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BS_Nehemiah_느헤미야 제23과
공부할 내용: 느헤미야 13장 10-31절
본문
2023년 2월 5일(주일) 오후 4시 줌zoom그룹성경공부
1.레위 사람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을 받지 못하였을 때에, 그들은 생계를 위하여 자신들의 밭으로 가버렸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느헤미야는 민장들[지도자들]을 꾸짖으면서 “하나님의 성전이 어찌하여 버린 바 되었느냐”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밭에 있던 레위 사람들을 불러모아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그들의 위치에 있게 하였습니다. 느헤미야의 열심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도 열심을 내어서 곡식과 새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내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소홀히 여김을 받을 때에 그것이 영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어떠한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하여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느13:10-12, 신12:19, 신14:27, 고전9:11)
답)매튜헨리주석-우리는 여기에서 느헤미야가 또 하나의 잘못된 문제를 바로잡는 것을 보게 된다. I.레위 사람들이 제대로 처우를 받지 못함. 레위 사람들이 받을 몫을 주지 아니하였으므로(10절). 곳간 골방들을 차지하고 있는 동안 아마도 도비야는 엘리아십의 묵인 하에 그 곳의 물품들을 자기 마음대로 전용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문제는 백성들로부터 거두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것이 레위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않은 것이었다. 반면 레위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요구할 정도로 악착스럽지 못했다.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자기 밭으로 도망하였기로. (1)이것은 그들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할 몫이 주어지지 않은 결과였다. 레위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상주하는 자들이 아니었다. 성전 주변에서 어떤 일을 수행해야만 할 때에도 그들은 향리[태어나서 자란 마을]에 있는 자기 집에 거주하면서 그렇게 했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그들의 몫을 지급하는데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만일 사역자들에게 정당한 급여가 지급되지 않는다면, 사역자들은 그것이 스스로 직무를 게을리하므로 자초한 것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2)느헤미야는 그들에게 정당한 급여가 지급되지 않은 사실을 즉시 알아차렸다. 느헤미야는 말한다. “노래하는 자들은 어디 있는가? 어째서 그들이 하나님을 찬미하는 직무를 수행하지 않는가? 어째서 그들은 모두 향리로 돌아가 버렸는가? 밭의 소출로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함이니, 이는 그들이 정당한 급여를 지급받지 못했기 때문이로다.” 초라한 급여는 초라한 사역자를 만든다. 일꾼들이 소홀히 여김을 받을 때, 그들의 일 역시도 소홀히 되어질 것이다. 노래하는 자들에게 급여가 지급되도록 결정된 것은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었다(12:47). 그러나 사람들이 그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므로 그 일은 곧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Ⅱ.이에 느헤미야가 민장들을 꾸짖음. 그들은 레위 사람들로 하여금 직무에 더욱 충실할 수 있도록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해 주었어야 했다. 그리스도인 통치자들은 사역자들과 백성들이 각각 자신의 의무를 다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느헤미야는 먼저 민장들에게 이렇게 힐문한다.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 바 되었느냐?(13절). 어찌하여 레위 사람들의 생계를 돌보지 않았느냐? 어찌하여 이런 일을 미리 예방하지 못했느냐?” 백성들은 레위 사람들을 저버렸는데, 이것은 율법이 금한 것이었다(신 12:19; 14:27). 그러자 레위 사람들도 하나님의 전의 직무를 저버렸다. 자신들의 책무를 저버린 사역자들과 백성들 그리고 그 일을 방치한 통치자들은 때가 되면 반드시 힐문을 당하게 될 것이다. II.느헤미야가 즉시로 레위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아 제자리에 세움(11절).밭에 있는 레위인은 제자리를 떠난 자이다. 그의 자리는 하나님의 전이며, 따라서 그는 그 곳에 있어야 한다. 직무에 게으르고 있다가 새롭게 부름을 받음으로써 심기일전하여 새로운 마음으로 직무에 충실하게 되는 것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골 4:17). IV.느헤미야가 백성들에게 십일조를 가져오도록 함(12절). 느헤미야의 열심을 보고 백성들도 열심을 내었다. 그들은 레위 사람들에게 몫을 지급하는 일을 더 이상 게을리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이 그리고 정직하게 십일조를 가져왔다. 더 잘 일하면 더 나은 급여를 받게 될 것이다. V.느헤미야가 레위 사람들의 급여를 신속하게 지급하도록 조치함. 이 일을 맡을 자로서 충직한 자로 인정된 자들이 임명되었다(13절). 그들은 다른 일들도 충직하게 행함으로써 이와 같은 아름다운 지위를 얻은 자들이었다(딤전3:13). 우리는 먼저 시험해 보고 그 다음에 신뢰해야 한다. 