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BS_2Kings_열왕기하 제25과
공부할 내용: 열왕기하 13장 1-21절
본문
2021년 8월 22일(주일) 오후 3시 30분 줌zoom그룹성경공부
1.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치리할 때에,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좇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를 발하사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 아들 벤하닷의 손에 붙이셨습니다. 그로 인하여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였습니다. 그때 여호아하스는 하나님께 기도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원자를 보내어 주셨습니다. 여호아하스가 악을 행하며 여로보암의 죄를 좇았는데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물리치지 않으시고, 그것을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왕하13:1-9, 레26:42, 시130:4)
답)매튜핸리주석-여호아하스의 17년간의 통치와 그 기간 동안의 이스라엘의 상태에 대한 본문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매우 교훈적인 두 가지 사실을 깨닫게 한다. I.이스라엘의 영광이 잿더미가 되어 마침내 수치로 변한 사실, 지금 이스라엘의 모습은 마땅히 되어져야 했던 모습과 얼마나 다른가! 이스라엘의 왕관은 더러워졌고 이스라엘의 영광은 잿더미가 되었다. 1.영이시며 살아 계시며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섬겼던 것은 이스라엘의 영광이었다. 자신들의 하나님을 소의 형상으로 바꾸며 진리의 하나님을 거짓으로 바꿈으로써, 그들은 그러한 영광을 잃어버린 채 스스로를 손의 수공물을 섬겼던 열방들의 수준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우리는 여기에서 여호아하스가 여로보암의 죄를 따랐다는(2절) 사실과 백성들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고 그 안에서 따라 행했다는(6절) 사실을 발견한다.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부름 받은 백성들에게 이와 같은 두 마리의 금송아지 우상이 있었다는 사실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열 지파의 역사 전체를 통해 우리는 그 우상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전조차도 발견하지 못한다. 어느 왕이 다스리는 시대이든 금송아지들은 여전히 그들의 신이었으며, 그들은 그러한 수치로부터 빠져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2.하늘의 특별한 보호 아래 있었던 것 역시 이스라엘의 영광이었다.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방벽이요, 도움의 방패요, 그들을 지키는 칼이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그들이 이러한 영광을 잃어버린 채 모든 열방으로부터 모욕을 당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로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시켰으며, 그럼으로써 하나님은 그들을 하사엘과 벤하닷의 손에 넘기셨고(3절) 하사엘은 이스라엘을 학대했다(22절). 이스라엘처럼 이웃 나라들에 의해 찢기고 상한 나라는 분명 어디에도 없었다. 죄로써 그들은 이것을 스스로 불러들였다. 그들이 하나님을 격발시켜 그들의 울타리를 뽑아 버리도록 만들었을 때, 그들의 아름다운 땅은 이웃나라들을 유혹하여 그들의 소산을 약탈하게 만들었다. 여호아하스 시대에 이스라엘은 아람 사람들의 약탈과 학대로 극도로 쇠약해졌다. 그 때 이스라엘에게 남아있는 병력은 고작 마병 오십 명과 병거 열 대와 보병 만 명뿐이었다(7절). 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군대인가! 수많은 이스라엘 군대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고? 어쩌다가 황금이 빛을 잃게 되었는고? 나라가 타락하면 필경 힘을 잃고 쇠락하게 될 것이다. Ⅱ.이러한 잿더미 속에 옛 영광의 불씨들이 남아 있었던 사실 이러한 모든 불화에도 불구하고 이 백성은 여전히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며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완전히 잊혀진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1.기도하는 백성이라는 것이 이스라엘의 옛 영광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러한 영광이 어느 정도 살아 있는 것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왕 여호아하스가 곤경 속에서 여호와께 간구하며(4절) 도움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그는 금송아지들에게가 아니라 여호와께 도움을 호소했다. 왕이 하나님의문전에서 구걸하는 자가 되었으며, 사람들 가운데 가장 큰 자가 하나님의 보좌의 발등상에서 탄원하는 자가 되었다. 