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BS_Judges_사사기 제27과
공부할 내용: 사사기 10장 1-16절
본문
2025년 8월 10일(주일) 오후 4시 줌zoom 그룹성경공부
1.아비멜렉의 후에 사사로 세워진 사람은 돌라[Tola]입니다. 그는 잇사갈 지파 출신으로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이었습니다. 돌라는 적들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주었고, 그들이 우상 숭배에 빠지지 않도록 지도해 주었습니다. 돌라는 이십삼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었으며 그리고 죽어서 사밀[Shamir]에 장사되었습니다. 돌라 다음 사사는 야일[Jair]이었습니다. 야일은 이십이 년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었습니다. 야일에게 아들이 삼십명 있었는데, 그들이 각각 어린 나귀를 탔던 것을 보면, 그들은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으면서 아버지를 대리하여 이 곳 저 곳을 순회하면서 재판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 그들은 각각 성읍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성읍들은 길르앗 땅에 있었고 오늘까지 하봇야일[야일의 동네]이라고 불리웠습니다. 야일이 죽어서 가몬[Camon]에 장사되었습니다. 여기 성경이 돌라와 야일 두 사사의 행적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 두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은 45년 동안 평화로웠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꼭 위대한 업적을 남기거나 그 이름이 유명해져야만 자기의 본분을 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하여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땀 흘려 수고하는 무명의 그리스도인들의 고귀한 헌신에 대해서도 함께 대화해 보십시오. (삿10:1-5, 계3:8, 빌4:3, 히11:35-38, 고전1:26-28)
답)매튜헨리주석-조용하고 평화로운 시대는, 비록 살기에는 가장 좋은 때라 할지라도, 역사가에게 있어서는 독자들을 즐겁게 해 줄 쓸거리가 거의 없는 최악의 때이기도 하다. 돌라와 야일 두 사사의 시대가 이와 같았는데, 그들은 사사기에서 크게 두드러지지도 않고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그들은 사사의 자격으로 나라에 봉사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세우심을 받았다. 그들은 아비멜렉처럼 주제넘게 왕의 위엄을 취하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또한 영광을 자신들이 취하지 않고 하나님께 돌렸다. 1.아비멜렉에 이어 이스라엘을 지키기 위해 세워진 사람은 돌라였다(1절). 아비멜렉은 자신의 악함으로 이스라엘을 타락케 했으며, 끝없는 야심으로 백성들을 소용돌이 속에 빠뜨렸고, 그들에게 엄청난 재앙을 가져다 주었으며, 또한 이스라엘을 열방의 적들에게 노출시켰다. 그가 죽은 후 하나님은 모든 폐해를 바로잡고, 우상 숭배를 버리게 하며, 모든 소동을 수습하고, 또 아비멜렉으로 인한 제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돌라를 세우셨다. 이와 같이 돌라는 백성들에게 도움을 베풀었으며, 적들로부터 백성들을 지켜주었다. 그는 잇사갈 지파 출신이었는데, 그들은 어깨를 내려 짐을 메는 섬기는 지파였다(창49:14,15). 그러나 지금 그 지파 출신 가운데 한 사람이 통치자로서 세워진다. 우리는 여기에서 스스로 낮추는 자가 높아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는 잇사갈 지파의 첫째 가족(family)의 조상의 이름을 취했다. 잇사갈의 아들들 가운데 첫째 아들의 이름이 돌라였다(창46:13,민26:23). 그것은 벌레를 의미하지만, 그는 그것이 자신의 조상의 이름이었기 때문에 그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잇사갈 출신이었지만 통치자로 세워졌을 때 그는 에브라임 산지에 와서 거했는데, 그 곳은 이스라엘 중심부에서 가까우므로 백성들이 재판을 받기 위해 그에게 좀 더 편리하게 올 수 있었다. 그는 이스라엘을 23년간 재판했는데(2절), 대체적으로 모든 일을 잘 처리했고, 그가 다스리던 기간 동안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2.야일은 길르앗 사람이었으며, 다음 사사인 입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모두 요단 건너편의 므낫세 반 지파 출신이었다. 그들이 다른 형제들과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통치권이 유다 지파로 고정되기 전에는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고전 12:24) 멀리 떨어져 있는 지파도 통치권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하셨다. 야일은 모세 시대에 열정적으로 가나안 지역을 함락시키는 데 앞장섰던 이 지파 출신의 매우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취했다(민32:41,수13:30). 이 야일과 관련하여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그의 가족이 크게 번성하고 존귀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에게 아들 삼십이 있어(4절). (1)그들은 높은 직위를 가지고 있었다. 어린 나귀 삼십을 탔고, 그들은 이를테면 순회사사들이었다. 그들은 아버지를 대리하여 이 곳 저 곳을 순회하며 재판을 행했다. 우리는 나중에 사무엘이 자신의 아들들을 사사로 세운 것을 보게 된다 비록 훌륭한 사사들이 되지는 못했지만(삼상8:1-3). (2)그들은 훌륭한 기업을 가지고 있었다. 각 아들마다 한 개의 성읍씩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성읍들은 그들의 아버지와 같은 이름을 가졌던 조상의 이름을 따라 하봇야일 - 야일의 마을들(the villages of Jair)이라 불렸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 마을들이 성읍(cities)으로 불려진다. 그것은 그 젊은이들(야일의 아들들)이 자신들에게 할당된 마을(village)을 확장시키고 성벽을 쌓음으로 성읍(city)으로 발전시켰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자신들에게 할당된 기업에 너무나 만족하여 마치 성읍처럼 그 곳에 성문과 빗장을 채워 단단하게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자족하는 마음으로 볼 때는, 마을(village)도 성읍(city)이 되는 법이다.
