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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BS_Judges_사사기 제53과

공부할 내용: 사사기 21장 1-25절

본문

20266월 21(주일) 오후 4 줌zoom 그룹성경공부

 

1.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 총회에서 맹세하면서 우리 중에 누구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편치 않아서 언약궤가 있는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큰 소리로 울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어찌하여 한 지파가 이즈러졌나이까[어찌하여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 생겨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없어지게 하시나이까]”라고 말하였습니다. 이튿날에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서 거기 한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미스바 총회를 소집할 때에 했던 맹세를 떠올렸습니다. 그것은 곧 미스바에 와서 여호와 앞에 이르지 아니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지파의 죄를 징계한 일 자체는 정당한 일이었지만, 그러나 그들이 베냐민 사람들을 다루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가혹하게 행동하면서 여자들과 아이들까지 다 죽인 것에 대하여 후회하였습니다. 그들은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 중에 무기를 든 자들만 죽이는 것으로 충분하였는데, 농부와 목자와 여자와 아이들까지 다 죽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한 지파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을 보고서 그들은 슬픈 결과에 대하여 뉘우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잘한 일 가운데 지나친 일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또한 지나치게 강한 열정은 도리어 후회할 일을 만들 수 있고, 흥분된 상태에서 말하고 행동한 것을 나중에 되돌리고 싶어할 때가 있다는 것에 대하여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21:1-5, 11:30-31,34-35, 14:29, 20:25, 5:2, 1:20)

