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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BS_Joshua_여호수아 제3과

공부할 내용: 여호수아 2장 1-7절

본문

20237월 16(주일) 오후 4 줌zoom 그룹성경공부


1.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의 정탐꾼을 보내면서 그들에게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리고로 갔으며, 라합이라 이름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서 유숙하였습니다. 두 정탐꾼이 기생 라합의 집에 들어갔는데, 만약 다른 집에 들어갔다면 어떤 일이 있어났을까요? 기생 라합의 집으로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또한 야고보서 225절은 기생 라합의 믿음과 선행을 칭찬하는데, 여기 회심 이후의 라합에게 기생이라는 말은 어떠한 진리를 가르쳐 줍니까? (2:1, 36:26, 2:25)

  )매튜헨리주석-여기에 라합과 두 명의 정탐꾼이 등장한다. I.중요한 요충지를 정찰하기 위해 정탐꾼을 파송한 여호수아의 신중함(1).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예전에 모세가 정탐꾼들을 보낸 적이 있었다(13). 여호수아 자신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는데, 그 일은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지금 여호수아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 땅 전체를 정찰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직 여리고만을 정찰하기 위해 정탐꾼을 보낸다. 또한 여호수아는 모든 회중에게 보고하도록 하지 않고 오직 자신에게만 보고하도록 한다. 마치 주도면밀한 장군처럼 그는 전체의 유익을 도모하고 있었으며 특별히 첫걸음을 주의함으로써 자칫 문지방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었다. 여호수아 자신이 변장을 하고 요단 일대를 정탐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일이다. 그렇게 하는 대신 그는 두 사람(70인역에는 두 젊은이)을 보내 그 땅을엿보도록 하고 그들의 보고로부터 여리고를 공격할 방법을 찾고자 했다. 다음을 주목하라. 1.위대한 인물들이라 할지라도 일반 사람들이 보는 것과 같은 것을 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런 일에 누구를 보낼지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데,그것은 대체로 일의 성패가 선택받은 자들의 충성심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2.'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적절한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가로막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을 권장하고 격려한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계심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정탐꾼들을 보낸다. 만일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마땅히 기울여야 할 노력'을 약화시킨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3.두 정탐꾼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위험한 임무에 대해 얼마나 열성적이었는지 주목하라. 위험한 상황에 처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스라엘을 위한 열정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여호수아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 땅에 잠입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이신 하나님은 또한 받은 사명을수행하고 있는 개개 이스라엘 백성들의 보호자가 되신다. II.정탐꾼들을 라합의 집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 그들이 어떻게 요단을 건넜는지에 대하여는 아무 기록이 없다. 어쨌든 그들은 요단 강에서 12km정도 떨어진 여리고로 들어왔고, 그 곳에서 유숙할 여관을 찾는 중에 라합의집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녀에게는 기생(harlot)이란 이름이 붙여졌는데, 이것은 비록 나중에 회개하고 새로워졌다 할지라도 - 부끄럽고 불명예스러운 이름이었다. 문둥이 시몬(26:6)이 나중에 문둥병으로부터 깨끗하게 되었다할지라도 살아있는 동안 이 이름으로 인한 불명예를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기생 라합이란 이름 역시 마찬가지였다. 믿음과 선행으로 칭찬받고 있는 신약에서도 그녀는 그러한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는데, 이것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교훈을 가르쳐준다. 1.큰 죄도 참으로 회개하기만 하면 사죄의 은총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지못한다는 사실, 우리는 성경에서 세리와 창녀(harlot, 기생)가 메시야 왕국에 들어가는 것과 또 특별한 사람들보다 우선적으로 환영받을 것이란 말씀을 읽는다(21:31). 2.회심 이전에는 악하고 타락했던 사람들이 회심 이후 믿음과 성결에 있어 유명하게 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 3.은혜로 말미암아 젊은 시절의 죄를 회개한 자들조차도 그러한 죄로 인한 불명예를 감수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 그들이 예전의 허물에 대하여 들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회개를 새롭게 해야 하며 그 증거로서 그러한 말들을 참을성 있게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는 온 여리고를 통틀어 오직 한 사람의 친구만이 있었을 뿐인데, 그가 바로 기생 라합이었다. 종종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다른 도덕(morals)을 가진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만일 정탐꾼들이 다른 집에 들어갔다면 틀림없이 체포되고 무자비하게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친구가 있는 곳을 알고 계셨고, 바로 그곳으로 인도하셨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대단히 우연적이고 우발적인 것으로보이는 것들이 종종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일어난다. 그리고 인생길에서 신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자기 눈동자처럼" 인도하실것이다. 예레미야 3619절과 26절을 보라.


