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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BS_Ezra_에스라 제13과

공부할 내용: 에스라 9장 1-15절

본문

20226월 12(주일) 오후 4 줌zoom그룹성경공부


1.방백들이 에스라에게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과 떠나지 아니하고[분리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여부스 사람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과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그들의 딸을 취하여 아내와 며느리를 삼아 거룩한 자손으로 이방 족속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두목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고 보고하였습니다. 지금 성전이 재건되어 성전 예배가 규례대로 드려지고 있으며 또한 그동안 훼방하던 원수들이 우호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평화로운 상황 속에서 유대인들이 범한 죄는 무엇이며 또한 그것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9:1-2, 7:3-4, 고후6:14-16)

  )매튜헨리주석-이제 사람들은 유다 교회가 에스라의 지도 아래 매우 훌륭한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게 되었을 것이라고 쉽게 추측할 것이다. 외적인 상황을 살펴보자. 바사 정권은 그들에게 매우 우호적이었다. 우리는 그들이 유대 사람들을 압제하며 핍박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 또 지금까지 그들을 훼방하던 원수들도 우호적인 태도로 바뀌었다(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주변 사람들은 온건해졌으며 아무런 전쟁의 소문도 들리지 않는다. 이제 그들을 두렵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이 적은 수의 보잘것없는 백성으로서 여전히 이방 왕의 통치 아래 있었음을 감안할 때, 지금 그들의 상황은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황이었다. 또 내적인 상황을 살펴보자. 우리는 바알과 아스다롯과 몰록과 각종 우상들과 금송아지와 산당들에 대한 이야기를 더 이상 듣지 못한다. 이제 성전이 재건되어 성전 예배가 규례대로 드려지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온전했던 것은 아니었다. 교회 역사 가운데 가장 순수한 시대에조차도 어느 정도의 타락과 부패는 있는 법이다. 하나님의 교회가 '영광스러운 교회' '승리의 교회'가 될 때까지는,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어느 정도는 있을 것이다(5:27). 본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I. 많은 유대인들이 이방 여자들과 결혼했다는 보고가 에스라에게 전달됨(1,2). II. 이러한 보고를 받고 에스라가 크게 괴로워함(3,4). III. 에스라가 이러한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함(5-15). 바나바가 그랬던 것처럼, 에스라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하나님이 그곳에서 형제들에게 은혜 베푸신 것을 보면서 크게 기뻐하며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고 강력하게 권면했을 것이다(11:23). 그는 잘못된 것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대부분의 타락은 대체로 눈에 잘 띄지않는 법이다). 그러나 드디어 그의 기쁨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일어났다. 많은백성들이(특별히 지도자들 가운데 그런 사람들이 더 많았다) 이방 여자들을 아내로 맞아들여 이방인들과 인척관계가 되었다는 보고가 전달된 것이다. 다음을 관찰하라. 바나바가 그랬던 것처럼, 에스라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하나님이 그곳에서 형제들에게 은혜 베푸신 것을 보면서 크게 기뻐하며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고 강력하게 권면했을 것이다(11:23). 그는 잘못된 것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대부분의 타락은 대체로 눈에 잘 띄지않는 법이다). 그러나 드디어 그의 기쁨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일어났다. 많은백성들이(특별히 지도자들 가운데 그런 사람들이 더 많았다) 이방 여자들을 아내로 맞아들여 이방인들과 인척관계가 되었다는 보고가 전달된 것이다. 