  )매튜헨리주석-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I.이스라엘이 기브아 사람들의 악에 대해 나타낸 격렬한 열심. 여기에서 그들의 특출한 열심을 증거하기 위해 두 가지 실례가 언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앞에서 보지 못한 것들이다. 1.총회로 모이고 있는 동안 그들은 케룸(Cherum)이라고 불리는 큰 저주로 스스로를 묶었는데, 그것은 대표와 할당받은 군대를 보내지 않은 성읍을 전부 멸망시키거나 혹은 오기를 거절한 자들에게 저주를 선언하는 것이었다(5). 왜냐하면 그들은, 총회에 오기를 거절하는 것을 기브아에서 저질러진 악행에 대해 아무런 의분도 갖고 있지 않으며, 공의를 시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온 나라를 구하는데 관심도 없고, 나아가 총회가 결의한 것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이다. 2.미스바에 모여 기브아 사건의 경위를 들었을 때 그들은 또 하나의 엄숙한 맹세를 하였는데, 그것은 그곳에 참석한 자들과 그들이 대표하는 자들은 베냐민 사람들에게 딸을 주지 않기로 하는 것이었다(1). 그들이 이렇게 맹세한 것은 베냐민 지파를 멸절시키기 위한 목적에서가 아니라 그와 같은 악을 행하거나 비호한 자들을 모든 면에서 저주받은 가나안 민족들처럼 취급하고자 한 것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민족들을 멸망시켜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과 더불어 혼인해서도 안 되었다. 또 그들이 그와 같이 맹세한 것은 그토록 야만적이며 패역한 베냐민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딸과 혼인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 레위인이 아내의 토막난 시신을 각 지파에 보냄으로써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이토록 큰 분노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아무리 말로 잘 설명을 한다 하더라도 직접 보는 것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칠 수는 없는 법이다. .이스라엘이 베냐민 지파의 멸망에 대해 나타낸 깊은 근심. 1.전에는 베냐민의 죄에 대한 분노가 솟아올랐지만 이제는 그들의 멸망으로 인한 슬픔이 솟아올랐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형제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쳐(6,15). 그들이 죄를 대적한 열심에 대해 뉘우친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죄에 대한 거룩한 분노와 경건한 슬픔의 열매가 있었으며, 그것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었다(고후7:10,11). 그러나 그들은 그 일을 정당하고 필요한 정도 이상으로 끌고 감으로써 야기된 슬픈 결과에 대해 뉘우치지 않을 수 없었다. 무기를 든 자들만을 죽이는 것으로 충분했다. 농부와 목자와 여자와 아이들까지 죽일 필요는 없었다. 다음을 주목하라. (1)잘한 일(well-doing) 가운데 지나친 일(over-doing)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우리는 우리의 열심을 잘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못할 때 자칫 예기치 않은 결과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성을 삼키는 것은 결코 올바른 신앙적 태도가 아니다. 전쟁에 있어 좋게 시작했다가 나쁘게 끝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2)꼭 필요한 공의라 할지라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함께 시행되어야 한다는 사실. 하나님은 징계하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사람도 그래야 한다. (3)지나치게 강한 열정은 도리어 후회할 일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 우리가 흥분한 상태에서 말하고 행동한 것을 고요한 마음으로 되돌아볼 때, 거기에 다시 되돌리고 싶은 것이 얼마나 많은가? (4)동족끼리 싸우는 전쟁에서 승리자라고 하여 기뻐하고 환호할 것이 없다는 사실. 어느 쪽이 승리하든 전체 공동체는 패배할 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이스라엘 가운데 한 지파가 끊어지게 되었다. 몸에 있어 한 지체가 다른 지체를 파괴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겠는가? 2.그들은 자신들의 근심을 어떻게 표현했나? (1)한 지파가 소멸되는 것에 대한 슬픔으로, 그들은 모든 근심과 슬픔을 가지고 그리고 이 모든 일에 대해 묻고 의논하기 위해 하나님의 집으로 왔다. 그곳에 기쁨과 찬미의 소리가 아니라 애곡과 비탄과 비통의 소리가 가득했다: 백성이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큰 소리로 울며(2). 그들이 그렇게 운 것은 4만 명의 병사를 잃은 것 때문이 아니라(열한 지파에서 이 정도 숫자는 사실 그렇게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한 지파가 완전히 멸망을 당한 것 때문이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애통하며 물은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어찌하여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 생겨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없어지게 하시나이까(3). 하나님은 모든 지파를 사랑하며 돌보셨다. 그 숫자는 그들이 아는대로 열둘이었다. 모든 지파는 이스라엘 진영에서 각자의 지정된 위치를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대제사장의 흉패에서 각자의 돌(보석)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지파는 야곱과 모세로부터 받은 각자의 축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만일 열두 지파 가운데 어느 한 지파라도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불명예스럽고 치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특별히 막내아들 베냐민은 그들 모두의 조상인 야곱으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은 아들로서 나머지 형제들이 특별하게 돌봐야 할 자였다. 이제 베냐민은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야곱은 어떻게 될 것인가? 베냐민은 오른손의 아들에서 슬픔의 아들인 베노니가 되었다! 이러한 고통 속에서 그들은 제단을 쌓았다. 그 제단은 모든 희생제물을 놓을 만큼 충분히 크지 않은 것으로서, 실로의 성막 문 앞에 있는 지정된 제단과 함께 하는 - , 경쟁관계가 아닌 - 제단이었다. 거기에서 그들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감사하기 위해, 그러나 이후의 과정 속에서 범한 어리석음을 속죄하고 이로 인해 야기된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기 위해,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어떤 것이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2.이스라엘 자손이 그 형제 베냐민 지파를 위하여 뉘우치면서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끊쳤도다 그 남은 자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아내를 얻게 하리요 우리가 전에 여호와로 맹세하여 우리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라고 말하였고 또한 그들은 이스라엘 지파 중 미스바에 올라와서 여호와께 이르지 아니한 자가 누구뇨라고 말하였습니다. 야베스 길르앗에서는 한 사람도 진영이 이르러 총회에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을 계수할 때에 야베스 길르앗 주민이 하나도 거기 없음을 그들이 보았습니다. 회중이 큰 용사 일만 이천 명을 그리로 보내며 그들에게 명령하여 가서 야베스 길르앗 거민과 및 부녀와 어린아이를 칼날로 치라 너희의 행할 일은 모든 남자와 남자와 잔 여자를 진멸할 것이니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이 야베스 길르앗 거민 중에서 젊은 처녀 사백 인을 얻었는데, 그 처녀들은 아직 남자와 동침한 일이 없어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그 처녀들을 가나안 땅에 있는 실로 진영으로 데려왔습니다. 온 회중이 림몬 바위에 숨어 있던 베냐민 자손에게 평화를 공포함으로 그들이 돌아왔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야베스 길르앗 여인 중에서 살려둔 여자를 베냐민 지파의 남은 자들에게 주었지만 오히려 부족하였습니다. 여기 그 남은 자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아내를 얻게 하리요라고 하였는데, 베냐민 남은 자들을 위하여 아내를 얻게 해 주는 일은 참으로 어렵고 복잡하면서도 고통스러운 문제였습니다. 베냐민 사람들이 이방인들 가운데서 아내를 얻을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 자손이 자신들의 딸을 베냐민 사람들에게 아내로 주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는데, 그 맹세를 깨뜨릴 수 있습니까? 만약 이스라엘 자손이 그러한 맹세를 계속 지키게 되면 베냐민 지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신중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한 맹세는 어렵고도 복잡한 문제를 낳았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중요한 결정을 하기 전에 충분히 기도하고 숙고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하여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21:6-15, 삼상30:8, 8:21, 6:12-13, 13:2-3, 4:6)

