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BS_Ruth_룻기 제1과
공부할 내용: 룻기 1장 1-6절
본문
2026년 7월 5일(주일) 오후 4시 줌zoom 그룹성경공부
1.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엘리멕렉은 그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데리고 요단 건너편 모압 지방으로 가서 거기 머물렀습니다. 모압 지역은 이방인의 땅이었습니다. 여기 엘리멜렉 가족이 비록 흉년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버리고 모압으로 이주한 것이 옳은 일입니까? 기근 동안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지만 그러나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면서 풍성한 날이 올 것이란 소망 가운데 인내하며 살았어야 하지 않습니까? 이것을 통하여 다소간의 어려움이나 불편함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벗어버리려고 하는 불신앙적인 마음에 대하여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또한 지금 있는 장소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일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함께 대화해 보십시오. (룻1:1-2, 마16:24, 눅9:23, 고전7:24, 딤후2:3, 히12:1-2, 창39:2-3, 창39:22-23, 빌4:11-13)
답)매튜헨리주석-Ⅱ.흉년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 그것은 엘리멜렉의 가정이었다. 그의 이름은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를 뜻하는데, 그것은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의 이스라엘의 상태와 잘 어울린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요 영원히 다스리는 분으로서 그들의 왕이 되사 그와 그의 가족에게 고통 속에서 위로를 주셨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는 나오미였는데, 그것은 나의 사랑하는 혹은 즐거운 자란 뜻이다. 그러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론, 즉 질병과 소멸인데, 어쩌면 허약한 아이들로서 오래 살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이름을 지어 주었는지 모른다.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들이 만들어 내는 것은 결국 허약하고 미약한 것이요, 쇠하여지고 죽어가는 것이다. Ⅲ.이 가족이 흉년으로 인해 베들레헴에서 요단 건너편 모압 땅으로 이주함(1,2절). 이스라엘 땅에 먹을 것이 궁핍했을 때 모압 지역은 풍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때때로 일반은총으로 인해 하나님을 알고 예배하는 자들에게보다 이방인에게 더 풍성한 것이 주어지기도 한다. 모압은 젊은 시절부터 평안하고 포로도 되지 아니하였으므로 마치 술이 그 찌끼 위에 있고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지 않음 같아서 그 맛이 남아 있고 냄새가 변하지 아니하였도다(렘48:11). 반면 이스라엘은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겨짐으로 비워지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모압을 더 사랑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이생의 분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엘리멜렉이 그 곳으로 간 것은 영원히 정착하기 위함이 아니라 기근 동안 잠시 거류하기 위함이었는데, 그것은 비슷한 상황에서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가고 이삭이 블레셋 땅으로 간 것과 같은 것이었다. 1.엘리멜렉이 가족을 부양하고자 애쓴 것은 분명히 칭찬할 만한 일이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5:8). 흉년으로 인해 곤궁한 상태에 처하게 되었을 때, 엘리멜렉은 처자식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도록 내버려둔 채 집을 버리고 일확천금을 찾아 떠나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욥기 39장의 타조처럼 하지 않고 자상한 남편이요 아버지로서 자신이 가는 곳에 아내와 자식들을 데리고 갔다옴 39:16, 타조는 그 새끼에게 모질게 대함이 제 새끼가 아닌 것처럼 하며 그 고생한 것이 헛되게 될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나니). 2.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엘리멜렉이 모압으로 이주한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경우,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단지 거류자(sojourner)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그들의 경우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것은 동의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 자녀들은 가나안 땅에 정착했고, 따라서 이교도들의 땅으로 이주해서는 안 되었다. 이웃들은 그대로 약속의 땅에 남아 있는데, 왜 그만 가야만 했나? 그에게는 이웃들과는 다른 어떤 특별한 이유가 따로 있었는가? 만일 그가 자신의 기업을 잘못 관리하여 잃어버렸거나 혹은 그것을 팔아버리거나 저당잡혔다면(4:3,4에 나타나는 것처럼)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곤궁한 상태에 빠진 것이었다면,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이웃들이 그를 도울 것이었다(레25:35). 그러나 엘리멜렉은 이런 경우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가 모압으로 갈 때 풍족한 상태였기 때문이다(21절). 고향에 그대로 머물러 있던 자들이 있었음을 감안할 때, 흉년이 극단적으로 심하지는 않았고 어느 정도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뿐만아니라 그가 부양해야 할 가족도 고작해야 두 아들뿐으로 그리 큰 부담이 아니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이웃들이 베풀어 주는 작은 도움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면, 또 기근 동안 예전처럼 풍성한 식탁을 즐길 수 없음으로 인해 만족할 수 없었다면, 또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풍성한 날이 올 것이란 소망 가운데 인내하며 살 수 없었다면, 그것은 그의 잘못이요, 하나님과 그분이 주신 아름다운 땅을 모독하는 것이며, 형제들의 손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엘리멜렉은 형제들과 함께 자신의 기업을 지켰어야 했다. 만일 모든 사람이 엘리멜렉처럼 행동했다면, 가나안 땅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땅을 따분하게 여기며 그 곳에서 다소간의 어려움이나 불편함이 생길 때마다 즉시로 떠나가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만족할 줄 모르고 불신앙적이며 견고하지 못한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가 우리의 길을 가로막는다고 하여 그것을 벗어버리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지금 있는 장소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지혜이다. 