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BS_2Kings_열왕기하 제19과
공부할 내용: 열왕기하 9장 23-37절
본문
2021년 7월 11일(주일) 오후 3시 30분 줌zoom그룹성경공부
1.예후의 말을 듣고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요람은 도망하면서 “아하시야여 반역이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예후가 힘을 다하여 화살을 쏘았고, 그것이 요람의 염통[심장]을 꿰뚫었습니다. 그리하여 요람은 병거 가운데 엎드러져 죽었습니다. 예후는 장관 빗갈에게 “그 시체를 취하여 이스라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라 네가 기억하려니와 이전에 너와 내가 함께 타고 그 아비 아합을 좇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이 아래같이 저의 일을 예언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젯날에 나봇의 피와 그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노라 또 말씀하시기를 이 토지에서 네게 갚으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 시체를 취하여 이 밭에 던질찌니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요람의 시체를 이스라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는 것이 내포하고 있는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에 대하여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왕하9:23-26, 왕상21:19, 시7:13)
답)매튜핸리주석-4.마침내 징벌이 시행됨. 자기 어머니의 죄를 탄핵하는 말을 들었을 때, 요람은 즉시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는 오래 전부터 경고되어 왔던 재앙의 날이 마침내 도래했음을 직감하면서 외쳤다. “아하시야여 반역이로다, 예후는 우리의 적이로다. 속히 이 자리를 피해야 할 것이라.” 그렇게 하여 요람과 아하시야는 즉시 도망을 쳤다. 그러나 (1)이스라엘 왕 요람은 그 자리에서 살해를 당했다(24절). 그를 죽인 것은 예후 자신의 손이었다. 그의 아버지 아합은 우연히 쏜 화살에 의해 갑옷 솔기를 맞고 죽임을 당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후가 그의 두 팔 사이를 정확히 조준하고 쐈다(이것은 핍박자를 향한 하나님의 화살이었다. 시7:13). 화살은 그의 염통을 꿰뚫었으며, 그는 그 자리에 엎드러져 죽었다. 그는 아합의 둘째 아들로서 형 아하시야에 이어 아버지의 왕위를 이어받은 계승자였다. 그는 지금 아합의 집을 대표하는 자였으며, 따라서 첫 번째로 징벌을 받았다. 그는 범죄자로서 율법의 판결에 따라 죽음을 당했으며, 그에게 형벌을 집행한 예후는 그의 시체를 나봇의 밭에 던졌다. 나봇의 포도원은 에후로 하여금 예전에 엘리야가 아합에게 선언한 심판의 예언을 생각나게 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나봇의 피와 그의 아들들의 피로 인해 이 토지에서 네게 갚으리라 하셨느니라(25,26절). 전에 아합이 나봇을 죽을 때 그와 함께 그의 아들들도 같이 죽였다(공범으로 함께 죽였든지 아니면 나중에 은밀하게 죽였을 것이다). 그렇게 한 것은 그들로 하여금 나중에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그리고 포도원을 포함한 아버지의 모든 기업을 몰수당한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혹은 복수하지 못하게 하려고 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아합의 집은 값을 치러야만 한다. 아합은 무죄한 피의 값으로 그 땅을 차지했는데, 이제 그 땅이 그의 아들의 시체가 세상의 구경거리가 되어 던져진 극장이 되었다. 이와 같이 여호와는 자신이 행하시는 심판으로 자신을 알리신다(시9:16).
2.요람의 죽음을 목도한 아하시야는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알고서는 급히 동산 정자 길로 도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예후가 그를 쫓아가면서 “저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예후의 신하들의 공격을 받은 아하시야는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아히사야는 부상을 입은 채 므깃도까지 도망하였다가 죽은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아히사야의 시체는 그의 신하들에 의하여 병거에 실려 예루살렘까지 갔고, 그곳에서 아하시야는 장사되었습니다. 여기서 악을 행하는 자와 연합하게 되면 그 최후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를 서로 토론해 보십시오. (왕하9:27-28, 시1:1, 고전5:10-11)
답)매튜핸리주석-(2)유다 왕 아하시야는 얼마 동안 도망치다가 살해를 당했다(27,28절). [1]설령 요람의 무리와 함께 있었다 할지라도 만일 아하시야가 혼인과 죄로 아합의 집과 연결되어 있지만 않았더라면, 그는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역시도 아합의 집의 한 사람이었다(그는 스스로를 그렇게 만들었다). 따라서 그도 아합의 집이 받아야 할 몫을 받아야만 했다. 예후는 자신의 임무가 그에게까지 확장되는 것으로 추론했는데, 그것은 정당한 것이었다. [2]그러나 만일 아히시야가 요람의 무리와 함께 발견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는 이 때 그들과 함께 멸망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악을 행하는 자들과 연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들의 죄와 연합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받을 재앙에도 함께 연합하게 만들 것이다.
