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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BS_Ezra_에스라 제3과

공부할 내용: 에스라 3장 1-13절

본문

20223월 20(주일) 오후 330분 줌zoom그룹성경공부


1.바벨론으로부터 돌아온 유다 백성들은 각자의 성읍들로 흩어져서 살고 있었는데, 칠월이 되었을 때에 그들은 예루살렘에 함께 모였습니다.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 그의 형제들인 제사장들,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 그의 형제들이 일어나서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번제를 드리기 위하여 이스라엘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습니다. 여기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으로부터 돌아와 각자의 성읍들에 정착하면서 할 일들이 너무도 많이 있었을 것인데, 그러나 그들이 그러한 모든 일들을 뒤로 미루어두고 예루살렘에 함께 모여 우선적으로 제단을 만든 것은 오늘날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게 어떠한 영적인 교훈을 줍니까? (3:1-6, 12:7-8, 6:33)

  )매튜헨리주석-I.예루살렘에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곱째 달에 일제히 모임(1). 우리는 그들이 봄에 바벨론을 떠났을 것이며 또 예루살렘에 도착하기까지 적어도 4개월 정도는 걸렸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왜냐하면 에스라와 그의 무리가 돌아올 때도 그만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7:9). 그러므로 일곱째 달은 곧 다가왔다(일곱째 달은 여호와의 절기들이 많이 포함된 달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어떤 권세자의 명령에 의해서라기보다 자발적으로 예루살렘에 모였다. 그들은 최근에 각자의 성읍들로 흩어졌으며 그 곳에서 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았다. 따라서 화급한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될 때까지 하나님의 제단에 참례하는 일이 미루어질 수도 있었다(많은 사람들이 어리석게도 세상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때까지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을 미루는 것처럼). 그러나 그들은 신앙에 대한 뜨거운 열심을 품고 바벨론을 떠나 왔으므로 자신들의 모든 일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하나님의 제단으로 모였다. 그들은 지금 경건한 열심 가운데 모두 한 마음을 품고 일제히 예루살렘으로 나아왔다. 신앙적인 일을 위해 세상적인 일을 미루어 두라. 그러면 세상적인 일도 더 잘 될 것이다. .지도자들이 백성들이 참례할 제단을 만듦. 1.예수아와 그의 제사장 형제들 그리고 스룹바벨과 그의 형제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었다(2). 새 제단은 예전의 제단이 있던 그 자리에 그리고 그 기초 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3). 그러나 패트릭 주교는 다윗 시대에 성전이 건축되기 전에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해 모리아 산이 아니라 시온 산에 장막이 세워져 있었던(대상 9:23) 사실을 생각하면서 새 성전이 건축되는 동안 사용되도록 하기 위해 이 제단이 시온 산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한다. 어쨌든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배울 수 있다. (1)범사에 하나님과 함께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 형편이 힘들고 곤궁할수록 우리는 모든 행로에 더욱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힘써야 한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그의 신탁으로 인도함 받기를 기대한다면, 우리는 제물을 드려 그를 존귀케 해야 한다. (2)하나님을 예배함에 있어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없을 때 당장 할 수 있는 것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 그들은 지금 당장 성전을 건축할 수는 없었지만 그러나 제단을 마련할 수는 있었다.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든지 제단을 쌓았다.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 설교라는 촛대와 성찬이라는 진설병의 은택을 가질 수 없는 때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럴 때 만일 우리가 기도와 찬미의 제사조차 드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기도와 찬미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제단은 항상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2.