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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BS_Joshua_여호수아 제12과

공부할 내용: 여호수아 6장 6-15절

본문

202310월 15(주일) 오후 4 줌zoom 그룹성경공부


1.여호수아가 제사장들에게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일곱 제사장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 행할찌니라고 말하였고 또한 백성에게는 나아가서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 행할찌니라고 말하였습니다. 여호수아가 말하기를 마쳤을 때에, 제사장 일곱이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서 여호와 앞에서 진행하였고, 나팔을 불었으며, 여호와의 언약궤가 일곱 제사장들 뒤를 따랐습니다. 그리고 무장한 자들은 나팔을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행하였으며, 후군은 궤 뒤에서 행하였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면서 행하였습니다. 여기 일곱 명의 제사장들이 나팔을 손에 잡고 계속 불면서 법궤 앞에서 행하였다고 하였는데, 이것을 통하여 영원한 복음의 나팔을 계속 불어야 하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에 대하여 생각해 보십시오. 나팔의 탁월한 능력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그 능력이 나팔의 재료에 있습니까? 복음의 능력에 대하여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6:6-9, 1:16, 고전1:23-24, 고후10:4-5)

  )매튜헨리주석-여기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여리고에 대하여 벌인 굉장한 퍼레이드 행렬의 이야기를 보게 된다. 이 명령은 여호수아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백성에게 내린 것이며 백성들은 이러한 명령을 정확하게 준수했다. 여기에서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셨던 분명한 확증 즉 하나님이 여리고를 자신들의 손에 넘겨주셨다는 확증을 주었는지여부는 나타나지 않는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이 잘 될 것이라는 일반적인 믿음으로 명령에 순종하는지 여부를 시험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서 백성들이 하나님과 여호수아에 대하여 온전히 순종했음을 보게 된다. I.법궤가 가는 대로 백성들은 따라 갔다(9). 무장한 자들이 길을 열기 위해 법궤 앞에 서서 갔다. 이들이 전사들이기는 했지만 자신들이 하나님의 법궤의 전위대가 되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도중에 어떤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면 이들이 제거하게 될 것이고, 또 적들에 의해 어떤 저항 행위가 행해진다면 이들이 물리치게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법궤를 멘 제사장들의 행진이 용이하고 안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법궤에 대해 좋은 직무를 맡고 자기 나라의 종교적 유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대단히 영예로운 일이다. 또 후군이 법궤의 뒤를 따랐는데, 이들은 다른 무장부대이든지 혹은 광야를 지날 동안 제일 뒤에서 행군했던 단 지파든지 아니면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전쟁의 훈련을 받지 않은 비무장의 백성들을 가리키는 것일 것이다. 이들이 뒤에서 법궤를 따른 것은 법궤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고, 그 장엄한 의식을 빛내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증인이 되고자 함이었다. 신실하고 열심 있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와 동일한 수고를 기꺼이 감당하고자 할 것이며, 법궤를 멘 제사장들과 함께 동일한 모험에 동참하려고 할 것이다. .일곱 명의 제사장이 나팔을 손에 잡고 계속 불면서 법궤 바로 앞에 서서 갔다(4,5,9,13). 이러한 일곱 명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사역자들이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1.가나안과 전쟁을 선포하고 그들에게 공포심을 안겨 주었다. 이러한 공포심으로 그들은 무너지고 정복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인간의 모든 불경건과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하면서 시온에서 나팔을 불고 거룩한 산에서 경고를 발하여야 한다. 그럼으로써 죄인들이 듣고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죄 가운데 행하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평안이 있을 줄여기는 모든 자들에게 전쟁을 선포하는 하나님의 사자들이다. 2.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며 그들에게 생명과 용기를 주셨음을 선포하였다. 이스라엘이 전쟁에 나갈 때 제사장들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심을 확증함으로써 그들을 격려하도록 되어 있었다(20:2-4). 특별히 제사장이 나팔을 부는 것은 백성들에게 그들이 전쟁의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잊어버린 바 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표지였다(10:9), 아비야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격려 받고 용기를 얻었다(대하13:12).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자유와 승리를 선포하는 희년의 영원한 복음의 나팔을 붉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군사들을 영적 전쟁에서 격려해야 한다. III.그들이 사용한 나팔은 통상적으로 봉사할 때 사용하던 은 나팔이 아니라 속을 파서 만든 양각 나팔이었다. 이러한 양각 나팔은 저급한 재료로 만들어졌고, 소리도 분명치 않으며, 모양도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탁월한 능력은 그런 외적인 것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전도의 미련한 것을 통하여 마귀의 나라가 무너진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다(고후10:4,5). 여기에 사용된 단어는 요벨의 나팔인데, 이것은 제사장들이 희년과 동시에 부는 데 사용했던 나팔이었다. 많은 해석가들은 이것이 지금 이스라엘에게 부여되는 완전한 자유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한다. 지금 가나안이 그들의 손에 넘겨지고 있는 것이다.