답)그랜드종합주석-10:1-5 소사사(小士師) 돌라와 야일, 기드온 사후 자행되었던 이스라엘의 범죄(8:33-35)에 대한 보웅은 아비멜렉을 통한 정계(삿9:1-6,22-49)와 아비멜렉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일단락 되고(삿9: 50-57) 이스라엘에는 다시 명화가 도래하였다. 즉, 본문은 아비멜헥 사후, 돌라(1,2절)와 야일(3-5절)이 연속하여 사사가 되어 이스라엘올 다스리므로 45년 동안을 태평하게 보낼 수 있었음올 보여 준다.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의 저자는 두 사사의 행척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하고 있다. 이는 본서의 집필 목적이 이스라엘 역사의 상세한 셜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한 구속사롤 밝히는 데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본서에는 돌라와 야일 풍과 같이 뚜렷한 업적이 언급되지 않는 사사들이 나오는데(삿12:8-15) 소위 ‘소사사’(小士師)라 일컫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본문을 통해 돌라와 야일이 자신들의 엄무를 잘 수행함으로써 아비멜렉 사후 혼란스러웠던 이스라엘을 주위 세력의 위협과 침략으로부터 구원했음을 알 수 있다(1절). 그리고 그로 인해 백성들이 여느 때보다 더욱 풍요한 삶과 명화를 누릴 수 있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4절). 이상에서 보듯 누구든 꼭 위대한 업적을 남기거나 그 이름이 유명해져야만 자기의 본분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돌라와 야일은 비록 삼손이나 기드온과 같은 명예를 얻지는 못하였지만 오히려 그들과 같은 인간적인 실수 없이, 백성들을 편안하고 풍요하게 살게 한 좋은 결과를 남겼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필요에 따라 성도들을 적재 적소에 사용 하신다(렘18:6). 문제는 각자에게 주어진 형편에서 얼마만큼 좋은 결실을 거두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이루느냐 하는 점이다(마25:14-30).