여기에서 그들이 그렇게 급하게 제단을 만든 이유를 주목하라. 그것은 그들이 모든 나라 백성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3). 그들 주변에는 그들과 그들의 종교에 대해 악의를 품고 있는 원수들이 둘러싸고 있었으며, 지금 그들에게는 이러한 원수들과 더불어 싸워 이길 힘이 없었다. (1)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제단을 만들었다. 그들은 부딪히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어떤 난관들로 인해 자신들의 선한 사업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 우리의 올무가 되지 않게 하라. (2)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제단을 만들었다. 어떤 위험을 인식할 때 우리는 더욱 우리의 의무에 착념해야 한다. 지금 많은 원수들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가?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을 우리 편으로 삼고 더욱 그분과 활발한 교통을 이루어야 할 때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두려움까지도 선용할 줄 알아야 한다. 두려움이 덮칠 때는 무릎을 꿇어야 할 때이다. 심지어 사울조차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전에 적이 오면 자신이 패배를 당할 것으로 생각했다(삼상13:12). .그들이 제단 위에서 제물을 드림, 그들이 제단을 만든 것은 그것을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그 제단을 사용했다. 제단을 가진 자들은 그것을 그대로 방치해 두기만 해서는 안 된다. 1.그들은 일곱째 달 초하루부터 제물을 드리기 시작했다(6). 모세와 솔로몬의 경우처럼 그들이 처음 제물을 드릴 때 하늘로부터 불이 떨어진 것으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은 족장들처럼 보통 불로 제물을 태워 드렸다. 2.그렇게 시작된 이후로 그들은 아침 저녁으로 번제를 드려며(3) 또 항상 드리는 번제를(5) 드렸다. 그들은 매일 드리는 제사를 잃어버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쓰라린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그리하여 이제 매일 드리는 제사가 회복되었으므로 그들은 그것을 다시 잃어버리지 않도록 굳게 결심했다. 매일 드리는 양은 우리가 그의 의를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3.그들은 여호와의 모든 거룩한 절기들을 지켰으며, 각 절기 때마다 특별히 초막절에 정해진 대로 번제를 드렸다(4,5). 지금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은총을 받았으므로 이제 다가온 초막절은 특별한 의미에서 매우 시의적절한 것이었다. 지금 그들은 각자 자신들의 성읍에 다시 정착하기 시작하고 있었으므로 자기 조상들이 광야에서 장막에 거했던 것을 보다 생생하게 되새길 수 있었다. 스가랴 1418절에 나타나는 것처럼, 초막절은 복음 시대와 특별한 연관성을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지금 복음 시대가 가까워 오고 있었으므로 그 절기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초막절은 7일 동안 계속되었으며, 매일 지정된 대로 번제와 예물이 드려졌다. 그들은 매일 정수대로 즉 원어대로 각 날마다 그 날의 정해진 제물을 드렸다(2913절과 17절 이하를 보라), 만일 초막절이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복음적인 교제의 모형이라면, 우리는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매일같이 요구되는 의무를 따라 그날의 일을 행하도록 가르치는 것임을 추론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1)우리는 매일 같이 행할 그 날의 선한 일을 찾음으로써 시간을 선용해야 한다. (2)우리는 그 날의 적절한 일에 힘씀으로써 기회를 선용해야 한다. 모든 것은 때에 맞을 때 아름다운 법이다. 이 달 10일은 속죄일로서 매우 거룩한 날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지금 매우 때에 맞는 절기였다. 아마도 그들은 지금 속죄일을 지켰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이 여기에 언급되지는 않는다. 사실 내가 기억하기에 속죄일을 지키는 이야기는 구약성경 전반에 걸쳐 별로 언급된 적이 없다. 4.그들은 기쁘게 드리는 예물(free-will offering, 즉 자원하여 드리는 예물)을 드렸다(5). 율법은 많은 것을 요구했지만, 그러나 그들은 그 이상을 드렸다. 그것은 지금 그들의 열심이 너무도 뜨겁게 넘쳐흘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희생제물의 비용을 부담할 만한 넉넉한 재물을 갖고 있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제물을 드리는 데 조금도 인색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이 하나님의 제단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자신들의 식탁은 최대한 간소하게 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고난의 풀무로부터 이러한 거룩한 뜨거움을 가져오는 자는 얼마나 복된가!


