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OUNCEMENT

어나운스먼트

주보

그룹성경공부

교회소식

그룹성경공부

GBS_Nehemiah_느헤미야 제12과

공부할 내용: 느헤미야 7장 5-72절

본문

202210월 16(주일) 오후 4 줌zoom그룹성경공부 

 

1.하나님께서 느헤미야의 마음을 감동하여 귀인들과 민장과 백성을 모아 그 보계대로[genealogy, 계보, 족보] 계수하게 하셨습니다. 느헤미야는 처음에 돌아온 자들의 계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갔던 자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로 돌아와 각기 본성에 이른 자 곧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느헤미야와 아사랴와 라아먀와 나하마니와 모르드개와 빌산과 미스베렛과 비그왜와 느훔과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적혀 있었습니다. 여기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의 마음을 감동하셨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우리들에게 주는 영적인 교훈은 과연 무엇입니까? (7:5-7, 1:1, 1:14, 1:29)

  )매튜헨리주석-우리는 여기에서 느헤미야의 또 다른 선한 계획을 보게 된다. 지혜로우며 열정적인 사람은 항상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뭔가를 계속해서 궁구하기 마련이다. 느헤미야는 성읍(도시, city)의 안전이 성벽의 높이와 견고함보다 주민들의 숫자와 용맹성에 더 많이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잘알고 있었다(물론 하나님 아래에서). 따라서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주민의 수가 너무나 적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그는 백성들을 계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에 예루살렘에 거주하다가 지금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하고, 또 여러 사람들에게 권면하여 예루살렘에 집을 짓도록(신앙적인 이유로든 아니면 사업적인 이유로든) 유도할 수 있을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만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바라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안전과 안위는 많은 부분 우리의 이웃들과 친구들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웃과 친구들이 더 많을수록 우리의 성읍은 더욱 견고해지며우리는 더 즐거워질 것이다. 도시(성읍, city)와 시골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통치자들의 지혜이다. 도시가 시골을 완전히 황폐화시킬 정도로 지나치게 비대해져서도 안 되며, 반대로 스스로 보호할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위축되어서도 안 된다. 다음을 주목하라. I.느헤미야의 이와 같은 선한 계획은 어디로부터 말미암았나. 그는 하나님이 자기 마음을 감동하셨다고 고백한다(5). 우리 마음속에 어떤 선한 생각이나 충동이 솟아오를 때,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을 우리 마음속에 넣으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왜냐하면 모든 선한은사와 역사는 위로부터 말미암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지혜를 주시며 은혜를베푸신다.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으며 따라서 모든 것은 그분께 돌려져야 한다. 인간의 지혜로 되어진 일도 신적 섭리의 인도하심으로 돌려져야한다. 농부들에게 지혜를 가르치시는(28:26) 하나님은 또한 통치자들에게도 그렇게 하신다.


2.느헤미야가 바벨론으로부터 처음 돌아온 자들의 계보를 얻었는데, 그 내용이 8절부터 69절까지에 나옵니다. 여기에 나오는 내용은 에스라 2장에 나오는 계보와 똑같습니다. 느헤미야가 이 계보를 가지고 무엇을 하였을까요? 또한 여기에 나오는 계보는 언제까지 보존되는 것입니까? (7:8-69, 1:17, 3:23, 9:10-11)