  )매튜헨리주석-(2)림몬 바위에 숨어 있는 가련한 도피자들에게 평화를 공포함으로써 이제 이스라엘은 더 이상 그들을 적으로 대하지 않고 형제로 받아들일 것을 확약했다(13). 형제간의 사랑과 신뢰는 이와 같이 다시 회복되어야 한다. 비록 범죄한 자들이라 할지라도 마침내 회개하면 우리는 용서하고 위로해 주어야만 한다(고후 2:7). (3)그들에게 아내를 마련해 줌으로써 그렇게 함으로써 베냐민 지파는 다시 회복되고 복구될 수 있을 것이었다. 만일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의 유익만 생각했다면 아마도 베냐민 지파가 소멸되는 것을 은근히 좋아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 때 베냐민에게 할당된 땅은 상속자가 없음으로 인해 나머지 지파들에게 귀속될 것이고, 또한 실점유자가 없어짐으로 인해 쉽게 취할 수 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형제의 멸망을 통해 유익을 얻으려는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이런 종류의 생각은 전혀 품지 않고, 다만 멸망의 위기에 처한 지파를 재건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데 모든 생각이 집중되었다. 베냐민의 모든 여자와 아이들이 죽었다. 또 그들은 자기 딸을 베냐민 사람들에게 주지 않을 것을 맹세했다. 만일 베냐민 사람들을 가나안 여자들과 결혼하도록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사실상 그들로 하여금 다른 신들에게 가서 그 신들을 섬기도록 명령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에게 아내를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인가? 림몬 바위에 숨어 있던 가련한 베냐민 사람들이 형제들에게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지 않을까 염려하며 두려워 떨고 있는 동안, 이스라엘은 그들을 다시 회복시킬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았다. [1]요단 건너편 갓 지파에 속한 야베스 길르앗 성읍에 공의의 처벌이 가해지게 되었다. 이미 이스라엘 사람들은 총회에 참여하지 않은 성읍은 어떤 성읍이든지 총회의 권위를 무시한 것으로 간주하고 저주의 징벌을 가할 것을 결의하였었다. 그런데 총회에 참여한 자들을 계수하는 가운데 야베스 길르앗 성읍에서 한 사람도 참여하지 않은 것이 발견되었다(8,9). 따라서 야베스 길르앗에게 그와 같은 저주의 판결이 내려지게 되었고 결코 면제될 수 없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친히 멸망의 저주를 내린 가나안 사람들에 대해서는 여러 곳에서 살려두었다. 그러나 자신들이 저주한 형제들에 대해서는 추호도 살려줄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다. 왜 그들은 지금 예루살렘으로부터 여부스 사람들을 쫓아내기 위해 병사들을 보내지 않았는가? 그 가련한 레위인 일행은 이방인의 성읍이었던 여부스를 피해 기브아로 가야만 했지 않은가?(19:11,12)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하나님의 권위보다 자신들의 권위를 세우기에 더 열심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야베스 길르앗에 대한 저주의 판결을 집행하기 위해 12,000명의 병력을 보냈다. 기브아를 징벌하기 위해서는 군대 전체가 갔지만, 이번 원정에는 오직 적은 수의 인원만을 보냈다(10). 그들의 임무는 레위기 27:29 의 온전히 바쳐진 그 사람은 다시 무르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란 율법에 따라 남자와 여자와 어린아이까지 모두 칼날로 치는 것이었다(11). [2]이렇게 하여 베냐민 사람들에게 아내를 마련해주는 길이 마련되었다. 모세가 미디안에게 원수를 갚기 위해 똑같은 숫자의 병사(12,000)를 보낼 때 여기에서와 똑같은 명령 즉 결혼한 여자는 남편과 함께 죽이되 처녀들은 살려두라는 명령이 내려졌었다(31:17,18). 이러한 전례는 지금 처녀와 결혼한 여자를 구별하는 것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야베스 길르앗에서 400명의 처녀가 발견되었고, 이들은 그만한 숫자의 생존한 베냐민 사람들에게 아내로 주어지게 되었다(14). 이들의 아버지는 베냐민 사람들에게 딸을 주지 않겠다는 맹세에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그와 같은 의무 아래 있지 않았다. 더욱이 그들은 전쟁에서 얻은 노획물이었으므로 정복자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훗날 사울이 태어난 것도 이와 같이 베냐민과 야베스 길르앗의 맺어짐으로 인한 것이었을 것이다. 사울은 베냐민 지파로서 야베스 길르앗 지역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삼상11:4).


