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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강해(139)_프린트물_2025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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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5-05-21 19:17

본문

기독교강요강해(139)

[ 제3권 제20장 40항 – 제20장 43항 ]


       성경본문: 마태복음 6:10

기독교강요(존 칼빈, 생명의말씀사)

 

제3권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길: 어떤 유익이 우리에게 오며 어떤 효력이 따르는가?

제20장 기도: 믿음의 최상의 실천이며 우리는 이것을 통해 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


40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하늘에 계시다는 말씀이(마6:9) 첨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서 우리는 그가 울타리 안같이 둥근 하늘 안에 둘러싸여 갇혀 계시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솔로몬은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그를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왕상8:27). 예언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늘은 그의 보좌요 땅은 그의 발등상이라고 말씀하십니다(사66:1,행7:49,17:24 참조). 이렇게 말씀하시는 뜻은, 그가 어떤 특수한 공간 내에 갇히신 것이 아니고 만물에 편만하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둔한 우리의 지성은 그의 형언할 수 없는 영광을 달리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보다 더 숭고하거나 존엄한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에, “하늘”이란 말로 그의 영광을 표시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감각 기관들은 어떤 것을 지각하면, 그것을 그 장소와 결부시키는 것이 보통이므로 하나님을 모든 공간을 초월한 곳에 둡니다. 그래서 그를 찾으려고 할 때에 우리는 육체와 영혼의 모든 지각을 초월해야 합니다. 둘째로, 이 표현에 의해서 우리는 그를 부패하거나 변하지 않는 영역으로 높이는 것입니. 끝으로,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그의 위대한 힘으로 우주 전체를 포용하시며 유지하시며 지배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마치 하나님께서는 무한히 크시며 또는 높으시며, 이해할 수 없는 본질을 가지셨으며, 무한한 위력을 가지셨으며, 영생불사하신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런 말을 들을 때에 우리의 생각은 높이 비약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에 대해서 지상적인 것, 물질적인 것을 꿈꾸게 되고, 우리의 작은 척도로 그를 재며, 그의 뜻을 우리의 감정에 일치시키려고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그가 그의 섭리와 권능으로 천지를 지배하신다고 이해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요약한다면, “아버지”라는 이름이 우리의 눈앞에서 그려주는 하나님은 우리가 확신을 품고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신 그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라는 다정한 이름은 신뢰감을 일으킬 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의심스러운 거짓 신들에게 끌리지 않게 하는 힘이 있으며, 우리의 마음이 독생자로부터 천사들과 교회의 유일한 아버지께로 올라가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보좌가 하늘에 있어서 온 우주가 그의 지배 하에 있으므로, 그리고 그는 기꺼이 우리에게 즉각적인 도움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공연히 그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반드시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사도는 말합니다(히11:6). 여기서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에 대해서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과, 우리의 구원을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신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같이 낮은 자들에게도 그의 섭리가 미치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초보적인 지시에 의해서 바울은 우리가 올바른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준비 교육을 합니다.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라고(빌4:6) 명령하기 전에 그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빌4:6), “주께서 가까우시니라”고(빌4:5) 서두를 끄집어 냅니다. 이것을 보면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신다”는 것을(시34:15,벧전3:12 참조) 확신하지 않는 사람들은 분명히 마음의 의혹과 혼란으로 자기 마음속에서만 기도를 되풀이할 뿐입니다.


41항. 첫째 기원

  첫째 기원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것입니다(마6:9). 이 기원의 필요성은 우리의 큰 수치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의 배은망덕과 악의로 하나님의 영광을 흐리게 하며, 할 수 있는 한 우리의 참람함과 미친 듯한 불경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보다 더 부끄러운 일이 있는 것입니까? 비록 모든 불경한 사람들이 신성 모독적인 방자한 행위로 영광을 흐리게 할지라도 하나님의 이름은 여전히 거룩하게 빛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과 같이 찬송도 땅끝까지 미쳤으며”(시48:10). 예언자의 이 선언은 정당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알려진 곳에서는 그의 권능도 나타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위력, 선하심, 지혜, 공의, 자비, 진리 등에 우리는 경탄하지 않을 수 없으며, 따라서 그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땅에서는 그의 거룩하심을 부당하게 빼앗고 있으므로, 그것을 옹호할 힘이 우리에게 없을지라도, 적어도 기도 중에라도 관심을 가지라고 명령하십니다.


