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은 신령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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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지은 작성일 16-04-20 11:40본문
웨스터민스터 대요리 문답 99문
십계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법칙을 준수해야 하는가? (2)
(1) 율법은 완전한 것으로 누구나 다 전인격으로 그 의를 충분히 따르고 영원토록 전적으로 순종하며, 모든 의무의 철저한 완수를 요구하며, 모든 죄의 작은 것이라도 금한다는 것.
(2) 율법은 신령하며 말과 행동의 태도뿐만 아니라 지식과 의지와 감정과 영혼의 모든 능력에 까지 미치고 있다는 것.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롬 7:14)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 칼빈 주석의 해설
바울은 여기서 율법과 인간의 성품을 보다 면밀하게 비교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는 사악의 근원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그래서 바울은 중생한 사람의 실례를 우리 앞에 제시한다. 그 중생한 사람 안에서 그의 영이 주의 율법에 기쁨으로 순종하려고 하는 만큼 육신의 잔재들이 그 율법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바울은 율법과 인간의 본성을 간단하게 비교하고 있다. 인간과 관련이 있는 문제들 중에 영과 육 간에 존재하는 경우보다 더 심한 불일치는 없다 - 왜냐하면 율법은 영적이요 인간은 육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과 율법 간에 무슨 일치가 있을 수 있겠는가? 어두움과 빛과의 경우와 같은 것이다.
더욱이, 율법을 신령하다(영적이다)고 부름으로 해서, 바울은 율법이 우리 심령의 내면적인 감정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 대조함으로써 육적(육신에 속하여)이라는 단어와는 반대되는 의미를 율법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우리가 위에서 언급한 그 주석가들은 율법은 신령하다는 말씀을 설명하기를, 외적 행위와 관련되는 한, 율법은 발과 손을 묶어 놓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또한 심령의 감정들에 적용되고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경외심을 요구한다고 말하고 있다.
육과 영에 대한 대조가 여기에 명시되어 있다. 육신이라는 용어가 인간들이 모태로부터 가지고 오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고 하는 것은 문맥적으로 미루어 보아 아주 분명하게 될 것이며 어느 정도는 이미 드러났다. 육신이라는 단어가 혈통을 가지고 태어나 선천적인 성품을 보유하고 있는 인간들에게 적용된 명칭인 것은, 인간들이 타락하고 아무런 평판도 없으며 조잡하고 세상적인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영은 우리의 부패한 본성을 새롭게 하는 것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자신의 형상대로 개조해 주신다. 바울은 우리 안에서 역사되는 새로움(newness)이 성령의 은사이기 때문에 이러 방식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율법의 완전한 교훈은 여기서 인간의 타락한 성품과 대립이 된다. 그러므로 그 뜻은, 율법은 천국적이고 천사적인 의(a heavenly and angelic righteousness)를 필요로 한다. 이 외에는 아무런 흠도 나타나지 않으며, 그 의는 더 이상의 청결을 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육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다만 그 의를 거스려 저항하는 것만을 행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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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예배 시간에 배운 대요리 문답 99에서 “율법은 신령하다”는 부분이 마음에 크게 남아서 칼빈 주석을 찾아보았습니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행위의 준수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의지와 감정과 영혼의 모든 능력에까지 요구되는 것이란 점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 넣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율법의 기준에 따라 행할 능력이 없으나, 성령의 은사로 역사되는 새로움(newness)을 부여 받을 때 우리는 기쁨으로 자발적으로 준수할 수 있는 자리로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단지 죄성에 지배 받는 상태에서 허우적거릴 수 밖에 없던 우리에게 빛으로 오셔서 새 생명을 주심으로써, 여전히 죄악의 간섭을 피할 수 없는 이 육신 안에서 전혀 새로운 성품이 움직이고 자라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