다음을 관찰하라. I.그들이 범한 죄는 무엇이었나. 그것은 그 땅의 백성들과 혼합된 것이었다(2). 그들은 가나안 백성들과 더불어 교역과 교제를 하며 친밀하게 지냈을뿐만 아니라 그들의 딸들을 취하여 자기 아들들과 혼인하게 함으로써 그들과 인척관계를 맺었다. 우리는 그들이 가나안 백성들의 신들을 섬기지 않았으며, 포로의 쓰라린 경험을 통해 우상 숭배의 악습을 고쳤을 것이라고 희망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가증한 일을 행했다고 언급되는 것은 사실이다(1). 그러나 패트릭 주교가 말하는 것처럼, 여기에서 그것은 단지 이방인들처럼 아무 나라 사람들하고나 함부로 혼인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뿐이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1.그들은 이방인들과 혼합되지 말 것을 명하는 하나님의 단호한 명령을 불순종했다(7:3,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2.그들은 자신들의 독특성의 면류관을 더럽히고 스스로를 이방인들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3.그들은 자신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불신하고 자신들의 힘과 유익을 위해 이방인들과 연합하는 육신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우리가 스스로를 돕기 위해 유치한 편법을 사용할 때, 그 기저에 하나님의 충족성에 대한 실제적인 불신앙이 깔려 있다. 4.그들은 그들과 그들의 자손들을 또다시 우상 숭배의 위험 속에 노출시키고 말았다. 그것은 그들의 교회와 나라를 파멸로 이끌었던 바로 그 죄가 아닌가! .이러한 죄를 범한 자들은 누구였다. 이러한 죄를 범한 자는 하나님의 율법을 잘 알지 못하는 일부 몰지각한 백성들만이 아니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도 그와 같은 죄를 범했다. 그들은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직분을 맡은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그와 같은 율법을 불순종한 것은 더 큰 죄가 아닐 수 없었다. 다른 지파와 결혼하는 것도 자기 지파의 수를 줄게 만드는 것이므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행해지지 않았다. 하물며 가나안 사람들이나 헷 사람들이나 여타 이방인들과 혼인하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스스로를 욕되게 하는 일이었다. 그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으로서의 최소한의 자긍심만 있었더라도 이와 같은 죄는 결코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이러한 악행을 막아야 할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2). 만일 방백들이 어떤 죄를 범하면, 그는 가장 으뜸이 되는 범죄자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본을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악한 길을 따른지라. 이와 같이 타락한 지도자들을 갖고 있는 백성은 얼마나 불쌍한가! .이러한 보고를 전달한 자들은 누구였나. 그 일은 가장 적합한 사람들에 의해 보고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순전함과 위엄을 지키고 있던 방백들이었다. 만일 그들이 이러한 죄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면, 그들은 이러한 보고를 결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그 일은 그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에게 보고되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율법에 능숙한 서기관으로서 그들과 더불어 쟁론할 수 있었으며, 또한 왕의 전권을 위임받은 자로서 그들에게 실제적인 힘을 행사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들 방백들은 수 차례 이러한 악행을 바로잡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이제 에스라의 지혜와 권세와 영향력으로 인해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그에게 나아왔을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대중적인 폐해를 바로잡을 수 없는 자들이라도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보고함으로써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다.