2.돌라와 야일 두 사사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은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의 신들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버렸고 그를 섬기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셔서 그들을 블레셋 사람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파셨습니다. 그들이 그 해부터 이스라엘 자손을 학대하였습니다. 요단 저편 길르앗 아모리 사람의 땅에 거한 이스라엘 자손이 십팔 년 동안 학대를 당하였습니다. 또한 암몬 자손이 요단을 건너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을 치므로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습니다. 여기 이스라엘 자손이 열방의 우상들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버렸는데,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진리에 대하여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그리고 오늘날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조심해야 할 우상들은 무엇입니까? 또한 우상숭배자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무서움에 대해서도 함께 대화해 보십시오. (삿10:6-9, 왕상18:21, 마6:24, 고전10:20-21, 딤후3:2, 딤후3:4, 골3:5, 요일2:15-16, 히10:30-31)
답)매튜헨리주석-돌라와 야일 두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동안에는 모든 일이 잘 되어갔다. 그러나 그 후, I.이스라엘은 그토록 자신들을 따라다녔던 우상 숭배의 죄로 다시 돌아갔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6절). 마치 어리석고 무지한 백성들처럼,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미끄러져 떨어졌다. 1.그들은 많은 신들을 섬겼다. 가나안 백성들이 숭배했던 바알들과 아스다롯뿐만 아니라, 마치 모든 열방에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공표하기라도 하는 양그들은 수리아와 시돈과 모압과 암몬과 블레셋의 신들을 섬겼다. 마치 이스라엘의 주된 교역이 모든 나라의 신들을 수입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러한 일을 행하는 것은 매우 불경한 일일 뿐만 아니라 또한 매우 불리한 일이기도 했다. 이러한 이방나라의 신들을 가져옴으로써, 그들은 스스로를 천박하고 비열하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일말의 명예심이라도 가진 나라라면 자신들의 신을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많은 부가 여러 나라의 신전들에 드려졌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 세워진 각종 우상의 신전들은 본국에 있는 ‘모 신전’(mother-temples)에 종속되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신들이 올 때, 의심할 여지 없이 그들을 따라 그들의 제사장들과 헌신자들이 무리를 지어 이스라엘 땅에 함께 들어왔을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 땅에 뿌리를 내렸고, 호세아 7:9에 기록된 것처럼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의 힘을 삼키게 되었다. 만일 이스라엘이 주변 나라들의 비위를 맞추며 환심을 사기 위해 그렇게 했다면, 그것은 분명한 오산이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악한 계교로써 주변 나라들을 친구로 삼으려 했지만,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으로 그들은 이스라엘의 원수와 압제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범죄한 바로 그것이 그의 징벌이 될 것이다. 2.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하나님을 이러한 열방의 많은 신들 가운데 하나만큼도 여기지 않고, 그분을 버렸다: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하나님과 맘몬(재물)을 둘 다 섬기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곧 하나님을 버리고 오직 맘몬만을 섬기게 될 것이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다면, 결국 그분께 남아 있는 마음은 아무것도 없게 될 것이다. Ⅱ.하나님은 그들에게 다시 심판을 내리사, 그들을 압제자의 손에 붙이셨다. 만일 그들이 바로 여호와의 손에 떨어졌다면, 그들은 그분의 크신 자비하심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사람의 손에 떨어지게 하셨는데, 그들의 자비는 곧 잔인함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가나안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었던 블레셋과,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었던 암몬의 손에 파셨는데, 이 두 가지는 동시에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이러한 두 개의 맷돌 사이에서 이스라엘은 원어의 표현 그대로 비참하게 으깨어졌다(8절). 만일 이스라엘의 어떤 성읍이 우상 숭배를 하며 반역을 행한다면, 하나님은 나머지 성읍들이 그들과 전쟁을 벌여 그들을 징벌할 것을 명령하셨다(신13:12 이하). 요단 건너편의 두 지파와 반 지파가 제단을 쌓았을 때(수22장), 이스라엘은 이 말씀을 실천하는데 거의 극단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너무도 악하여져서 한 성읍이 우상 숭배에 오염되었을 때, 다른 성읍들은 그것을 응징하는 대신 도리어 그것을 흉내냈으며 심지어 더 심하게 숭배하기까지 했다. 이와 같이 악을 행한 자들을 징벌해야 할 자들이 도리어 그 악에 동참하고 헛되이 칼을 잡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주변 나라들을 부르셔서 이스라엘의 배교에 대해 응징하도록 하셨다. 롯의 자손인 암몬 족속의 압제는, 1.매우 길었다. 암몬의 압제는 18년간 계속되었다. 어떤 이들은 이 기간을 야일의 통치기간의 일부로 본다. 반면 또 어떤 이들은 이 기간이 야일의 죽음과 함께 시작되는 것으로 보는데, 이 견해가 좀 더 타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암몬 사람들에 의해 가장 고통을 많이 받은 지역이 바로 야일의 고향인 길르앗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야일이 살아있는 동안 길르앗 지역이 그토록 많은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최소한 그 지역은 우상 숭배의 죄에 오염되지 않았을 것이며, 주변의 어떤 나라로부터도 특별한 고통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2.매우 가혹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며 압제했다. 암몬 자손들처럼 보잘것없는 백성에게 압제를 당하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은 요단 건너편의 자신들과 가까운 지역의 지파들부터 침입하며 압제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 지역은 아모리 족속의 땅이라 불렸는데(8절), 그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너무나 타락하여 이방인처럼 그래서 어떤 면에서 완전한 아모리인처럼 되었기 때문이거나(겔16:3), 아니면 죄로 인해 이 땅에 대한 자신들의 이름을 빼앗김으로써 다시금 그 땅이 아모리 족속의 땅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암몬인들은 점차적으로 밀고 들어와서, 요단을 건너, 이스라엘의 가장 유명한 세 지파인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까지 침입해 들어왔다(9절).