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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BS_Joshua_여호수아 제11과

공부할 내용: 여호수아 5장 13절 - 6장 5절

본문

202310월 8(주일) 오후 4 줌zoom 그룹성경공부


1.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갔을 때에 눈을 들어 보니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그에게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라고 질문하였습니다. 그는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고 답하였습니다. 그때 여호수아는 땅에 엎드려 절하면서 그에게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라고 말하였고,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여기 여호와의 군대 장관은 누구입니까? 왜 그가 여호수아에게 왔습니까? 여호와의 군대 장관의 손에 들려진 칼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5:13-15, 6:2, 19:16, 60:4)

  )매튜헨리주석-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종종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음을 보았지만, 그러나 그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는 말씀은 듣지 못했다. 이제 여호수아가 직면하는 어려움이 커짐과 함께 그에 비례해서 하나님의 격려도 또한 커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다음을 관찰하라. I.여호수아가 이상(vision)을 본 때. 그것은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지킨 직후였다. 그 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당신을 알리셨다.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를 다하고 거룩한 규례들을 지키는데 부지런하고 진지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여호수아가 이상을 본 장소. 그 곳은 여리고 근방’(by Jericho)이었다. 그러나 문자대로 한다면 여리고 안’(in Jericho)이다. 여기에는 믿음과 소망이 담겨 있다. 왜냐하면 아직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포위하기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생각과 기대에 잠겨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여리고 성에서 아주 가까운 여리고 들판이었을 것이다. 지금 여호수아는 혼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위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보호를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들은 여호수아가 거기에서 묵상과 기도를 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몰두해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종종 자신을 나타내신다. 어쩌면 그는 거기에서 성벽을 면밀히 관찰하고 공격할 방법을 찾기 위해 그 도성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하나님께서 오셔서 지시하실 때 어떻게 다가갈 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을 수도있다.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신다는 사실을 유념하라. 하나님이 총사령관으로서 자신을 나타내셨을 때, 여호수아는 장군으로서 자기 위치에 있었다. .신적 현현 그 자체, 여호수아는 깊은 상념에 사로잡힌 사람이 대개 그러하듯이 자세는 아래로 향해 있고 눈은 땅에 고정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는 자기 앞에 조금 떨어진 곳에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 일로 여호수아는 눈을 들었고, 상념의 상태에서 각성의 상태로 전환되었다(13). 여기에 등장한 존재는 여호수아에게 사람으로서, 그러나 주목할 만한 매우 특별한 사람으로서 나타났다. 1.이 사람을 인간의 본질을 취하시기 이전에 종종 인간의 모양으로 나타나 신 영원한 말씀이신 하나님의 아들로 보는 것에는 상당한 근거가 있다. 패트릭 주교(bishop Patrick) 역시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것은 교부들의 해석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그에게 신적인 존영을 돌렸고, 그는 기꺼이 받았다. 만일 그가 단지 피조된 천사에 불과했다면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또 여호와로 불려진다(6:2) 2.그는 여기에서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있는 한 사람의 군인으로 나타났다. 장막에 있던 아브라함에게는 여행자로 나타났으며, 전장에 있던 여호수아에게는 전쟁의 사람으로 나타났다.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들에게 그들의 믿음이 기대하고 열망하는 모양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칼을 뽑아 드셨는데, 그것은 (1)여호수아가 이제 곧 돌입하게 될 전쟁을 정당화하고 그 전쟁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에게 살육을 명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다. 