시록이나 에스겔 성전에 대한 예언이란 말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아니면 너무나 심오하여 인간의 이성으로는 그 심연을 들여다 볼 수 없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이 말씀들은 분명하고 단순하며 실수가 없다. 그 어떤 글을 아는 노동자들에게 물어보라 그가 알려줄 것이다. 그들이 이해한 말씀은 단 하나이다. 그 뜻은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바되고 아주 소수만이 살아 남을 것이란 것이다.
이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이것이 진정 하나님이셨던 그 분의 말씀이며 그의 말씀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아셨던 분의 말씀이며 그는 앞으로 올 것과 지난 일들에 대해 잘 아셨다. 그는 또한 그가 마지막 날 사람들을 심판하러 오실 것도 아셨다. 그렇다면 이 말들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 말씀은 꼭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한 자들만 이해할 수 있는 말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 말씀들은 숨겨있고 아직 성취되지 못한 계시록이나 에스겔 성전에 대한 예언이란 말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아니면 너무나 심오하여 인간의 이성으로는 그 심연을 들여다 볼 수 없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이 말씀들은 분명하고 단순하며 실수가 없다. 그 어떤 글을 아는 노동자들에게 물어보라 그가 알려줄 것이다. 그들이 이해한 말씀은 단 하나이다. 그 뜻은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바되고 아주 소수만이 살아 남을 것이란 것이다.
함께 다음 구절의 경건에 대한 인류의 역사를 들여다 보자. 그 사천년의 세월들을 생각해보고 성경의 역사가 진행된 그 시간들을 생각해보자. 할 수 있다면 그 허다한 세월들 속에서 경건한 자들이 다수이고 불경한 사람들이 소수였던 시대를 골라보자.
노아시대에는 어떠했는가? 지구는 말 그대로 "폭력으로 가득했다." 인간의 모든 상상력은 오직 "끝없는 악함"에 젖어 있었다.(갈6:5,12) 모든 육체는 스스로 더럽혀졌다. 실낙원은 잊혀져 버렸다. 하나님의 경고는 노아의 입에서 나왔고 사람들의 멸시를 받았다. 그리고 실제로 홍수가 몰려와 모든 생명들 위에 덮쳤을 때 오직 여덟명의 사람들만이 방주를 피난처로 삼아 살 수 있는 믿음을 보유했다! 구원받은 자들이 많다고 생각하는가? 성경을 읽는 정직한 사람이라면 이 질문에 대답해 보라. 이에 대한 답은 너무도 분명해 보인다.
아브라함의 시대와 이삭과 롯의 시대는 어떠했는가? 경건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는 그들은 혼자였다. 아브라함의 부모들은 우상숭배자들이었다. 그들이 속해 있던 나라들도 큰 죄와 어둠 속에 잠겨있었다. 소돔과 고모라가 불타버렸을 때 그 곳에는 그 평원의 네 도시들 가운데는 의인 다섯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브라함과 이삭이 아들들을 위한 배우자를 고르려할 때 그들이 머물던 땅에는 단 한 명의 신부감도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시대에 많은 자들이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는가? 성경을 읽는 양심적인 사람이라면 이 질문에 대답하기 바란다. 이에 대한 답은 너무도 분명해 보인다.
사사기 시대의 이스라엘을 생각해보라. 사사기를 읽기 전에는 인간의 슬픈 타락에 대해 충격을 받지 않을 사람이 없다. 종종 우리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쫒았다고 들었다. 이 명백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의 풍습에 동참한 것이며 그들의 일들을 쉽게 습득했다. 때때로 우린 그들이 자신의 죄로 인해 타국의 왕에 의해 지배를 받았다가 기적적으로 구원을 받은 사실을 읽게 된다. 하지만 또다시 그들은 이전의 죄악된 생활로 돌아간다. 마치 돼지가 한 번 씻겼다가 시궁창에 다시 빠져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과연 이 시대에 구원받은 자들이 많았을까? 성경을 읽는 정직한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답해 보라.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명백해 보인다.