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렸을 때, 그들은 이와 같이 모욕을 당했으며 침입자에게 대항할 수 없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수들 앞에서 살육을 당하였으며, 또한 그들과 맞설 힘이 없었다(레26:17,37). 이 모든 것은 그들이 스스로 초래한 것이었다. 그들은 비참하게 타락했으며, 그럼으로써 쓰라린 고통을 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3.이스라엘 자손이 고통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면서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라고 자신들의 죄를 자백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내가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에게서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였느냐 또 시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마온 사람이 너희를 압제할 때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므로 내가 너희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였거늘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서 너희 환난 때에 그들로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의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날 우리를 건져내옵소서”라고 말하면서 그들 가운데서 이방신들을 제하여 버렸고 여호와를 섬겼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셨습니다. 여기 이스라엘 자손이 고통당함으로 인하여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이방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는데,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고난이 주는 유익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서로 대화해 보십시오.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셨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말씀이 가르쳐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삿10:10-16, 시119:67, 고후4:17, 히12:11, 겔33:11, 딤전2:4)
답)매튜헨리주석-1.이스라엘이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겸손하게 죄를 자백함(10절). 이제 그들은 마치 고문대 위의 죄수처럼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며, 또한 회초리 앞의 어린아이처럼 잘못을 고칠 것을 약속한다. 그들은 고통을 호소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자신들의 죄 때문임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의로우시며, 그들에게는 하등 불평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행하지 않은 일을 자백하는데, 그들의 죄는 바로 그것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또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고백한다 - “바알들을 섬겼으니 우리가 너무나 어리석고 악하게 행하였나이다.” Ⅱ.이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메시지를 주심. 이것이 사자(혹은 천사, 2:1의 경우처럼)에 의해서 주신 것인지, 혹은 선지자(6:8의 경우처럼)에 의해서 주신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들의 부르짖음에 대해 하나님이 귀를 막으시고 응답하지 않으시는 대신 귀를 기울이시는 것은 참으로 은혜가 아닐 수 없다. 또한 그들이 회개하기 시작했을 때 하나님이 그와 같은 메시지를 보내심으로 그들로 하여금 더욱 회개하게 하시고 그럼으로써 구원받을 만한 준비가 되도록 만드시는 것 역시 큰 은혜이다. 1.여기에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당신이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상기시킴으로써 그들을 책망한다. 하나님은 그들을 여러 원수들로부터 구원하셨다. 첫째는 애굽 사람들이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땅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다. 또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아모리 사람들을 정복하게 하시고 그들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또한 암몬 사람들이 모압 사람들과 연합하여 압제했을 때(3:13), 삼갈의 시대에 블레셋 사람들이 괴롭혔을 때, 그리고 이후에도 여러 원수들이 고통을 가져다 주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큰 구원을 베푸셨다(11,12절). 또 그들은 시돈 사람들과 마온 사람들에 의해서도 압제를 당했는데,우리는 이에 대해 상세하게 알지 못한다. 하나님은 공의 가운데 그들을 징벌하셨으며, 은혜 가운데 그들을 구원하셨다. 따라서 그들은 두려움과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전심을 다해야 했다. 그러므로 13절의 말씀은 그들의 마음을 찔렀을 것이다 - “그러나 너희는 모든 고통으로부터 너희를 건져준 나를 버리고, 너희에게 모든 고통을 가져다 준 다른 신들을 섬겼느니라.” 이와 같이 그들은 미망가운데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버렸다. 2.하나님은 그들을 그들이 섬겼던 신들에게 내맡겨 둠으로써 그들을 파멸 가운데 그냥 내버려 두실 수 있음을 보이신다. 그들로 하여금 철저한 회개를 통해 모든 잘못을 바로잡게 하심으로써, (1)바알들을 섬기는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셨다. 그들은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며 그러한 신들의 호의를 얻고자 하였으나, 정작 그들이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그 신들은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었다.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14절), 지금 그것들이 너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라. 너희는 그것들을 신으로 숭배했다 지금 그것들이 정말로 신적 권능이나 혹은 신적 선함을 가지고 있는지 시험해 보라. 너희는 그것들을 왕(kings)과 주(lords)로서 섬겼다 - 지금 그것들이 너희를 보호해 줄 것인지 시험해 보라. 그것들이 너희에게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준 것으로 생각하고 너희는 그것들의 제단에 찬미의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진정한 친구는 필요할 때 도와줄 수 있는 친구일 것이다. 지금 그것들이 너희에게 어떤 도움을 베풀 것인가?” 