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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BS_Ezra_에스라 제11과

공부할 내용: 에스라 8장 1-23절

본문

20225월 22(주일) 오후 330분 줌zoom그룹성경공부


1.에스라와 함께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족장들과 그들의 계보는 비느하스 자손 중에서는 게르솜이요 이다말 자손 중에서는 다니엘이요 다윗 자손 중에서는 핫두스요 스가랴 자손 곧 바로스 자손 중에서는 스가랴니 그와 함께 족보에 기록된 남자가 일백오십 명이요 바핫모압 자손 중에서는 스라히야의 아들 엘여호에내니 그와 함께 한 남자가 일백 명이요...비그왜 자손 중에서는 우대와 사붓이니 그와 함께한 남자가 칠십 명이었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이 계보를 에스라 2장에 나오는 계보와 비교해 보고, 그 차이점에 무엇인지를 말해 보십시오. 또한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벨론 땅에 남아 있고자 한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상태가 우리들에게 주는 영적인 교훈에 대하여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7:1-14, 11:12, 52:1-2)

  )매튜헨리주석-왕의 위임을 받은 후 에스라는 자신과 함께 갈 자들을 찾아다녔다. 이를테면 그는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과 유다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기 위해 깃발을 세운 것이었다(11:12). “바벨론의 딸들 가운데 거하는 시온의 아들들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도다. 이제 성전이 완성되었으며 성전 예배가 시작되었도다. 이제 우리의 때가 되었도다.” 이제 사람들은 에스라와 같은 탁월한 지도자의 부름에 따라 모든 유대인들이 마침내 티끌을 털어버리고 목의 줄을 풀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52:1,2).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그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자 하지 않고 그냥 뒤에 남고자 했던 자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부름을 듣고도 그냥 뒤에 남아 있을 수 있었는지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신앙보다도 육체적인 안일을 더 사랑하는 가운데 지금 있는 곳에서 그냥 편안히 거하고자 생각했다. 그들은 예루살렘이 자신들의 형편을 훨씬 더 낫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 곳으로 가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게 된다. I.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에스라를 따라 나섬. 우리는 여기에서 몇몇 가문의 우두머리들의 이름이 나열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을 중심으로 각 가문에서 나온 남자들의 숫자는 모두 1,496명에 이르렀다. 그리고 두 명의 제사장과 다윗의 자손 가운데 한 사람의 이름이 거명된다(2). 그러나 이들은 가족들과 함께 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그것은 그들이 먼저 예루살렘에 가서 그 곳의 형편을 살핀 후에 가족들을 데려오든지 아니면 자신들이 다시 돌아가든지 하고자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나열된 몇몇 가문의 이름은 우리가 2장에서 살펴본 이름과 동일하다. 그것은 그런 가문 가운데 일부 사람은 그 때 올라갔고 나머지는 이번에 올라가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3시에 포도원으로 들어갔고 또 어떤 사람은 11시에 들어갔다. 그러나 나중에 들어간 사람도 거절당하지 않았다. 또 우리는 여기에서 '아도니감의 자손 중에 나중된 자' 란 표현을 보게 된다(13). 어떤 이들은 이것을 그들이 에스라의 부름에 마지막으로 응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그렇다면 이것은 그들의수치를 드러내는 표현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도리어 이것이 그들의 영광을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제 그들 가운데 나중된 자들까지 모두 돌아감으로써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2.에스라가 사람들을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로 모으고, 그곳에서 삼일 동안 장막에 거하였습니다. 에스라가 거기 있는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펴보았는데, 그 중에 레위 자손이 하나도 없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엘리에셀, 아리엘, 스마야, 엘라단, 야립, 엘라단, 나단, 스가랴, 므술람, 요야립, 엘라단을 불러서 가시뱌[유프라데스 강 지류 중 하나인 아하와강 근처에 있는 지명] 지방의 족장 잇도에게 나아가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그리고 에스라는 그들에게 잇도와 그 형제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를 알려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사역할 자들을 데리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서 그들이 이스라엘의 손자 레위의 아들 말리의 자손 중에서 한 명철한 사람을 데려오고, 또 세레뱌와 그 아들들과 형제 십팔명과 하사뱌와 므라리 자손 중 여사야와 그 형제와 저의 아들들 이십 명을 데려오고, 또 느디님 사람 곧 다윗과 방백들이 주어 레위 사람에게 수종들게 한 그 느디님 사람 중 이백이십 명을 데려왔습니다. 여기 에스라가 사람들을 보내어서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섬길 자를 찾아오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나라에 필요한 사역자들을 찾는 일에 있어서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라는 말씀이 뜻하는 바에 대하여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7:15-20, 9:37-38, 16:3-4)

