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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는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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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BS-2Samuel-19.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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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차우석 작성일 18-03-09 23:04

본문

GBS-2Samuel-19.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삼하12:23)

 

제19과

 

공부할 내용: 사무엘하 12장 16 - 31절

 

 

1.우리아의 처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가 병이 나서 죽을 위기에 처하였을 때에, 다윗은 금식하면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이레 만에 죽었을 때에,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명하여 음식을 그 앞에 베풀게 하고 먹은지라”라고 하였습니다. 신하들이 다윗의 행동을 의아하게 생각하여, 어떻게 해서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위하여 금식하며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 잡수시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다윗이 “시방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라고 답하였습니다. 여기 다윗의 평정과 침착은 어디로부터 온 것입니까? (삼하12:16-23, 욥1:20-22)

답)매튜핸리주석-IV.다윗은 아이가 죽었다는 것을 알자 놀랍게도 평정과 침착을 잃지 않았다. 1.그는 어떻게 행하였는가? (1)그는 슬픔의 표시를 불식해 버렸다. 그는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며 깨끗한 옷을 가져오라고 명하였다. 이것은 단정히 하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하나님께 경배하기 위함이었다. (2)욥이 자기 자식들의 부음을 듣자 그랬던 것처럼 그는 “여호와의 전(원어:장막)에 들어가서 경배하였다.” 그는 이 환란 속에 하나님의 손길을 인식하고 겸비케 되며 그의 거룩하신 뜻에 복종하며 자기를 살려두시고 자기 죄를 사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대한 쟁변을 계속하시거나 그의 모든 분을 일으키지 마시도록 기도하였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다”(약5:13). 애곡이 예배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3)그리고 나자 그는 궁으로 돌아와서 환란 날에 자기 종교로 은혜를 받은 자답게 스스로 기운을 차린다. “경배”했으므로 그는 음식을 먹고 그 얼굴에는 수색이 더 이상 없었다. 2.그가 자기의 행동에 대해 제시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의 신복들은 다윗이 아이가 앓을 때는 그토록 자기 학대를 하다가 아이가 죽자 그것을 아주 편안히 받아들이는 것에 의아심을 느끼고 그에게 묻는다(21절). 그 물음에 답하여 그는 자기 행동을 이렇게 분명히 설명해 준다. (1)아이가 살았을 동안에는 아이에게 대한 하나님의 은총을 간구하는 것이 자기 도리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22절). 나단이 아이가 정녕 죽으리라고 말한 것은 사실이나 그는 히스기야의 경우처럼 그 경고가 유동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법하다. 하나님께서는 왕왕 그의 곡성을 들으셨다(시6:8). 그런 하나님께서는 그의 크게 낮춤과 간절한 기도에 판결을 번복하시고 아이를 살려 주려고 하실지도 몰랐다.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주실지 누가 알까?” 하나님께서는 비록 우리가 기대할 만한 특정 약속이 없더라도 하나님의 능력과 일반적 자비심에 대한 신뢰감에서 어떤 특정 축복을 간절히 구하도록 허락하신다. 우리는 이런 저런 일에서 결과를 확실히 알 순 없지만 기도는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실지 누가 알랴? 우리 친척이나 친구가 병에 걸렸을 때 믿음의 기도는 역사함이 많다. 생명이 있는 한 소망이 있으며 소망이 있는 동안에는 기도할 여지가 있다. (2)이제 아이가 죽자 그는 하나님의 처사에 만족하는 것이 자기 도리라고 생각한다(23절). “시방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그의 슬픔을 억제하는 것은 두 가지다. [1]“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죽은 자들은 기도의 영역 밖에 있으며 우리의 눈물도 그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통곡으로도 기도로도 그들을 이 세상에 불러오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금식해야 하겠는가? 이렇게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랴?”(말3:14) 그러나 다윗은 요나단이 죽었을 때는 그를 추모하여 금식하고 애곡하였다. [2]“나는 저에게로 가리라.” 첫째, 그는 무덤 속의 아이에게로 간다. 우리는 친지가 죽었을 때 우리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면 슬픔이 완화된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것은 공통된 운명이다.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대신 우리들 자신이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 비록 지금은 그들을 잃는 손실이야 어떻든간에 우리도 곧 죽어서 그들에게로 갈 것이다. 둘째, 그는 천국에 있는 아이에게로 간다. 천국은 복된 나라여서 구약 성도들도 다소 기대를 하였다. 하나님의 뜻대로 슬퍼하는 경건한 부모들은 유시에 죽는 자녀에 대해 그들의 영혼이 저 세상에서 복되다는 것을 생각할 만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약속은 우리와 우리 자녀에게 하신 것”이기 때문이다(행2:39). 이 약속은 자기 문에 빗장을 걸지 않은 자들에게 이행될 것이다. 즉 은총을 받으면 은총에 대한 희망이 더 많아진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태어난 자들을 자기 자녀라고 부른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소생이라면 그는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우리 자녀가 우리와 사별하더라도 그들이 이 세상의 일과 재물보다 더 나은 일과 부귀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마음이 편안해진다. 우리는 잠간이면 그들과 함께 있게 될 것이며 그 때에는 더 이상 이별이 없을 것이다.