  )매튜헨리주석-.느헤미야는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했다. 1.느헤미야는 귀족들과 민장들과 백성들을 불러 그들 가족들의 현재 상태를 조사했다(그들의 숫자는 몇 명이며 지금 어디에 거주하는지 등). 아마도 느헤미야는 그들을 부를 때 그들과 더불어 주변 지역 사람들의 현황까지도 함께 보고하도록 명령했을 것이다. 그들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음에도 그 일이 속히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우리는 그렇게 추측할 수 있다. 2.느헤미야는 처음에 돌아온 자들의 계보를 조사하고 그것을 지금의 현황과 비교했다. 그리고 여기의 목록은 에스라 2장의 목록을 반복한 것이다. 그와 관련하여 우리는 여기의 제목과(6,7) 에스라 2장의 제목이(1) 똑같은 것을 발견한다. 또한 여기에서 두 가지, 즉 각 가문의 이름 및 숫자와 그들이 성전 예배에서 맡은 직무가 에스라 2장의 내용을 거의 축자적으로 반복한다. 그것이여기에서 다시금 반복되는 것은 하나님이 영적 이스라엘에 속한 개인들과 가문들과 그들의 예배를 기쁘시게 받으시며, 그들을 특별히 주목하고 계심을 암시한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속한 자들을 아시며, 그들 모두를 아시며, 그들의이름을 아시며, 사로잡힌 자들의 자손들의 목록을 주목하시며, 그들과 관련한 옛 계획에 따라 모든 일을 행하신다. (1)여기에 처음 돌아온 가문들의 우두머리들의 목록이 나와 있다(6-69). [1] 이러한 목록은 지금의 우리에게는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러나 당시에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서 예전의 현황과 지금의 현황을 비교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이 기간 동안 그들의 숫자가 크게 증가하였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미미한 시작을 기억할 필요가 있었다. 그럼으로써 자신들을 번성케 하시고 든든하게 세워 주신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깊이 깨닫게 될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이와 같이 그들의 계보가 보존됨으로써 모든 가문이 메시야가 올 때까지 계속 유지되게 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해 보존된 이러한 계보들은 마침내 그의 오심과 함께 끝나게 되었다. [2]그러나 여기의 목록과 에스라의 목록 사이에는 어느 정도 차이가 존재한다. 대부분의 경우 정확하게 일치하지만,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한두 명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어떤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하나는 첫 귀환 때의 숫자이고 다른 하나는 최소한 40년이 지난 후인(어떤 이들은 40년보다 훨씬 더 길게 잡기도 한다) 지금의 숫자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차이가 생겼다는 생각에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최소한 4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각 가문의 숫자가 완전히 똑같든지 혹은 극히 적은 차이만 나는 것은 거의 생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전사자들의 실수나(숫자를 옮길 때 이런 실수는 흔히 일어난다) 혹은 그들이 취한 사본의 다양성 때문에 그와 같은 차이가 생긴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어쩌면 하나는 스룹바벨과 함께 바벨론을 떠날 때 계수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루살렘에 도착할 때 계수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총계는 노래하는 남녀를 제외하고는 양쪽이 정확하게 일치한다(노래하는 남녀의 경우 에스라에는 200명으로 되어 있는 반면 여기에서는 245명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숫자와 관련하여 양쪽이 정확하게 일치해야만 할 필연적인 중요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3.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드려진 헌물들이 70절부터 72절까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족장들은 역사를 위하여 보조하였고[드렸고] 방백은 금 일천 다릭과 대접 오십과 제사장의 의복 오백삼십 벌을 보물 곳간에 드렸고 또 어떤 족장들은 금 이만 다릭과 은 이천이백 마네를 역사 곳간에 드렸고 그 나머지 백성은 금 이만 다릭과 은 이천 마네와 제사장의 의복 육십칠 벌을 드렸느니라여기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드린 헌물은 우리들에게 어떠한 진리를 생각나게 합니까? (7:70-72, 6:20, 고후9:7)

  답)매튜헨리주석-(2)여기에 하나님의 일을 위해 드려진 헌물들이 언급되어 있다(70절이하).그러나 여기에 언급된 헌물들은 에스라 2:68-69에 언급된 것과 상당 부분 다르다. 따라서 양자가 동일한 헌물을 언급하고 있는 것인지 여부는 다소 의문의 여지가 있다. 여기에서는 제일 먼저 총독이 헌물을 드린 것으로 되어 있지만, 에스라에서 총독은 언급되지 않는다. 그리고 각 품목들에 있어 에스라에 언급된 합계가 여기에 나타난 합계보다 많다. 아마도 이것은 다른 사본으로부터 옮겼기 때문에 나타난 차이일 뿐 양자는 동일한 것을 언급한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그 이후의 구절들이 또다시 똑같이 나타나기 때문이다(즉 느헤미야 7:73과 에스라 2:70이 똑같고 또 느헤미야 8:1과 에스라 3:1이 똑같다). 우리의 믿음과 소망이 이름과 숫자와 족보와 연대의 정확성에 기초하지 않고 오직 율법과 복음의 큰 사실 위에 기초한 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송축하자. 하나님의 일을 위해 무엇을 드렸든지 간에 하나님은 그것을 결코 잊어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냉수 한 그릇을 드릴지라도 우리는 결코 그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참고성경구절

1: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1:14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바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역사를 하였으니

1: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1: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3:23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의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

9:10-11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둔 것이니라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고후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