  )매튜헨리주석-.그러나 레위인들은 오지 않음. 에스라는 새해 첫날 모든 무리를 한 곳에 모이도록 지시했다(7:9). 그리고 그 곳에서 무리를 살핀즉 (이상하게도) 그중에 레위 자손은 한 사람도 없었다(15). 제사장은 있었지만 그러나 레위인은 없었다. 레위지파의 정신과 열정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에스라는 그 자신한 사람의 제사장으로서 마치 모세처럼 여호와의 편에 설 자가 누구인가"라고 외쳤다. 그러나 그들은 레위지파답지 못하게 움츠리면서 양의 우리 가운데 앉아양들의 떠드는 소리만 듣고자 했다. 우리는 그들이 바벨론에서 회당을 갖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 곳에서 그들은 기도하며 설교하며 안식일을 지켰을 것이다(그들이 더 나은 것을 가질 수 없었을 때 회당이 있는 것만으로도 그들로서는 충분히 감사할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예루살렘 성전이 열리고 그 곳에서 섬길 수 있게 되었으므로 그들은 마땅히 회당보다 시온의 문들을 더 좋아하여 선택했어야 했다. 이와 같이 여기에 오지 않은 것은 그들의 수치였다 그러나 그것을 가드에는 말하지 말라. 무리 가운데 레위인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에스라는 크게 당황했다. 그에게 성전예배를 위한 충분한 돈이 있었지만 그러나 일꾼이 모자랐다. 왕과 방백들은 그들의 몫 이상을 행했지만, 레위의 자손들은 그들 몫의 절반도 행하지 못했다. 에스라는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무리로부터 열한 명의 사람을 선택했는데, 그들은 족장이거나 명철한 자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과 관련하여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1.그들이 보냄을 받음. 에스라는 그들을 가시뱌 지방으로 보냈는데(17), 아마도 그 곳은 레위인 학교가 있었던 바벨론의 어떤 거리나 혹은 광장이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가시바(Casiphia)를 은 거리(Silver Street)로 부르는데, 그것은 게셉(ceseph)이 은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에스라는 그들을 레위인 학교의 지도자인 잇도에게 보냈는데, 그것은 그 자신을 데려오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아마도 그는 나이가 너무 많아 먼 거리를 여행하기에 적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지도 아래 있는 젊은이들 즉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섬길자들을 데려오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의 성전을 선한 사역자들로 채우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며, 그것은 그 곳에서 섬기는 모든 자들에게 큰 위로와 도움이 될 것이다. 2.그들이 소기의 성과를 갖고 돌아옴. 그들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들은 약 40명의 레위인들을 데리고 왔다. 그들과 함께 온 레위인들은 명철함으로 유명한 세레뱌와 그와 함께 한 18명과(18) 하사비 및 여사야와 그들과 함께 한 20명이었다(19). 이를 통해 우리는 이들이 예루살렘으로 가기를 싫어했던 것이 아니라 다만 자신들을 불러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무심코 있다가 그만 때를 놓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일로 선한 자들이 선한 일에 빠지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들이 자신들을 불러주기를 기다리며 가만히 있었던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내버려두고 그냥 가는 것은 더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이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일과 관련하여 레위인 자신보다도 레위인 학교의 종복(從僕)인 느디님 즉 성전 사역자들 가운데 가장 낮은 계급의 사람들이 더 적극적이었다. 그들 가운데 220명의 사람들이 이와 같은 갑작스런 부름을 받고 나아왔으며, 그들은 에스라와 함께 돌아온 사람들의 명부에 이름이 기록되는 영예를 얻었다(20). 이에 에스라는 말한다. “이와 같이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이 우리 위에 임하사 레위인들도 함께 가게 되었도다.” 사역자들이 부족할 때 그 부족한 부분이 채워지면, 이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의 선한 손을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그들을 위해 기회의 문을 열어 주셨기 때문이다.


