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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강해(129)_프린트물_2024년 8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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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4-08-06 01:55

본문

기독교강요강해(129) 

[ 제3권 제20장 1항 – 제20장 4항 ]


       성경본문: 시편 145:18

기독교강요(존 칼빈, 생명의말씀사)

 

제3권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길: 어떤 유익이 우리에게 오며 어떤 효력이 따르는가?

제20장 기도: 믿음의 최상의 실천이며 우리는 이것을 통해 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


(기도의 본질과 가치, 1-3항)

1항. 믿음과 기도

  지금까지 검토한 여러 가지 점으로 보아, 사람에게는 선이란 것은 전연 없고, 구원에 도움이 될 것도 전혀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곤란에 빠진 자기를 구해낼 힘은 자기 밖에서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셨으며, 이 계시는 기꺼이 또 거저 주신 것이라는 설명이 후에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여호와께서는 불행한 우리에게 행복을, 궁핍한 우리에게 모든 부를 주시겠다고 하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 보고를 우리에게 열어 보이시고, 우리의 믿음이 전적으로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을 우러러보며, 우리의 모든 기대가 그를 의지하며, 우리의 소망이 전적으로 아들에게 밀착하여 안식을 얻게 하십니다. 이것은 삼단 논법으로 이끌어 낼 수 없는, 저 은밀한 숨은 철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눈을 뜨게 하여 그 빛을 보게 하신 사람들만이 이 철학을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입니다(시36:9). 그러나 우리는 믿음에 의해서 교훈을 받은 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과 우리에게 없는 것이 모두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풍성하심이 그리스도 안에 충만히 있게 하셔서(골1:19,요1:16 참조) 마치 우리가 넘쳐흐르는 샘물에서 물을 퍼내듯 은혜를 그리스도께로부터 얼마든지 얻도록 하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줄 아는 그것을 찾으며, 기도로 그에게 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께서 모든 좋은 것의 주인이시며 그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신 것과, 그에게 구하라고 격려하시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그의 앞에 가서 달라고 구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땅 속에 감추인 보화가 어디 묻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어도 그 보화를 무시하는 사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무 유익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기도를 등한히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하여, 사도는 다음과 같은 순서를 정하였습니다. 믿음이 복음에서 나는 것과 같이, 믿음을 통해서 우리의 심령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훈련을 받습니다(롬10:14-17). 그는 조금 앞에서도 꼭 같은 뜻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복음의 증거를 인치는 영 즉 양자의 영이(롬8:16), 우리의 정신을 고무시켜 감히 하나님 앞에 우리의 소원을 아뢰게 하며, 말로 다할 수 없는 탄식으로(롬8:26), 아무 의심 없이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합니다(롬8:15).


  그런데 이 마지막에 언급한 점을 우리는 앞에서 내친 걸음에 간단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이제 더 자세히 논해야 되겠습니다.


2항. 기도의 필요성

  그러므로 하늘 아버지 곁에 우리를 위해 저장되어 있는 보물에 우리의 손이 닿으려면 기도의 힘을 빌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는 교통이 있으며 또 하나님께서는 말씀만으로 약속하셨지만 우리는 그것을 믿었고, 필요한 때에는 그 약속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체험하기 위하여 우리는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서 직접 하나님께 호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기대해도 좋다고 약속하신 것은 또한 기도를 통해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주의 복음이 우리에게 가리켜 주었고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본 보화를 기도로 파낸다고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기도가 얼마나 필요한 것입니까, 그리고 기도를 드리면 그것이 얼마나 많은 방면에서 유익한 것입니까? 이는 말로 이루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유일한 안전한 요새는 그의 이름을 부르는 데 있다고(욜2:32 참조) 하늘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우리의 일들을 지켜보시며 보호하시는 그의 섭리와, 약하고 거의 쓰러지려고 하는 우리를 지탱하는 그의 힘과, 비참하게 죄에 눌려 있는 우리를 받아들여 은혜를 입혀주시는 그의 인자하심이 우리와 함께 있기를 기원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는 하늘 아버지께서 전적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으로서 자신을 나타내시기를 기도함으로써 기원합니다. 따라서 우리의 양심에 특별한 평화와 안식이 옵니다. 우리는 긴급히 필요한 일을 주 앞에 알리고 나서, 우리의 어려운 일들을 주께서 샅샅이 아신다는 것을 생각하며, 또 주께서는 우리를 가장 잘 돌보아 주실 의사와 능력이 있으시다는 것을 확신하고 완전히 안심합니다.


