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선교 협력방문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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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성일 작성일 20-01-21 09:04본문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욥바에 있던 베드로를 청해 말씀을 듣고자 했던 고넬료처럼 우리를 부르는 간절한 목소리에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저를 포함한 세 분의 장로님들이 새해 벽두부터 유럽 스위스로 향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이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든 것을 성령께 맡긴 채로 무작정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인천부터 프랑크푸르트까지 아시아나항공으로 약 12시간, 다시 취리히까지 루프트한자로 1시간가량을 가서야 비로소 스위스 땅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공항 출구에서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키가 훌쩍한 청년 한분이 오셔서 목사님을 반갑게 맞이하는데 바로 김대현 집사님이심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차로 호텔까지 가는 길에 금융도시 취리히의 야경을 바라보는데 서울에서 바라보던 그런 휘황찬란함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습니다. 모든 건물들이 키가 작고 아담하면서도 고풍스러웠습니다. 전반적으로 조용하고 어두웠습니다. 드디어 Crowne Plaza Zurich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이번 스위스 방문 목적이 관광이 아닌 특별한 목적이었기에 설레임보다는 부담감이 다가왔고 제 생애에서 참 이상한 여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날밤을 호텔에서 거의 뜬눈으로 지새운 뒤 아침 경건회로 둘째날을 맞이했습니다. 특히나 두 분의 장로님들은 피로감이 더해 보였습니다.
다행히 호텔 아침 조식이 잘 나와서 우리에게 위안을 주었습니다. 특히 스위스의 신선한 치즈와 우유가 새롭게 입맛을 돋구어 주었습니다. 평소 유제품을 즐기지 않는 저에게 치즈 종류의 다양함과 향미에 새로운 관심을 갖게해 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둘째날은 온종일 김집사님 댁에서 정말 융숭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성도님들이 준비를 하고 있었고 정말 즐겁고 맛난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진에서 죄측부터 김대현 집사님, 강문진 목사님 내외분, 김수연 집사님(김대현 집사님 Wife분), 정선희 집사님, 김해란 집사님이십니다. (이후 백진 집사님과 조명준 집사님이 합류하셨지만 위 사진에는 없네요)
아래는 대화 중에 울먹거리시는 칼리그래프의 달인이신 정선희 집사님 그리고 김해란 집사님의 모습이구요. 정선희 집사님은 성경을 깊이 사랑하는 신앙으로 이 모임에 많은 도전을 주시고 계셨고 해란집사님은 이 모임의 맏언니격으로 성도들의 든든한 중심이 되어주고 계십니다.
아래는 만점 주부이자 김집사님의 둘도 없는 배우자이신 김수연 집사님이십니다. 과거 청년시절부터 선교사역에도 관심이 많으셨다고 하는데 현재는 개혁주의 신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바른 신앙에 대한 열심과 결단력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또 요리 솜씨가 정말 남달라 보였는데 스위스에서 더 진정한 한국적인 음식을 만나게 되어 당황했다는 이창섭 장로님의 후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래는 독일에서 이곳까지 오시는 백진 성도님이십니다. 독일 국경이 가까워 이곳까지 오시기가 어렵지 않다고 합니다. 안경을 머리에 꽂고 얘기하시는 모습이 이국적이었는데요, 한의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지만 공허하고 외로운 심령을 어쩔 수 없었다고 토로하시는 모습이 가슴 아프게 들렸습니다. 강목사님의 말씀 하나 하나에 깊이 공감하시고,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 얻는다는 진리를 설명해 주실 때 가슴을 치면서 ‘속이 다 시원해진다’고 외치던 모습이 기억에 새롭습니다.
늦게 오셔서 사진에 담지 못했지만 독일에 거주하며 피아노 교사로 일하시는 조명준 집사님도 오셔서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얘기하며 많은 공감과 지원을 해 주셨습니다.
