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PRING THAT NEVER DRIES UP

마르지 않는 샘

마르지 않는 샘

겨자씨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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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욱겸 작성일 15-10-12 23:43

본문

그러므로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꼬 내가 무엇으로 비할꼬

마치 사람이 자기 채전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누가 13:18-19)

 

 

"겨자씨의 비유"는 이 세상에 복음이 편만하게 전파될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말씀된 것 같다.

복음의 시작은 매우 미약했다.

그것은 마치 "밭에 뿌린 곡식 낱알"과도 같았으며 처음에는 너무 미약하고 무능하여 힘이 없어서 살아남지 못할 종교처럼 보였을 것이다. 복음의 설립자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너무 가난하게 사셨으며, 또 죽으실 때에도 행악자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를 쫓던 무리 역시 그 수가 너무 적어서 그가 이 세상을 떠날 즈음에 일천 명이 넘지 못하였을 것이다. 첫 번째 선포자들은 어부들과 세리들이었으며 또한 대부분이 배우지 못한 무식자들이었다. 게다가 복음의 발생지 역시 지구상에 멸시를 받던 한 구석, 곧 거대한 로마 제국의 조그마한 속국이었던 유대 땅이었다는 사실이다. 또 처음의 교리도 자연인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악의를 제거할 만큼 강력하지 못했다. 심지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에게 거치는 돌이 되었으며 헬라인에게는 어리석음이 되었다.

처음에 그 운동을 전개한 사람들은 사방에서 끊이지 않는 핍박을 받았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그리고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또 무지한 우상숭배자들과 자만심에 사로잡힌 철학자들 모두가 기독교를 미워하며 반박하는 일에 힘을 합했다. 즉 기독교는 곳곳에서 반대를 받던 하나의 종파였다. 이와 같은 말은 사실무근한 주장이 아니다.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 시작이 마치 곡식 낱알과 같이 미약했던 종교가 있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복음의 종교일 것이다.

 

그러나 땅에 뿌려진 씨앗처럼 복음의 진보 역시 매우 놀라웠으며 지속적이었다.

마치 겨자씨가 자라서 큰 나무가 되는 것과 같았다.

핍박과 반대와 박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계속해서 성장하여 왔다. 해가 거듭할수록 신자의 수는 증가했으며, 기독교 신앙으로 말미암아 매년마다 우상숭배 행위가 줄어들었다. 도시에서 도시로 그리고 농촌에서 농촌으로 그 새로운 신앙이 파급되고 있다. 또 세계 곳곳에 교회가 세워지고 있다. 전도자들과 선교사들이 계속해서 헌신을 다짐함으로 말미암아 선배들의 자리를 메우고 있다. 로마 황제들과 이방인 철학자들이 때로는 폭력으로, 때로는 논증으로 기독교의 발전을 저지하려고 헛되이 노력했던 것이다. 그들의 노력은 흐르는 조류를 막으려는 것과도 같았으며, 또한 떠오르는 태양을 붙잡아 두려는 우매한 행동과도 같았다. 수백 년이 안되어 그 멸시받던 나사렛의 종교, 곧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서 시작됐던 그 종교는 결국 문명세계를 완전히 전복시키고 말았다. 이제 거의 모든 유럽과 대부분의 아시아 그리고 북아프리카 전역이 이 신앙을 고백하게 되었다. 본문의 비유 속에 함축되어 있는 예언의 말씀이 문자대로 성취된 것이다. 겨자씨가 성장하여 "나무가 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임"과 같은 결과이다.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예언하셨으며, 또한 그 말씀이 어김없이 성취되었다.

그 시작이 비록 미약하고 또 볼품없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사역이라면 결코 실패함이 없다는 사실을 본 비유를 통해서 배우게 된다.

버림받은 큰 도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사람의 목사 그리고 수많은 야만인 이교도들 가운데서 전도하고 있는 한 사람의 선교사, 또 타락하고 부패한 교회 중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 개혁자의 영향력이 얼핏 보기에는 별로 신통치 못한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또한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일의 장엄함에 비하여 거기에 사용되는 도구가 너무 볼품없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본문에 나오는 비유의 말씀을 생각하고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 생각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명의 길이 분명할 때 우리는 외적 숫자나 육신적인 입장에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살아 있는 하나님의 진리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루터나 존 낙스처럼 한민족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 사람들과 마귀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그가 뿌린 씨앗은 끊임없이 성장하여 마침내 큰 나무가 될 것이다.

 

존라일 사복음서 강해(4권, 누가복음 II)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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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욱겸님의 댓글

김욱겸 작성일

<p>거듭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바람의 작용처럼 대단히 신비로운 것이어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으며, 그것을 막거나 그것의 경로를 조정할 수도 없다는 주일 오전 설교 말씀이 생각나는 글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 3:8)



예수님의 겨자씨의 비유가 성취되며,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만들어지고 완성되어 가는 것을 생각할 때도 이것은 하나님의 강력하고 신비한 역사로 밖에 이해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p>

차우석님의 댓글

차우석 작성일

복음에 관심이 없어져가는 이 시대 가운데.... 그리고 그 가운데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용기를 주는 말씀이네요. 참된 복음이 다시 세력을 얻고 흥왕하는 은혜를 이 세대가운데 허락하시길 간구해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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