3항. 반대 의견: 기도는 없어도 되지 않는가? 기도해야 하는 여섯 가지 이유

  그러나 어떤 사람은, 상기시켜 주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점에서 곤란을 당하고, 무엇이 우리에게 유익한지를 아시지 않느냐고 말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을 움직이게 한다는 것은 공연한 짓이며, 마치 우리가 불러일으키기까지는 하나님께서 졸거나 심지어 주무시고 계시는 것같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무슨 목적으로 사람들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시는지를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명하시는 것은 그분 자신 때문이 아니고 우리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들이 원하는 것, 자기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인정하며, 이 인정을 기도로 증명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당연히 받을 것으로 여기시는데 이 입장은 정당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제물을 드려 하나님을 경배할 때에, 그 유익도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따라서 저 거룩한 조상들은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 있게 찬양하면 할수록 그 은혜를 받기 위하여 기도하겠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하였습니다. 엘리야의 예만 보아도 넉넉할 것입니다. 그는 아합 왕에게 비를 분명히 약속한 후에, 하나님의 뜻을 확신했지만 그래도 무릎 사이에 머리를 넣고 애써 기도하며, 사환을 일곱 번 보내서 확인하게 했습니다(왕상18:42). 이는 자기가 한 예언을 믿지 않은 것이 아니라, 믿음이 생기가 없어지거나 태만해지지 않도록 소원을 하나님께 알려드리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의 불행에 대해서 감각이 무디고 마비되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을 지켜보시며,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도와주시는 때도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기도하는 이유는 첫째로, 하나님을 항상 찾으며 사랑하며 섬기겠다는 소원과 열의가 우리 마음속에 불일 듯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곤란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을 거룩한 구원의 닻으로 믿고 그에게 달려가서 피난하는 습관이 붙어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 알려드리지 못할 부끄러운 욕망이나 소원이 우리 마음에 침입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하나님의 눈앞에 우리의 모든 소원을 내놓으며, 우리의 속마음을 토로해야 합니다. 세째로,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은혜를 주실 때에 진심으로 감사하면서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모든 은혜가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기억하게 합니다(시145:15-16 참조). 네째로, 우리가 구하던 것을 얻고,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는 확신으로 그의 인자하심을 더욱 열심히 명상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동시에 다섯째로, 기도로 얻었다고 인정하는 것들을 더욱 큰 기쁨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끝으로, 우리의 연약한 정도에 따라서 습관과 경험으로 그의 섭리를 확인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시며, 우리가 곤란한 때에 그에게 빌 길을 친히 열어주신다는 것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언제나 도와주시며, 말씀으로 달래시는 것이 아니고 즉각적인 도움으로 지켜주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의 지극히 자비하신 아버지께서는 결코 졸거나 게으른 일이 없으시면서도, 게으른 우리를 훈련시키기 위해서 잠자며 게으르신 것 같은 인상을 주시는 때가 많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훈련시키셔서, 우리가 그 분을 찾으며 그 분께 간구해서 큰 유익을 얻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마음을 기도에서 떠나게 하려고, 어떤 자들은 하나님의 섭리가 모든 일을 지키시며 우리가 귀찮게 간청하는 것은 무익한 짓이라고 떠들고 있으나, 그들의 행동은 너무도 미련합니다. 이는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라고(시145:18) 하신 주의 증거가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같은 말로 떠들어대면서, 주께서 언제든지 기꺼이 주시려고 하는 것을 우리가 간구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짓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주께서 자진해서 너그럽게 주시는 바로 그런 것에 대해서, 우리가 기도로 그것을 얻는 것으로 인정할 것을 하나님께서는 원하십니다. 이 점에 대해서 시편에 있는 저 인상적인 말씀이 증거하며, 여기에 해당하는 비슷한 귀절들이 많습니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벧전3:12,시 34:15). 이 문장은 경건한 이들의 구원을 스스로 열심히 돌보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찬양하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마음에서 나태한 경향을 깨끗이 씻어버리는 믿음의 훈련을 제외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곤란하고 눈먼 자들을 돕기 위해서 지켜보고 계시지만, 우리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더 잘 증명하시기 위해서 우리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려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라는 것과(시121:4), 그는 마치 우리가 게으르고 침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에는 우리를 잊어버리 신 듯이 활동이 없으시다는 것, 이 두 가지가 다 사실입니다.


(올바른 기도의 법칙, 4-16항)

첫째 법칙: 경외, 4-5항

4항. 하나님과의 대화에는 경건한 초자연성이 필요하다

  합당한 기도를 드리기 위한 첫째 법칙은, 하나님과 대화하려는 사람에게 합당한 정신과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신 자세를 바르게 하려면, 우리를 곁길로 이끌어, 하나님을 바르고 순수하게 주시하지 못하게 하는 육적인 근심과 생각을 버리고 전심전력해서 기도할 뿐 아니라, 될 수 있는 대로 정신 자체를 초월해야 합니다. 내가 여기서 요구하는 것은 정신이 세상적인 것을 초월하여 어떠한 근심으로도 여러 가지 괴로움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큰 근심으로 인하여 기도할 열심을 가지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종들이 깊은 구덩이에서 죽음에 직면해서 근심은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주를 향하여 고통을 호소하는 것을 봅니다(시130:1 참조). 그러나 내가 말하려는 것은 원래 떠돌아다니는 우리의 정신이 이질적이고 외부적인 염려 때문에 이리저리 끌리거나, 하늘을 잊고 땅에 얽매이는 일이 없도록, 그 모든 염려를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신은 그 자체를 높이 초월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눈멀고 미련한 이성이 고안해 내는 것을 일체 하나님 앞에 가져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정신은 그 허무한 본성의 한계 안에 붙들려 있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합당한 순결한 상태를 목표로 비약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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