2.에스라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과 통혼한 사실에 대한] 방백들의 보고를 들은 후에 속옷[내복이 아니고 겉옷 바로 안에 입는 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너무도 놀란 채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두려워 떠는 자[에스라와 동일한 심정을 가진 자]들이 모두 에스라에게로 몰려들었습니다. 여기 방백들의 보고에 대하여 에스라가 보인 반응과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두려워 떠는 자들이 보인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그들의 반응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9:3-4, 13:25, 66:2)

  )매튜헨리주석-IV.이러한 보고에 대한 에스라의 반응은 어떠했나. 그는 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아 있었다(3). 1.에스라에게 있어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큰 모독이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백성들이 이와 같이 하나님의 율법을 전면적으로 위반하고 하나님의 은총에 대해 이토록 배은망덕한 보답을 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 너무도 슬프고 괴로운 일이었다. 2.에스라에게 있어 그것은 백성들이 스스로 재앙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그가 보기에 그들은 지금 하나님의 진노가 격발될 위험 아래 놓여 있었다. 여기에서 다음의 사실들을 관찰하라. (1)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도 슬퍼해야 한다는 사실. 또 사람들에 의해 하나님의 영광이 침해당할 때에도 우리는 마땅히 슬퍼해야 한다. (2)죄로 인한 슬픔은 마땅히 큰 슬픔이어야 한다는 사실. 에스라도 이와 같이 독자나 장자를 잃은 것처럼 크게 슬퍼했다. (3)이런 악행을 들을 때 우리는 놀랄 수밖에 없다는 사실.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해 모순된 행동을 하며 스스로에게 수치를 가하며 파멸에 이르는 것을 볼때, 우리가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스스로 이토록 모순되고 분별없이 행동하는 것은 참으로 놀랄 일이다. 정직한 자들은 이런 것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V.에스라의 슬픔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나. 우리는 그가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 스스로를 겸비케 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것은 그곳이야말로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어 달라고 간구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가까이 있던 모든 경건한 자들이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그들에게 모이라는 지시가 내려지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그들은 자발적으로 모인 것으로 보인다(4). 여기에서 다음의 사실들을 관찰하라. 1.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것은 선한 자들의 특성이라는 사실. 그들은 하나님의 훈계의 권위와 경고의 준엄함 앞에 두려워 떤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돌보실 것이다(66:2,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2.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들은 사람들의 죄로 인해 떨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율법이 깨어지고 그와 함께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3.의인 한 사람의 경건한 열정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자극을 받고 각성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 바울 사도도 다른 경우에서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고후9:2, 과연 너희의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분발하게 하였느니라). 스스로 선한 일을 주도할 용기와 재능과 열정은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이 이끌 때 기꺼이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은 많이 있는 법이다. 4.모든 선한 백성은 하나님의 편에 서서 악을 대적하는 자들을 따라야 한다는 사실. 우리는 그러한 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손을 강하게 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


3.에스라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들고 회개 기도를 하면서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워 낯이 뜨뜻하여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우리의 열조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을 열방 왕들의 손에 붙이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 같으니이다...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일을 행하는 족속들과 연혼하오리이까 그리하오면 주께서 어찌 진노하사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하시기 아니하시리이까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롭도소이다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인하여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 에스라의 회개 기도에 담겨 있는 핵심적인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해 보십시오. 그리고 이 회개 기도가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9:5-15, 32:6, 12:1-2)

