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BS_1Kings_열왕기상 제35과
공부할 내용: 열왕기상 21장 25절 - 22장 8절
본문
2021년 1월 24일(주일) 오후 3시 30분 줌zoom그룹성경공부
1.성경은 아합에 대하여 최악으로 평가하여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저가 그 아내 이세벨에게 충동되었음이라 저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아모리 사람의 모든 행한 것같이 우상에게 복종하여 심히 가증하게 행하였더라”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악한 아합이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로 누우며 행보도 천천히 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겸비함을 보시고 재앙을 아합의 시대에 내리지 아니하시고 그 아들의 시대에 내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아합의 회개와 겸비함이 진정한 것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재앙을 아합의 시대에 내리지 않고 그의 아들 시대에 내리신다는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왕상21:25-29, 약2:13, 눅18:13-14)
답)매튜핸리주석-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관찰할 수 있다. I.아합에 대한 최악의 평가(25,26). 여기에서 이러한 사실이 특별히 언급되는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무거운 형벌을 선언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비록 그러한 형벌이 나봇과 관련한 죄로 선언되었다 할지라도 (이것은 다윗에게 있어 우리아와 관련한 죄와 매우 유사했다), 만일 그가 다른 죄들 특별히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그렇게 가혹하게 징벌하지는 않으셨을 것임을 보이기 위함이었다. 다윗은 그 한 가지 일만을 제외하고는 올바로 행했다. 그러나 아합은 정반대의 길로 달려갔으며, 그처럼 자신을 팔아 악을 행하는데 열심이었던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그 자신을 팔아 악을 행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스스로를 정욕의 완전한 노예로 만듦으로써, 마치 종이 주인의 명령을 따르듯이 자신의 정욕이 명령하는 대로 따랐다. 그는 완전하게 죄에 빠져, 죄의 낙을 얻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 삯을 지불할 것이었다(죄의 삯은 사망이라, 롬6:23). 바울 사도는 마치 가련한 포로처럼 자신이 죄 아래 팔렸다고 탄식했다(롬7:14). 그러나 아합은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죄에 팔았으며, 자신의 선택과 행동으로 죄의 통치에 순복했다.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를 충동하여 악을 행하게 했다는 것이 그의 범죄에 대한 핑계가 될 수는 없었다. 그 마음에 타락의 검불을 쌓아놓고 거기에 불을 붙인 그는 얼마나 악하며 불경건한 자인가! 그가 행했던 수많은 악행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가증스러웠던 것은 가나안 사람들처럼 우상을 따른 것이었다. 그의 모든 악행들이 하나님을 격분케 하기에 충분했지만, 특별히 우상 숭배는 더욱 그러했다. 이와 같이 악한 자가 왕으로서 다스렸다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너무도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III.아합이 스스로를 겸비케 함. 자신에게 선언된 심판으로 인해 아합은 스스로를 겸비케 했고, 이로 인해 하나님은 그에게 임할 재앙을 다음 세대로 연기하셨다. 1.아합은 참회자의 모양을 취했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한 메시지로 인해 아합은 극도의 두려움에 빠졌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였다(27절). 그는 여전히 교만하고 완악한 죄인이었지만, 그러나 현저하게 달라졌다. 하나님이 가장 완악한 마음조차도 두려워 떨게 만드시며 가장 교만한 마음조차도 가장 겸비하게 만드실 수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빠르고 강력하며 불과 방망이와 같다(렘23:29). 그것은 벨릭스조차도 두려워 떨게 만들었다. 아합은 참회자의 복장과 외양을 갖추었지만, 그러나 아직 그의 마음은 온전히 변화되고 겸비해지지 않았다. 