작은 일로 시험해보고 그 후에 큰 일을 맡기는 것이 합당하다. 그들의 직분은 십일조를 받아서 그것으로 형제들에게 때에 맞게 급여를 분배해 주는 것이었다. VI.이 일로 느헤미야가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봄. 내 하나님이여 이 일로 말미암아 나를 기억하옵소서(14절). 느헤미야는 순간순간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그는 순간순간 하나님을 바라보며 자신과 자신의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곤 했다. 그와 같은 순간적인 기도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1.하나님의 전을 위해 행한 모든 일에 대해 그가 크게 만족하며 기뻐한 사실. 그는 이스라엘의 종교를 회복시키며 잘못된 일들을 바로잡는데 귀한 밑거름이 되었는데, 이러한 사실을 생각할 때 그는 크게 만족하며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의 사역자들에게 은총을 베푼 자들의 가슴은 이와 같이 은밀한 기쁨과 만족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2.이 모든 일로 인해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하나님께 청한 사실. 이것은 교만에서나 혹은 자신이 행한 것을 자랑하고자 하는 마음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 아니었다. 하물며 자기 의를 의뢰한다든지 혹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빚진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다만 정직하고 순전한 마음으로 그 모든 일을 행했음을 겸손하게 고하면서, 하나님이 불의하지 아니하사 그의 행위와 사랑으로 섬긴 것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을 것을 믿는 믿음을 나타낸 것이었다(히 6:10). 여기에서 그가 얼마나 겸손하게 하나님께 기도하는지 주목하라. 그는 “내게 상을 주소서” 라고 기도하지 않고 “나를 기억하소서” 라고 기도했다. 그는 “나의 선행을 지우지 마옵소서” 라고 기도했을 뿐 “그것을 기록하고 널리 알리소서” 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큰 상을 받았으며 그의 선행은 온전히 기록되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가 구한 것 이상으로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의 전을 위해 그리고 신앙을 증진하며 장려하기 위해 행해진 일들은 선한 일이라는 사실을 주목하라. 그러한 일들 속에는 의와 경건이 있으며, 하나님은 그러한 일들을 결코 잊거나 지우지 않으실 것이다. 그것들은 결코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2.느헤미야는 유다에서 안식일이 짓밟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팔았고 또한 유명한 상업 도시인 두로의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거하면서 안식일에 각양 물건들을 팔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느헤미야는 유다의 모든 귀인들을 꾸짖으면서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너희 열조가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으로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이제 너희가 오히려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함이 더욱 심하게 하는도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느헤미야가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에는 열지 말라고 하고 또한 안식일에 아무 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여기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고자 하는 느헤미야의 열심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또한 안식일[주일]이 더렵혀 질 때 교회의 상태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느13:15-22, 출20:8, 사56:2)
답)매튜헨리주석-우리는 여기에서 느헤미야가 적극적으로 개혁한 또 한 가지 일을 보게 된다. 그는 안식일을 다시금 거룩하게 함으로써 넷째 계명의 권위를 되살렸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과 그 곳에서 행해지는 직무를 위해 마땅히 행해져야 할 일이었다. 성일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곳에서 거룩한 의무 역시 그렇게 취급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보게 된다. I.안식일을 더럽히는 것에 대한 견책 안식일의 율법은 매우 엄격할 뿐 만아니라 지극히 합당한 이유를 가진 것이었다. 왜냐하면 안식일이 짓밟힐 때 종교 역시도 결코 찬란한 꽃을 피울 수 없기 때문이다. 느헤미야는 심지어 유다에서조차 안식일의 율법이 함부로 짓밟혀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유다에게 안식일 율법은 언약의 표징으로 주어진 율법이었다). 그는 안식일 율법이 짓밟히는 것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자신의 직무를 올바로 이행하고자 하는 통치자는 악한 것을 찾아내기 위해 자신의 눈으로 부지런히 살필 것이다. 느헤미야의 마음을 더욱 근심케 한 것은 얼마 전 하나님께 봉헌된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조차 안식일이 총체적으로 더럽혀지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1.농부들은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운반했다(15절). 안식일은 심지어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쉬어야 했다(출34:21). 