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BS_Joshua_여호수아 제38과
공부할 내용: 여호수아 22장 21-34절
본문
2024년 8월 4일(주일) 오후 4시 줌zoom 그룹성경공부
1.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자손이 이스라엘 천천의 수령들에게 대답하기를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시나니 이스라엘도 장차 알리라 이 일이 만일 여호와께 패역함이거나 범죄함이거든 주는 오늘날 우리를 구원치 마시옵소서 우리가 단을 쌓은 것은 돌이켜 여호와를 좇지 아니하려 함이거나 혹시 그 위에 번제나 소제를 드리려 함이거나 혹시 화목제물을 드리려 함이어든 여호와는 친히 벌하시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하였는데, 이러한 호칭이 지닌 의미가 무엇이며 또한 이러한 호칭에 담긴 하나님을 향한 태도가 어떠한지에 대하여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또한 여기 “여호와는 친히 벌하시옵소서”라고 하였는데, 과연 누가 이러한 말은 할 수 있습니까? (수22:21-23, 출20:7, 잠9:10, 히10:31, 시43:1, 고전4:3-4)
답)매튜헨리주석-I.그들은 이 제단이 실로의 제단과 경쟁하는 또 하나의 제단으로서 희생이나 제물을 드리는 목적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며, 또 자신들은 실로의 제단을 버리려는 생각이 추호도 없음을 엄숙하게 항변한다. 실제로 그것은 제단의 모양과 양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종교적인 용도로 봉헌하지 않았으며 어떤 성별의 의식을 행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그것이 그와 같은 용도를 위한 것이라고 정죄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항변이 신빙성 있는 것임을 입증하기 위해, 1.그들은 먼저 하나님께 엄숙하게 호소한다(22절). 이와 같은 호소와 함께 스스로를 위한 변명을 시작하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러고 나서 형제들들 만족시키고자 한다. (1)여기에 하나님께 대한 깊은 경외심과 존경심이 표현된다.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시나니.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읽을 때 좀 더 원문에 가깝게 된다: 신들의 신이신 여호와, 신들의 신이신 여호와 그가 아시나니. 이러한 표현은 그분의 자존성(self-existence)과 자충족성(selfsufficiency)을 나타낸다. 그는 여호와이시다. 그는 모든 존재와 권세들, 심지어 신이라 불리며 경배를 받는 것들까지도 주관하는 최고의 주권을 갖고 계시다. 이러한 짤막한 신앙고백은 그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려고 한다는 형제들의 의심을 풀어주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떻게 그들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이와 같은 사상을 품을 수 있었을까?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말할 때 항상 존경심과 진지함을 가지고 말해야 하며, 또한 그의 이름을 언급할 때는 엄숙함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하나님이 아신다”라고 가볍고 경솔하게 하늘에 호소하는 자들은 그분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지 않았는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그와 같은 가벼운 태도는 여기의 호소와는 전연 다른 것이다. (2)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자신들의 호소가 결코 거짓이 아닌 정직한 것임을 확실하게 나타낸다. 그들은 그 논쟁을 오직 진실에 따라 판단하는 ‘신들의 신’(God of gods)께 돌리는데, 그분의 판단은 죄인에게는 두려움이 되고 정직한 자에게는 기쁨이 되는 것이다. “이 일이 만일 여호와를 거역함이거나 범죄함이거든,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이 제단을 세운 것이 실로에 있는 여호와의 제단과 맞서기 위함이거나 혹 파당을 만들거나 혹 어떤 새로운 신이나 종교를 세우기 위함이라면” [1] “그가 아시나니(22절). 그는 마음의 생각과 계획을 완전히 아시며, 특별히 우상 숭배로 향하는 모든 마음을 온전히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시 44:20, 21). 어떤 의미로든 이것은 그분 앞에서의 문제이다. 우리는 그분이 이것을 아신다고 믿는다.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도 이것을 숨길 수 없다.” [2] “여호와는 친히 벌하시옵소서. 그분이 그리 하실 것을 우리는 아나니, 그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 만일 어떤 반역이 있다면 하나님의 공의로써 복수해 달라는 이와 같은 기원은 오직 깨끗한 양심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다음을 주목하라. 첫째로, 하나님이 마음을 아신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는 모든 신앙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정직할 수 있다. 둘째로, 우리가 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될 때 우리의 진실성에 대하여 하나님께 겸손하게 호소할 수 있음은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된다. 고린도전서 4:3-4을 보라.