3.아직 아내를 얻지 못한 나머지 200명의 베냐민 사람들에게 아내를 마련해 주기 위하여 생각해 낸 방식은 불시에 여자들을 취하도록 하고 이후에 부모의 승낙을 받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절기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이 베냐민 사람들에게 포도원에 숨어 있다가 실로의 처녀들이 춤추고 있을 때에 한 사람씩 붙잡아서 베냐민 땅으로 가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그 처녀들의 아버지를 설득하는 일은 장로들이 떠맡겠다고 하였습니다. 장로들이 베냐민 사람들에게 만일 그 아비나 형제가 와서 우리에게 쟁론하면 우리가 그에게 말하기를 청컨대 너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우리에게 줄찌니라 이는 우리가 전쟁할 때에 각 사람을 위하여 그 아내를 얻어 주지 못하였고 너희가 자의로 그들에게 준 것이 아니니 너희에게 죄가 없을 것임이니라 하겠노라고 말하였습니다. 베냐민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춤추는 여자 중에서 자기들의 수효대로 아내로 붙들어 가지고 자기 기업에 돌아가서 성읍들을 중건하고 거기 거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모든 군대는 해산되어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라는 말씀으로 사사기가 끝납니다. 여기 사사기의 지금까지의 모든 혼란스러운 상황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이것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는 영적인 교훈은 무엇입니까? (21:16-25, 13:21-22, 23:1-2, 119:105, 14:12, 10:27, 12:2)