이러한 말씀이 특별히 명기된 것은 그런 때에는 사람들이 좀 더 자의적으로 행동하기 쉽고 또 하나님이 자신들의 그와 같은 행동을 눈감아 주실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2.짐꾼들은 여러 가지 짐을 나귀에 실었다. 안식일에는 짐을 져서는 안 되며 (렘17:21), 짐승까지도 쉬게 해야(신5:14) 했다. 이와 같은 명백한 명령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러한 말씀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3.행상인들과 소상인들은(이들은 유명한 상업도시인 두로 사람들이었다) 안식일에 각양 물건을 팔았다(16절). 그리고 유다와 예루살렘의 자손들은 그러한 물건들을 구입함으로써 아버지의 날을 장사하는 날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이것은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넷째 계명을 깨뜨리는 것이었다. 이 백성이 성소를 버리고 안식일을 더럽힐 때가 바로 종교가 타락하고 행습이 부패한 때였던 사실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Ⅱ.그에 대한 개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심을 가진 자들은 안식일이 더럽혀지는 것을 볼 때 참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여기에서 안식일을 위한 느헤미야의 열심이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보게 된다. 1.그는 안식일을 더럽히는 자들에게 경계했다(15, 21절). 느헤미야는 자기가 그것을 얼마나 싫어하는지를 나타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그것이 큰 죄라는 사실을 납득시키고자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를 보여주었다. 그는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에 대해 징벌을 내리기 전에 먼저 그 일이 악한 일임을 분명하게 입증하고자 했다. 2.그는 이 일과 관련하여 유다의 귀인들을 꾸짖었다(17절).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잘못한 일이 있을 때는 마땅히 견책을 받아야 한다. 아니,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먼저 그렇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1)느헤미야는 그들에게 힐문한다: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17절). 그들 즉 유다의 귀인들은 곡식을 운반하지도 않았으며 생선을 팔지도 않았다. 그러나 [1]그들은 그렇게 하는 자들을 묵인했다. 자신들의 권력을 사용하여 사람들의 악행을 막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스스로를 그 일에 공범으로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헛되이 칼을 가지고 있었다. [2]그들은 다른 일들에 있어 나쁜 모범을 보였다. 만일 귀인들이 안식일에 할 일 없이 모여 잡담이나 나누며 유희나 즐긴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모범을 따라 세속적인 일에 종사하며 안식일을 더럽히지 않겠는가? 만일 우리의어떤 그릇된 행동이 다른 사람들을 죄로 이끈다면, 우리는 그러한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2)느헤미야는 그러한 행동이 하나님과 우리 자신의 영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으로부터 출발한 것임을 역설한다. (3)느헤미야는 그들과 더불어 이 문제에 대해 변론한다(18절). 안식일을 더럽힌 것은 하나님의 재앙을 불러들인 죄들 가운데 하나이며, 만일 그들이 그로부터 교훈을 받지 못하고 다시 같은 죄로 돌아간다면 필경 또다시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들이게 될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더욱 심하게 임하도록 하는도다. 에스라 역시도 이와 비슷하게 기도했다: 우리가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면 주께서 어찌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자가 없도록 진노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스9:14). 3.그는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 막고자 했다. 만일 처벌하지 않고도 개혁시킬 수 있다면, 그는 굳이 그들을 처벌하지 않으려고 했다. 만일 그가 그들을 처벌해야만 했다면, 그것은 오로지 그들을 개혁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통치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통치원칙이 된다. 그들은 채찍과 회초리를 사용하되 그러나 가능한 최소한으로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1)느헤미야는 안식일이 시작되는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예루살렘 성문을 닫도록 명령하고 자기 종자들을 세워 지키도록 했다(19절). 그렇게 하여 안식일 동안 어떤 짐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고 그럼으로써 안식일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했다. 성전에 예배하러 오는 자들은 물론 들고나는 것이 허용되었지만 물건을 파는 자들은 결코 허용되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도성 밖에서 자야만 했다(20절). 의심의 여지 없이 그들은 그 곳에서 안식일이 빨리 지나 곡식을 팔 수 있게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2)느헤미야는 매매할 상품을 가지고 성문으로 들어오는 자들에게 강력하게 경계했다(21절). 