  )매튜헨리주석-에스라가 기가 막혀 앉아 있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을지에 대해 우리는 그가 입을 열었을 때 나온 말로부터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그는 하늘을 향해 매우 애처롭게 토로한다. 다음을 관찰하라. I.그가 이와 같은 기도를 드린 시간, 그 때는 저녁 제사드릴 때였다(5).이 시간은 경건한 백성들이 성전 뜰에 와서 제사를 드리면서 그와 함께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곤 하던 시간이었다. 에스라가 이 시간을 택한 것은 거기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백성들의 죄를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그러한 죄를 잘 알지 못하고 있었거나 아니면 크게 개의치 않고 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기도가 설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제사 특별히 저녁 제사는 우리의 위대한 대속제물이신 하나님의 어린 양의 모형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죄를 도말하기 위해 세상의 저녁()에 자신을 제물로 드렸기 때문이었다. 우리는에스라가 믿음의 눈으로 이것을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 참회의 기도를 올렸을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를테면 그는 그 위대한 희생제물을 바라보며 기도한 것이었다. 그리고 필경 에스라는 얼마 전 가브리엘 천사가 저녁 제사 때에 다니엘에게 전해준 메시야와 관련한 메시지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9:21,24). 어쩌면 그가 이 시간을 택한 것은 그것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기도를 드리기 위한 준비. 1.그는 근심 중에 일어나 모든 슬픔의 짐을 떨어버렸다.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올려드림에 있어 꼭 필요한 일이었다. 그는 기가 막힌 상태에서 돌이켜 마음의 모든 동요를 잠잠케 한 후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준비를 갖췄다. 2.그는 무릎을 꿇었다. 그것은 참회자로서 긍휼을 구하는 겸비한 태도이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백성들을 위한 중보자로 나타내는 것이었다. 3.그는 손을 들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에스라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간절성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긍휼의 응답을 받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마음을 나타냈다. 여기에서 그는 하나님을 여호와로서, 자신의 하나님으로서, 그리고 권능과 은혜의 하나님으로서 바라보았다. .그가 고한 언사의 내용. 이것은 기도로 일컬어지기에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여기에 무엇을 구하는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넓은 의미로 말할 때 기도는 우리의 신앙적이며 경건한 감정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에스라가 나타내고 있는 감정은 매우 신앙적이며 경건한 것이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죄가 아니라 백성들의 죄를고백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이스라엘의 선을 위한 진지한 열망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참된 회개에 대한 생생한 그림을 보게 된다. 다음을 주목하라. 1.죄에 대한 고백, 에스라는 스스로를 겸비케 하면서 지금 백성들 가운데 만연한 죄가 얼마나 크고 악한 것인지를 고백한다. 그 자신은 이러한 죄로부터 완전히 깨끗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스로를 범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간주했는데(6,우리 죄악이 많고 우리 허물이 커서), 그것은 그가 공동체의 한 지체였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는 지금 예전에 형제들이 바벨론을 떠날 때 함께 동참하지 않고 오랫동안 그곳에 그냥 머물러 있었던 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회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이 행한 범죄로 인해 애통해하는 가운데 그것을 계기로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 설령 비슷한 수준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 역시도 어떤 잘못을 범한 것이 있음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에스라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 범죄했노라고 고백한다. (1)에스라는 자신들의 죄가 너무나 크다는 사실을 시인한다. “우리 죄악이많아 정수리에 넘치나이다(6). 마치 깊은 물처럼 우리가 그 안에서 멸망을 당하려 하나이다.” 그 죄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 편만한 죄였으며, 그 결과는 너무도 파괴적이며 두려운 것이었다. “또 우리의 허물은 너무나 커서 하늘까지 닿았으며, 마치 소돔의 죄처럼 너무도 파렴치하며 하나님을 격노케 할 만한 것이나이다. 그것이 하늘에 보응을 부르짖나이다.” 그러나 설령 그들의 죄가 하늘까지 이른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다(36:5).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치리라. (2)그들의 죄는 오랫동안 계속되었다(7): 우리 조상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의 죄가 심하매. 에스라는 조상들의 악한 모범이 자신들의 허물을 가려주는 변명거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들의 허물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조상들의 허물을 통해 경고를 받고 똑같은 돌에 걸려 넘어지지 말았어야 했나이다. 타락의 정도는 점점 더 심해지고 그 뿌리는 점점 더 깊어졌나이다. 이제 우리는 죄의 분량이 거의 채워지지 않았는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나이다.” (3)그들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칼에 넘겨지며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나이다(7).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워지지도 않고 고쳐지지도 않았나이다. 