2.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자손이 계속하여 대답하기를 “우리가 목적이 있어서 주의하고 이같이 하였노라 곧 생각하기를 후일에 너희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 르우벤 자손 갓 자손아 여호와께서 우리와 너희 사이에 요단으로 경계를 삼으셨나니 너희는 여호와께 분의[분깃]가 없느니라 하여 너희 자손이 우리 자손으로 여호와 경외하기를 그치게 할까 하여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가 이제 한 단 쌓기를[한 제단 쌓기를] 예비하자 하였노니 이는 번제를 위함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함도 아니라 우리가 여호와 앞에서 우리 번제와 우리 다른 제사와 우리 화목제로 섬기는 것을 우리와 너희 사이와 우리 후대 사이에 증거[a witness between us, and you, and our generations after us, 형제적 연합의 상징]가 되게 할 뿐으로서 너희 자손으로 후일에 우리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께 분의가 없다 못하게 하려 함이로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자손은 자신들이 세운 제단이 우상 숭배의 제단이 아니라 우리와 너희 사이와 우리 후대 사이의 증거가 되는 제단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 이 제단을 기념비, 승전비, 어떤 기적에 대한 증거물과 비교해 보십시오. 또한 여기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자손은 후일에 자신의 자손들이 이스라엘 공적 예배로부터 단절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데, 공적 예배로부터 단절되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까? 또한 예배의 형식과 신앙의 생명력의 관계에 대하여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수22:24-29, 수4:20-21, 삼상7:12, 시122:1, 요4:23-24)
답)매튜헨리주석-Ⅱ.그들은 이 제단을 세운 참된 목적과 의도를 충분히 설명한다. 우리는 그들이 자신들의 목적과 의도를 진실되게 말했으며 나중에 그러한 목적과 의도를 수정하거나 완화시키지 않았다고 믿는다. 이들은 요단 동편에 자신들의 기업을 달라고 요청할 때에도 역시 정직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그 때 역시도 심지어 모세에게조차도 오해를 받기는 했지만, 그들의 해명에 의하면, 그들이 제단을 세운 것은 형제들과 분리되기 위한 것 즉 실로에 있는 여호와의 제단으로부터 분리되기 위한 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반대로 그것은 형제들과 그리고 하나님의 제단과의 교제를 담보하고 좀 더 확고히 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그분을 영원히 섬기겠다는 결심의 증표였다(27절). 1.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에 대해 설명했는데, 그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들의 자손들이 성막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음으로 해서 이스라엘 공동체로부터 이방인으로 간주되거나 혹은 그렇게 취급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24절). 제단을 세운 것은 이러한 두려움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이와 같은 말 속에는 그들 안에 있었던 마음의 염려와 번민이 나타나 있는데, 이와 같은 염려와 번민은 제단을 세움으로써 마음의 안정을 얻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을 때(아마도 오래 전부터 이 일을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만일 그랬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염려와 번민을 여호수아에게 말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이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고 결국 모두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훗날 벌어지게 될지도 모를 매우 우울한 전망, 즉 자신들의 자손들이 다른 지파들에 의해 하나님의 제단과 거기에서 드려지는 제물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지금 그들은 형제로 인정되고 있으며, 다른 어떤 지파들과 마찬가지로 성막에 가서 제물을 드릴 수 있다. 그러나 만일훗날 그들의 자손들이 형제로서 인정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은 먼 거리로 인해 그리고 요단이 가로막음으로 인해 자주 왕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다른 지파들처럼 일년에 세 번씩 계속해서 절기에 참석할 수 없을 것이고,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의 특권을 계속해서 주장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스라엘 교회로부터 있으나마나한 존재로 간주되게 될 것이며, 점차로 지체에서 배제될 것이다: 너희 자손들이(이들은 거만함으로 제단의 특권을 독점할 것이다) 후일에 우리 자손들에게(어쩌면 이들은 그러한 특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 모른다)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께 받을 분깃이 없다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다음을 주목하라. (1)공적 예배로부터 단절되는 자들은 모든 신앙을 잃게 될 것이며, 점차로 여호와 경외하는 것을 그만두게 될 것이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생명력과 능력이 없이도 신앙생활의 형식과 신앙고백을 지켜나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신앙의 생명력과 능력은 그것의 형식과 신앙고백이 없이는 오래 유지되지 못할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은혜의 수단을 잃는다면, 은혜도 잃게 될 것이다. (2)예배로부터 위로와 유익을 찾는 자들은 자손들에게도 이런 신앙적 유산이 보존되고 영속되기를 갈망할 것이고, 따라서 자손들이 여호와를 따르는 것을 중단하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예방책을 사용할 것이다. 2.이렇게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들이 취한 방책(26-28절). “그러므로 우리의 자손에게 하나님의 제단과의 관계를 확고히 하고 그것에 대한 그들의 자격을 증거하기 위해,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와 너희 사이에 증거가 되기 위하여 이제 한 제단 쌓기를 준비하자 하였노라.” 이와 같이 우리의 보호 아래 모조 제단을 둠으로써, 이것은 우리 자손들이 원 제단의 특권과 권리를 가지고 있음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 제단이 제사와 제물을 위해 결코 사용되지 않는 것을 보고는, 그것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을 것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대답, 즉 이 제단은 ‘다른 형제들과의 교제와 여호와의 제단에 함께 참여함의 증표’ 로서 분리된 지파들에 의해 세워졌다는 대답이 주어질 것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큰 제단이다. 우리가 그와 관계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성령의 모범과 그에 대한 우리의 순종일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 분깃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우리에게 성도의 견인(perseverance)의 보증이 주어져 있음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될 것이다.