  )매튜헨리주석-우리는 여기에서 아직 아내를 얻지 못한 나머지 200명의 베냐민 사람들에게 아내를 마련해 주는 이야기를 보게 된다. 비록 베냐민 지파가 아주 적은 숫자로 줄어들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빨리 번성시킬 구실로 여러 아내를 마련해 주지 않고 한 사람 당 오직 한 사람의 아내만을 마련해 주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딸들을 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맹세를 깨뜨리지 않으면서 그들에게 아내를 마련해 주는 방법이 있었다. 그것은 베냐민 사람들로 하여금 불시에 여자들을 취하도록 하고 사후(事後)에 부모의 승낙을 받게 하는 것이었다. 깊은 사려 없이 맹세를 하게 되면 이와 같이 너무나 많은 번거로운 문제들이 따르게 되는 법이다. I.그들은 실로에서 열리는 공개적인 무도희를 이용해 베냐민 사람들에게 아내를 마련해 주고자 했다. 실로와 인근 지역의 처녀들이 여호와의 절기를 기념하기 위해 춤추러 모일 것이었다(19). 아마도 이것은 장막절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패트릭 주교가 말하기를) 유대인 처녀들로 하여금 춤추도록 허락된 유일한 절기가 바로 장막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자신들의 유희를 위한 것이었다기보다는 마치 다윗이 법궤 앞에서 춤출 때 그랬던 것처럼 거룩한 기쁨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의 우울한 분위기에 비추어 그와 같은 무도회는 이사야 22:12-13의 경우와 같이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을 것이다(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통곡하며 애곡하며 머리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따라 하셨거늘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죽이고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는도다). 그녀들의 춤은 소박하고 경건한 것이었다. 그것은 남녀가 뒤섞여 추는 난잡한 춤이 아니었다. 여기에 남자들도 없었고 결혼한 여자들도 없었다. 그러나 이 같은 공개적인 춤으로 인해 그녀들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자들에게 손쉬운 먹잇감이 되고 말았다. 홀 주교는 이와 관련하여 "사람들이 흥겹게 춤추고 있을 때 악한 영들은 은밀히 숨어 있다가 많은 영혼들을 황폐하게 만든다"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베냐민 사람들로 하여금 포도원에 숨어 있다가 처녀들이 춤추고 있을 때 한 사람씩 붙잡아 속히 자신들의 땅으로 가도록 명령했다(20,21). 이들 처녀들의 부모는 자신의 딸을 베냐민 사람들에게 준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일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궁색한 방법이나마 이렇게라도 하여 맹세를 깨뜨리지 않을 수 있었다. 좀 더 사려 깊게 맹세했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천사 앞에서 실수였다고 말하는 이 같은 상황은 펼쳐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와 같은 결혼은 순서가 뒤바뀐 것이었다. 남녀간의 사랑과 부모의 동의가 결혼에 선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특별한 경우로서, 나중에라도 하나의 전례로서 사용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지나치게 성급한 결혼은 대체로 두고두고 후회하는 결과를 만들게 된다. 이와 같이 억지 혹은 위계에 의한 결혼으로부터 무슨 위안과 행복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야베스 길르앗의 처녀들은 피와 살육으로부터 취하여졌지만, 이들 실로의 처녀들은 기쁨과 즐거움 가운데 그렇게 되었다. 전자의 처녀들은 살육 가운데 생명을 보존하였으므로 감사할 이유가 있었다. 후자의 처녀들 또한 불평할 이유는 없었다. 왜냐하면 잠시 후 그녀들은 자신들의 남편이 그렇게 형편없고 아무 희망 없는 남자들이 아니라 - 지금은 동굴에서 바로 나왔으므로 그렇게 보일런지 모르지만 - 이스라엘에서 가장 크고 좋은 기업을 가진 남자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45,600명에 달했던(26:41) 베냐민 지파 전체의 기업은 이제 살아남은 이들 600명에게 재분배될 것이기 때문이다. .장로들이 이들 처녀들의 아버지를 설득하는 일을 떠맡았다. 아버지의 권위가 침해당한 것에 대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딸이 큰 기업을 소유한 남자와 결혼했으며 또 그녀들이 이스라엘의 한 지파를 다시 일으킬 것을 생각할 때 쉽게 용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약한 양심을 가진 어떤 사람들에게 여전히 양심의 거리낌이 남아 있었을지 모른다 - 자신들의 딸을 결코 베냐민 사람들에게 주지 않겠다는 맹세로 인해.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그들의 양심을 만족시켜 줄 수 있었다. 1.상황이 너무나 절박했다(22): 우리가 각 사람을 위하여 그의 아내를 얻어 주지(남겨 놓지, reserve) 못하였고, 그들은 지금 모든 여자를 죽인 것이 잘못된 일이었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베냐민 사람들에게 딸을 주지 않겠다는 맹세를 최대한 융통성 있게 해석함으로써 자신들의 지나친 가혹행위를 속죄하고 싶었다. “그러므로 우리를 생각해서 그들로 하여금 당신들의 딸을 아내로 취하게 허락하라.” 2.엄밀히 말해 이것은 맹세를 깨뜨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베냐민 사람들에게 딸을 주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의 딸을 강제로 데려갔을 때 필히 되찾아오겠다고 맹세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이 일에 어떤 잘못이 있다면, 그 책임은 그녀들의 부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장로들에게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벌어지지 않았어야 할 일이었지만 이미 벌어졌으므로 어쩔 수 없이 유효한 일이었다. 그 일은 벌어졌다. 그러므로 민수기 30:4의 경우처럼 아버지의 묵인에 의해 유효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그의 아버지가 그의 서원이나 그가 결심한 서약을 듣고도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의 모든 서원을 행할 것이요 그가 결심한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 마지막으로, 본서의 끝 부분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게 된다. 1.베냐민 지파가 다시 자기 기업으로 돌아가 정착함. 소수의 남은 백성들이 자기 지파의 기업으로 돌아갔다(23). 그리고 얼마 후 그들로부터 이스라엘의 두 번째 사사인 에훗이 나왔다(3:15). 2.이스라엘 군대가 해산되고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감(24). 그들은 상비군(이 아니었으며, 세력을 규합하여 정부를 세운다든지 혹은 통치체제를 바꾼다든지 하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모든 상황이 끝나자 그들은 하나님의 평강 가운데 조용히 해산했고 모두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공적인 일로 인해 사적인 일을 간과한다든지 혹은 자기 가정을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3.이러한 혼란의 원인이 무엇인지 반복하여 설명함(25). 하나님이 왕이셨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왕이 없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저마다 자신의 주인이 되고자 했다. 국가를 주신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


*참고성경구절

11:30-31,34-35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가로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입다가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그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 독녀라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슬프다 내 딸이여 너는 나로 참담케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이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14:29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20:25 함부로 이 물건을 거룩하다 하여 서원하고 그후에 살피면 그것이 그물이 되느니라

5: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1:20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삼상30:8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쫓아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8:21 때에 내가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것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6:12-13 이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서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13:2-3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13:21-22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23:1-2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3:5-6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14:12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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