2.바벨론에서 돌아온 다음 해 둘째 달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 다른 형제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 성전을 다시 건축하는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레위인들을 세워서 성전 공사를 감독하게 하였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여러 가지 반대와 난관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빨리 성전을 건축하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의 일을 일단 시작하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하여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또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때를 놓치지 않는 지혜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해 보십시오. (3:7-9, 1:5-6, 18:9-10, 10:5)

  )매튜헨리주석-.그들이 성전 건축을 준비함(7). 그들은 즉시로 이 일에 착수했다. 우리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동안에도 더 나은 일을 생각하며 계획을 세우고 그 일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고레스의 명령에 따라 두로와 시돈은 일꾼을 그리고 레바논은 목재를 그들에게 공급해 주어야 했다(이들은 첫 성전을 건축할 때에도 이렇게 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맡기실 때, 우리는 하나님이 그 일에 필요한 것들까지도 채우실 것을 굳게 믿어야 한다.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이른 지 이 년 둘째 달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다른 형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 공사를 시작하고 이십 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성전 공사를 감독하게 하매 이에 예수아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형제들과 갓미엘과 그의 아들들과 유다 자손과 헤나 자손과 그의 형제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 일꾼들을 감독하니라 건축자가 여호와의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 자손 레위 사람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 "찬양으로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더라 돌아온 유대인들 사이에서 성전을 다시 건축하는 것은 전혀 논란의여지가 없는 문제였다.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최대한 빨리 성전을 건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임재의 증표인 성전을 갖지 못한다., 옛 땅에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여기에서 성전이 다시 건축되기 시작하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I.그 일은 언제 시작되었나. 그것은 바벨론에서 돌아온 다음 해 둘째 달이었다(8). 그 때는 유월절 잔치가 끝난 후로서 계절적으로 가능한 가장 빠른 때였다. 그들은 성전의 기초를 닦고 각종 자재들을 준비하는데 불과 반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그들의 염원은 이처럼 뜨거웠다.어떤 선한 일이 행해져야 할 때, 여러 가지 반대와 난관이 예상된다 할지라도때를 놓치지 않고 가능한 빨리 시작하는 것이 지혜이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하나님도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누가 그 일을 시작했나,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그들의 형제들이었다. 이와 같이 통치자들과 사역자들과 백성들이 한마음으로 합심협력할 때, 하나님의 일은 잘 성취될 것이다.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한마음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 셨으며, 이것은 참으로 좋은 징조였다. .누가 이 일을 감독하도록 세워졌나. 그들은 레위인들을 세워 성전 공사를 감독하게 했다(8). 그리하여 그들은 일꾼들을 감독했으며(9), 여러 가지 위로와 격려의 말로 일꾼들의 손을 강하게 했다. 직접 일하지 않는 자들도 일꾼들을 격려하는 등의 일로써 그 일에 동참할 수 있음을 주목하라.


3.건축하는 사람들이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 자손 레위 사람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은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것에 대하여 서로 찬송가를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였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십시오. 성전의 기초가 놓인 것을 보았을 때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족장들 중에서 첫 성전을 보았던 많은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었고 또한 많은 사람들은 큰 소리로 기뻐하였습니다. 그래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첫 성전을 보았던 사람들이 크게 슬퍼하였던 이유는 무엇이며, 이것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3:10-13, 136:1, 4:10)