왕이라도 필요할 때는 어쩔 수 없는 법이다. 2.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가까이 하시는(신4:7) 것 역시 이스라엘의 옛 영광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하나님은 또다시 그렇게 하셨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가증한 것으로 여기시고 물리치실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백성들을 위해 그의 기도를 들으셨으며(4절), 이스라엘에게 구원자를 주셨다(5절). 그 구원자는 여호아하스 자신이 아니라 그의 아들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시대에는 하사엘이 항상 이스라엘을 학대했기 때문이다(22절).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심으로써 그의 아들은 아람에 대해 승리를거두고 아버지가 빼앗겼던 성읍들을 되찾게 되었다(25절). 여호아하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이와 같은 응답은 여호아하스 자신으로 인한 것도 아니었으며 그의 패역한 백성들로 인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기억하셨기 때문이었다(23절).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고 그 땅을 기억하리라(레26:42), 하나님이 은총을 베푸시는데 얼마나 신속하신지 보라. 또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심에 있어 얼마나 준비되어 있으신지, 그리고 은혜를 베푸시기를 얼마나 원하시는지 보라. 그렇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되돌아보지 않으셨을 것이다. 이것을 생각하며 우리가 더욱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을 굳게 붙잡자. 설령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라 할지라도 돌이켜 회개하도록 우리가 격려하고 권면하자.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하게 하심이니이다(시 130:4).
2.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었을 때에, 요아스 왕이 찾아와서 눈물을 흘리면서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말하였습니다. 엘리사는 왕에게 “활과 살을 취하소서”라고 말하자 왕은 그대로 하였습니다. 또 엘리사가 왕에게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라고 말하자 왕은 그대로 하였습니다. 또 엘리사가 왕에게 “동편 창을 여소서”라고 말하자 왕은 그대로 하였습니다. 또 엘리사가 왕에게 “쏘소서”라고 말하자 왕은 그대로 하였고, 엘리사는 그에게 “이는 여호와의 구원의 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진멸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또 엘리사가 왕에게 “살들을 취하소서”라고 말하자 왕은 그대로 하였습니다. 또 엘리사가 왕에게 “땅을 치소서”라고 말하였는데, 왕은 땅을 세 번만 치고 그쳤습니다. 엘리사는 노하여 “왕이 오륙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도록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왜 요아스 왕은 땅을 세 번만 쳤습니까?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하여 그는 충분한 것을 기대하였습니까? 이것이 우리들에게 주는 영적인 교훈은 무엇입니까? (왕하13:14-19, 시18:40, 엡3:20)
답)매튜핸리주석-Ⅱ.요아스가 엘리사를 방문함.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자 왕이 그를 찾아왔는데, 우리는 여기에서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1.엘리사가 병이 듦(14절). 여기에서 다음을 주목하라. (1)그는 오래 살았다. 그가 선지자로 처음 부름 받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60년 전의 일이었다. 그가 이토록 오랜 시간 계속해서 밝게 빛난 것은 이스라엘에게 그리고 특별히 선지자의 제자들에게 큰 축복이었다. 엘리야가 선지자로서 활동한 기간은 엘리사의 4분의 1에 불과했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분량만큼 사역하는 법이다. (2)예후가 기름 부음을 받은 때로부터 요아스가 왕이 될 때까지 45년간의 그의 후기 활동과 관련하여 우리는 아무런 이야기도 듣지 못한다. 다만 여기에서 그의 죽음 직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만 들을 수 있을 뿐이다.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젊은 시절만큼 그렇게 역동적이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활발하게 활동한 기간은 그의 생애 전체와 비교해 보면 그다지 긴 기간은 아니었다. 노인들은 뒤로 물러나는 것을 불평할 필요가 없다. 