잠깐이었지만 둘째날과 셋째날 이 분들과 함께 나누었던 대화는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며 의에 굶주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장 잘 보여준 성도들이었습니다. 김대현 집사님께서 이 신앙적 모임의 리더격으로 바른 신앙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목회자가 없이 한두명의 헌신만으로 지속하기에는 너무나 위태로운 모습이었습니다. 다행히 이 때 강문진 목사님이 방문하여 귀중한 조언과 신앙상담을 하나씩 이어나갈 때 비로소 미래에 대한 소망이 생겼으며 보다 지속가능한 형태의 모임을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주님의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셋째날 오전에는 취리히 시내를 돌아보며 주로 츠빙글리에 의하여 그로스뮌스터 교회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에 대해 묵상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아래는 리마트 강변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오른쪽에 솟은 두 첨탑이 그로스뮌스터 교회입니다. 지금은 취리히의 상징물로서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아래는 그로스뮌스터 교회 정문에서 사진을 찍은 모습입니다.
그로스 뮌스터는 울리히 츠빙글리(1484-1531)가 시무하던 교회이자 스위스 종교개혁의 발원지입니다. 그의 뒤를 이은 하인리히 불링거(1504-1575)도 이곳에서 츠빙글리의 사후 개혁을 이어나갔습니다. 루터와 동시대 사람인 츠빙글리는 스위스에서 자신의 민족을 부패하고 타락한 천주교의 손아귀에서 구하고자 종교개혁을 일으킨 사람입니다. 그는 천주교를 지지하는 세력과 카펠 전쟁에서 싸우다 전사하였습니다. 지금도 그의 동상에는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선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동상은 그로스뮌스터 교회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하여 있는데, 저희가 갔을 때는 동상이 수리중인지 치워져 있었네요).
그로스뮌스터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찍지 못했지만 여러 상처와 지워진 성화들의 희끗한 무늬로 가득했습니다. 쯔빙글리는 교회의 모든 세속적인 치장물들을 제거하는 것으로부터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성화들은 회복불가능하게 지워지거나 메꾸어졌고 성상들은 파괴되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심플하고 정돈된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츠빙글리의 개혁에 대해서는 다른 문헌들을 참고하시면 크게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넷째날은 런던으로 향할 시간입니다. 취리히의 성도들의 추억을 뒤로하고 이제는 종교개혁이후 청교도들이 신앙의 꽃을 피웠던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아래는 스펄젼 목사님이 시무하셨고 지금은 피터 마스터스 목사님이 시무하고 계시는 메트로폴리탄 태버나클 교회의 모습.
과거의 건물은 불타서 일부만 남겨져 있지만 여전히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목사님께서도 유학시절 이곳에서 1년간 주일예배에 참석하셨다고 합니다.
교회당 내부의 모습인데요 정말 강단과 장의자를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담백한 모습이었습니다. 말씀이 중심된 교회가 어떤 모습인지 다시금 실감한 시간이었습니다.
이후 찾아간 곳은 로이드존스 목사님이 시무하시던 웨스트민스터 채플입니다.
저희들이 방문하였을 때에는 교회 문이 굳게 닫혀져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없어서 무척 아쉬웠습니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영국 여왕이 거주하는 버킹엄 궁전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아래는 영국 런던의 버킹엄 궁전
다섯째 날은 드디어 고국으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럿셀 스퀘워에 위치한 호텔을 나와 바로 5분 거리의 대영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이 곳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생각해봤지만 이곳은 성경의 역사 박물관이었습니다. 이집트, 아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로마. 그 어느 것 하나 성경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살아 있는 성경의 고고학 박물관이었습니다.
아래는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의 비밀을 밝혀준 로제타 스톤과 영국 시인 셀리의 오지만디아스라는 시를 쓰게 감흥을 준 람세스 2세 석상입니다.
맨 아래는 아우구스투스의 동상입니다. 예수님 탄생시 호구조사를 시킨 로마황제이지요.
간단하게 사진으로 보는 해외선교 협력방문 기록을 적어봤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동행하였던 두 분 장로님께서 더 보충해 주실 것으로 믿고 후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