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BS_2Kings_열왕기하 제26과
공부할 내용: 열왕기하 13장 22절 - 14장 22절
본문
2021년 9월 5일(주일) 오후 3시 30분 줌zoom그룹성경공부
1.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하사엘의 아들 벤하닷을 세 번 쳐서 파하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의 승리의 행진은 끝이 났는데, 이것이 주는 영적인 교훈은 무엇입니까?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왕이 되었을 때에 그의 나이는 25세였고, 예루살렘에서 29년을 치리하였습니다. 아마샤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다윗과 같지는 않았습니다. 아마샤는 왕권이 굳게 섰을 때에 그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였는데, 여기서 반역자나 살인자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가 무엇인지를 서로 토론해 보십시오. 또 아마샤는 왕이 되자마자 즉시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죽이지 않고, 왕권이 굳게 되기를 기다렸다가 그 일을 행였는데, 이것을 통하여 우리들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왕하13:22-14:7, 창9:6, 잠28:17)
답)매튜핸리주석-Ⅱ.이스라엘의 왕 요아스의 칼. 요아스는 아람을 무찌르고 승리를 거두었다. 1.승리의 원인은 하나님의 은혜였다(23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여기에서 우리는 그토록 패역한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이 진멸을 당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멸하기를 즐겨하지 않으셨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이 결국엔 스스로 멸망될 것을 예견하셨지만, 그러나 아직까지는 그것을 유예하시면서 회개의 기회를 주셨다.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 속히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굽어지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게 빛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2.승리의 결과는 이스라엘의 부요였다. 요아스는 벤하닷의 손으로부터 아람 사람들이 점령하고 있었던 성읍들을 되찾았다(25절). 이것은 그 성읍들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에 큰 축복이었다. 왜냐하면 회복된 성읍들이 압제의 멍에에서 벗어나게 됨으로써 이스라엘 전체가 크게 강성해졌기 때문이었다. 전에 화살들로 땅을 세 번 쳤던 것처럼 요아스는 아람을 세 번 쳤다. 그러고는 그의 승리의 행진은 그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나중에 자신들의 불신앙과 작게 바란 것을 후회한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너무 늦었으니 어찌 하리요? 우리는 여기에서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에 관해 보게 된다. I. 아마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함. 그는 자기 아버지 요아스처럼 어느 정도 정직하게 행하였지만, 그러나 다윗 같지는 못했다(3절). 그는 시작은 잘 했지만 그러나 그것을 끝까지 지속시키지 못했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며 하나님의 제단에 계속해서 참례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지만 그러나 다윗 같지는 못했다. 경건한 전임자들이 행한 대로 단지 습관을 따라 행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우리는 그들이 가졌던 믿음과 헌신의 원리로부터, 그리고 그들과 동일한 진실함과 결단으로 행해야만 한다. 앞에서와 같이 여기에서도 산당들은 제거되지 않았다는 언급이 특별하게 강조된다(4절), 오랫동안 관례화된 폐습을 일소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Ⅱ.아마샤가 공의를 시행함, 우리는 여기에서 아마샤가 자기 아버지를 죽인 반역자들에 대해 공의를 시행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가 왕이 되자마자 그 일을 시행한 것은 아니었다. 만일 그렇게 했다면 어느 정도의 혼란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대신 그는 나라가 자신의 손에 굳게 설 때까지 그 일을 늦추었다(5절), 상당한 세력을 가진 일파에 대해 갑자기 일소하려고 서두르는 것보다는 조금씩 약화시켜 나가다가 적당한 때에 응징하는 것이 효과적일 때가 많다. 이와 같은 일에는 지혜가 필요한 법이다. 아마샤는 이 일을 1.율법의 규례에 따라 시행했다. 즉 그가 공의를 시행한 것은 “사람의 피를 흘린 자는 자기도 피를 흘릴 것이니라” 라는 규례에 따른 것이었다. 반역자나 살인자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무덤에 들어갈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사람의 피를 흘린 자는 함정으로 달려갈 것이니 그를 막지 말지니라(잠28:17). 2.율법의 제한 하에 시행했다. 그는 그들의 자녀들은 죽이지 않았는데, 그것은 모세의 율법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자녀를 죽이지 말라고 분명하게 명령했기 때문이었다(6절). 하나님은 아비들의 죄를 자녀들에게 찾으신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죄책을 가지고 있으며 사망 아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령 아비들의 죄로 인해 자녀들의 생명을 찾으신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잘못을 범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죄인은 이미 자신의 죄로 인해 생명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땅의 왕들에게는 이와 같이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자녀들은 왕들 앞에서는 무죄하며, 따라서 죄인으로 처벌되어서는 안 된다.