열왕기에 나와 있는 시대를 살펴보라. 첫 왕이었던 사울왕부터 마지막 왕인 시드기아까지 그들의 역사는 일탈과 퇴폐와 우상숭배로 점철지어졌다. 물론 몇 가지의 특이한 시기가 있었지만 말이다. 심지어 가장 훌륭한 왕이 다스리던 때에도 상당한 불신과 불경건이 팽배해 있었는데 이들은 잠시 한 동안 숨어 있다가 좋은 기회만 보이면 바로 튀어나왔던 것이다. 계속적으로 관찰되는 것은 가장 열심있는 왕의 휘하에서도 "산당은 제거되지 않았다". 심지어 다윗왕조차도 자신의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시 12:1) 이사야가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해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지 주의하여 보라.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이사야 1:5-9)
예레미야가 그의 시대를 어떻게 통탄하고 있는지 살펴보라.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렘 5:1)
에스겔이 그의 시대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보라. "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내게 찌꺼기가 되었나니 곧 풀무 불 가운데에 있는 놋이나 주석이나 쇠나 납이며 은의 찌꺼기로다" (겔 22:17, 18)
16장과 23장에서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을 주의하여 보라. 그 시대에 구원받은 자들이 많았는가? 성경을 읽는 정직한 자들은 이에 대해 대답해 보라. 이에 대한 대답은 너무도 자명하다,.
예레미야가 그의 시대를 어떻게 통탄하고 있는지 살펴보라.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렘 5:1)
에스겔이 그의 시대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보라. "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이 내게 찌꺼기가 되었나니 곧 풀무 불 가운데에 있는 놋이나 주석이나 쇠나 납이며 은의 찌꺼기로다" (겔 22:17, 18)
16장과 23장에서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을 주의하여 보라. 그 시대에 구원받은 자들이 많았는가? 성경을 읽는 정직한 자들은 이에 대해 대답해 보라. 이에 대한 대답은 너무도 자명하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지상에 계실 때는 어떠했는가? 사도 요한의 말들은 그 시대의 영적 상태에 대한 최고의 언급이다. "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 (요한 1:11). "그의 삶은 여인에게서 난 자가 살았던 삶 같지 않았다. 흠없고 점도 없는 고결한 거룩한 삶이었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행 10:38)
그는 이전에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설교를 했다. 심지어 원수들의 공직자들도 나와서 고백했다.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요한 7:46) 그는 자신의 사역을 확증하기 위해 기적을 베풀었는데, 겉보기에는, 가장 완악한 심령이라도 확신시키기에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이 모든 기적과 이사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대다수는 그를 믿지 않았다. 팔레스틴에서 주님을 따라 여행했던 기록을 살펴보면 같은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도시에서 주님의 행적을 보고, 광야에서 그의 행적을 보자. 그를 따라 가버나움과 나사렛 예루살렘까지 따라가 보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사이에 있던 주님을 바라보자. 사두개인들과 헤로디안 사람들 사이에 있던 주님을 바라보자. 그 모든 곳에서 당신은 같은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놀랐고 그들은 조용해 졌고 그들은 신기해 했고 환호했지만 아주 적은 자들만이 그의 제자가 되었다! 나라의 다다수 사람들은 주님의 교리를 알지 못했고 그들의 잔악함을 주님께 씌워 죽음으로 몰아갔다. 과연 이 시대에 구원받은 자들이 많았는가? 성경을 읽는 독자들은 정직히 답해보라. 그 해답은 뻔한 것이다.
그는 이전에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설교를 했다. 심지어 원수들의 공직자들도 나와서 고백했다.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요한 7:46) 그는 자신의 사역을 확증하기 위해 기적을 베풀었는데, 겉보기에는, 가장 완악한 심령이라도 확신시키기에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이 모든 기적과 이사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대다수는 그를 믿지 않았다. 팔레스틴에서 주님을 따라 여행했던 기록을 살펴보면 같은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도시에서 주님의 행적을 보고, 광야에서 그의 행적을 보자. 그를 따라 가버나움과 나사렛 예루살렘까지 따라가 보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사이에 있던 주님을 바라보자. 사두개인들과 헤로디안 사람들 사이에 있던 주님을 바라보자. 그 모든 곳에서 당신은 같은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놀랐고 그들은 조용해 졌고 그들은 신기해 했고 환호했지만 아주 적은 자들만이 그의 제자가 되었다! 나라의 다다수 사람들은 주님의 교리를 알지 못했고 그들의 잔악함을 주님께 씌워 죽음으로 몰아갔다. 과연 이 시대에 구원받은 자들이 많았는가? 성경을 읽는 독자들은 정직히 답해보라. 그 해답은 뻔한 것이다.