2.어떤 사람들이 여리고 왕에게 보소서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몇 사람이 땅을 탐지하러 이리로 들어왔나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왕이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어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탐지하러 왔느니라라고 말하였고, 라합은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로서인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에게 미치리라고 답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라합이 정탐꾼들을 지붕 위에 벌여 놓은 삼대에 이미 숨겨 놓은 상태였습니다. 왕이 보낸 사람들은 요단 길로 나루턱까지 따라갔고, 그 따르는 자들이 나갔을 때에 곧 성문이 닫혔습니다. 히브리서 1131절은 믿음으로 라합이 두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다고 말씀하는데, 극한 위험 속에서 이러한 일을 행한 라합의 살아 있는 믿음에 대하여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무엇이 참된 믿음입니까? (2:2-7, 11:31, 2:25)

  )매튜헨리주석-III.정탐꾼들을 영접하고 보호하는 라합의 믿음. 여관을 경영하는 사람들은 자기 집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을 환대한다. 또한 그들은 모든 손님들에 대하여 친절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라합은 정탐꾼들에 대하여 일반적인 친절 이상의 것을 보여주었다. 자신의 나라가 전쟁을 예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평안히 영접한 것은 그녀의 믿음으로 인한 것이었다(11:31). 1.라합은 정탐꾼들을 자기 집으로 영접했다. 그들이 어디로부터 왔으며 또 임무가 무엇인지 알았음에도 불구하고(9), 그녀는 정탐꾼들을 자기 집에 유숙시켰다. 2.정탐꾼들이 여리고 성에 들어오는 것이 포착되었고 그리하여 그들에 대한 적개심이 불붙은 것을 알면서도, 라합은 그들을 자기 집의 평평한 지붕 위에 숨기고 삼대(삼나무 줄기)로 덮었다(6). 그리하여 그들은 발견되지 않은 채 거기 숨어있을 수 있었다. 햇볕에 말리기 위해 지붕 위에 널어놓은 삼대들을 미루어 볼 때, 그녀는 덕행 있는 여자의 좋은 품성 가운데 한 가지는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비록 다른 품성들은 결함이 있었다 할지라도.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31:13).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우리는 그녀가 예전에는 기생이었을지라도 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갖게 된다. 3.정탐꾼들에 관하여 질문을 받을 때, 라합은 그들이 자기 집에 있음을 부인함으로써 사자들을 따돌리고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준다. 여리고의 왕이 정탐꾼들에 대해 묻기 위하여 라합의 집에 사자들을 보낸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2-3). 원수들이 문 앞에 다가왔을 때 왕은 두려움을 가졌고, 그러한 두려움으로 인해 그는 모든 여행객들에 대하여 의심을 갖고 경계하였다. 왕은 라합에게 대하여 정탐꾼들을 내어놓도록 요구할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라합은 그들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할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뒤쫓는 자들에게 급히 따라가면 붙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가택수색을 중단하도록 만든다(4-5). (1)이것이 선한 행동임은 확실한 사실이다. 이 일은 사도에 의해 정경에 기록되었다(2:25). 여기에서 라합은 행함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다고 언급되는데, 그것은 그녀가 사자들을 영접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한 것이라고 특별히 명기한다. 라합은 믿음으로 이 일을 행하였다. 그리고 그 믿음은 그녀로 하여금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심지어 왕의 노여움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였다. 라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기사들을 듣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며, 가나안땅에 대한 그분의 계획이 의심의 여지 없이 이루어질 것임을 분명하게 믿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으로 라합은 정탐꾼들과 함께 하였고 그들을 보호하였으며,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어주길 호소하였다. 만일 라합이 나는 하나님이 당신들과 함께 하시며 또 이 땅이 당신들의 것이 될 것임을 믿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들에게 어떤 은혜도 베풀어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녀의 믿음은 죽은 믿음이며 그녀를 의롭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라합이 자신의 믿음에 따라 스스로를 '극도의 위험' (생명의 위험) 위에 세운 것은 그녀의 믿음이 살아 움직이는 믿음임을 보여준다. 하나님을 위해 모험을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참된 믿음의 사람이다. 믿음으로 여호와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영접한 자들은 또한 그분의 백성을 자신의 백성으로 영접하며 그들과 운명을 함께한다. 하나님을 자신의 피난처로 삼은 자들은 그의 백성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함으로써 자신의 믿음을 증명해야 한다. 나의 쫓겨난 자들이 너와 함께 있게 하라(16:3-4). 우리는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위한 모험적인 섬김을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열심과 진정성을 증명할 기회를 갖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