2.유다 왕 아마샤가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오라 우리가 서로 대면하자”라고 말하였는데, 이것은 서로 전쟁을 하자는 뜻입니다. 요아스가 유다 나라를 도발한 것도 아니고 꼭 전쟁을 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 아마샤는 전쟁을 하고자 하였습니다. 요아스는 아마샤에게 “레바논 가시나무[아마샤를 비유함]가 레바논 백향목[요아스를 비유함]에게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논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아마샤의 멸망을 비유함] 네가 에돔을 쳐서 파하였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니 스스로 영광을 삼아 궁에나 거하라 어찌하여 화를 자취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마샤가 요아스의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요아스가 올라와서 아마샤와 전쟁하였습니다. 그 결과 아마샤는 패하였고 적에게 사로잡혔습니다. 요아스는 예루살렘까지 공격해 들어가서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사백 규빗을 헐고 또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금은과 모든 기명을 취하고 또 사람을 볼모로 잡아가지고 사마리아로 돌아갔습니다. 여기서 싸우기를 좋아하는 자, 욕심과 탐욕이 가득한 자는 궁극적으로 어떻게 되는지를 서로 토론해 보십시오. (왕하14:8-14, 약4:1, 잠18:6, 잠20:3)
답)매튜핸리주석-왕국이 분열된 이후 상당한 기간 동안 유다는 이스라엘의 적대감에 의해 많은 고통을 겪었다. 그러다가 아사 왕 이후로는 이스라엘과의 우호관계로 인해 더 큰 고통을 겪었다(그들과 더불어 동맹과 함께 혼인관계를 맺음으로써).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그들이 또다시 적대관계로 돌아간 것을 보게 되는데, 이러한 적대관계는 상당한 기간 동안 없었던 것이었다. I.유다 왕 아마샤가 이스라엘 왕 요아스와 전쟁을 벌이고자 함. 요아스가 어떤 도발을 한 것도 아니었고 꼭 전쟁을 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샤는 이스라엘과 더불어 전쟁을 하고자 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대면하자(8절). 전장에서 우리의 힘을 서로 겨뤄보자.” 단지 개인적인 결투를 신청한 것뿐이었다면, 어떤 불상사가 생긴다 할지라도 그것은 단지 그 개인에게만 국한될 것이었다. 그러나 양쪽 모두가 자신들의 전 병력을 전장으로 데리고 나가야만 했으며 또한 양쪽 모두에서 수많은 목숨이 그의 충동적인 기분에 희생제물이 되어야 했다. 이와 같이 그는 거들먹거리기를 좋아하며 피를 아낄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의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잠18:6). 이러한 도전은 마치 방축에 물이 새는 것처럼 큰 전쟁의 발단이 되는 것으로서 비난 받아 마땅하다. 이와 같이 싸우거나 소송을 벌이기를 좋아하는 자는 계속해서 그런 일들을 만나게 될 것이며, 누구보다 먼저 후회하게 될 것이다. Ⅱ.아마샤의 도전에 요아스가 엄중하게 견책하며 돌아갈 것을 충고함(9,10절). 1.요아스는 아마샤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요아스는 자신을 장대한 백향목으로 그리고 그를 보잘것없는 가시나무로 비유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와 더불어 동맹관계나 혹은 어떤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것은 마치 백향목이 가시나무와 사돈을 맺는 격이라고 말하면서 그를 경멸하며 조소한다. 그는 다윗의 집 따위는 예후의 집과 비교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오만하며 거들먹거리기를 좋아하는 두 사람이 서로 헐뜯으며 비방하는 말을 들을 때 누군들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2.요아스는 아마사의 멸망을 예고한다: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이와 같이 요아스는 자신의 군대가 쉽게 아마샤를 짓밟을 것으로 여겼다. 3.요아스는 아마샤의 도전을 어리석은 것으로 말한다. “네가 에돔을 쳐서 파하였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여졌도다. 