도리어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 (3)엘리야의 영이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엘리야처럼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지 않고 보통 사람들처럼 세상을 떠났다. 설령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어떤 은사나 은혜에 있어 부족할지라도, 만일 하나님이 그를 존귀케 하신다면 누가 그를 허물할 것인가? 하나님이 자기 것으로 자기 마음 대로하실 수 없겠는가? 2.왕이 엘리사를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애통함(14절), 이것은 그 안에 선한 것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였다. 그는 엘리사 선지자를 귀하게 여기며 그에게 좋은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는 엘리사 선지자를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로 여기면서 미워하며 핍박하는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그는 엘리사를 이스라엘의 최고의 축복으로 여기면서 사랑하고 존경했으며, 지금 그를 잃게 되는 것으로 인해 크게 애통해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는 않으면서도 신실한 사역자들에 대해서는 크게 존경하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여기에서 다음을 주목하라. (1)엘리사가 죽을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왕은 그의 마지막 가르침과 축복을 받고자 그에게 찾아왔다. 비록 왕이라 할지라도 이와 같이 하나님이 존귀케 하신 자를 존귀케 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선한 사역자들의 임종에 참예하는 것은 우리에게 큰 영적 유익이 된다. 왜냐하면 죽음의 자리에서조차 믿음으로 하늘의 위로를 누리는 것을 통해 도리어 우리 자신이 믿음의 큰 격려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2)엘리사가 매우 늙어 병들어 죽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은 그를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애통해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경우 노인 한 사람의 지혜가 젊은이 열 사람의 지혜보다 나을 때가 있다. (3)요아스는 엘리야가 떠날 때 엘리사가 애통했던 것과 똑같은 말로 엘리사의 떠남을 애통했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14절). 스승의 떠남에 대한 엘리사의 애통에 관해 요아스가 어느 정도 듣고 알았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앞 세대를 존경하고 존귀케 한 자는 뒷 세대로부터 똑같은 존경과 존귀를 받게 되는 법이다.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잠11:25). (4)요아스는 여기에서 자기중심적(selfish)이었다. 그는 엘리사를 잃는 것을 슬퍼했는데, 그것은 엘리사가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7절에서 살펴본 것처럼 당시 그들에게는 있었던 것은 마병 오십 명과 병거열 대가 전부였다.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 이렇게 부족했을 때, 왕으로서는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인 엘리사가 떠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선한 자들이 나라를 지키며 하나님의 심판을 막는데 얼마나 큰 공헌을 하는지를 아는 자들은 그들의 죽음을 한탄하지 않을 수 없는 법이다. 3.엘리사가 요아스 왕에게 승리의 확신을 줌. 엘리사는 왕에게 아람과 싸워 승리하게 될 것을 확증하면서, 용기를 갖고 전쟁에 임하라고 격려한다. 엘리사는 왕이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유가 그가 자신을 나라의 큰 방패로 여기면서 자신의 축복과 기도를 의지했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엘리사는 말한다. “왕이 슬퍼하는 원인이 바로 그것이라면 이제 왕은 염려하지 마소서. 나는 무덤에 있을지라도 왕은 아람에 대해 승리하실 것이나이다. 나는 죽으나 하나님은 필경 당신을 찾아오실 것이나이다. 하나님은 다른 선지자들을 일으키셔서 당신을 위해 기도하게 하실 것이나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떤 한 사람에게 매이지 않는다. 어떤 일꾼이 죽은 후에도 하나님의 일은 계속되는 법이다. 이어 엘리사는 왕에게 표적을 주기 위해 활과 화살을 잡으라고 명령한다(15절). 이것은 아람으로부터 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왕은 마땅히 전쟁을 각오하고 또 전쟁의 모든 수고와 위험을 기꺼이 감당할 것을 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그 일은 하나님이 하실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도구가 되어야 했다. 이제 그는 승리자가 될 것인데, 엘리사는 다음과 같이 지시함으로써 그에게 승리에 대한 분명한 증표를 주고자 했다. (1)아람을 향해 화살을 쏘라. 