 

2.여호수아는 백성에게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찌니라고 말하였습니다. 여호와의 궤가 성을 한 번 돌았고, 무리가 진에 돌아와서 머물렀습니다. 여호수아는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났고,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메었습니다. 일곱 제사장들이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계속 진행하였고 또한 나팔을 불었습니다. 무장한 자들이 일곱 제사장들 앞에 행하였고, 후군은 여호와의 궤 뒤에 행하였으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면서 계속 행하였습니다. 제 이 일에도[the second day] 성을 한 번 돌고 진에 돌아왔으며, 엿새 동안에 그와 같이 행하였습니다. 여기 여리고 성을 여러 번 돌 때에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었을 믿음의 시련에 대하여 생각해 보십시오. 왜 하나님은 첫 바퀴를 돌 때에 여리고 성이 무너지게 하지 않았습니까? 여기서 우리들이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6:10-14, 11:30, 2:3)

  )매튜헨리주석-IV.모든 백성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잠잠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10).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지금 그들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간주되는 거룩한 나팔 소리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고 따를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실 때 우리는 잠잠해야 한다. 그것은 또한 이제 벌어질 일에 대한 경건한 기대를 암시한다. 모든 육체여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 것이니라(2:13).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14:14). V.그들은 이 일을 6일 동안은 매일 한 번씩 그리고 일곱째 날에는 일곱 번해야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14,15). 하나님은 첫 바퀴를 돌 때 여리고 성벽이 무너지게 하실 수 있으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성벽이 무너지기까지 열세 바퀴를 돌아야만 했다. 그들에게 요구되었던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오래참음으로 기다리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이 이제 막 가나안에 들어왔고 또 시간이 매우 아쉬운 상황이었다 할지라도(왜냐하면 그들 앞에 엄청난 분량의 일이 놓여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여리고 주변에서 겉으로 보기에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또 그들의 일에 아무런 진전도 없는 채로 - 여러 날을 머물러야 했다. 가나안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었고 이스라엘은 그렇게 기대해야 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했다. 믿는 자는 결코 서두르지 않는 법이다. 희망의 징조가 나타나기까지 일곱 번을 다시 가라(왕상18:43). VI.칠 일 중에 하루는 분명히 안식일이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그것이 마지막 날이었다고 말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만일 안식일에 쉴 것을 명령하신 분이 이 날엔 걷도록 명령하셨다면, 그들이 이와 같이 하는 것은 충분히 정당화될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율법에 의해 결코 구속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당신이 기뻐하실 때 그것을 면제하실 수 있다.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38년된 병자는 이와 같은 원리 위에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 주장한다. “나를 낫게 한 (그래서 신적 능력을 가진)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5:11). 여기에 안식일의 영예와 존귀함이 나타나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일에 꼭 7일이 소요되었으며, 일곱 명의 제사장들에게 나팔 부는 일이 맡겨졌다. 여기에서 일곱이란 숫자는 6일 간의 창조와 일곱째 날의 안식을 생각나게 해준다. 아울러 안식일의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세속적인 일을 금지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한 것은 종교적인 행동이었다. 안식의 일을 하는 것은 명백히 안식일의 율법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다. 법궤를 뒤따르는 것보다 더한 안식의 일이 무엇이겠는가?


3.제칠일[the seventh day]에 그들이 새벽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방식으로 그들은 성을 돌았는데, 그 날에만 그들이 성을 일곱 번 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을 모두 합하여 열 세번 돌았습니다. 여기 성벽을 돌고 있을 때에 적들의 화살이 날아오거나 비웃음과 조롱하는 소리가 들려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적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성벽을 돌아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고서 안심하고 평안하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과연 악인들은 평안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심판을 준비하고 계실 때에,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비웃고 조롱해도 되는 것입니까? 너무 늦게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는 악인들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6:15, 느헤미야4:2, 벧후3:4,9)

  )매튜헨리주석-VII.그들은 6일 동안 이와 같이 했고, 일곱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았다. 비록 그들이 즉시 어떤 효과가 발생하는 것은 보지 못했지만, “이 묵시는 정한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2:3)는 사실을 믿고 그렇게 했다. 만일 우리가 주어진 일을 행하는 가운데 인내하면, 결국 그것으로부터 잃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성벽을 도는 중에 적들의 화살이 날아올 만한 거리나 혹은 그들이 비웃는 소리를 들을 만한 거리를 지날 때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포위된 여리고 사람들이 이 일의 기괴함으로 인해 처음에는 매우 당혹스럽게 여겼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일곱째 날 그들은 이스라엘의 행동으로부터 아무런 위해도 느끼지 않게 되었고 스스로 안전감에 도취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느헤미야4:2에 언급된 자들처럼 조롱을 했을 것이다: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이들이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백성들이란 말인가? 그들이 공격하는 방법이 바로 이것인가? 그리하여 그들은 평안과 안전을 소리 높이 외치게 되었다. 이로써 그들에게 멸망이 가일층 두려운 것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홀 주교(bishop Hall)하나님께서 심판을 준비하고 계실 때 악인들은 하나님을 희롱하고 가볍게 여긴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잘못을 깨닫게 될 때는 이미 너무 늦은 것이다.


*참고성경구절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고전1:23-24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후10:4-5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11:30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

2: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4:2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말하여 가로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의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케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필역하려는가, 소화된 돌을 흙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벧후3:4,9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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