또다시 안식일에 들어오면 잡겠다고 위협함으로써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이와 같이 개혁자들이 잘못된 폐습을 고치기 위해 마음을 굳게 하면, 때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기도 하는 법이다. 악이 오랫동안 묵인될 때 사람들은 담대해지게 되며, 그러한 악을 바로잡고자 할 때 많은 반발과 저항을 야기하게 된다. 그러나 통치자가 그러한 악과 맞싸우고자 나설 때, 악은 움츠리고 숨게 될 것이다. 심판 자리에 앉은 왕은 그의 눈으로 모든 악을 흩어지게 하느니라(잠20:8). (3)느헤미야는 레위 사람들에게 몸을 정결하게 하고 성문을 지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고 지시했다(22절). 그와 그의 종자들은 곧 궁으로 돌아가야 했다. 따라서 느헤미야는 그와 같이 조치함으로써 자신이 있을 때뿐만 아니라 없을 때에도 안식일이 거룩하게 지켜지도록 했다. 이와 같이 통치자들과 사역자들이 힘을 합치면 개혁은 훨씬 손쉽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 나타나는 느헤미야의 용기와 열심과 신중함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안식일과 관련한 느헤미야의 개혁이 곧 무위로 돌아갔다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다. 도리어 그의 개혁은 유대인들에게 오랫동안 큰 영향을 끼쳤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훗날 우리 구주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과 관련하여 반대쪽 극단, 다시 말해서 지나치게 의식에 집착하는 쪽으로 흐른 것을 보게 된다. 4.느헤미야는 또다시 기도하는데(22절),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을 관찰할 수 있다. (1)간구: 나를 기억하소서. 느헤미야는 마치 십자가 위의 강도처럼 기도했다(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기억해 주는 것으로 족하게 여겼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은 너무도 많고 풍부하다(시40:5). 계속해서 느헤미야는 “나를 아끼시옵소서” 라고 덧붙인다. 그가 이와 같이 기도한 것은 자신이 행한 일이 그렇게 할 만한 충분한 공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다만 예레미야의 다음과 같은 기도들처럼 자신의 생명을 아껴 달라고 간구한 것일 뿐이었다. 주의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나로 멸망하지 아니하게 하옵시며(렘15:15), 여호와여 나를 징계하옵시진노로 하지 마옵소서(렘10:24), 주는 내게 두려움이 되지 마옵소서(렘17:17), 최고의 성자가 최선의 일을 했을 때조차도 아끼시는 은혜를 필요로하는 사실을 주목하라. 왜냐하면 선을 행하고 죄를 짓지 않는 의인은 없기 때문이다. (2)간구의 근거: 주의 크신 은혜대로, 혹은 주의 크신 은혜를 따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호소할 때 의지할 것은 우리 자신의 어떤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라는 사실을 주목하라.
3.느헤미야는 유다 백성들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자들과 결혼한 것을 보고서는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면서 “너희는 너희 딸들로 저희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이나 너희를 위하여 저희 딸을 데려오지 않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느헤미야는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저는 열국 중에 비길 왕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이 저로 왕을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으나 이방 여인이 저로 범죄케 하였나니 너희가 이방 여인을 취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 유다 백성이 이방인과 결혼하면 어떠한 치명적인 결과를 얻게 되는지에 대하여 솔로몬의 사례를 통하여 설명해 보십시오. 또한 그것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는 영적인 교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느13:23-31, 신7:3-4, 왕상11:4, 고후6:14)
답)매튜헨리주석-우리는 여기에서 느헤미야가 유다 백성들을 정결케 하기 위해 시행한 또 하나의 조치를 보게 된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스스로를 부요케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와 같은 목적을 위해 사용했다. I.유다 백성들이 이방 여자들과 결혼함으로써 스스로를 타락시킴. 이 문제는 에스라 때에도 있었던 문제였다(스9장,10장). 이와 같이 더러운 영은 쫓겨났다가도 경계가 소홀해지면 다시 들어온다. 여기에서도 그랬다. 에스라 시대에 이방 여자들과 결혼한 자들은 아내를 내보내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그로 인해 많은 가정에서 큰 분란과 혼란이 일어났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 교훈을 배우지 못했다. 우리에게는 금지된 것을 좇으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 느헤미야는 훌륭한 총독답게 자기가 다스리는 백성들의 형편을 세심하게 살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잘못된 문제를 파악하고 그러한 문제를 시정할 수 있는 방책을 마련할 수 있었다. 1.느헤미야는 그들이 어디로부터 아내들을 데려왔는지 세심히 살폈다. 그럼으로써 많은 유대인들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의 여자들을 아내로 삼았음을 알게 되었다(23절).