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진 목사(진리교회,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 원장)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으로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욥 1:21)

강문진 목사(진리교회,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 원장)강문진 목사(진리교회,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 원장)

욥은 족장시대에 우스 땅에 살았던 신앙인입니다. 그는 매우 온전하고 정직했으며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녀가 많았고 아주 큰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욥은 그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자녀를 모두 잃어버린다는 것은 얼마나 큰 슬픔입니까? 설상가상으로 그는 모든 재산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동방에서 가장 큰 거부가 한순간에 가장 가난하고 초라한 자가 됐습니다. 그러나 욥은 결코 하나님에게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도리어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했습니다. 어떻게 욥이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그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인생의 본질을 잘 알았다

첫째, 욥은 인생의 본질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21절에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으로 그리로 돌아가올지라”고 했습니다. 욥은 인생이 무엇인지를 잘 알았습니다.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맨몸으로 이 땅에 와서 잠시 머물다가 맨몸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욥은 철학자들이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는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잠시만 이 땅에 머무는 것이라면 자신의 소유물이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입니까? 빈손으로 왔다가 결국에는 아무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는데, 재물을 다 잃어버렸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입니까? 욥은 인생의 본질을 잘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이 땅을 살아갈 때 적은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 크게 불편합니다. 그러나 죽음의 요단강을 건널 때는 미련을 가질만한 재물을 소유하고 있지 못한 사람이 참으로 복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 세상을 떠날 때 조금의 미련도 없이 아주 홀가분하게 이 세상과 작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욥은 이 진리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나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22절에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지 않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했습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둘째, 욥은 하나님의 주권을 잘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21절에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라고 했는데, 욥은 자신이 소유한 재물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올바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그 모든 것을 벌어들였다고 말하지 않았고, 자신이 피땀 흘려 모은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자신에게 주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것은 본래 하나님의 것인데 자신에게 잠시 맡겨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해 만들어 놓으신 것인데, 그것이 하나님의 소유가 아니고 누구의 것이겠습니까?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은 다 창조주 하나님의 것이고, 우리에게 그것들을 잠시 맡겨주신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교회의 성도들, 동료와 친구들, 집과 소유물은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욥은 이것을 잘 알았기에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또 21절에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라고 했으니, 욥은 자신의 모든 소유물을 잃어버렸을 때 초연하게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되찾아가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욥은 재산을 잃어버렸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거두어 가셨다고 말했습니다.

‘내 주여 뜻대로’는 베냐민 슈몰크(Benjamin Schmolck) 목사가 작사한 찬송입니다. 그가 아내와 함께 심방을 갔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그의 집이 잿더미가 돼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이 불에 타 죽어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무릎을 꿇고 “나의 주님,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나중에 ‘내 주여 뜻대로’의 찬송 가사가 됐습니다. “내 주여,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당신이 취하기 원하셔서 행하신 일인데, 제가 무엇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주신 분도 당신이시고 취해 가신 분도 당신이십니다.” 이런 의미가 이 찬송시에 담겨 있습니다. 때로 정원에 아름답게 피어있는 꽃을 주인이 꺾어서 자신의 거실 화병에 꽂아둡니다. 정원사는 꽃이 없어진 것을 보고 깜짝 놀라지만, 주인이 한 것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정원은 주인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원해서 갓 피어난 아름다운 꽃을 꺾어 거실에 가지고 갔다고 해서 정원사가 불평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인의 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때로 아주 신실하고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젊은 나이에 일찍 죽는 경우가 있습니다. 간혹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백성을 일찍 데리고 가시기도 합니다.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취하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주권은 하나님에게 속해 있습니다. 욥은 이 진리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었습니다.

영광과 찬송받아야 할 하나님

셋째, 욥은 어떤 경우에라도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과 찬송을 받으셔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20절에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라고 하였고, 또 21절에서는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욥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극한 고통을 당했을 때, 즉시 엎드려 하나님을 예배했고 또한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은, 사람이 어떠한 상황 속에 있더라도 반드시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일을 만날 때, 또한 역경을 만날 때에도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욥은 이 진리를 잘 알았기에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 때도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했습니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의 답에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욥은 이 진리를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녀와 재물을 주셨을 때 하나님을 찬송했고, 또한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거두어 가셨을 때도 역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찬송했습니다. 그 어떠한 상황 속에 놓인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찬송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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