이 일 후에도 우리는 그가 신실한 선지자를 미워한 것을 보게 된다(22:8). 진정성과 알맹이가 없으면서 회개의 외양만 갖추는 것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목하라. 아합의 회개는 단지 겉으로 보기에 그런 것일 뿐이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라고 물으셨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외적으로 그런 것일 뿐이었다. 그는 옷은 찢었지만 마음은 찢지 않았다. 위선자는 외적으로 거룩한 의무를 수행하는 것에는 열심을 낼 수 있지만 그러나 참된 경건에는 이르지 못한다. 2.이로 인해 아합에게 임할 재앙은 다음 세대로 연기되었다. 그것은 일종의 용서였다. 물론 그것은 외양적인 회개에 불과했다(그는 심판에 대해서만 애통해하였을 뿐 죄에 대하여는 애통해하지 않았다). 또 그는 우상 숭배도 버리지 않았으며, 포도원을 나봇의 상속자들에게 돌려주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하나님께 약간의 영광을 돌린 것으로 인해 하나님은 그것을 주목하시고 엘리야에게도 그것을 주목하라고 말씀하셨다?(29절):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이로 인해 그에게 임할 재앙은 그 아들들의 세대로 연기되었다. 판결이 취소된 것이 아니라, 그 집행이 연기된 것이었다. (1)이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이 너무도 크다는 사실과 하나님은 긍휼을 베풀기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기뻐하는 법이다. 센더슨 주교는 하나님이 당신의 선하심을 드러내기 위해 다른 신적 속성이 위험에 처함에도 불구하고 이 악인에게 긍휼을 나타내셨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거룩하지도 않고 진실하지도 않으며 공정하지도 못하다고 생각될 수 있는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기꺼이 그에게 긍휼을 베푸셨다는 것이다. (2)이것은 악한 자에게도 선한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어쨌든 선한 것이라면 칭찬을 받아야만 한다. (3)이것은 어째서 때때로 악인들이 오랫동안 형통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제시해 준다. 외적으로 봉사하는 자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외적인 긍휼로 상을 베푸신다. (4)이것은 진정으로 회개하고 거룩한 복음을 거짓 없이 믿는 모든 자들에게 큰 격려가 된다. 회개의 외양만 갖춘 자가 재앙을 유예 받고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하물며 진실한 회개자가 의롭다함을 받고 하늘의 집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야 얼마나 확실한 일이겠는가?
2.아합이 길르앗 라못을 되찾기 위하여 여호사밧에게 함께 전쟁을 벌이자고 제안하였을 때에, 뜻밖에 여호사밧은 “나는 당신과 일반이요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일반이요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일반이니이다”라고 말하면서 찬성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여호사밧은 아합에게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보소서”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아합은 선지자 사백인을 불러 모은 후에 “내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라고 질문하였고, 그들은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라고 답하였습니다. 여기 많은 선지자들이 한 목소리로 똑같은 대답을 하였는데, 그들의 대답이 과연 주께로부터 나온 것입니까? 아니면 합리적인 추론의 결과입니까?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이 무엇인지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왕상22:1-6, 렘23:30-32, 마7:15)