우리가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음을 받았을지라도 우리의 미련은 벗겨지지 않았나이다(27:22).” (4)하나님이 최근에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가 그들의 죄를 더욱 가중시켰다. 에스라는 특별히 이것을 크게 강조한다(8,9). 다음을 관찰하라. [1]은혜를 입은 기간. 그것은 잠시 동안이었다. 다시 말해서 지금은 자유를 얻고 난 후 얼마 안 된 때였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할 때 그들의 죄는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풀무불 속에 있었으며 언제 또다시 그런 상태로 되돌아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방심할 수 있었단 말인가? [2]은혜의 근원.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바사 왕들은 단지 도구에 불과했다. 에스라는 이 모든 것을 아무 공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베푸신 하나님의 값없이 주신 은혜로 돌린다. [3]하나님이 그들에게 연속적으로 은혜를 베푸심. 그들은 종의 굴레 속에서 버려짐을 당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바벨론에서조차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증표를 받았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었으며, 많은 무리 가운데 소수였으며, 원수들의 손에서 겨우 빠져나온 자들이었다. 그리고 특별히 하나님은 그들을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 같게 하셨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인도하셨다(9).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굳건하게 세웠으며 정해진 규례대로 성전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큰 위로와 축복으로 여겨야 한다. 성전을 떠나지 않았던 안나처럼, 하나님의 전에 거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은혜 가운데 거하는 백성은 성전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이 곳은 나의 영원한 안식처라. [4]이 모든 것의 결과. 하나님이 그들에게 베푸신 은혜는 그들의 눈을 밝게 했으며 그들의 마음을 소생시켰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그들에게 너무도 큰 위로였다. 더욱 그러했던 것은 특별히 그것이 멍에 가운데 빠져 있을 때 베풀어졌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들에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비록 조금 소생하는 것이었다 할지라도(8) 그들이 그러한 은혜를 입을 아무 자격도 없었음과 이것이 더 큰 일의 보증이었음을 생각할 때, 그것은 너무도 큰 은총이었다. 에스라는 말한다. “우리에게 이토록 큰 은총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또다시 범죄하는 것은 얼마나 배은망덕한 일인가! 우리가 이제 막 특별한 은총으로 이방나라들로부터 건짐을 받았는데 또다시 죄 가운데 그들과 혼합되는 것은 얼마나 악한 일인가! 이제는 선한 행실로 그러한 은총을 지속시켜야 할 마당에 또다시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5) 그것이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을 거스르는 것이라는 사실이 그들의 죄를 더욱 가중시켰다: 우리가 주의 계명을 저버렸사오니(10). 할례 받지 않은 자들과 혼인하지 않는 것은 야곱의 집의 오랜 율법이었다(34:14). 그러나 그것 외에도 하나님은 그것을 엄히 금하셨다. 에스라는 그러한 명령을 여기에서 다시 술회한다(11,12). 죄는 그것을 금하는 율법과 비교할 때 그 죄됨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어떻게 이보다 더 분명할 수 있겠는가: 너희 여자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그들의 딸들을 너희 아들들을 위하여 데려오지 말라. 이어 그 이유가 나타나는데, 만일 이방나라들과 혼합되면 그들 자신이 더러워질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방은 부정한 땅이요 그들은 거룩한 백성이었다. 반면 그들이 스스로를 이방나라들과 구별시키면, 그것이 그들의 존귀와 안전이 될 것이며 그들의 형통을 영속화시킬 것이었다. 이와 같이 그 명령은 그들에게 있어 가장 근본적인 것이며 또 분명한 이유를 갖고 있는 명령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분명한 명령을 위반할 때,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을 격노케 하는 것이 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6)하나님은 그들이 범한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셨다(13). 따라서 에스라는 여전히 자신들이 빚진 상태에 있다고 여겼다. “우리가 또 다시 빚을 더한단 말인가? 하나님이 그토록 우리를 온유하게 다루셨거늘 우리가 이와 같이 그분의 은총을 배반하고 그분의 은혜를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 것이란 말인가?” 하나님은 시온의 포로와 관련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40:2). 그러나 에스라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비록 형벌이 컸을지라도 그것은 자신들이 마땅히 받았어야 할 분량보다 훨씬 적었다고 고백했다. 2.죄를 고백함에 있어서의 그의 감정. (1)죄에 대해 말하면서 에스라는 크게 부끄러워한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6). 다음을 관찰하라. [1]죄는 부끄러운 것이다. 우리의 첫 조상들이 금지된 열매를 먹었을 때 그들은 스스로 부끄러워했다. [2]거룩한 슬픔처럼, 거룩한 부끄러움 역시 참되며 정직한 회개에 있어 꼭 필요한 요소이다. [3]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죄를 우리의 부끄러움으로 여기며, 스스로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자들을 위해 부끄러워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와 관련을 맺고 있는 자들이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며 스스로 어리석음 가운데 있을 때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스스로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고후7:11). [4]회개하는 죄인들이 하나님을 향해 얼굴을 들 때 부끄러워하며 낯이 뜨거워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어떤 악을 행하면 이로 인해 우리 자신의 자긍심이 손상을 입게 되는데, 이런 상태에서 사람의 얼굴을 대할 때 우리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하물며 이런 상태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면 얼마나 더 부끄럽게 되겠는가? 