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얻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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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리교회 작성일 17-03-23 15:33본문
데이비드 클락슨
--Preview 대부분의 책들이 핵심에서 너무 먼 문제들까지를 다루는 방대함에 그치고 말거나, 반대로 많은 책들이 단편적 영역 안에 갇혀 그 입체감과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아쉬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 『구원 얻는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서의 믿음이 어떻게 우리의 것으로 소유될 수 있는가, 그 믿음의 본질은 무엇인가, 믿음의 대상을 향하여, 그리고 믿는 자 안에서 그 믿음은 어떻게 살아 역사하는가를 매우 설득력 있게 실용적으로 조명합니다. 또한 우리의 노력과 공로가 아닌 그 믿음이 우리 안에서 역사할 때 어떤 방해를 받는가를 실례를 들어 분석함으로써 죄에 대한 우리의 방어력을 보다 강하게 합니다. 이는 훗날 그의 두 딸이 아버지가 남긴 글들을 읽다가, 그 내용이 아버지의 믿음의 삶과 너무나 일치됨에서 크게 감동되어 진정한 회심에 이르게 되었다는 고백적 기록(이 책의 부록)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에 대해 너무 막연하게 또는 왜곡되이 가르침 받아 왔던 우리의 눈에서 수건을 벗어던지게 하는 놀라운 은혜를 이 책에서 독자들은 얻을 것입니다. 육신이 흔들림 없이 강건하시기를 바랍니다. 스물두 번째로 이어지는 지평서원의 「신간 속보」를 조금 다른 모양으로 꾸며 보았습니다. 단순히 어떠한 책이 또 나왔다는 식의 간단한 소식 전달이, 조금은 미흡하다는 몇몇 독자들의 귀띔을 담아 여백을 최대한으로 살려 보았습니다. 상업주의의 광고 전단의 범람으로 짜증을 겪어온 모두에게 또 하나의 짜증을 더하는 것이나 아닌지 조금은 주저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몇백 쪽에 달하는 책의 내용을 몇줄의 글로 알리기에는 보내는 이나 받는 이 모두가 옹색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관한 이야기와 부끄럽고도 개탄스런 주변 이야기를 소박한 어조로 담아 공감을 나누도록 해 보겠습니다. 이번 호에 소개드린 경건신서 제28권 『구원 얻는 믿음』을 기획?편집하는 과정에서 저희 편집실 식구들은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 된 나의 구주’라고 믿고 고백하며, 천국행은 따 놓은 당상이며, 어떻게 좀 더 잘 믿고 훗날 상급에 이를까를 고민하며 애써 온 우리들, 아니 나는 그것이 아니로구나 하고 깜짝 놀라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기 좋은 고백과 애씀이 다 쓰잘 데 없는 '노력과 공로 쌓기’라는, 이 책의 지적이 뇌리에 번개를 때렸기 때문입니다. 밀려 왔습니다. 이러한 고민을 오늘, 이 땅을 사는 우리 믿는 형제들과 함께 나누어 보아야만 하겠다는 생각으로, 아직 잉크 냄새가 마르지도 않은 새 책을 보고 또 보고 했습니다. 더 좋은 책으로 독자 회원 여러분을 다시 만나 뵈올 때까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책과 이 책의 뒤이어서 나올 책 <살아 역사하는 믿음>은 내용이 연결되어 있으므로 연이어서 읽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다소간에 인내를 요할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수고는 천금같은 가치를 독자에게 안겨줄 것입니다. 1645년에 그 대학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1951년 이후 서레이의 모트레이크 교구의 목사가 되어 1662년 통일령에 의해추방될 때까지 봉직했습니다. 이후 그는 1682년, 죤 오웬 박사의 런던 회중 교회의 목회에 동역자로 일할 때까지 오랜기간 동안 은거하며 연구와 저술에 전념했습니다. 그는 오웬과 존 하웨, 리챠드 백스터와 토마스 굿윈 등 청교도 거성들에 이어, 스테판 차녹, 리챠드 십스, 그리고 존플라벨 등으로 이어지는 청교도 신학의 큰 축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는 매우 열정적이고도 고결한 인품 위에 광대하고도 다양한 지식을 쌓았고, 하나님의 영광과 그 영광을 위한 사람들의 선을 강조하는, 호소력이 뜨거운 능변과 필력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죄인의 심중에 불을 지필 수있는, 실용적인 산 불씨로서의 신학을 추구했고, 강단에서 쫓겨나 있던 긴 세월동안에도 연구와 묵상에 조금도 게을리 함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영혼의 피는 낭비되는 시간에서 새버린다'는, 그가 남긴 격언의 실천자였습니다. 1686년 6월 14일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기까지 그의 언어는 하나님의 계시의 전달통로였고, 그의 설교는 세속의 사람들을 천상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복음의 증거였습니다. 그의 삶은 그의 신학, 그의 설교의 실천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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