답)매튜핸리주석-II.아합은 길르앗 라못을 되찾기 위한 전쟁에 여호사밧을 끌어들인다(4절). 여기에서 아합이 여호사밧 같이 경건한 이웃의 도움을 열망한 것은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다. 비록 악인이라 할지라도 필요할 때는 선한 사람의 도움이라도 바라는 법이다. 하늘에 속한 백성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자기편으로 삼고 있는 백성들과 관계를 맺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여호사밧이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다”고 하면서 아합의 제안에 전적으로 찬동하며 나선 것은 참으로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다. 여호사밧과 유다 백성들은 아합과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악하고 부패하지 않았다. 선한 백성들에게 있어 행악자들에게 과도하게 친절을 베푸는 가운데 자칫 어둠의 열매 없는 일에 참예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여호사밧은 기꺼이 전쟁에 동참하여 아합으로부터 받은 호의에 보답하고자 했다. 한편 어떤 이들은 그가 아람에 대항하여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은 것은 이스라엘에 대항하여 아람과 동맹을 맺었던 자기 아버지의 잘못을 속죄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15:19-20). III.이와 같은 특별한 상황에서 그리고 특별히 여호사밧의 요청에 따라 아합은 전쟁과 관련하여 선지자들에게 묻는다. 아합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그의 신하들과 의논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여호사밧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한지 물어보고자 제안한다(5절). 여기에서 다음의 사실들을 관찰하라. 1.선한 백성들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바란다는 사실.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길에 하나님을 인정하며, 그분의 허락을 구하며, 승리를 위해 그분을 바라볼 것이다. 2.선한 백성들은 어디를 가든지 자신들의 신앙을 굳게 붙잡아야 한다는 사실. 자신들의 신앙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은 자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부끄러워해서는 안된다. 여호사밧은 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을 예루살렘에다 남겨두고 오지 않았다. 도리어 아합의 궁정에서 그것을 기꺼이 시인하면서, 전쟁과 같은 중요한 문제를 결정함에 있어 자신의 신앙을 관철시키고자 노력했다. 만일 아합이 여호사밧을 자신의 전쟁 속으로 끌어들였다면, 여호사밧은 아합을 자신의 믿음 속으로 뜰어들일 것이었다. IV.아합의 400명의 선지자들은(이들은 아세라의 선지자들이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확언하면서 나가 싸울 것을 격려한다(6절). 아합은 표면적으로는 공정하게 질문한다: 내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그들은 아합의 마음이 이미 어느 쪽으로 기울었는지 알고 있었으며, 그들의 목표는 오로지 두 왕의 기분을 맞추는 것뿐이었다. 그들은 여호사밧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여호와의 이름을 사용했다: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그들은 참 선지자들의 말을 도둑질하고(렘23:30), 그들의 언어를 사용했다. 또한 그들은 아합의 마음을 맞추기 위해 “올라가소서”라고 말했다. 실제로 승산은 그들 편에 있었다. 얼마 전에 아합은 아람과 싸워 두 번 다 승리를 거두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아합에게 훌륭한 명분이 있었으며, 특별히 여호사밧과 동맹을 맺음으로써 힘을 훨씬 더 강화시킨 상태였다. 그러나 그들은 합리적인 추론이 아니라 신적 예지에 의한 예언으로 말하는 것처럼 꾸몄다. “왕께서는 필경 길르앗 라못을 되찾으실 것이나이다.” 이들 선지자들 가운데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던 시드기야는 참 선지자들을 흉내내어 예표를 사용하여 자신의 거짓 예언을 뒷받침한다(11절). 그는 철로써 한 쌍의 뿔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두 왕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그들의 존귀와 권세를 싱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뿔들에 의해 아람 사람들은 쫓겨나게 될 것이었다. 모든 선지자들이 한 사람처럼 아합이 이 원정에서 정복자로서 귀환하게 될 것이라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12절). 일치(통일성, unity)가 항상 참된 교회와 참된 봉사의 표지인 것은 아니다. 여기에 한 마음과 한 입으로 예언한 400명이 있었지만, 그러나 그들은 모두 잘못된 일을 하고 있었다.