주권자가 칼을 뽑아 드셨다면, 이것은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며 자기 수하에게 그 일을 수행할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제 칼은 뽑혔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깃발을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그것을 달게(60:4) 하신 것이다. (2) 여호수아를 격려하여 용감하게 전쟁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손에 들려진 칼은, 그분이 자신을 힘입어 용맹하게 싸울 자기 백성들을 보호하고 구원하는 일에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의 칼은 모든 방향으로 향한다. IV.여호수아가 다가가서 던진 대담한 질문. 그는 종을 보내지 않고 자신이 다가가서 물었다.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이것은 여호수아가, 그가 만일 이스라엘의 편이라면 기꺼이 환대할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 반대로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존재라면 그와 더불어 단호히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것이 보여주는 바는 다음과 같다. 1.여호수아의 큰 용기와 결단, 여호수아는 그의 갑작스런 출현으로 인해 혼란에 빠지지 않았으며, 그의 표정에 분명하게 나타났을 위엄과 용맹함으로 인해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여호수아는 위대한 장군의 기백을 잃지 않고 그에게 이와 같은 단호한 질문을 던졌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할 것을 명령하셨는데, 이로써 그가 과연 그러했음이 드러났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말씀으로 요구한 것을 은혜로 말미암아 그들 가운데 이루어 나가신다. 2.이스라엘의 이해관계에 대한 여호수아의 큰 관심. 여호수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을 위한 일에 전념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사람의 얼굴로는 그와 맞설 수 없었다. 여호수아는 그가 친구인지 적인지 금방 알아낼 것이다. 여호수아는 그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멸시하며 다가왔던 골리앗 같은 적으로 의심했던 것 같다. 이와 같이 우리도 종종 우리를 위하는 자를 대적하는 자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여호수아의 질문은 이스라엘과 가나안, 그리고 그리스도와 바알세불의 이해관계 사이에 중립지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11:23). V.그의 대답(14). “아니다. 너희의 적이 아니다.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내가 온 것은 너희를 위한 친구로서 뿐 아니라 네 위에 '최고 지휘자'로서니라.” 창세기 32:2에 마하나임 즉 두 군대(hosts)가 언급되어 있다. 두 군대는 이제 가나안 족속들과 전쟁에 돌입하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군대와 그들을 보호하는 천사들의 군대이다. 그는 양자의 대장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군대를 지휘하고 또 그들을 돕도록 천사들의 군대에게 명령을 내린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구원의 대장(2:10)으로 또 백성의 인도자와 명령자(55:4)로 불려지는 것은 아마도 이와 연관된 것일 것이다. 이러한 대장을 모시고 있는 자들은 승리할 수밖에 없다. 이제 그가 대장으로서 군대를 시찰하고 사기를 북돋우며 여리고 함락을 위해 필요한 명령을 하달하기 위해 오셨다. VI.여호수아가 그에게 큰 경의를 표함. 여호수아는 그의 말과 몇 가지 암시들을 통하여 그가 단지 한 사람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신적 인격(divineperson)임을 인지했던 것 같다. 1.여호수아는 그에게 신하의 예를 표한다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여호수아 자신이 이스라엘 군대의 장군이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지금 이 사람에 대하여 어떤 질투심 같은 것도 갖지 않는다. 이 사람은 이제 여호수아 위에 서서 이스라엘 군대의 대장으로 명령을 내릴 것인데도 말이다. 여호수아는 그의 주장을 논박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그를 자신의 상관으로 기꺼이 승복하며 받아들인다. 하나님께 대하여 겸손하고 공손한 태도를 갖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것이다. 2. 여호수아는 그로부터 명령과 지시를 구한다: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앞의 질문(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이 더 담대하고 군인다운 것이라면, 이 질문(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은 좀 더 경건하고 성도다운 것이다. 여호수아가 하나님과 관련하여이토록 겸비한 것으로 인해 그의 위대성이 결코 축소되지 않는다. 왕관을 쓴머리조차도 만왕의 왕이신 주 예수의 보좌 앞에 무릎꿇지 않을 수 없다(2:10,11; 72:10,11; 19:16). 다음을 주목하라. (1)여호수아와 그리스도의 관계. 그리스도는 여호수아의 주이시며, 여호수아는 그리스도의 명령 아래 있는 종이다. 그리스도는 여호수아의 대장이시며, 여호수아는 그리스도 아래서 명령받은 대로 움직이는 군사다(8:9). 주께서 열납하실 만한 순종은 우리 자신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진지하게 헌신하는 기초 위에 세워진다(16:2). (2)여호수아의 질문은 위와 같은 관계의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다. 내 주여무엇을 말씀하려 하시나이까? 이 질문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뜻을 알고자 하는 진지한 열망과 그것을 행하고자 하는 확고한 결의를 엿볼 수 있다. 여호수아는 스스로를 하위의 장군으로 여겼고 기꺼이 명령을 받고자 했다. 여호수아의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그가 지금 서 있는 위치에 가장 합당한 자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순종하는 법을 아는 자가 명령하는 법을 가장 잘 안다.