3.에스라는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예루살렘까지의 여행에 있어서 평탄한 길을 주시고 또한 적군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적군을 막아줄 보병과 마병을 요청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이전에 에스라와 유대인들이 왕에게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베푸신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왕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대신에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서 안전하게 예루살렘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바벨론으로부터 예루살렘까지 가는 여정에서 만날 수 있는 적군의 위험에 대하여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적군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달라고 금식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한 에스라의 믿음에 대하여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만약 에스라가 안전한 여행길을 위하여 아닥사스다 왕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라면, 왕이 무엇을 오해할 수 있었겠습니까? (7:21-23, 7:31, 4:6-7)

  )매튜헨리주석-에스라는 레위인들과 함께 갈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그 모든 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에스라의 주된 관심은 바로 이것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행로에 하나님을 인정해야 한다. 특별히 하나님 나라의 유익을 위해 일하고자 애쓸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여기에서 에스라가 바로 그러했다. 다음을 관찰하라. I.에스라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로운 보호를 계속적으로 신뢰했다. 그는 왕에게 자신의 행동원칙을 말했는데(22), 그것은 하나님을 찾는 자는 큰 위험 속에서도 그분의 날개 그늘 아래 안전한 반면 하나님을 버리는 자는 가장 안전한 때조차도 큰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종들은 그분의 권능을 힘입지만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그분의 권능으로부터 대적함을 당한다. 에스라는 이 사실을 진심으로 믿었으며 그것을 왕 앞에서 입술로 고백했다. 그러므로 그는 왕에게 호위대를 요청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왕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보호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에 대한 에스라의 믿음에 대해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게 만들 소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자랑하는 자들은 사람에게 보호를 구한다든지 특별히 안전을 위해 유치한 편법을 사용하는 따위의 일을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동은 그들의 믿음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도 스스로를 보호하며 보존하기 위해 마땅히 합당한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될 때,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이 손상되는 행동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스스로 위험에 노출되는 편을 선택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있어 하나님의 영광은 자신들의 생명보다도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II.에스라는 그러한 신뢰 가운데 하나님께 장엄한 기도를 드렸다. 그는 금식을 선포했다(21). 의심의 여지 없이 그는 처음부터 이 일에 관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을 것이다. 그러나 공적인 은총을 위해서는 공적인 기도가 드려져야 한다. 왜냐하면 공적 은총의 축복에 동참할 자들은 또한 그것을 간구하는 데에도 동참해야 하기 때문이다. 1.금식은 그들의 겸비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바로 이것이 금식의 목적이었다. “우리가 우리 죄로 인해 하나님 앞에 스스로를 괴롭게 함으로써 사죄의 은총을 받고자 하나이다." 새로운 삶의 상황 속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그곳으로 예전에 행했던 죄의 죄책까지 가지고 가지 않도록 마음을 써야 한다. 그리고 어떤 절박한 위험 속에 있을 때, 우리는 먼저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에 마음을 써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안전하게 될 것이요 어떤 것도 우리에게 실제적인 해를 끼치지 못할 것이다. 2.금식은 그들의 기도를 고양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종교적 금식은 항상 기도와 관련되는 것이다. 지금 그들이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목적은 하나님께 평탄한 길을 구하는 것, 즉 스스로를 하나님의 섭리의 인도에 맡기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 모든 여행길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 가운데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안전하게 지켜 주시기를 간구한 것이다. 그들에게 이 여행길은 낯선 길이었으며, 적의 나라들을 통과하여 지나가야만 하는 길이었으며, 조상들의 경우와는 달리 구름 기둥과 불 기둥도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대신에 하나님의 권능과 은총, 그리고 천사들의 역사가 있을 것을 믿었으며, 또한 기도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고자 소망했다. 우리 자신과 가족과 재산에 대한 모든 염려를 기도로써 하나님께 맡기는 것은 우리의 지혜이면서 동시에 의무이다(4:6). .그 결과,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23). 그들은 마음속에 자신들의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분명한 확신을 갖게 되었으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은 결코 헛수고가 되지 않을 것이다.


*참고성경구절

11:12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를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이산한 자를 모으시리니

52:1-2 시온이여 깰찌어다 깰찌어다 네 힘을 입을찌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찌어다 이제부터 할례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니라 너는 티끌을 떨어버릴찌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보좌에 앉을찌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찌어다

9:37-38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16:3-4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7:31 정월 십이 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쌔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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