왜냐하면 장소를 바꾼다고 하여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가 정말로 이주해야만 했다면 왜 하필 모압 땅이란 말인가? 어디로 이주할 것인지 진지하게 찾아보았다면, 아마도 그는 이스라엘의 기업 내에서 예컨대 요단 건너편에 있는 모압과 인접한 경계지역에서 풍부함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그가 하나님과 예배에 대해 좀 더 분명한 열심을 갖고 있었다면, 그리고 함께 이스라엘 백성이 된 형제들을 좀더 사랑했다면, 그렇게 쉽게 고향을 떠나 모압 사람들 가운데 거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었고, 나오미와 그 두 아들이 남았습니다. 그들이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이고 하나의 이름은 룻이었습니다. 그들이 그곳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었고, 나오미는 두 아들과 남편 뒤에 남았습니다. 남편을 잃자 나오미는 두 아들들에게 더 많은 애착을 갖게 되었고, 그들로 인하여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두 아들이 이내 죽었습니다. 두 아들과 남편 뒤에 남은 나오미의 영혼이 얼마나 쓸쓸하고 슬픔으로 가득 찼었겠습니까? 이것을 통하여 이 땅에서의 모든 즐거움은 너무나도 불확실하고 덧없다는 사실에 대하여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또한 쓸쓸하고 슬픔으로 가득 찬 사람을 위로해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함께 대화해 보십시오. (룻1:3-5, 전1:2, 전2:22-23, 시39:4-6, 시90:9-10, 시146:3-5, 시73:25-26, 고후1:3-4, 계21:4)
답)매튜헨리주석-IV.엘리멜렉이 죽은 후 두 아들이 모압 여자와 결혼함(4절). 이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갈대아 역본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들은 이방인 아내를 취함으로써 여호와의 말씀의 규례를 어겼다. 그들은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갈 때까지 결혼하지 않은 채 있든지,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그 곳에서 이스라엘까지는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었으므로 마땅히 이스라엘에서 아내를 데려왔어야 했다. 엘리멜렉이 고향을 떠나 모압으로 갔을 때, 아마도 그는 이와 같이 자기 아들들이 모압 사람들과 인척관계를 맺게 될 줄은 거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을 올바른 규례에서 떠나 잘못된 환경으로 데려가는 자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며 또한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도 알지 못한다. 두 아들과 결혼한 모압 여자들은 유대 종교로 개종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오르바는 자기 신들에게로 돌아갔다고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15절). 그녀는 여전히 모압의 신들을 섬기고 있었다. 룻이 모압 왕 에글론의 딸이었다는 것은 유대인들의 근거 없는 전승에 불과하지만, 갈대아 역본의 주석가는 그러한 내용을 끼워놓았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끼워놓은 다른 전승 즉 룻과 결혼한 보아스가 입산과 동일한 인물이라는 전승과서로 부합하지 않는다 - 왜냐하면 입산은 에글론이 죽은 지 200년 후에 이스라엘을 다스렸기 때문이다(삿12:8-10). V.남편과 두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나오미가 슬픔에 잠기게 됨. 남편이 죽고(3절), 두 아들도 결혼하고 나서 얼마 후 죽었다(5절). 갈대아 역본은 그들의 날이 단축되었다고 기록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이방인 여자들과 결혼함으로써 하나님의 율법을 어겼기 때문이었다. 1.어디로 가든지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죽음의 화살은 어느 곳에서나 날아다닌다. 2.마땅히 가야 할 길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형통할 것을 기대할 수 없다. 그릇된 길을 감으로써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다. 3.한 가정 속에서 가족들이 연이어 죽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 사람이 죽고 곧이어 다른 사람이 따르는 것이다. 남편을 잃자 나오미는 두 아들에게 더 많은 애착을 갖게 되었다. 두 아들의 그늘 아래 나오미는 이방인들 가운데 살 것을 생각하면서도 아들들로 인해 큰 위로를 받았다. 그러나 두 아들은 이내 시들어 버렸다. 아침에 푸르고 무성했던 것이 밤이 되기 전에 잘리고 말랐다. 결혼하자마자 자식도 낳지 못한 채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 이와 같이 이 땅에서의 우리의 모든 즐거움은 너무나 불확실하고 덧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조차도 빼앗아갈 수 없는 확실한 위로를 굳게 붙잡는 것이 우리의 지혜이다. 그러나 두 아들과 남편 뒤에 남은 나오미의 영혼은 얼마나 쓸쓸하고 슬픔에 가득 찼었겠는가한 날에 갑자기 자녀를 잃으며 과부가 되는 이 두 가지 일이 네게 임할 것이라 이 두 가지 일이 네게 닥쳤으니 누가 너를 위로하라(사47:9,51:19). 이와 같이 넘어진 자를 위로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
3.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셔서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습니다.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하였습니다. 여기 나오미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는데, 그 이유는 모압 땅이 그녀에게 슬픈 곳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모압 땅에서 남편과 두 아들이 죽었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가 잠시 거류하는 땅에서 지나치게 위로와 안락으로 삼는 것을 빼앗아 가심으로써 하늘 본향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사모하도록 하신다는 사실에 대하여 생각해 보십시오. 또한 이 땅에서 쓰라린 일을 겪을 때에 우리는 더욱 하늘을 소망하게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함께 대화해 보십시오. (룻1:6, 빌3:20-21, 히11:13-16, 롬8:18, 고후4:17-18)