  요약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당연히 받으셔야 할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해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거나 생각할 때에는 언제나 반드시 최고의 경의를 품어야 합니다. 이와 반대되는 현상은 지금까지 너무도 흔했던 신성 모독이며, 이것은 지금도 세상에 만연되어 있습니다. 우리 사이에 조금이라도 경건한 기풍이 있다면, 이 기원은 불필요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이외의 모든 다른 이름과는 관련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이름과 관련될 때에, 거룩은 그 순수한 영광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여기서 받은 명령은 하나님께서 그의 거룩한 이름을 수호하셔서 모든 경멸과 불경을 물리치실 뿐 아니라, 전 인류를 복종시키셔서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게 만드시기를 기원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부는 교훈으로, 또 일부는 행동으로 자신을 계시하시므로 우리가 그를 거룩히 받드는 것도 이 두 가지 방면에서 그의 것을 그에게 돌리며, 따라서 그에게서 오는 것을 모두 받아들일 때에만 가능합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 영광의 표지를 각양 각색의 업적에 새겨 놓으셨으므로, 우리는 그의 자비심뿐만 아니라 그의 엄격하심도 찬양해야 하며, 이 점에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찬양을 받으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들 사이에서 그 정당한 권위를 가지게 될 것이며,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의 우주 통치의 어디를 보아도 그가 찬양을 받으시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기원에는 다른 목적도 있는데, 그것은 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는 모든 불신과 불경이 일소되며 소멸되며, 거룩하게 받드는 일을 흐리게 하고, 약하게 만드는 모든 비방과 조롱이 추방되며, 모든 모독 행위를 침묵시키고, 존엄하신 하나님께서 더욱더 빛나시게 되는 것입니다.


42항. 둘째 기원

  둘째 기원은, “나라이 임하옵시며”라는 것입니다(마6:10). 이 기원에는 새로운 점이 없지만, 첫째 기원과 분리시킨 데는 훌륭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중대한 일에 대해서도 태만하고 무기력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문제의 성질상 철저히 이해되어야 했을 것이 사실은 그렇게 되지 못한 때에는 우리는 거기에 대한 확실한 인식을 주기 위해서 논의를 연장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는 것을 모두 사로잡아 마침내 완전히 격멸시키시기를 기원한 다음에, 거의 꼭같은 기원을 하나 더 첨가합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마6:10).


  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정의는 전에 있었지만, 여기서 간단히 반복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부정하고 세상과 지상 생활을 경멸함으로써 하나님의 의를 구하기로 약속하며 하늘 생명을 얻으려고 노력할 때에, 거기에 하나님의 통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는 두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항거하는 모든 육의 정욕을 그의 영의 힘으로 바로잡으십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생각을 그의 법도에 맞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기원을 드릴 때에 순서를 바르게 지키는 것은 자신의 일부터 처리하는 사람들뿐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의 평화스러운 상태를 어지럽게 하며 그 순결을 더럽히는 일체의 부패를 자기에게서 깨끗이 씻어버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왕의 홀과 같으므로, 우리는 여기서 모든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그 말씀에 기꺼이 복종하도록 만드시기를 하나님께 기원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이 일이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영의 은밀한 감동을 통해서 그의 말씀의 역사를 나타내시고, 그 말씀이 마땅히 받을 높은 영예를 받게 되는 때입니다. 그 후에 우리는 불경한 자들 곧 하나님의 권위를 미친 듯이 한사코 거역하는 자들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전 우주를 굴복시킴으로써 나라를 세우십니다. 그러나 방법은 여러 가지이니 즉 방자한 자들을 길들이시며, 길들일 수 없는 자들은 그 교만을 꺾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계 각지로부터 자기 앞으로 모으시도록, 교회와 교인의 수효를 늘이시도록, 교회에 각종 선물을 주시도록, 교회 사이에 바른 질서를 확립하시도록, 그러나 순수한 교리와 경건의 원수들을 모두 타도하시도록, 그들의 계획과 노력을 분쇄하시도록 - 이런 일들을 매일 기원해야 합니다. 이것을 보아도 매일 전진하도록 열심을 다하라는 명령이 무용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사는 순조롭게 추악한 죄를 말끔히 씻어버리며 완전한 고결에 도달하며 성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지막에 오실 때까지 완전성의 실현은 지연됩니다. 그 때에는 바울이 가르친 대로,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실 것입니다(고전15:28).