  )매튜헨리주석-.성전의 기초가 놓일 때 그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찬미했나. 모세의 규례에 따라 나팔을 든 제사장들과 다윗의 규례에 따라 제금을 든 레위인들이 음악을 연주하면서 시편 136편의 후렴구로 하나님을 찬미했다(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나님이 모든 인자하심의 근원이심을 주목하라. 우리가 지금 어떤 형편 가운데 있든지 간에 그리고 우리가 지금 얼마나 큰 두려움과 슬픔 가운데 있든지 간에, 우리는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모든 것은 떨어질지라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결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찬미의 노래를 목소리를 높여 열정적으로 불렀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이스라엘이 이방 땅에서 포로가 되었을 때나 자기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하시다. 그들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선하시고(73:1) 또 우리에게도 그러하시다. 교회가 죽은 것처럼 보일 때 그것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V.백성들은 어떤 감정을 나타냈나. 이와 같은 상황에서 그들의 감정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났다. 그들은 서로 다른 감정을 가지고 각자 다양하게 자신들의 감정을 표출시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사이에 어떤 불일치도 없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감정에도 불구하고 불화하거나 반목하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그들의 공동의 관심사 즉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 지체되지도 않았다. 1.단지 성전을 갖지 못한 슬픔만을 알고 있었던 자들은 성전의 기초가 세워질 때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짖었다(11), 그들에게는 이러한 기초만으로도 너무나 대단한 것이었으며, 마치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들의 굶주린 영혼에는 최소한의 음식조차도 분에 넘치는 진수성찬이었다. 그들의 외치는 소리는 멀리에서도 들릴 정도로 크고 우렁찼다. 아직 완성까지는 보지 못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시작된 것만으로도 우리는 마땅히 감사를 드려야 한다. 오랜 동안의 황폐 이후 세워진 성전의 기초는 모든 신실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큰 기쁨의 기초였다. 2.반면 솔로몬이 건축한 첫 성전의 영광을 기억하고 있었던 자들은 대성통곡했다(12). 왜냐하면 첫 성전과 비교할 때 이것은 크기나 위용이나 화려함에 있어 너무나 보잘것없었기 때문이었다. 성전이 불태워진 것을 여호야김 4년의 첫 번째 포로 때로 잡는다면, 지금은 그 때로부터 52년이 지난 때였다. 또 그것을 여고냐가 포로로 끌려온 때로 잡는다면, 지금은 그 때로부터 59년이 지난 때였다. 따라서 첫 성전이 서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 자들이 아직도 많이 살아 있었다. 백성들에게 있어 많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생명이 연장됨으로써 그들에게 예루살렘의 영광에 대해 말해주고 그럼으로써 그들의 귀환을 촉진할 수 있었던 것은 실로 큰 은총이 아닐 수 없었다. 이와 같이 옛 성전의 영광을 기억하고 있었던 자들은 새 성전의 초라함을 보며 크게 통곡했다. (1)여기에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었다. 만일 그들이 이러한 애통의 눈물을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 이러한 슬픈 변화를 초래한 죄를 슬퍼했다면, 그것은 참으로 선한 일이었다. 교회와 백성들의 영광을 망쳐 놓는 것은 바로 죄이다. 교회와 백성들의 영광이 가려지고 흐려질 때 그것은 다름 아닌 죄 때문이다. (2)그러나 모두의 기쁨 속에 자신들의 눈물을 섞음으로써 전체적인 분위기를 침울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의 연약함이었다. 그들은 작은 일의 날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며, 지금 자신들에게 베풀어진 선에 대해 감사할 줄 몰랐다. 새 성전은 옛 성전보다는 초라했지만 그러나 그들에게는 분에 넘치는 것이었다. 모두가 기뻐할 때 우리는 우는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된다. 제사장과 레위인으로서 그들은 백성들에게 이러한 신적 섭리 아래 어떤 마음을 품어야 하는지를 가르치면서 자신들이 앞장서서 더 크게 기뻐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고 대성통곡한 것은 백성들을 더욱 낙담시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슬픔과 기쁨이 뒤섞이는 것은 이 세상의 특징이다. 어떤 이들은 기쁨의 강에서 목욕을 하고 있는 동안 또 어떤 이들은 눈물의 홍수에 빠져 있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모두가 노래하는 가운데 아무도 탄식하지 않는다. 또 지옥에서는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는 가운데 아무도 기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 우리는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거의 분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을 배우자. 또 기뻐하지 않는 것처럼 기뻐하고 울지 않는 것처럼 우는 것을 배우자.


*참고성경구절

12:7-8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

1:5-6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18:9-10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10:5 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

136: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이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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