활을 다루는 방법에 있어 선지자보다도 왕이 훨씬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쏘는 화살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는 의미를 가져야만 했기 때문에 선지자가 왕에게 그와 같이 명령한 것이었다(화살을 잡으소서 - 창문을 여소서 - 쏘소서). 뿐만 아니라 활을 한 번도 당겨보지 못한 어린아이에게 그렇게 하는 것처럼 엘리사는 자신의 손을 왕의 손 위에 얹었는데, 그것은 아람과의 모든 싸움에 있어 왕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봐야 하며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결코 충분치 못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고 나갈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도다(시18:34,144:1). 젊은 왕의 힘센 손보다도 죽음을 눈앞에 둔 선지자의 떨리는 손이 그 활에다가 더 강력한 힘을 부여해 주었다. 아람 사람들은 요단 동편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다(10:33). 따라서 화살은 그쪽으로 겨누어졌으며,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었다. [1]왕으로 하여금 아람을 공격하라는 명령. [2]승리에 대한 약속, 그것은 여호와의 구원의 화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었다. 구원을 명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그 일을 행하고자 하시는데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구원의 화살은 하나님의 것이다. 그가 화살을 쏘면 일이 이루어진다(시18:14), “왕이 아람 사람을 멸절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아벡은 지금 아람 군대가 진을 치고 있는 곳이거나 아니면 전 병력이 집결해 있는 곳이었을 것이다. 이제 요아스는 자신과 자신의 나라를 압제하며 괴롭게 한 자들을 쳐서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었다. (2)화살들을 집어 땅을 쳐라(18,19절), 왕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람에 대한 승리를 확증해 준 후, 엘리사 선지자는 그가 이러한 승리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시험해 보고자 했다(다시 말해서 아합이 벤하닷에 대해 취했던 미온적인 태도와는 달리 더욱 강력한 열정으로 아람 군대를 밀어붙이는지 여부를 시험해 보고자 했다). 이것을 시험하기 위해 엘리사는 왕에게 화살들을 집어 땅을 치라고 명령했다. “여호와의 구원의 화살에 의해 그들이 땅에 엎드러져 당신의 발 앞에 무릎 꿇게 될 것을 믿으소서. 당신이 그들을 무찌르고 난 후 그들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내게 보이소서. 하나님이 다윗의 원수들을 다윗 앞에 엎드리게 하셨을 때 다윗이 그들을 바람 앞에 티끌 같이 부숴뜨렸던 것처럼 그렇게하실 것이나이까?”(시18:40,42). 그러나 왕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마땅히 보였어야 할 열심과 열정을 나타내지 못했다. 단지 땅을 세 번만 치고 말았을 뿐이었다. 어쩌면 그는 아람 사람들에 대한 어리석은 동정심으로 그렇게 했는지모른다. 그는 마치 그들이 다칠 것을 염려하는 것처럼 부드럽게 세 번 쳤을 뿐이었다. 그들은 자신과 자기 백성들에게 추호의 동정심도 갖지 않았던 자들이아니었던가? 그렇지 않으면 어쩌면 그는 화살들로 땅을 치는 것을 왕이 하기에는 너무나 하찮고 어린아이 같은 일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단지 선지자를 만족시키기 위한 하찮은 장난일 뿐이라면 세 번 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었다.그러나 그는 겉으로 드러난 동작을 경멸하는 가운데 그것이 의미하는 것까지잃어버리고 말았으며, 그로 인해 죽음을 앞둔 선지자에게 큰 슬픔을 안겨 주고말았다. 결국 엘리사 선지자는 왕에게 노하면서 왕이 마땅히 대여섯 번 쳤어야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권능과 약속은 결코 작고 협소하지 않거늘 왜 그는그렇게 작은 분량만 기대했단 말인가? 어떤 사람이 자기가 받은 은총과 영적원수들에 대한 주도권을 잃어버릴 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어찌 괴로움이 없을 수 있겠는가?
박윤선주석-요아스가 세 번만 치고 그쳤을 때에(화살은 아직 많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사가 노하였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그에게 아람을 완전히 진멸하도록 약속하셨는데도 그가 끝까지 아람을 치지 않을 것이 내다보였기 때문이다. 이 사실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우리는 하나님이 무진장으로 약속해 주신 은혜를 계속적으로 받기 위하여 끝까지 힘써야 된다는 것이다. 약속과 은혜는 신자들로 하여금 게으른 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적인 전쟁에 있어서 마귀로 더불어 계속 싸워야 한다. 우리가 전투를 멈춘다고 해서 마귀도 멈추는 것은 아니다. 마귀는 쉬지 않고 활동한다.
