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OUNCEMENT

어나운스먼트

주보

그룹성경공부

교회소식

교회소식

기독교강요강해(149)_프린트물_2025년 10월 29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5-10-27 22:52

본문

기독교강요강해(149)

[ 제3권 제23장 5항 – 제23장 7항 ]


    성경본문: 시편 115:3

기독교강요(존 칼빈, 생명의말씀사)

 

제3권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는 길: 어떤 유익이 우리에게 오며 어떤 효력이 따르는가?

제23장 이 교리를 겨낭한 거짓되고 부당한 비난들에 대한 반박


5항. 하나님의 숨은 결정은 찾아내려고 할 것이 아니라, 공손하게 찬탄해야 한다

  그러면 여기에 마니(Mani)나 콜레스티우스(Coelestius)의 제자, 즉 하나님의 섭리를 훼방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합시다. 나는 바울과 함께, 하나님의 섭리는 지극히 위대하여 우리의 이해력을 훨씬 초월하므로(롬9:19-23 참조) 섭리에 대한 이유를 알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아니면 어리석은 일입니까! 이 사람은 하나님의 권능이 제한되어, 그가 생각할 수 없는 일은 하나님도 하실 수 없기를 원하는가요? 나는 어거스틴과 함께 말합니다. 주께서는 멸망으로 갈 줄을 분명히 미리 아신 사람들을 창조하셨습니다. 주께서 그렇게 하시고자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왜 그렇게 하고자 하셨는가 하는 것은 우리의 이성이 물을 바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의 논쟁에 끌어내리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말할 때에는 반드시 의로우신 최고 지배를 동시에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의가 분명히 나타나 있는데, 왜 불의를 문제삼을 것입니까? 그리고 우리는 바울을 본받아 악한 자들의 입을 막으며, 그들이 감히 떠들 때마다,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롬9:20). 하나님께서 그의 위대한 사업을 그대들의 무지에 맞도록 조절하시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을 비난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이 일들이 육에 대해서는 감추어졌다고 해서 악하다는 말입니까? 그대들은 명백한 증거에 의해서 하나님의 판단은 측량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은 “큰 바다”라는 것을(시36:6) 그대들은 압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스스로 결정하신 일을 그대들의 좁은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겠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대들의 정신 착란에 빠진 탐구욕으로 그 “바다”에 뛰어든들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그대들 자신의 멸망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그대들의 이성이 말합니다. 욥기와 예언서들이 하나님의 알 수 없는 지혜와 무서운 권능을 선포하는데, 그대들이 적어도 두려운 마음으로 자기를 억제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만일 그대들의 마음이 괴롭거든, 부끄러워 할 것 없이 어거스틴의 충고를 들으십니오. “사람인 그대는 내게서 대답을 들으려 한다. 나 역시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대와 나는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라고(롬9:20) 하시는 이의 말씀을 듣자. 믿는 무지는 경솔한 지식보다 낫다. 공로를 구하라. 그대는 형벌만을 발견할 것이다. ‘깊도다!’(롬11:33). 베드로는 모른다고 하며, 도적은 믿는다. ‘깊도다!’ 그대는 이유를 찾는가? 나는 깊음 앞에서 떤다. 그대는 이론을 말하라. 나는 찬탄하겠다. 그대는 변론하라. 나는 믿겠다. 나는 깊음을 본다. 그러나 밑바닥에는 미치지 못한다. 바울은 놀라운 일을 발견했기 때문에 쉬었다. 그는 하나님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라고 하는데, 그대는 측량하려고 하는가? 그는 하나님의 길을 찾을 수 없다고 하는데(롬11:33), 그대는 찾아내려고 하는가?” 더 계속하더라도 우리에게 아무 유익이 없을 것입니다. 성급한 그들도 만족할 수 없을 것이며, 하나님께서도 이미 성령을 통해서 바울의 입으로 하신 변호 이외에 다른 변호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말하기를 중지할 때, 우리는 바른 말을 잊어버립니다.