그들은 약하고 무장도 되어 있지 않으며 훈련도 받지 못한 자들이거늘 어찌 그들을 이긴 것으로 이스라엘의 정규군까지 네 앞에 쉽게 굴복시킬 수 있을 것으로 여긴단 말인가?” 모든 죄의 뿌리가 어디에 놓여있는지 보라. 그것은 마음이다. 마음으로부터 모든 죄가 흘러나온다. 사람으로 하여금 교만하게 하거나 방심하게 하거나 혹은 불만을 품게 만드는 것은 신적 섭리나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그 자신의 마음이다. "네가 에돔을 친 것으로 마치 모든 사람이 너를 두려워하는 양 거들먹거리며 교만하도다.” 이와 같이 자신의 업적을 과장하며 또 약간의 승리와 명성을 얻었다고 하여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4.요아스는 아마샤에게 지금까지 얻은 영광으로 만족하고 과도한 욕심으로 스스로 화를 자초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네가 어찌하여 화를 자취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다툼을 멀리 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거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잠 20:3). 재물과 명예에 있어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하게 여기면서 더 많이 가지고자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면서 요아스는 아마샤에게 그 결과가 어떨 것인지를 경고한다. 그것은 그 한 사람의 목숨만 달린 문제가 아니라 그가 보호해야 할 그의 나라에까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었다. Ⅲ.아마샤가 자신의 결심을 고집함, 아마샤에게 있어 요아스의 충고대로 그냥 집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도전자가 참패를 당하는 일은 너무도 흔한 일이다. 1.아마샤의 군대는 패주를 당하고 흩어졌다(12절). 요세푸스는 아마샤의 군대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타격을 받고 모든 병사가 흩어졌다고 말한다. 2.아마샤 자신은 이스라엘 왕에게 붙잡혀 포로가 되었다. 여기에서 그의 계보(系譜)가 돌연 언급되는데(아하시야의 손자 요아스의 아들), 아마도 그것은 그가 자신의 혈통을 자랑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그들(즉 아하스와 아하시야)의 죄로 인해 지금 징벌을 당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3.정복자는 예루살렘에 입성했다. 예루살렘은 그에게 순순히 성문을 열어주었지만, 그러나 그는 예루살렘 도성의 성벽을 헐어버렸다(요세푸스가 말하는 것처럼, 요아스는 자신의 병거를 타고 무너진 성벽을 통과하여 행진했다). 이것은 그들을 모독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왕도를 점령할 수 있음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4.요아스는 예루살렘을 약탈했다. 그는 모든 금은보화를 탈취하여 사마리아로 돌아갔다(14절). 요아스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언급되는 반면 아마샤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고 언급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아스가 아마샤에 대해 승리를 거두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아마샤의 운명을 통해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한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든지, 아니면 다른 때에는 떠했는 간에 요아스는 최근에 하나님의 선지자를 존귀케 한 반면(13:14) 아마샤는 선지자에 대해 함부로 말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대하25:16), 하나님의 선지자를 존귀케 하는 것은 곧 하나님 자신을 존귀케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자신의 선지자를 존귀케 하는 자들을 존귀케 하신다. 반대로 하나님의 선지자를 경멸하는 것은 곧 하나님 자신을 경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당신의 선지자를 경멸하는 자들을 경멸하실 것이다.