 

2.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고 말씀하였는데, 이러한 말씀이 오늘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5:15, 3:5, 12:28-29)

  )매튜헨리주석-VII.이 신적 존재가 여호수아에게 요구한 경의의 표현(15).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이것은 경의와 존경의 증표였다(오늘날 우리들이 모자를 벗는 것과 비슷하다). 또한 이것은 신적 임재를 인정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그 장소를 성별하고 존귀하게 하는 방식으로 행해졌다. 우리 역시도 대단히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에 대하여 그가 밟은 땅을 소중하게 생각하곤 한다. 이와 같이 여호수아는 이러한 신적 존재에 대하여 경의를 보여야 했고, 그가 서 있는 땅을 자신의 더러운 신으로 밟아서는 안 되었다.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5:1). 우리가 엄숙한 규례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마다 우리는 내적인 경의, 즉 하나님께 대한 경건한 두려움을 외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패트릭(bishop Patrick)은 여기의 명령이 하나님께서 떨기나무에서 모세에게 주셨던 명령과 동일한 사실에 주목한다(3:5). 그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건져내게 하기 위해 모세를 부르고 계셨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얼마 전에 여호수아에게 준 약속,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으리라는 약속을 다시 한 번 확증하고 계신다. 모세가 그와 같은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했을 때 땅을 성별한 것처럼, 여호수아 또한 그렇게 하고 있는것이다. 이렇게 하여 여호수아는 이 신적 존재로부터 여리고 함락과 관련한 지시를 받을 준비를 갖추었다. 여호와의 군대 대장은 이제 이스라엘에게 여리고를 소유로 줄 것이다.

 

3.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하여 여리고 성은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칠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은 양각 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찌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여기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하나님께서 제시해 준 방식은 어떠한 군사적 준비도 없이 단지 성을 돌고 난 후에 모두가 함께 큰 소리로 외치는 것뿐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방식을 명령하셨는지 그 이유들을 몇 가지로 말해 보고,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들이 무엇인지를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6:1-5, 21:13, 11:33-34, 3:22)