 

2.우리아의 처가 낳은 아이가 죽고 난 후에 솔로몬이 태어났는데, 솔로몬의 출생이 의미하고 또한 교훈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삼하12:24-25, 엡2:14-18, 마3:17)

답)매튜핸리주석-V.솔로몬의 탄생. 여호와는 다윗이 밧세바와 결혼한 것을 노여워하셨지만 이혼하라고 명하시지는 않으셨다. 아니, 하나님은 오히려 그들에게 아들을 주셔서 왕권의 언약까지 그와 맺으셨던 것이다. 밧세바는 틀림없이 죄의식과 하나님의 노여우신 표징으로 큰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구원의 기쁨을 축복해 주셨으므로 다윗은 자기가 하나님께 받은 바로 그 위로로써 밧세바를 위로하였다(24절). 다윗과 밧세바 양인은 하나님의 화해하신 표징 가운데서 위로를 얻을 만하였다. 그 이유는 다음 두 가지다. 1.하나님은 섭리로써 그들에게 한 아들을 주셨기 때문이다. 이 아들은 분노하신 가운데 주셨다가 진노하심으로 빼앗아 가버린 먼저 번 아들과 달리 은혜 속에서 주셔서 예루살렘의 산 자 중에 기록된 아이였다. 그들은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였으니 그 의미는 “평화스럽다”는 뜻이다. 이는 그의 출생이 하나님께서 그들과 화평하심을 나타내며 그에게 번영이 약속되고 그의 평강의 왕 그리스도의 예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한 아들을 데려가 버리셨으나 아벨 대신 셋을 주셨던 것처럼(창4:25) 그들에게도 그 대신 다른 아들을 주셨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왕왕 자기 백성의 슬픔을 동일한 일에 의한 위로로써 상쇄시키신다. 즉 하나님이 어떤 일로 고난을 주시면 바로 그 일로 위로를 주셔서 전자와 후자를 대조시키시는 경우가 흔히 있다. 다윗은 먼저 번 아이가 죽었을 때 매우 참을성있게 하나님의 뜻에 복종했는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 손실을 보상하실 뿐만 아니라 이 아이의 탄생으로 풍성한 혜택을 내리시기까지 한다. 우리의 위안물을 계속 보유하거나 회복하거나 아니면 그 손실을 다른 모습으로 보충하는 비결은 그것들을 기꺼이 하나님께 맡기는 데 있다. 2.하나님은 은혜로써 그 아들을 특별히 인정하시고 총애하셨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선지자 나단으로 보내셔서 그 이름을 여디디야 즉 여호와께 사랑받는 자라고 하셨더라”(24,25절). 그는 비록 행악자(다윗과 밧세바는 행악자였다)의 자식이었지만 언약은 너무도 관대하여 면류관까지 그의 머리 위에 씌워 주며 부패한 피와 모든 상실한 권리를 회복시켜 주었다. 이것은 태어나면서 진노와 불순종의 자식되었던 자들이 은혜의 언약으로 말미암아 화해받을 뿐만 아니라 은총받는 자가 됨을 상징한다. 또 솔로몬은 여디디야라는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복된 “여디디야”이며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이셨고 하나님께서는 몇 번이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선언하셨다.

 

3.요압이 암몬 자손의 왕이 거하는 성 랍바를 쳐서 함락시키고 난 후에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어 “내가 랍바 곧 물들의 성을 쳐서 취하게 되었으니 이제 왕은 남은 군사를 모아 진치고 이 성을 쳐서 취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모든 군사를 모아 랍바에 가서 그것을 쳐서 취하였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다윗은 암몬 왕이 쓰고 있던 금 한 달란트나 되는 왕관을 취하여 자기 머리에 썼습니다. 다윗이 지금 이 시점에 금으로 된 왕관을 쓰는 것이 옳은 것입니까? (삼하12:26-31, 요일2:15-16)

답)매튜핸리주석-3.이 때 다윗은 극히 오만하고 엄하여서 겸손하거나 인정스러운 모습이라곤 추호도 없었다. (1)그는 암몬 왕의 면류관을 너무 좋아했던 것같다(30절). 그 왕관은 보석들이 박혀 있어서 아주 값비싼 것이었으므로 자기 머리 위에 쓰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차라리 이 왕관을 하나님 발 앞에 던져 버리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이 때 죄를 입고 있던 몸이 아닌가! 그는 땅에 엎드려 입에 흙을 머금어야 할 때였다. 죄 때문에 진심으로 겸손해진 심령은 세상의 영화에 대해서는 스스로 죽어서 그것을 거룩한 경멸감으로 바라본다.

 

 

*참고성경구절

욥1:20-22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리라

엡2:14-18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마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요일2:15-16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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