답)매튜헨리주석-I.나오미가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고자 함(6절). 기근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잠시 동안 약속의 땅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기근이 그쳤을 때 나오미는 더 이상 외지에 있으려고 하지 않고 속히 돌아가고자 했다. 비록 모압 땅이 피난처가 되어 곤궁한 때에 생계를 해결해 주었다 할지라도, 그녀는 그 땅을 영원한 안식처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는 하나님의 성소가 있는 거룩한 땅 외에 어디도 될 수 없다. 그 땅에 대해 하나님은 “이것이 나의 영원한 안식이라”고 말씀하셨다. 1.마침내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자비를 베푸셨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오랫동안 다투실 수는 있지만, 그러나 영원히 다투시지는 않는다. 사사시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한 '압제의 심판'이 얼마 후 하나님이 구원자를 세우심으로써 끝났던 것처럼, 지금의 ‘기근의 심판’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하나님은 은혜 가운데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방문하시사, visited)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풍부함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것은 양식(bread) 곧 생명의 지팡이로 우리의 영혼을 붙잡는 하나님의 방문이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자비는 기근 뒤에 옴으로써 더욱 강렬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근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정도로 계속해서 하나님의 자비 가운데 있을 때에라도, 우리가 그와 같은 자비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된다. 2.나오미는 자기 동족을 생각하며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종종 동족들의 형편을 알아보았다. 추수는 어떻게 되었으며 시장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아보았지만, 여전히 들려오는 소식은 우울한 것이었다. 그러나 일곱 번이나 살펴보았어도 비가 올 징조를 보지 못하다가 마침내 손바닥만한 구름조각을 발견했던 엘리야의 종처럼, 드디어 나오미는 하나님이 베들레헴에 풍부함을 주셨다는 좋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에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외에는 어떤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모압의 새로운 친척들에도 불구하고 나오미는 이스라엘의 친척들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잘못된 장소에 있게 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이유가 소멸되었을 때에는 결코 그 장소에 계속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규례에 참석할 수 없고 또 어쩔 수 없이 악인들과 함께 하게 되는 것은 큰 고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러한 상태로 남아 있기를 선택하는 것은 큰 죄가 될 것이다. 아마도 나오미는 두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즉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1)그것은 그와 같은 고통을 자기 가정에 내린 하나님의 심판으로 간주했기 때문이었다. 나오미는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회초리로 생각하면서 순종하며 돌아온다. 만일 남편이 죽었을 때 바로 돌아왔다면, 어쩌면 두 아들은 잃지 않았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 그는 이기실 것이다. 하나의 고통을 통해 죄와 의무를 깨닫지 못한다면 다른 고통이 임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가정에 죽음이 들어올 때, 우리는 그것을 우리 가정에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기회로 활용해야만 한다. 가까운 친지가 우리 곁을 떠나갈 때, 우리는 마땅히 있어야 할 길에서 벗어나지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사르밧 과부는 아들이 죽었을 때 그것을 죄를 생각나게 하는 것과 연결시켰다(왕상17:18). 만일 하나님이 가시로 우리의 길을 가로막는다면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말하게 하려 하심이다: 우리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라(호2:7) - 마치 여기에서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2)그것은 이제 모압 땅이 슬픈 곳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남편과 두 아들이 죽은 하늘에서 숨 쉬는 것과 그들이 묻힌 땅 위를 걸어 다니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었다. 그러므로 이제 그녀는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가 잠시 거류하는 땅에서 지나치게 위로와 안락으로 삼는 것을 빼앗아 가심으로써 하늘의 본향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사모하도록 하신다. 땅에서 쓰라린 일을 겪을 때 우리는 더욱 하늘을 소망하게 된다.
*참고성경구절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눅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고전7:24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딤후2:3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찌니
히12:1-2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창39:2-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창39:22-23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빌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전1:2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2:22-23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으로 소득이 무엇이랴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시39:4-6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셀라)
시90:9-10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146:3-5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73:25-26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오 영원한 분깃이시라
고후1:3-4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빌3:20-21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히11:13-16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롬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고후4:17-18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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