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타국 여자들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든지 아니면 이방인들과 연합함으로써 더욱 강하고 부요하게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 어떻게 이 일을 책망하셨는지 보라(말2:11). 유다가 거짓을 행하였고 여호와께서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도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뜨렸다(특별히 에스라 때에 이 문제와 관련하여 맺은 언약을 깨뜨렸다). 2.느헤미야는 그들의 자녀들과 이야기해 보고는 그 아이들이 이방인의 자녀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각 족속의 방언을 말했기 때문이었다(24절). 그들은 그들의 어머니와 유모와 하녀들의 품에서 양육을 받고 말을 배웠다. 따라서 그들은 유다 방언을 제대로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이 말하는 유다 방언 속에는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의 방언이 절반쯤 섞여 있었다. 다음의 사실들을 주목하라. (1)아이들은 유년시절에 대부분 어머니로부터 배운다는 사실 아이들은 자기 어머니를 흉내 내며 닮는 경향이 있다. (2)부모 중 한 쪽이 악할 때 아이들은 그 쪽으로 향하게 되기 쉽다는 사실. 그리스도인들이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함께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3)아이들을 교육할 때 특별히 언어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는 사실. 그럼으로써 아이들로 하여금 아스돗 방언 즉 경건치 못하고 추잡하며 더러운 말을 배우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Ⅱ.느헤미야가 이러한 타락을 척결함. 1.느헤미야는 이 일이 악한 일이라는 사실과 이러한 악한 일을 척결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나타냈다. 그는 가능하면 백성들과 다투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일은 결코 묵인되어서는 안 되는, 그리고 반드시 징벌되어야만 하는 일이었다(27절). “너희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이 모든 큰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 우리는 이 일을 저지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만 하느니라. 너희는 아내들을 내어보내지 않게 해 달라고 구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너희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노라. 왜냐하면 그와 같은 죄책을 씻고 더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니라.” (1)느헤미야는 이방인과 결혼하는 것이 큰 죄임을 입증하기 위해 신명기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그들에게 그 말씀대로 행할 것을 맹세하도록 했다: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신7:3). 사람들을 죄로부터 돌이키게 하고자 할 때 우리는 먼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을 통해 그것이 죄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2)느헤미야는 이방인과 결혼하는 것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한 가지 선례를 인용한다(26절)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위대하며 선한 자들의 실패가 기록된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들을 통해 교훈을 얻고 그와 같은 유혹을 피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솔로몬은 뛰어난 지혜를 가진 사람이었으며, 이 일에 있어 그와 비견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이방 여자들과 결혼했을 때, 그의 뛰어난 지혜조차도 그녀들의 올무로부터 그를 지켜줄 수 없었다. 도리어 그로 인해 지혜가 떠남으로써 그는 너무도 어리석게 행동하고 말았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자였다. 그러나 이방 여자들과 결혼함으로써 그는 하나님의 은총을 잃어버리고 말았으며 그의 영혼 속에 있는 거룩한 은혜의 불은 거의 꺼질 지경이 되었다. 그는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는 왕이었지만, 그와 같은 어리석은 일로 인해 열두 지파 가운데 열 지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너희는 이방여자들과 결혼하고서도 이스라엘 백성의 순전함을 지킬 수 있다고 변론한다마는 그러나 솔로몬조차도 그렇게 할 수 없었느니라. 그조차도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2.느헤미야는 자신이 이 일로 크게 분노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나타냈다(25절): 내가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며 그들 중 몇 사람을 때리고 그들의 머리털을 뽑고,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했지만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것이 유치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입을 잠잠케 하고 난 후 그는 그들을 저주했다. 다시 말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면서 그와 같은죄가 마땅히 가져오게 될 보응을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그러고 나서 느헤미야는 그들 가운데 가장 완악한 자 몇 명을 뽑아 때리고 머리털을 뽑았다. 