세리는 기도하기 위해 성전에 갔을 때 훨씬 더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18:13). [5]하나님을 우리 하나님으로 바라보는 것은 우리의 회개를 더욱 효과적으로 만든다. 에스라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부른다.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있음을 기억할 때, 우리는 더욱 겸비하며 죄에 대해 더욱 애통해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죄는 그분의 계명뿐만 아니라 언약까지도 깨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하나님과 언약관계에 있음을 기억할 때, 우리는 회개하면 용서받을 것이라는 소망을 갖게 될 것이다. “이 모든 죄에도불구하고 여기에 나의 하나님이 계시도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백성들은 모든 죄에도 불구하고 언약 밖으로 쫓겨나지 않는다. (2)죄에 대해 말하면서 에스라는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한다(10): 이제 우리가 무슨 말씀을 하오리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하나이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돕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멸망을 당할 것이나이다.” 자신의 죄책을 발견할 때 우리는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악한 것인가 하는 것을 더 깊이 깨닫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 처한 상황이 너무나 어려운 때였기 때문에 에스라는 더욱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다. 우리가 어떻게 우리 스스로를 회복시킬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과 화목해야 하는가? [1]참된 회개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았노라거나 혹은 하나님이 회개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것인가? 만일 그렇게 말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속이며 진리가 우리 안에 있지 않은 것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참으소서 우리가 우리 죄를 위하여 천천의 수양과 맏아들로 갚겠나이다라고 말할 것인가? 하나님은 이와 같이 경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갚을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쩔 수 없으니 될 대로 되라고 말할 것인가? 이것은 우리를 더 큰 악으로 이끌 뿐이다. [2]참된 회개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숙고하며 하나님께 가르쳐 달라고 간구할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다음과 같이 말하라.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어리석었나이다. 하나님이여 죄인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호세아 142절을 보라(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3)죄에 대해 말하면서 에스라는 크게 두려워한다(13,14). “하나님이 우리를 돌이키기 위해 보내신 모든 심판들과 우리를 위해 행하신 모든 구원 후에 만일 우리가 또다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불순종의 자녀들과 통혼하며 그들의 악한 길을 따른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 외에 달리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나이까? 그러면 우리가 멸망을 당하고 피할 자가 없게 되지 않겠나이까?” 어떤 백성이 멸망에 떨어지는 징조에 있어 큰 심판과 큰 구원을 받고 난 후 똑같은 죄에 다시 빠지는 것보다 더 확실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들은 마치 풀무불에 살라진 납처럼 아무 쓸데 없어 버려지기에 합당하게 될 것이다(6:29). (4)죄에 대해 말하면서 에스라는 하나님의 의를 직시한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면서 모든 일을 진리대로 판단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기로 결심한다(15). “주는 의로우시며 지혜로우시며 공정하시며 선하시나이다. 주는 우리에게 악을 행하지도 않으실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가혹하지도 않으실 것이나이다. 그러므로 보소서 우리가 주 앞에 있사오며 주의 발 아래 엎드려 주의 심판을 기다리나이다. 우리는 우리의 의를 주장하며 주 앞에 설 수 없사오며, 아무 변명도 할 수 없나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 가운데 주 앞에 엎드리며 주의 긍휼 위에 우리 스스로를 던지나이다.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신 대로 우리에게 행하소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말하며 행할 것이 있겠는가? 다만 심판하실 자 앞에 겸손히 간구할 뿐이다.” 이와 같이 에스라는 자신의 슬픔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모든 것을 그분께 맡겼다.


*참고성경구절

7:3-4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찌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고후6:14-16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베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13:25 내가 책망하고 저주하며 두어 사람을 때리고 그 머리털을 뽑고 이르되 너희는 너희 딸들로 저희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이나 너희를 위하여 저희 딸을 데려오지 않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 하고

66: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32:6 우매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

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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