진정한 회개에는, 우리가 우상으로 삼고 우리 마음의 보좌 위에 하나님 대신 앉혀 놓은 것들이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완전히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육체의 쾌락이 진정한 만족이 될 수 없으며, 세상의 재물이 참된 기업이 될 수 없고,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참된 행복과 평안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해야만 한다. (2)하나님을 버림으로써 야기된 불행과 위험을 깨닫게 하셨다. “너희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라. 지금 내가 너희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이것뿐이다.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이제 너희는 어떻게 될 것인가?”(13절). 여기에서 하나님은, 만일 그들이 자신들이 행한 모든 잘못을 고백한다면 당신이 ‘장차 하실지 모르는 일’(what he might do) 뿐만 아니라 ‘장차 하시고자 하는 일’(what he would do) 까지 말씀하고 계셨던 것이다. Ⅲ.이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공의를 겸손하게 인정하면서 그분의 은혜를 간청함(15절).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였는데, 그것은 아마도 회막 문 앞에서의 거룩한 집회로 모인 것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여기에서 하나님으로부터의 메시지를 받았다. 비록 그것이 매우 위협적인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절망에 빠지지 않고 죽으면 죽으리라 하면서 하나님의 발 앞에 엎드렸다. 그들은 “우리가 범죄하였나이다”라는 고백을 반복할 뿐만 아니라 1.또한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한다.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여기에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가혹한 형벌을 내리시더라도 자신들은 그것을 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또한 그분이 내리는 형벌은 자신들에게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님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강하고 엄중한 손 아래 놓으면서 자신들의 죄악의 형벌을 기쁘게 받고자 했는데,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되는 조건으로서 언급한 것이었다(레26:41). 진정한 회개자는, 자신의 죄가 너무나 악하며 또한 하나님의 징벌이 결코 지나치게 가혹하지 않음을 인정하면서, 스스로를 하나님의 손에 맡겨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고쳐지도록 만든다. 2.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애원한다: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그들은 자신들이 징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그러나 자신들의 과오대로 갚아주지 마실 것을 하나님께 간구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분의 은혜를 소망해야 한다. IV.이에 죄를 버리고 새롭게 하는 일이 시작됨. 그들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었다(16절): 그들이 자기 가운데에서 이방 신들 문자대로 하면, 이상한 신들, 즉 이스라엘 공동체와 약속의 언약을 알지 못하는 열방들이 섬겼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고난이 그들을 하나님께로 이끌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섬겼던 신들에게 가는 것이 아무 효과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들이 등한히 했던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이것이 참된 회개인데, 죄에 대한(for sin) 회개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죄로부터의 (from sin) 회개인 것이다. Ⅴ.하나님의 은혜가 회복됨. 이것이 여기에서 매우 애정 어린 표현으로 언급됨(16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하나님 안에는 어떤 근심(슬픔, grief)도 없으며(하나님은 자신 안에 무한한 기쁨과 행복을 갖고 계시며, 그것은 어떤 피조물의 죄나 불행으로 인해서도 결코 깨어질 수 없다), 또한 변함도 없으시다.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욥23:13). 그러나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시며, 이것이 그의 영광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선하신 하나님’으로 선포하시며, 그것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게 하신다. 그분은 언약 안에서 자기 백성들의 아버지가 되심을 기뻐하신 것처럼, 또한 자녀를 향한 아버지의 긍휼히 여김을 통해 그들에게 자신의 선하심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신다. 왜냐하면 그는 ‘빛들의 아버지’(the Father of lights)인 것처럼 또한 ‘자비의 아버지’(the Father of mercies)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녀들의 불순종과 불행이 아버지에게 근심(grief)이 되는 것처럼, 자기 백성들의 도전과 도발은 하나님께 근심이 된다(시95:10). 또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음란한 마음으로 인해 근심하시며(겔6:9), 자기 백성들의 고통 또한 그분께 근심이 된다. 그리하여 마치 괘씸하게 여겼던 자녀들에 대해 다시금 어여삐 여기기 시작한 부모처럼, 하나님은 이제까지의 마음과 생각을 바꾸시고 백성들을 다시금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 바로 이것이 죄인들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는 우리 하나님의 자비이다.
*참고성경구절
계3:8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빌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히11:35-38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고전1:26-28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왕상18: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찌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고전10:20-21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을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딤후3: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딤후3:4 괘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골3:5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요일2:15-16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히10:30-31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시119:67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후4: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히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겔33:11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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