3.예후가 이스르엘에 도착하였을 때에, 그를 본 이세벨은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왕상16:8-15, 바아사 왕실을 반역한 사람, 예후를 시므리에 비유하여 모욕하는 것임] 평안하냐”라고 말하였습니다. 예후가 이세벨 옆에 있는 신하들을 향하여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라고 물었을 때에, 두 세명의 내시들이 예후를 바라보았습니다. 예후는 그들에게 “저를 내려 던지라”라고 명령하였고, 그들은 즉시 이세벨을 내던졌습니다. 예후가 먹고 마신 후에 “이 저주 받은 계집을 찾아 장사하라 저는 왕의 딸이니라”라고 하였는데, 그러나 그 사이에 개들이 이세벨의 고기를 먹어서 두골과 발과 손바닥 외에는 남아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여기 이세벨의 끔찍하고도 처참한 죽음과 그녀의 비극적인 종말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토론해 보십시오. (왕하9:30-37, 왕상21:23, 마25:41)
답)매튜핸리주석-아합의 집에서 가장 큰 범죄자는 바로 이세벨이었다. 바알을 끌어들이고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이며 나봇을 죽일 음모를 꾸미고 남편과 아들들을 충동하여 악을 행하도록 한 것은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여기에서 저주받은 여자로 불리는데(34절), 정말로 그녀는 온 나라의 저주였다. 그녀의 통치는 3대에 걸쳐 이어지다가 이제 마침내 멸망의 날이 다가왔다. 우리는 두아디아 교회에 이세벨이라 불리는 거짓 선지자가 있었음을 보게 되는데(계2:20), 그의 악 역시 이세벨처럼 하나님의 종들을 유혹하여 우상 숭배하도록 만든 것이었다. 그에게 회개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러나 여기의 이세벨의 경우와 같이 마침내 두려운 멸망이 이를 것이었다(22,23절). 이와 같이 이세벨의 멸망은 우상 숭배자들과 핍박자들의 멸망, 특별히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로서 성도들의 피와 자신의 음행의 포도주에 취한 큰 음녀(계17:5-6)의 멸망의 전형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I.이세벨과 예후가 만남. 그녀는 예후가 자신의 아들을 죽였다는 것과 그것이 자신의 음행과 술수 때문이었다는 것과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 아들의 시체를 나봇의 기업에 던졌다는 것과 그가 지금 이스르엘로 오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로서는 그의 복수의 칼이 다음 희생제물로서 자신의 머리 위에 떨어질 것을 예상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그녀가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맞이하는지 보라. 그녀는 예후를 모독하며 조롱하기 위해 성문 입구의 한 창에 있었다. 1.그녀는 신적 보응을 두려워하며 도망치는 대신 도리어 두려워하여 도망치는 것을 경멸하면서 스스로를 노출시켰다. 하나님을 대적하며 완악해진 심령이 마지막 순간까지 그분을 거스리며 목을 세우고 그분께 달려드는 것을 보라(욥15:26). 그러나 복 있는 자는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않는다. 2.그녀는 스스로를 겸비케 하며 아들을 위해 애곡하는 대신 도리어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몄다. 이와 같이 여장부다운 위엄을 나타냄으로써 그녀는 예후로 하여금 기세가 꺾여 움츠리도록 만들고자 했다. 주 여호와께서 애곡하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사22:12-13),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과 맞서면서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몄다. 겸비케 하는 섭리 아래에서 마음을 겸비케 하지 않는 것보다 더 확실한 멸망의 징조는 없다. 이세벨의 거울에 비친 그녀의 화장한 얼굴을 상상해 보라. 얼마나 그녀다운 모습인가? 3.그녀는 하나님의 보응의 도구인 예후 앞에서 두려워 떠는 대신 도리어 다음과 같은 위협적인 질문으로 그를 두렵게 만들고자 했다: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 여기에서 다음을 관찰하라. (1)그녀는 자신의 집을 향한 하나님의 손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손에 들린 칼에 불과한 예후에게 분노를 폭발시켰다.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순복하며 마땅히 스스로에게만 화를 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고난의 도구에 대해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은 너무도 흔한 일이다. (2)그녀는 예후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그 일이 결국 그 자신의 멸망으로 끝날 것이며 결코 평안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자기 좋을 대로 생각했다.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자들이 평안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자기 좋을 대로 생각했다.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자들이 평안을 얻지 못할 것으로 간주되는 것은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니다. 열정적인 개혁자들은 종종 고통과 괴로움으로 위협을 받곤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것을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빌1:28). (3)그녀는 예후로 하여금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단념하도록 만들기 위해 과거의 사건을 인용한다. “시므리에게 평안이 있었느냐? 결코 없었느니라. 그는 반역과 피로 왕위를 얻었지만 그러나 7일 만에 왕궁을 불태우고 자신도 죽고 말았느니라. 너라고 이것보다 더 나은 것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 만일 유사한 상황이었다면, 그에게 이와 같은 과거의 사실을 제시하는 것은 매우 적절한 일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앞서 죄의 길을 걸어갔던 자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에게 그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경계하는 좋은 경고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므리의 경우와 예후의 경우는 전혀 달랐다. 