6항. 둘째 반대론: 선택 교리는 사람에게서 죄책과 책임감을 제거한다

  그들의 불경건은 또 다른 반대론을 제기합니다. 이것은 직접 하나님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용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죄하신 죄인을 정당하다고 하는 것은 반드시 심판자를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경한 자들은 지껄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의 예정에 의해서 불가피하게 만들어 놓은 일들을 왜 사람들에게 죄로서 전가하는가요? 그들은 어떻게 해야 좋은가요? 하나님의 결정에 반대해서 싸울 것인가요? 그것은 전연 불가능한 일이므로 해보아도 무익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원인이 하나님의 예정에 있기 때문에 그들이 벌을 받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합니다. 나는 여기서 교회의 저술가들이 보통 사용하는 변호법을 피하려 합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께서 예견하신 악은 사람의 것이고 하나님의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의 예지는 사람이 죄인으로 인정되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변호를 하면 궤변은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욱 계속되어 다음과 같이 주장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그 예견하신 악을 막고자 하셨다면 막을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시지 않았으므로, 그의 예정된 계획에 의해서 사람을 지상에서 그렇게 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만일 사람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현재 하고 있는 일을 모두 하도록 창조되었다면, 그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피할 수 없이 하는 일 때문에 비난을 받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이 어려움을 바로 해결할 것인가를 살펴보아야겠습니다. 우선, 모든 사람은 솔로몬이 한 말에 찬성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잠16:4). 보라, 만사의 처리가 하나님의 수중에 있으며 구원과 사망의 결정도 그의 권한내에 있으므로, 그는 그의 계획과 뜻에 의해서 어떤 사람들은 반드시 죽기로 결정되어 출생하여서, 그 멸망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되게 하도록 정하셨습니다. 만일 누가 대답하기를, 하나님은 섭리에 의해서 그들에게 필연성을 부과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악행이 있을 것을 미리 예견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창조하신 것이라고 한다면, 이런 사람은 일부를 말하는 것이요 전부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옛날 학자들도 간혹 이런 해결책을 사용했으나, 주저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습니다. 스콜라 학자들은 이것을 의지하고서, 이에 대해서는 어떤 반대도 있을 수 없는 듯이 말합니다. 사실, 나도 예지만이 피조물들에게 필연성을 부과하는 것이 아님을 선뜻 인정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에 찬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예지도 사물의 원인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나는 왈라(Valla)가 거룩한 일들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지만, 이 주장에 대해서 더욱 명쾌하고 현명한 견해를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런 주장은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생사는 하나님의 예지보다 하나님의 의지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일어나는 상황을 예견하시기만 하고, 그의 결정에 의해서 배치하시거나 제한하시지는 않는다면, 그의 예견과 인간의 상황의 필연성과의 사이에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묻는 것도 일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미래의 사건들을 예견하시는 것은 그런 사건들이 생기도록 자신이 결정하셨기 때문이므로, 그들이 예지에 대해서 논쟁을 일으키는 것은 무익한 일입니다. 만사는 하나님의 결정과 명령으로 발생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7항. 하나님께서는 죄로 타락하는 것도 예정하셨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아담이 반역으로 멸망하도록 결정하셨다는 말씀은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성경이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신다”고(시115:3) 선포하는 그 하나님께서 그의 피조물 중의 가장 고귀한 존재를 목적이 불확실하게 창조하셨다고 하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그들은, 사람에게는 자기의 운명을 선택할 자유가 있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그 공과에 따라서 처리하시겠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정하신 것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만일 이런 무익한 조작이 용인된다면, 아무것도 의지하시지 않고 자신의 비밀한 계획에 따라 만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전능은 어디 있을 것입니까? 그들이 싫든 좋든간에 예정은 아담의 후손들에게 나타납니다. 한 조상의 죄 때문에 모든 후손이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은 저절로 생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인류 전체에 관해서 마지못해 인정하는 것을 왜 한 사람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못합니까? 왜 그들은 이런 핑계로 그들의 노력을 낭비합니까? 성경은 모든 사람이 한 사람으로 인해서 영원한 사망에 예속되었다고 선언한다(롬5:12 이하 참조). 이 일은 자연에 돌릴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에서 온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변호하려는 이 훌륭한 사람들이 어리둥절하여 지푸라기 하나에 매달려 있으면서, 높은 지붕을 뛰어넘으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나는 다시, 만일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셨기 때문이 아니라면, 아담의 타락이 무수한 후손을 어린아이들까지 불가피하게 영원한 사망으로 끌어넣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습니다. 이것이 무서운 결정이란 것을 나는 물론 인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기 전에 사람의 결말이 어떻게 되리란 것을 예견하셨으며, 따라서 스스로 그렇게 결정하고 명령하신 것이므로 미리 아셨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예지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경솔하고 부주의하여 죄를 짓는 것이 됩니다. 장차 있을 일을 모르시지 않았다고 해서 하늘 심판자를 비난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만일 정당한 또는 명백한 불평이 있다면, 그것은 예정에 적용됩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어리석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 사람의 타락과 그로 인해서 후손이 멸망할 것을 예견하셨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의 결정에 따라서 그렇게 되도록 마련하셨습니다. 이는 장차 있을 일을 모두 예견하시는 것이 그의 지혜의 일부분인 것과 같이, 그의 손으로 모든 것을 지배하며 주관하는 것은 그의 권능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어거스틴은 다른 문제들과 같이 이 문제도 훌륭하게 처리합니다. “우리가 바르게 믿으며 그 믿음을 고백하는 것은 지극히 건전한 일이다. 즉 만물의 주이신 하나님, 만물을 지극히 선하게 만드신 하나님(창1:31 참조), 또 선에서 악이 생기리란 것을 미리 아셨으나, 악한 일이 생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보다 악에서 선을 만들어내는 것도 자신의 전능한 선하심의 일부임을 아신 하나님께서는...천사들과 사람들의 생활을 정하실 때에, 그들의 생활에서 우선 자유 의지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이시며, 그 다음에 자신의 은혜의 복과 자신의 공의의 결정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이시도록 마련하셨다.”

첨부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