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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BS_2Kings_열왕기하 제1과

공부할 내용: 열왕기하 1장 1-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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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21(주일) 오후 330분 줌zoom그룹성경공부 

 

1.아합이 죽고 난 후에,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이스라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아하시야는 신하들을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보내어 자신의 병이 낫겠는지 여부를 물어보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는 도중에 엘리야를 만났고, 엘리야는 여호와의 사자가 지시한대로 그들에게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찌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아합은 전쟁터에서 무심코 쏜 화살에 맞아서 죽었는데, 그의 아들 아하시야는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큰 부상을 입고 죽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왕하1:1-6, 18:9-10, 73:18-19)

  )매튜핸리주석-우리는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하시야가 하나님으로부터 책망 받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자신의 선지자를 통해 그리고 자신의 회초리와 말씀으로 그를 꾸짖으셨다. I.아하시야의 일이 매사에 어그러짐.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며 그를 진노케 한 자가 어떻게 형통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아하시야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분께 대한 충성의 의무를 저버렸을 때, 모압 역시도 이스라엘을 배반하고 이스라엘의 왕에 대해 오랫동안 지켜왔던 종속국의 의무를 저버리고 말았다(1). 유다와 인접해 있으면서 유다 왕들에게 조공을 바쳤던 에돔은 우리가 앞 장(왕상 22) 47절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금도 계속해서 그와 같은 위치에 있었다(그들이 조공국의 멍에를 깨뜨린 것은 지금 모압의 경우처럼 요람의 악한 통치 때였다, 왕하 22). 만일 어떤 사람들이 우리와 더불어 맺은 언약을 깨뜨리고 그들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혹시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맺은 언약을 깨뜨리고 우리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지 되돌아보아야만 한다. 죄는 우리를 허약하고 무력하게 만든다. II.이하시야가 병이 듦. 그러나 그것은 어떤 내적 원인에 의한 병이 아니라 사고로 말미암은 병이었다. 그는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큰 부상을 입었으며(2), 아마도 이로 인해 열병까지 생긴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어디로 가든지 우리와 죽음 사이의 거리는 불과 한 걸음에 지나지 않는 법이다. 사람의 집은 그의 성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그를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지켜주지는 못한다. 무심코 쏜 화살이 아버지(아합)를 명중시켰던 것처럼, 부서진 난간이 아들(아하시야)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아하시야는 모압의 배반에 대해 응징하고자 시도하지 않고 그냥 왕궁에 남아 있었다(그렇게 하면 전쟁터에서 죽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안전하지 못했다. 왕궁이라고 항상 안전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죄인에게 있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한 바로 그곳에 올무가 놓여 있는 일은 너무나 흔한 일이다(18:9-10).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신음하고 있는 피조세계는 마침내 이 난간처럼 부서지고 말 것이다. 하나님을 적으로 삼고 있는 자는 결코 안전하지 못한 법이다.


2.아하시야가 오십 부장과 오십 인을 보내어 엘리야를 붙잡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엘리야를 만났을 때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 그들을 살랐습니다. 그러자 왕이 또다른 오십 부장과 오십 인을 보내었는데, 그들에게도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습니다. 왕이 세 번째로 오십 부장과 오십 인을 엘리야에게 보내었는데, 그 오십부장은 엘리야 앞에 엎드려서 하나님의 사람이여 원컨대 나의 생명과 당신의 종인 이 오십 인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전번의 오십 부장 둘과 그 오십 인들을 살랐거니와 나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불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오십 부장의 태도를 통하여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왕하1:13-14, 16:18-19, 벧전5:5)