답)칼빈주석-그들이 비난받던 치욕적인 불신앙 문제는 이제 충분히 반박되었지만 율법에서는 어떠한 상도 세우지 못하게 금하고 있으므로 아직 그들이 모든 면에서 비난을 면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 역시 하나님을 숭상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상을 제외하고는 어느 것도 정죄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통해서 쉽게 변명할 수 있다. 승전비, 어떤 기적에 대한 증거, 하나님께서 특별히 보여주신 호의에 대한 기념비로서의 돌무지는 율법 어느 곳에서도 금지되지 않고 있다(출20:4,레26:1,신5:8). 그렇지 않았더라면 여호수아와 그밖의 많은 거룩한 사사들과 왕들도 속된 변화를 가져온 것으로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불쾌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자신을 흉측한 방법으로 예배할 정도로 사람들의 마음이 이리저리 끌리는 것을 보시는 것이었다. 르우벤, 갓 그리고 므낫세의 자손들은 그 제단을 단지 형제적 연합의 상징으로만 사용할 것으로 밝히고 있는데, 이것으로 그들의 변명은 충분했다. 이어서 그들은 거기에 충분한 이유를, 곧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에 열 지파 사람들이 그들과 같은 땅에 살지 않는 자신들을 낯선 사람들로 여기지 않을까 해서 그렇게 했다는 점을 덧붙이고 있다. 사실 요단강 동편의 지역은 계약에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주거지역이 다르다 해서 궁극적으로 양쪽이 분열될 염려도 없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의 후손들이 후에 일종의 일종의 공문서와 같은 이 제단을 방편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면서 한 분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연합될 수 있어야겠다는 점을 시기적절하게 거론하고 있다.
3.제사장 비느하스와 그와 함께 한 사신들은 르우벤 자손, 갓 자손, 므낫세 자손의 말을 듣고 좋게 여기면서 “우리가 오늘날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 줄을 아노니 이는 너희가 이 죄를 여호와께 범치 아니하였음이라 너희가 이제 이스라엘 자손을 여호와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보고하였고, 그 말을 들은 이스라엘 자손은 즐거워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그리고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그 제단을 엣[Ed]이라 칭하면서 우리 사이에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되시는 증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자손은 여호수아에게 미리 조언을 구하지 않고 일을 행하므로 이스라엘 자손의 사신들이 파견되는 수고로운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데, 비느하스와 사신들은 그들의 일하는 방식이 다소 서툴고 사려 깊지 못하더라도 그러한 부족함을 이해해주고 용서해 주었는데, 오늘날 우리들은 상대방의 부족함을 보게 되면 어떻게 반응합니까? 사랑으로 모든 것을 믿는 것보다 상대방의 잘못을 끝내 입증하려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교만하고 완악한 영이 혹 우리들에게 없는지 대화해 보십시오. (수22:30-34, 고전13:7, 롬14:1, 마7:1-2, 엡4:32)
답)매튜헨리주석-우리는 여기에서 이 문제에 대한 선한 결말을 보게 된다. 만일 양편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피차 화평을 추구하지 않았다면,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을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종교와 관련한 싸움은 지혜와 사랑의 결핍으로 인해 종종 가장 맹렬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싸움이 되곤 한다. 그러나 여기의 제단과 관련한 문제에서, 양편은 피차의 설명과 대화를 통해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되었고 따라서 그 문제는 행복한 결말로 끝나게 되었다. I.열 지파가 보낸 사신들은 '분리된 지파 (두 지파와 반 지파)가 제단을 세운 의도가 결백한 것이었음을 듣고는 무척 기뻤다. 1.사신들은 그들의 진실성을 의심하면서 이렇게 질문하지 않았다. “너희들은 그 제단이 제사나 제물을 드리기 위함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떻게 너희를 믿을 수 있겠는가? 그것이 결코 그와 같은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을 것임을 너희들은 어떻게 보증할 것인가?” 그들은 결코 그와 같이 묻지 않았다. 사랑은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사랑은 최선의 것을 믿고 소망한다. 그리고 사랑은 거짓말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2.사신들은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그들이 너무 성급하게 그리고 아무런 의논도 없이 그 일을 행했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만일 너희가 그렇게 좋은 목적으로 그와 같은 일을 행했다면, 여호수아와 엘르아살에게 미리 조언을 구하든지 아니면 적어도 그들에게 알리기라도 할 수 있지 않았었는가? 그랬다면 이렇게 사신을 파견하는 수고와 번거로움은 없었을 것이 아닌가?” 일을 하는 방식이 다소 서툴고 사려 깊지 못하다 할지라도 그 일의 목적과 의도가 합당하고 정직하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와 같은 부족함을 용서하고 간과해야 한다. 3.