3.여호사밧이 아합에게 “이외에 우리가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지 있지 아니하니이까”라고 질문하였을 때에, 아합은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저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저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내가 저를 미워하나이다”라고 답하였습니다. 왜 미가야는 아합에게 흉한 일만 예언하였습니까? 미가야가 흉한 일만 예언한 것이 누구의 잘못입니까? 오늘날 성경에 있는 그대로의 죄와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질 때에 그것을 듣기를 싫어하는 자들이 있는데, 그러한 자들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왕상22:7-8, 사30:9-10, 딤후3:3-4)
답)매튜핸리주석-V.여호사밧은 이러한 종류의 예언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늘상 경험했던 것과는 뭔가 달랐다. 그들은 참 선지자들을 그럴듯하게 흉내냈지만, 그러나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있었던 여호사밧은 뭔가 잘못된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하여 그는 아합에게 “이외에 우리가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하고 물었다(7절). 그는 지나치리만큼 유순한 자였지만 그러나 여호와의 선지자를 볼 때까지 기꺼이 기다리고자 했다. 이것은 그가 이들 선지자들을 여호와의 선지자로 간주할 수 없었음을 암시한다. 그들에게 그럴듯한 외양은 있었지만,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그에게 더해 준 것이 없었고 아무런 만족도 주지 못했다(갈2:6). 한 명의 신실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그들 모두 보다 더 가치 있었다. VI.또 한 사람의 선지가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미가야였다. 아합은 그를 미워했지만 그러나 여호사밧으로 인해 그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8-10절). 아합은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라고 말함으로써 그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참 선지자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1.아합은 그를 미워했으며 그러한 사실을 유다의 왕에게 말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아합은 자신이 미가야를 미워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는 내게 대하여 길한 일은 예언하지 아니하고 흉한 일만 예언하기로. 이것이 누구의 잘못이란 말인가? 만일 아합이 선한 일을 행했다면 그는 하늘로부터 선한 메시지만을 받았을 것이다. 만일 그가 악을 행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책망과 경고의 말씀으로 인해 도리어 감사해야 마땅하다.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미워하는 자들은 (그들이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아 닥치게 될 위험과 고통을 경고하는 것으로 인해) 죄 가운데 마음을 완악하게 하면서 멸망을 향해 속히 달려가고 있는 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을 멸망으로 이끄는 원수들을 도리어 자신들에게 진리를 말해주는 자들로 간주한다. 2.아합은 미가야를 옥에 가두어 놓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를 병졸의 손에 맡기면서(26절), 그를 다시 데려가라고, 즉 그를 끌고 왔던 장소로 다시 데리고 가라고 명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가 옥에 갇히게 된 것이 아마도 벤하닷을 풀어준 것과 관련하여 그가 아합을 책망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20:38이하). 그리고 그는 3년 동안 옥에 갇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것이 아합이 미가야 선지자를 속히 오게 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9절). 그러나 그를 옥에 가두었다고 해서 하나님과의 만남까지 가로막을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비록 옥에서였다 할지라도 예언의 영은 계속해서 그와 함께 있었다. 그는 묶여 있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묶여 있지 않았다. 옥에 가둔 것으로 인해 그의 용기가 약해진 것도 아니었으며, 신실하고 확신 있게 메시지를 전하는 힘을 잃은 것도 아니었다. 아합이 충성된 선지자에게 분개하는 것을 보면서 여호사밧은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선지자를 부당하게 대하는 것이며, 당신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며, 그와 당신의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나이다.” 아합 같은 죄인들은 호되게 책망을 받아야만 한다. 어쨌든 아합은 여호사밧을 불쾌하게 함으로써 그와의 동맹이 깨지는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따라서 그의 책망을 받아들여 속히 미가야를 데려오라는 명령을 내린다(9절). 이렇게 하여 두 왕은 왕복을 입고 사마리아 성문에 앉아 가련한 선지자로부터 그가 하는 말을 들을 준비를 갖춘다. 두 왕 주위에는 입에 발린 말을 하는 선지자들이 시위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듣기에 달콤하고 부드러운 예언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 입에 발린 말만 듣기 좋아하는 자들 주변에는 그와 같은 사람들만 모이게 될 것이다.
*참고성경구절
약2: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눅18:13-14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렘23:30-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그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거짓 몽사를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이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마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사30:9-10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하는 자식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이라 그들이 선견자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정직한 것을 보이지 말라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딤후3:3-4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첨부파일
- 열왕기상-제35과-성경공부교재.hwp (84.5K) 79회 다운로드 | DATE : 2021-01-22 17:51:55
- 열왕기상-제35과-성경공부교재.pdf (109.7K) 65회 다운로드 | DATE : 2021-01-22 17:5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