3.엘리사가 죽어서 장사되었는데, 그가 죽자마자 모압의 도적떼가 이스라엘 땅을 침략해 들어왔습니다. 바로 그때 사람들이 어떤 죽은 자의 시체를 무덤으로 옮기고 있었는데, 그들이 모압 도적떼를 보고서는 당황하여 그 시체를 엘리사의 무덤에 들어서 던졌습니다. 그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곧 그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는 순간 즉시로 회생하여 일어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난 것입니까? 성도의 죽음 이후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에 대하여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또한 엘리사의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지에 대해서도 함께 토론해 보십시오. (왕하13:20-21, 고후4:18, 막12:27)
답)매튜핸리주석-I.엘리사의 죽음과 장사, 엘리사는 나이가 많아 죽어 장사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 가운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1.그의 생명에 심판을 막는 어떤 권능이 있었다는 사실. 왜냐하면 그가 죽자마자 모압의 도적떼가 이스라엘 땅을 침략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전장에서 대치하는 큰 군대가 아니라 불시에 몰려와 살인과 약탈을 일삼는 떠돌이 도적떼였다. 패역한 백성들을 징벌함에 있어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들을 갖고 계신다. 왕은 오로지 아람 군대로부터의 위험만을 걱정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모압 도적떼가 그 땅을 침범해 들어왔다. 곤경은 때때로 우리가 거의 예상치 못한 곳으로부터 오기도 한다. 엘리사의 죽음에 이어 바로 이 일이 언급되는 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한 선지자들의 떠남이 곧 심판이 다가오는 전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2.그의 시신에 사람을 살리는 어떤 권능이 있었다는 사실, 엘리사의 시신은 다른 시신에 생명을 전달했다(21절). 비록 매우 짤막하게 언급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 큰 이적은 그의 사명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그것은 또한 이 땅의 삶 이후에 또 다른 삶이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암시였다. 엘리사는 죽었지만, 그러나 그것이 그의 끝은 아니었다. 만일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이라면, 그는 결코 이러한 이적을 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벌어지는 일로부터 우리는 실체(혹은 존재)를 추론할 수 있다. 이 일로 인해 여호와는 여전히 엘리사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므로 엘리사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여기에서 이것이 그리스도와 관계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그의 죽음과 장사로서 무덤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복된 통로가 된다), 마찬가지로 그것은 또한 그의 약속 덕택에 이스라엘은 다시금 새로워지고 번성하게 될 것을(비록 지금은 침체되고 쇠락해 할지라도) 암시해 주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어떤 죽은 자의 시신을 무덤으로 옮기고 있었다. 그 때 그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모압 도적떼를 보았는데, 그들은 지금 이 시신을 장사하려고 하는 장소 근처에 모여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곳으로 갈 수 없었고 따라서 시신을 그냥 가까운 묘실에 두었는데, 그 곳은 바로 엘리사의 묘실이었다. 그 때 놀라운 이적이 일어났다. 죽은 자의 시신이 엘리사의 뼈에 닿는 순간 즉시로 회생하여 일어난 것이었다(살아난 자는 친구들과 함께 다시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요세푸스는 이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즉 어떤 도적들이 무죄한 행인을 강탈하고 죽인 후 그의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던졌는데 그 시체가 즉시로 회생했다는 것이다. 엘리야는 세상을 떠날 때 영광을 받았지만, 엘리사는 세상을 떠난 후에 영광을 받았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당신이 기뻐하시는 대로 영광을 나누어 주신다. 이런 사람에게는 이런 방식으로 저런 사람에겐 저런 방식으로, 그리하여 모든 성도들이 영화롭게 될 것이다(사11:10). 살았을 때든지 죽을 때든지, 성도들을 가까이하며 그들과 더불어 유업을 함께 나누는 것은 참으로 선한 일이다.
*참고성경구절
레26:42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고 그 땅을 권고하리라
시130:4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케 하심이니이다
시18:42 내가 저희를 바람 앞에 티끌같이 부숴뜨리고 거리의 진흙같이 쏟아버렸나이다
엡3:19-20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고후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막12:2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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