  )매튜핸리주석-I.왕이 엘리야를 잡아오라는 명령을 내림. 만일 에그론의 신이 그가 죽을 것이라고 예언했다면 어쩌면 그는 그러한 예언을 순순히 받아들였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호와의 선지자가 그의 죄를 책망하며 그렇게 말했을 때, 그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선지자의 경고를 새겨들을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으면서 도리어 선지자에 대해 분개했다. 병으로 인한 괴로움과 죽음에 대한 염려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금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외적 경고가 죄인들을 각성시킨다든지 혹은 겸손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도리어 그들을 더욱 격앙케 만들 것이다. 아하시야는 엘리야를 참 선지자로 생각했는가? 그렇다면 어째서 감히 핍박하려 했는가? 왕은 그를 보통 사람으로 생각했는가? 그렇다면 무슨 연고로 그를 잡아오기 위해 그렇게 많은 병력을 보냈는가? 우리 주 예수를 붙잡기 위해서도 이와 같이 많은 군병들이 보냄을 받었었다. II.왕이 오십부장과 군사 오십 명을 보냄. 오십부장은 산꼭대기에서 (어떤 이들은 이 산이 갈멜산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엘리야를 발견하고는 순순히 항복할 것을 왕의 이름으로 명령한다(9). 엘리야는 이번에는 전처럼 동굴 깊숙한 곳에 숨지 않고 스스로를 산꼭대기에 담대하게 드러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한 자들은 이와 같이 더욱 담대해지는 법이다. 오십부장은 엘리야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것은 오십부장이 그를 그와 같이 믿었거나 혹은 존경해서가 아니라 그가 많은 사람들에 의해 그렇게 일컬어졌기 때문이었다. 만일 오십부장이 정말로 엘리야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생각했다면 그와 같이 그를 포로로 끌고 가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를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로 생각했다면, 감히 그에게 왕의 말로써 명령하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III.엘리야가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 거만한 오십부장과 군사들을 사름. 그렇게 한 것은 스스로를 보호하거나(그는 다른 방법으로도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혹은 복수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복수하는 것은 그의 몫이 아니었다), 불의와 경건치 않음에 대해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는 자신의 사명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오십부장은 경멸적인 어투로 그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렀다. 이에 엘리야는 말한다: “내가 정말로 그러하다면, 너는 하나님의 사람을 경멸한 것에 대해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부여받은 임무로 인해 매우 거만하며 퉁명스럽게 말했다(왕이 내려오라고 말씀하셨느니라). 그러나 엘리야는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보다 높으시며 더 큰 권세를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줄 것이었다. 그가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오게 하여 제물을 사른 것은(왕상18:38)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었다(그것은 하나님이 백성들의 죄를 속제하는 제물을 받으셨음을 나타내는 증표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리하여 이제 불이 제물 위에가 아니라 죄인 자신들 위에 떨어지게 되었다(10)...IV.똑같은 일이 다시 한 번 반복됨. 1.아하시야는 다시 한 번 엘리야를 붙잡아 오도록 사자를 보낸다(11). 그는 마치 전능자가 자신의 일을 아무리 가로막아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완악한 죄인들은 마침내 지옥 불에 의해 사름을 당할 때에야 비로소 완전히 깨닫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불조차도 그들을 완전히 깨닫게 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2.아하시야는 또 한 사람의 오십부장과 오십 명의 군사를 보낸다. 그는 선지자에 대한 맹목적인 분개와 왕에 대한 맹목적인 순종으로 앞의 군사들이 몰살당했던 위험한 임무를 겁도 없이 또다시 떠맡는다. 앞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것은 너무나 오만하고 경솔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앞의 오십부장은 단순히 내려오라고 말했지만(9), 지금의 오십부장은 속히 내려오라고 말했다(11). 다시 말해서 그는 꾸물거리지 말고 속히 내려오라. 왕의 일은 신속히 시행되어야만 하느니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를 끌어내리라라고 말한 것이었다. 3.엘리야는 다시 한번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오도록 한다. 그렇게 하여 또 다시 오십부장과 오십 명의 군사가 그 자리에서 죽었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죄를 범하는 자들은 그들이 당하는 것과 똑같은 고통을 예상해야만 한다. 하나님은 항상 공의로우시기 때문이다. V.세번째 오십부장이 보냄을 받음. 그러나 그는 스스로를 겸비케 하면서 하나님과 엘리야로부터 자비를 간구한다. 아하시야가 그렇게 하도록 명령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그의 마음은 여전히 완악했으며, 하나님의 진노가 그토록 분명하게 나타남으로써 많은 군사들이 죽음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메시자와 함께 세 번째 사자를 보냈다). 그러나 세 번째 오십부장은 자기 앞서 보냄 받은 사자들의 운명을 통해 경고를 받았다(아마도 그들은 지금 그의 눈 앞에 시체로 누워 있었을 것이다). 그는 선지자에게 내려오라고 명령하는 대신에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과 군사들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간청했다(13,14): 나의 생명과 이 오십 명의 생명을 당신은 귀히 보소서. 하나님과 다투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우리가 하나님을 설득하거나 혹은 어떤 의미에서 이기고자 한다면 그것은 오직 기도를 통해서일 뿐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멸망을 당하지 않고자 하면 우리는 그 앞에 엎드려야만 한다. 다른 사람들이 완악한 마음을 갖다가 멸망을 당한 것으로부터 교훈을 받고 스스로 겸비케 하는 자는 참으로 지혜로운 자이다.


3.아하시야 왕은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왕권이 형제 여호람에게 돌아갔습니다. 아하시야는 약 2년 정도만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는데, 악한 그의 지극히 짧은 통치가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하여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왕하1:17-18, 21:7, 37:1-2)

  )매튜핸리주석-아하시야는 자녀가 없이 죽으므로 그의 왕권이 형제 여호람에게 돌아갔다(17). 그의 아버지는 22년 동안 다스렸지만, 그는 고작 2년을 넘기지 못했다. 때로 악인이 생존하고 장수하며 세력이 강한 경우도 있다(21:7). 그러나 그로 인해 불경건 가운데 스스로 형통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스스로 속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홀주교가 관찰하고 있는 바와 같이) “어떤 죄인들은 오래 삶으로써 심판을 가중시키고, 또 어떤 죄인들은 빨리 죽음으로써 심판을 속히 이루기때문이다. 그러나 악이 죄인들을 쫓으며 조만간 그들을 덮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나님의 신탁은 미워하면서 마귀의 신탁을 존귀하게 여긴 아하시야의 죄만큼 심판의 분량을 속히 채우는 것도 없을 것이다.

 

*참고성경구절

18:9-10 그 발뒤꿈치는 창애에 치이고 그 몸은 올무에 얽힐 것이며 그를 동일 줄이 땅에 숨겼고 그를 빠뜨릴 함정이 길에 베풀렸으며

73:18-19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16:18-19 교만은 폐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겸손한 자와 함께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벧전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21:7 어찌하여 악인이 살고 수를 누리고 세력이 강하냐

37:1-2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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