3.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죽은 후에도 유다 왕 아마샤는 15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는 수치를 당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살아 있으면서 굴욕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마샤의 통치를 증오한 신하들에 의하여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아마샤는 라기스로 도망하였으나, 반란을 일으킨 신하들이 사람들을 보내어 거기서 아마샤를 살해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아마샤의 시체를 말에 실어다가 예루살렘에 가지고 와서 장사지냈습니다. 아마샤도 그의 부친 요아스와 똑같이 신하들의 반란으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아마샤가 반란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은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이것이 우리들에게 주는 영적인 교훈은 무엇입니까? (왕하14:15-22, 대하25:16, 대하24:25, 대하25:27)
답)매튜핸리주석-본 단락에서 우리는 세 왕이 무덤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된다. 1.이스라엘 왕 요아스(15,16절). 우리는 앞에서도 그의 죽음과 관련한 이야기를 살펴보았었다(13:12,13). 그러나 그의 생애와 활동에 관해 좀 더 이야기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역사가는 여기에서 그의 죽음과 장사에 대해 다시 한 번 반복해서 언급한다. 2.유다 왕 아마샤. 그는 자신을 정복한 이스라엘 왕 요아스보다도 15년을 더 살았다(17절), 수치를 당한 이후에도 오래도록 살아 있으면서 굴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마샤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의 행적이 유다 왕역대지략에 기록되었다고 언급되고 있는데(18절), 그러나 그는 진정 강력한 용사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잔인하게 에돔을 정복하고 또 안하무인격으로 이스라엘 왕에게 도전했는데, 그것을 통해 우리는 그가 진정한 용기를 가진 자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그의 통치를 증오한 신하들에 의해 살해당했다(19절), 그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예루살렘 성벽이 치욕적으로 헐림으로써 그의 신뢰성은 땅에 떨어졌으며, 결국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인해 그는 라기스로 도망가게 되었다. 그 곳에서 그가 얼마 동안 피신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러나 마침내 그는 거기에서 살해를 당하고 말았다(19절). 반역자들의 분노는 더 이상 확대되지 않고 거기에서 멈췄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의 시체를 병거에 신고 예루살렘으로 가져와 그의 조상들 가운데 장사했기 때문이었다. 3.아마샤에 이어 아사랴가 왕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가 죽은 후 12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아버지의 왕위를 이어받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아마샤는 여로보암 15년에 죽었는데(왕하14:2,23을 참조하라), 반면 아사랴의 통치는 여로보암 27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시작되기 때문이다(15:1). 아사랴는 그의 아버지가 죽을 때 고작 네 살이었다. 따라서 그가 16살이 될 때까지는통치권이 후견인들의 손에 있었다. 그는 매우 오랫동안 통치했지만(15:2), 그러나 그의 통치와 관련한 이야기는 매우 짤막하게만 언급될 뿐이다. 아마샤가그의 조상들과 함께 잔 후에 아사랴가 엘랏을 건축하였더라. 엘랏은 에돔에 속한성읍이었는데, 아마도 그 성읍을 회복한 것은 그의 아버지였을 것이다(6절).
박윤선주석-대하25:20절/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곧, 하나님께서 그를 버렸으므로 그가 강팍해졌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악인을 벌하시는 방법들 가운데 한 가지가 여기에 계시되어 있다. 곧, 그가 죄인을 교만한 대로 내버려두셨으므로 그 죄인이 정당한 경고도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죄인에게 고집을 넣어 주심이 아니고, 그의 마음대로 행하도록 그를 내버려두심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에게서 버림받으면 교만해질 수밖에 없다. 사람은 이렇게 교만해질 바탕을 지녔으니(렘 17:9), 그 자신이 늘 위험하다. 대하25:20-24/ 범죄하여 심령이 어두워진 “아마샤”는 선지자의 경고(15절)도 무시하고 교만하게 덤비다가 “이스라엘 앞에서 대패하였다. 대하25:25-28/ 아마샤가 반란군에게 죽임이 됨. 아마샤가 그의 죄값으로 반란을 당하여 죽임이 된 것은 선지자의 예언대로(16절 하반) 이루어진 사실이다. 끝까지 회개치 않는 그의 죄가 결국 그를 죽인 셈이다. 죄인이 구원받는 길은 회개하고 주님을 믿음인데 아마샤는 강팍하게 회개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부친 요아스가우상 섬긴 죄와 선지자를 박해한 죄로 신하들의 반란을 당하고 죽임이 되었는데(대하24:25), 아마샤는 그것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고 부친과 꼭 같이 행하다가 그도 그 부친처럼 반란을 당하여 죽임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징계의 성격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한다.
*참고성경구절
창9: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잠28:17 사람의 피를 흘린 자는 함정으로 달려갈 것이니 그를 막지 말찌니라
약4: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난 것이 아니냐
잠18:6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잠20:3 다툼을 멀리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어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
대하25:16 선지자가 오히려 말할 때에 왕이 이르되 우리가 너로 왕의 모사를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 선지자가 그치며 가로되 왕이 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결정하신 줄 아노라 하였더라
대하24:25 요아스가 크게 상하매 적군이 버리고 간 후에 그 신복들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로 인하여 모반하여 그 침상에서 쳐죽인지라 다윗 성에 장사하였으나 열왕의 묘실에는 장사하지 아니하였더라
대하25:27 아마샤가 돌이켜 여호와를 버린 후로부터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저를 모반한 고로 저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모반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어 저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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