  )매튜헨리주석-하나님과 여리고 사람들 사이에 승부가 벌어진다. 하나님은 여리고를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기로 결의하셨고, 여리고 사람들은 결사적으로 그것을 막기로 결의하였다. 누구의 결의가 이길 것인지를 예상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I.여리고는 이스라엘이 자기 주인이 되지 못하도록 결의했다(1). 여리고는 이스라엘 자녀들로 인하여 굳게 닫혔다. 여리고는 굳게 닫았고 또 굳게 닫혔다(난외주에는 이렇게 되어 있음). 여리고는 기술적으로나 자연적으로 견고하게 요새화됨으로써 스스로를 굳게 닫았다. 또 여리고는 그 주민들의 강고한 결의로서 굳게 닫혔다. 그들은 결코 항복하지도 협상하지도 않기로 합의했다. 아무도 도망나오지 않았다. 또 누구도 강화협상을 추진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그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이 얼이 빠져 있었고, 그들의 마음은 스스로 멸망을 향하여 굳어져 있었다. 그들은 전능자에게 힘을 과시하는 비극적인 사례가 되었다(15:25). II.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그들의 주인이 될 것을 결정하셨다. 여기서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와로 불려지고 있는데, 그는 여리고가 대단히 요새화 되어 있으며 엄중하게 방비되고 있음을 주목하면서, 또 여호수아의 생각과 염려, 특히 문지방에서 걸려 넘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내다보면서, 여기에서 그에게 승리에 대한 모든 확증을 주고 있다(2).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노라. 내가 그 일을 하리라. 아니, 내가 이미 그 일을 하였느니라. 그것은 모두 너의 것이다. 그것은 이미 네 소유가 된 것만큼이나 확실하다. 가나안의 첫 열매인 여리고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봉헌될 것으로 작정되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를 포함하여 어떤 이스라엘 백성도 이 성읍에서 티끌만한 것도 취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여기에서 네 손에 넘겨주었다고 언급되고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섬기는 일에 사용할 준비를 해야 한다. 1.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리고를 무너뜨릴 방법을 지시한다. 참호를 파는 것도 아니었고, 포대를 설치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파성퇴(성을 부수는 도구)를 만들라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군사적 준비도 없었다. 단지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6일 동안 하루에 한 바퀴씩 돌고 일곱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라는 것이었다. 제사장 뒤를 군사들이 조용히 따르고, 제사장들은 성을 도는 동안 양각 나팔을 불도록 하였다(3,4). 이것이 전부였다. 2.여호와의 군대 대장은 일곱째 날 밤이 오기 전에 이스라엘이 이 성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확언한다. 신호에 따라 이스라엘은 모두 함성을 질러야 하며, 즉시로 성벽은 무너질 것이다. 이것으로 여리고의 주민들은 그대로 노출될 것이며, 혼비백산하여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할 것이다(5),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방식을 명령하신 이유는 다음과 같다. (1)하나님 자신의 권능을 드러내기 위함. 그럼으로써 무력의 힘으로가 아니라 당신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시기 위함이다(21:13). 여기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전능하신 팔을 드러내시는데, 이는 이스라엘을 격려하고 가나안을 공포와 혼란에 빠지게 하기 위함이었다. (2)하나님의 임재의 증표인 법궤를 존귀케 하기 위함. 그럼으로써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최고의 경의와 존경심으로 대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사울 왕 때에 하나님의 명령 없이 법궤가 진에 옮겨진 적이 있었다. 이것은 법궤를 모독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이에 대하여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삼상4:3). 그러나 지금은 이 일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행해지고 있고, 따라서 이 일은 하나님의 법궤를 존귀케 하는 일이며 이스라엘의 믿음을 견고케 하는 것이다. (3)제사장들을 영예롭게 하기 위함. 여기에서 제사장들은 법궤를 메고 나팔을 부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통상적으로 제사장은 전쟁에 나가는 것이 면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특권에 대하여 사람들이 불만을 가져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 그들은 대단히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았고, 이로써 백성들은 그들이 공공에 얼마나 큰 축복이 되며 그들에게 부여된 특권들을 가질 자격이 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4)백성들의 믿음과 순종 그리고 인내를 시험하기 위함. 이것은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어리석어 보이는 일이었으며 인간적인 가능성으로 볼 때는 실현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이 또한 적들의 조롱을 견디며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릴 수 있는지 여부가 시험의 대상이 되었다. 이와 같이 믿음으로 - 힘으로가 아니라 - 여리고 성벽은 무너졌다. (5)이스라엘 앞에 남아 있는 난관들과 관련하여 그들의 소망을 격려하기 위함. 가나안은 그 성읍들의 성벽이 하늘에 닿아서(1:28) 결코 정복될 수 없다고 했던 악한 정탐꾼들의 보고는 이로써 영원히 잠잠해질 것이다. 가장 강하고 높은 성벽들조차도 전능자에 대항하여 설 수 없다. 그들은 싸울 필요가 없었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싸우셨기 때문이다.


*참고성경구절

6: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19: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60:4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기를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셀라)

3:5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12:28-29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찌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21:13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칭송하겠나이다

11:33-34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22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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