시므리에게는 어떤 정당성도 없었다. 그는 단지 자신의 야심과 잔인성에 의해 충동되었을 뿐이었다. 반면 예후는 선지자의 제자 중 한 사람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았으며, 하늘로부터의 분명한 지시에 따라 행동하고 있었다. 사람이나 사건 따위를 비교함에 있어 우리는 고귀한 것과 저열한 것 사이의 차이를 주의 깊게 구분할 줄 알아야만 한다. 그리고 악한 자들의 운명으로부터 자칫 선한 자들의 운명을 잘못 유추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II.예후가 자신의 편이 될 자를 찾음. 그는 그녀의 뻔뻔스러운 그러나 무력한 위세에 조금도 기세가 꺾이지 않은 채 창을 올려다보며 외쳤다(32절):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 그는 이스라엘을 개혁하고 그 땅을 더럽힌 자들을 징벌하는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도록 부름 받았다. 그런 그가 이제 그 일에 협력할 자들을 찾는다. 그는 모세처럼 깃발을 들고 선포한다(출32:26):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또 그는 시편 기자처럼 부르짖는다(시94:16):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행악자들을 칠까? 개혁의 일이 시작되었으면 이제는 “함께 할 자가 누구인가?”를 물어야 한다. III.그녀를 수종하던 내시들이 그녀를 넘겨줌. 두어 명의 내시가 자신들은 그의 편이라는 표징으로 예후를 바라보았고, 이에 예후는 그들에게 즉시 이세벨을 내려던지라고 명령했다. 이와 같이 높고 가파른 곳에서 거꾸로 떨어뜨리는 것은 행악자를 돌로 쳐 죽이는 형벌의 한 가지 방법이었다. 이렇게 하여 나봇을 돌로 쳐죽인 그녀는 똑같은 방법으로 보응을 받았다. 예후의 명령에 따라 내시들은 즉시 이세벨을 내려던졌다(33절). 만일 하나님의 명령이 예후를 정당화한다면, 예후의 명령은 그들을 정당화할 것이었다. 어쩌면 그들은 비록 이세벨을 섬기기는 했지만 그러나 마음속으로나마 그녀의 악을 싫어하며 미워했을는지 모른다. 또 이세벨이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잔인하고 가혹하게 대했기 때문에 그들이 이와 같이 복수하는 것을 꺼리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예후의 승리를 내다보면서 궁중에서의 자신들의 위치를 지키고자 그의 편에 선 것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그녀는 이처럼 가장 수치스러운 죽임을 당했다. 그녀는 벽과 길바닥에 부딪히고 말들에 의해 밟혔으며, 그녀의 피와 골수가 사방에 튀어 주위를 더럽게 만들었다. 교만과 잔인함의 끝을 보라. 그리고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라고 말하라. IV.개들이 이세벨의 시체를 먹음. 예후는 왕궁에 들어가 먹고 마시며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하고 난 후 이세벨에 대하여 그녀가 여성인 점과 또 왕후의 신분을 감안하여 장사를 치러주는 정도의 경의를 표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악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여자이며 왕의 딸이며 왕의 아내이며 또 왕의 어머니였다: 가서 그녀를 찾아 장사하라(34절). 일찍이 엘리야가 예언한 것과 관련하여(개들이 이세벨을 먹을 것이라), 설령 예후가 잊어버렸다 할지라도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잊지 않으셨다. 그가 먹고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던 동안 죽은 고기를 찾아 성읍을 돌아다니던(시59:6) 개들이 그녀의 시체를 게걸스럽게 뜯어 먹었고 그리하여 그녀의 두골과 발과 손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그녀의 화장한 얼굴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굶주린 개들에게 왕후의 위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왕의 딸이라고 하여 보통 사람과 하등 다를 것이 없었다. 맛있는 음식으로 우리의 육체를 보양하며 돌보는 동안에도 우리는 육체라는 것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이며, 또 얼마나 빨리 땅 속에 있는 벌레들이나 땅 위에 있는 짐승들의 먹이가 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와 같은 소식을 보고 받았을 때 예후는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왕상21:19)는 예언을 떠올렸다. 그녀에게 남아 있는 것이라곤 오명의 기념비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대중들 앞에 위용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곤 했었다. 그 때 사람들은 이렇게 외쳤다. “이가 이세벨이라. 얼마나 위엄 있는 모습인가! 그녀는 얼마나 크고 위대하가!”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런 외침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종종 악인들의 장사가 치러지는 것을 보지만(전8:10), 그러나 때로 여기의 경우처럼 장사조차 치러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전6:3). 이세벨의 이름은 성경 속에 영원한 오명으로 낙인찍힌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이세벨의 무덤이다. 이것이 이세벨의 유해다. 이것이 이세벨의 후손이다.” 이와 같이 악인의 이름은 썩어 소멸될 것이다.
*참고성경구절
왕상21:19 너는 저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 하셨다 하고 또 저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셨다 하라
시7:13 죽일 기계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 만든 살은 화전이로다
시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고전5:10-11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숭배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왕상21:23 이세벨에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가라사대 개들이 이스르엘 성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찌라
마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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