3.라합은 정탐꾼들을 자기 집 지붕 위에 벌여 놓은 삼대에 숨겼습니다. 그때 왕이 보낸 사람들이 와서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탐지하러 왔느니라고 말하였을 때에, 라합은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에게 미치리라고 거짓말을 하여 그들을 속였습니다. 라합의 이러한 거짓말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2:1-7, 2:9, 4:25)

  )매튜헨리주석-그러나, (2) 여기에 정당화되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우리는 이 문제를 반드시 짚어야만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녀의 행동이 자칫 선한 행동으로 정당화되지 못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1]라합이 정탐꾼들을 숨겨주고 도와준 것은 분명히 자기 나라를 배신한 것이다. 그들은 여리고를 멸망시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라합의 행동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사랑과 의무, 그리고 왕에 대한 충성과 결코 양립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라합은 여호와가 이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셨음을 알았고(9), 바로 이 사실이 그녀의 행동을 정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라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명백한 이적들을 통해 이 사실을 알았는데, 그녀에게 있어 하나님을 향한 의무가 여타 다른 것에 대한 의무보다 우선적이었던 것이다. 만일 라합이 하나님께서 이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셨음을 알았다면, 그녀에게 있어 이 일을 훼방하는 자들과 함께 하는 것은 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께서 특정한 백성에게 특정한 땅을 허락하신다고 하는 것이 명백하게 입증될 수 없기 때문에, 공공의 유익에 반하는 이와 같은 배신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2]라합이 자기 집을 수색하는 사자들을 거짓으로 속인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그녀는 그들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지 못하며, 이미 가버렸고, 또 어디로 갔는지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까? 만일 라합이 진실을 말하거나 침묵한다면, 이것은 정탐꾼들을 배신하는 것이 되며 또한 하나님께 대하여 큰 죄가 될 것이다. 사자들을 다른 길로 추격하게 함으로써 정탐꾼들을 보호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었다. 누구도 스스로 미덕이라고 여기는 일에 대해 스스로를 참소할 필요는 없다. 라합의 경우는 특수하고 예외적인 경우였다. 그러므로 이 일은 하나의 전범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일반적인 경우에는 결코 정당한 일이 될 수 없지만 여기에서는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요단 건너편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통해 라합은 가나안 백성들에게 어떤 자비도 허용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라합은 그들에게 어떤 자비도 허용되지 않는다면 여기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라고 추론했다. 대체적으로 신학자들은, 비록 그녀가 가나안 여인으로서 거짓말의 죄성을 충분히 배우지 못한 정상을 참작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것을 죄라고 받아들이면서, 그러나 하나님은 그녀의 믿음을 받으셨으며 그녀의 허물을 용서하셨다고 생각한다. 이 경우에는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는 모든 사람이 이웃에 대하여 진실을 말하는 것, 거짓말을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것, 그리고 결코 악을 행하지 않는 것 - 비록 선이 뒤따른다 할지라도(3:8) - 이 우리의 의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실하고 정직하게 의도한 것은 받으신다 - 비록 그 안에 결함과 어리석음이 섞여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가 실수한 것을 극단까지 끌고 가지 않으신다. 어떤 학자들은 라합의 경우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참고성경구절

36:26 왕이 왕의 아들 여라므엘과 아스리엘의 아들 스라야와 압디엘의 아들 셀레먀를 명하여 서기관 바룩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잡으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그들을 숨기셨더라

2: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2:9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4: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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