사신들의 관심은, 비록 자신들이 제기했다고 해서 그 고소를 어떻게든 입증하려고, 더 많은 증거를 찾아내려는 것이 아니었다. 도리어 자신들의 잘못이 고쳐지는 것으로 즐거워했고, 그러한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형제에게 행한 어떤 견책이 결국 오해로 말미암은 잘못된 것이었음이 분명히 드러났을 때, 교만하고 완악한 영은 결코 그것을 철회하려고 하지 않고 계속해서 붙잡고 늘어지려고 한다. 이들 사신들은 결코 그와 같은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다. 도리어 형제들의 변론과 해명을 기뻐했다(30절). 그들은 형제들의 결백을 하나님의 임재의 증표로 간주했다(31절). 특별히 제단을 세운 일이 하나님의 제단에 대한 냉랭한 태도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고 오히려 그것에 대한 열정적인 애정의 결과라는 것을 알았을 때 더욱 그러했다: “너희가 이스라엘 자손을 여호와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다시 말해서 “너희는 우리가 두려워했던 것처럼 이스라엘 자손을 여호와의 손에 넘겨주지 않았다. 혹은 너희는 우리가 질투하는 죄를 범함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여호와의 심판 아래 떨어지게 하지 않았다.” II.이스라엘 회중들은 자신들이 보낸 사신들이 ‘두 지파와 반 지파’ 형제들의 해명과 관련하여 보고하는 것을 듣고 크게 만족했다. 그들은 이 사건의 전말에 대하여 들을 때까지 최소한 대표들끼리라도 함께 모여 있었던 것 같다(32절). 그리고 이 일의 진상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들은 크게 기뻐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했다(33절). 우리의 형제들이 믿음을 지키며 경건의 능력에 대한 열심을 가지고 있고 또 믿음과 사랑 안에서 성령의 하나됨을 지킬 때, 우리는 이에 대해 크게 기뻐하며 감사해야 한다. 이러한 일들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는 위로와 기쁨을 얻자. 이와 같이 만족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즉시 무기를 내려놓고 형제들에 대하여 벌이려고 했던 전쟁에 대한 모든 생각들을 멀리 내던져 버렸다. 그리고 생각건대 그들은 실로에서 형제들을 만나게 될 다음 절기를 열렬히 소망하며 기다렸을 것이다. Ⅲ.분리된 지파 즉 두 지파와 반 지파도 만족스러웠다. 왜냐하면 그들은 비록 그들이 상상했던 일들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제단에 대한 이와 같은 모형을 자신들 가운데 가지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여호수아와 족장들은, 비록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것이 우상 숭배의 빌미가 될 가능성이 다분히 있었다 할지라도,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제단을 헐 것을 명령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강한 자는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운 제단의 목적을 분명히 했다. 그것은 오직 ‘실로의 제단’ 과의 교제를 위한 증거로만 사용될 것이었다. 이러한 목적은 분명하게 기록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당시의 통상적인 관례에 따라 그 제단에다가 그와 같은 의미를 담는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그렇게 했다(34절). 그들은 그 제단을 '엣'이라 불렀는데, 그것은 증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계를 증거하는 것이었으며, 또한 그들이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며 다른 신은 없다”는 신앙고백에 있어 다른 지파들과 일치함을 증거해 주었다. 그것은 또한 자손들에게 순전한 신앙을 물려주려는 관심을 증거하는 것이었고,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그를 좇는 데서 떠날 때 그들을 대적하는 증거가 될 것이다.
*참고성경구절
출20:7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잠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히10: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시43:1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치 아니한 나라에 향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고전4:3-4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수4:20-21 여호수아가 그 요단에서 가져 온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 가로되 후일에 너희 자손이 그 아비에게 묻기를 이 돌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삼상7: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시122:1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요4:23-24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고전13:7 모든 것을 참으로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롬14: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마7:1-2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엡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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