여기에서 때렸다는 것은 율법에 따라 그 일을 맡은 관원에게 그들을 때릴 것을 명령했다는 의미다(신25:2,3). 그리고 머리털을 뽑은 것은 머리털을 자르거나 민 것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수치의 징표였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의 머리털을 자랑했을 것이다. 따라서 느헤미야는 그것을 뽑음으로써 흉하게 하고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것은 적어도 어느 정도 기간 동안 그들에게 수치의 낙인이 되었다. 비슷한 상황에서 에스라는 죄에 대한 거룩한 슬픔으로 자신의 머리털을 뽑은 반면 느헤미야는 죄인들에 대한 거룩한 분개로 그들의 머리털을 뽑았다. 여기에서 지혜롭고 선한 자들 가운데에도 서로 다른 기질이 있는 것을 주목하라. 은혜도 다양하고 은사도 다양하지만 그러나 같은 성령으로 말미암는다. 3.느헤미야는 더 이상 이방인 아내를 취하지 말 것과 이미 취한 이방인 아내들은 내어보낼 것을 명령했다. 이와 같이 하여 느헤미야는 그들을 모든 이방인들로부터 깨끗하게 했으며(30절), 또다시 그와 같이 하지 않겠노라고 맹세하도록 했다(25절). 이처럼 느헤미야는 그 같은 폐습을 척결하고 그것이 또다시 재발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사용했다. 4.느헤미야는 제사장 가문들로 하여금 이러한 흠과 죄책에 떨어지지 않도록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느헤미야는 대제사장의 손자 가운데 하나가 유대인의 원수인 산발랏의 딸과 결혼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의 가문에 있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원수와 혼인하여 인척관계를 맺는 것은얼마나 잘못된 일인가! 아마도 이 젊은 제사장(즉 대제사장의 손자로서 산발랏의 딸과 결혼한 자)은 자기 아내를 내보내지 않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느헤미야는 그를 쫓아내어 떠나게 했다(28절). 다시 말해서, 그의 제사장직을 박탈하고 영원히 제사장직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요세푸스는여기의 제사장직을 박탈당한 자가 므낫세였다고 하면서 느헤미야가 그를 쫓아내자 그는 자기 장인인 산발랏에게 갔으며 산발랏은 그를 위해 그리심 산 위에다 성전을 지어 주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그 곳에서 대제사장이되게 함으로써 사마리아의 헛된 믿음(즉 사마리아 산에 있는 성전이 참된 성전이라는 믿음의 기초가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그와 같은 헛된 믿음이 우리 구주의 시대까지 계속된 것을 보게 된다(요4: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거니와. 느헤미야는 이와 같이 제사장직의 명예를 실추시킨 자를 쫓아낸 후 다시금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을 세워 각각 자기의 일을 맡게 했다(30절). 제사장직의 명예를 실추시킨 자를 쫓아낸 것은 그들에게 있어 결코 손실이 아니었다. 그가 없음으로써 그들의 일은 더 잘 행해질 수 있었다. 유다가 자기 길로 갔을 때 우리 구주께서는 “이제 인자가 영광을 얻었도다” 라고 말씀하셨다(요13:30,31). 우리는 여기에서 이와 같은 상황에서 드려진 느헤미야의 기도를 보게 된다. (1)그는 “내 하나님이여 그들을 기억하옵소서” 라고 기도한다(29절). 아마도 이것은 “여호와여 그들을 깨닫게 하시고 돌이키소서. 그들로 하여금 마땅히 행해야 할 일을 깨닫게 하사 그들 본연의 자리로 돌아오게 하소서” 라는 기도였든지, 아니면 “그들을 기억하사 그들의 죄를 헤아리소서” 라는 기도였을 것이다. 후자의 해석을 취할 때, 이 기도는 하나님이 그들의 죄를 기억하실 것이라는 예언이 될 것이다. 제사장직을 더럽히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대수롭지 않게 여김을 받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자들이 그가 다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많고 세력이 컸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그는 기도한다.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을 처리해 주소서. 주의 손으로 그 일을 처리해 주소서.” (2)그는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옵소서” 라고 기도한다(31절). 백성들은 자신들을 위해 행해진 위대한 일들을 종종 잊곤 한다(전9:15). 따라서 느헤미야는 상을 베푸는 일을 하나님께 돌리면서 하나님이 복을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리의 모든 간구의 요점은 바로 이것이 되어야 한다: 내 하나님이여 나를 영원히 기억하옵소서. 이것보다 우리를 더 복되게 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참고성경구절
신12:19 너는 삼가서 네 땅에 거하는 동안에 레위 인을 저버리지 말찌니라
신14:27 네 성읍에 거하는 레위 인은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니 또한 저버리지 말찌니라
고전9: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출20: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사56:2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 손을 금하여 모든 악을 행치 아니하여야 하나니 이같이 행하는 사람, 이같이 굳이 잡는 인생은 복이 있느니라
신7:3-4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찌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왕상11:4 솔로몬의 나이 늙을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니
고후6: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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