  이와 같이, 이 기도는 우리를 세상의 부패에서 물러서게 하려는 것인데 이 세상의 부패는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킴으로써 그의 나라가 우리 안에서 번영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 기도는 동시에 육을 죽이려는 열심을 일으켜야 합니다. 끝으로 이 기도에서 우리는 십자가를 지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방법으로 나라를 확장시키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속사람이 새로와지고 겉사람이 낡아지는 것을 섭섭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고후4:16). 그 이유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우리가 그의 의에 순종하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그의 빛과 진리를 더욱더 찬란하게 빛내심으로써 사탄의 나라의 어두움과 거짓이 소멸되는 때에 이루어집니다. 그 때가 오기까지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그의 영의 도움으로 그들을 바른 생활로 인도하시며, 그들의 인내력을 강화시키십니다. 그러나 원수들에 대해서는 그 악한 음모를 전복시키시며, 그 전략과 기만 술책을 폭로하시며, 그 악의에 대항하시고, 그 완고한 태도를 억압하시고, 드디어 자신의 입김으로 적그리스도를 죽이시며, 그리스도 강림의 광채로 모든 불경건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살후2:8).


43항. 세째 기원

  세째 기원은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것입니다(마6:10). 이 기원은 하나님의 나라에 의존하며 하나님 나라에서 분리될 수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우주를 통치하신다”는 뜻을 쉽게 또는 즉시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의 무지 때문에 따로 첨가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왕이 되신다고 하는 것을 이 기원에 대한 설명으로 보아도 불합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밀한 뜻이 아닙니다. 또한 만물을 주관하시며 그 목적을 향하여 인도하시는 은밀한 뜻이 아닙니다. 사탄과 사람들이 하나님께 맹렬히 대항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측량할 수 없는 계획에 따라 그들의 공격을 물리치실 뿐 아니라, 그것을 도리어 이용하셔서 이미 결정하신 일을 실행하십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람이 의식적으로 복종하는 하나님의 다른 뜻에 주목해야 합니다. 또 그래서 하늘과 땅을 비교한 것입니다. 시편에 있는 것과 같이, 하늘에서는 천사들이 하나님께 기꺼이 순종하며, 열심으로 그의 명령을 이행합니다(시103:20). 그러므로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일은 아무것도 행해지지 않으며, 천사들도 완전히 평화롭고 공정한 생활을 함께 하고 있는 것과 같이, 지상 생활도 이런 표준을 따르며 모든 교만과 사악이 제거되기를 우리는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의 육의 욕망을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의 감정을 하나님께 복종시키지 않는 사람은 그의 뜻에 안간힘을 써서 대항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은 모두 부패한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 기도에 의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뜻대로 우리를 주관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 새로운 마음과 심령을 창조하시도록(시51:10) 우리 자신을 부정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자신의 것은 완전히 없애버려 하나님의 뜻과 완전히 일치가 되는 것 이외에는 어떤 욕망의 자극도 느끼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요약하면,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심령을 주관하실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영의 내적인 이끄심을 받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것을 싫어하게 됩니다. 그 결과로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뜻과 모순된 우리의 모든 감정을 허망하고 무력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첫째 부분의 결론

  지금까지 우리는 주기도의 처음 세 기원을 보았습니다. 이 기원을 드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만을 목표로 삼고, 자신이나 자신의 이익은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비록 이런 기도로 인하여 우리 자신에게 풍성한 유익이 오지만 우리는 여기서 그것을 구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여기서 기원하는 일들은 우리가 원하고 구하지 않아도 때가 오면 나타날 것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원하고 구해야 합니다. 또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 적지 않은 가치가 있습니다. 이렇게 기원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영예를 위하여 전력을 다하겠다고 열렬하고 성실하고 철저하게 맹세를 한 종과 자녀임을 증거하며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주이시며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이렇게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촉진시키겠다는 이 소원과 열의를 품고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와 종으로 인정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생각과는 반대로 이 일들은 실현될 것이므로, 그 결과는 그들에게 혼란과 멸망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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