사도들의 시대에는 어떠했는가? 진정한 경건이 꽃피었던 시기가 있었다면 바로 이 시대일 것이다. 성령이 그리스도의 품 안에 그 시대만큼 많은 영혼을 몰아 주었던 시기가 없었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설교자로서 복음을 선포했을 때 수많은 영혼들이 회심을 경험했다. 하지만 사도행전을 보면 여전히 진정한 기독교는 " 어디서나 반박을 당했다 "(행 28:22)
그 모든 도시와 예루살렘 자체에서도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적은 소수였다. 우리는 사도들이 겪어야 했던 수많은 위험들에 대해 알고 있다. - 그것은 외부에서 뿐 아니라 내부에도 있었다 - 이방인 뿐 아니라 거짓 형제들 사이에서도 도사리고 있었다. 사도 바울이 방문했던 도시 그 어디 한 곳에서도 바울이 박해를 당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의 서신들을 보면 고백적인 교회들 내부에는 많은 해악한 회원들이 있었다. 빌립보서를 보면 그의 가슴아픈 경험들을 살펴볼 수 있다. "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빌 3:18,19) 그래도 그 시대에는 구원받은 자들이 많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성경을 읽는 독자들은 말해보라. 그 대답은 너무도 명확하다.
그 모든 도시와 예루살렘 자체에서도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적은 소수였다. 우리는 사도들이 겪어야 했던 수많은 위험들에 대해 알고 있다. - 그것은 외부에서 뿐 아니라 내부에도 있었다 - 이방인 뿐 아니라 거짓 형제들 사이에서도 도사리고 있었다. 사도 바울이 방문했던 도시 그 어디 한 곳에서도 바울이 박해를 당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의 서신들을 보면 고백적인 교회들 내부에는 많은 해악한 회원들이 있었다. 빌립보서를 보면 그의 가슴아픈 경험들을 살펴볼 수 있다. "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빌 3:18,19) 그래도 그 시대에는 구원받은 자들이 많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성경을 읽는 독자들은 말해보라. 그 대답은 너무도 명확하다.
내가 인용한 성경의 교훈을 잘 저울질 해 보기 바란다. 이들은 무겁고 엄숙하며 신중한 주의를 요하고 있다.
성경은 유대인들만을 다루고 있지 않은가요라고 반문하지 않기를 바란다. 혹자는 말하기를 "유대인들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악한 나라였고, 다른 나라 여러 곳에서 구원받은 자들이 많았을 것이다. 오직 유대인들만 구원받는 자들이 적었응ㄹ 것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갖지 못한 빛과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비록 죄와 오류가 많았지만 지상에 존재한 가장 도덕적이며 가장 거룩한 나라였다. 시리아와 이집트와 그리스와 로마의 도덕적 수준은 차마 어떠했다고 말하기가 두려울 정도였다. 이점은 분명히 하자. 비록 유대인가운데 적은 수가 구원받았다 해도 그 수는 이방인에 비하면 월등히 많은 수였다. 비옥한 땅의 나무에서 구원의 열매가 적었다면 척박한 땅에서 자란 나무의 열매는 얼마나 적겠는가!
성경과 세상사람들은 구원받은 자들의 숫자에 대해 다르게 보고 있다. 성경에 의하면 구원받을 자들은 매우 적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에 의하면 많을 것이다. 세상사람들에 의하면 지옥에 갈 자들은 너무도 적을 것이다. 성경은 그 반대이다. 세상에 의하면 세상의 구원은 쉬운 것이지만 성경에 의하면 그 길은 좁고 협착한 곧은 길이다. 성경에 의하면 많은 자들이 늦기 전에 천국에 허락함을 받을 것이지만 성경에 의하면 이와 같은 슬픈 현실에 봉착할 것이다. "주여 주여 문을 열어주소서" 하지만 성경은 틀리지 않다. 두로 이집트, 바빌론, 니느웨에 대한 믿기 힘든 일들이 글자 그대로 일어 났다면 구원받은 자들에 대한 숫자도 그리할 것이다. 성경은 자신이 옳고 사람들은 틀렸다는 것을 입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