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jinrichurch

마르지않는 샘

이지은 주소복사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17년 수련회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매년 풍성한 영적인 잔치에 초대되어 얼마나 감사한 시간을 가졌는지요....또한, 이번 주제인  "광야와 메마른 땅같이 기뻐하며 (사35:1)"를 통해서 또 어떠한 풍성한 은혜와 위로를 경험하게 될지 기대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성경의 여러 부분 중에서도, 예언서의 난해함과 고도의 상징 앞에서 종종 길을 잃곤 하는데, 작년에 목사님께서 “모든 것을 살리는 복음(겔 47:9)”이라는 주제 하에서 에스겔서에 나타난 복음의 근원과 깊이, 신기한 효능에 대해서 쉽게 풀어서 해석하여 주심으로 큰 깨달음과 은혜를 누렸던 것을 기억합니다.

 

수련회를 위한 마음 밭을 조금이나마 일구는 마음으로 이사야서 말씀을 묵상하며 준비하는 가운데 조엘 비키 목사님이 편찬하신 스터디 바이블에서 "선지서 개관"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여러모로 유익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래에 해당 부분을 옮겨 적어 보았습니다.

 

 

선지자는, 제사장, 왕과 함께 구약 시대의 "메시아적인" 또는 기름 부음 받은 세개의 직분 중의 하나였다. 간단히 정의하자면 선지자는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대변자였고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백성들의 대표자로서 봉사하는 직분이었다.

 

제사장들은 레위 지파로서 아론의 가문으로 한정되었고 유다의 왕들은 다윗의 혈통이었던 것에 비하여, 선지자들은 어느 지파나 직업에서도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선지자로서의 직분은 자발적인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직접적인 부르심에 의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선지자는 하나님의 입이었고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것을 말하는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특징은 이 소명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된 용어들에 잘 나타나 있다. 사무엘과 다윗의 시대에는(물론 이 기간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지만) "Seer"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KJV 성경은 히브리어에서 2개의 다른 의미의 단어를 "Seer"라고 번역을 하였는데 둘 다 하나님으로부터 비전을 받아 백성들에게 전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들이다. "하나님의 사람(Man of God)"이라는 단어는 구약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데 이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특별한 사역을 위해 보내어진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뒷받침 한다. 가장 일반적으로 번역된 용어는 "선지자(Prophet)"이다. 기본적 의미에 있어서 의견은 분분하나 결국은 "말하기"라는 공통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라는 것은 명백하지만 히브리어 원문에서 명사는 실제로는 수동형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듣고 그 메세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자이다. 선지자의 권위는 에스겔서에서처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thus said the Lord), 겔 2:4"하는 것에서 드러난다. 이 모든 용어들은 계시적으로 메시지를 받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으며 사람의 의견이 아니었기에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메세지를 전달하는데 있어서 다양한 방법들을 사용하였다.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하면서 그들은 진리를 설명하거나 강조하기 위하여 종종 상징적인 활동들을 하곤 하였다. 예를 들어, 호세아 가정의 삶은 신실하지 못한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그리고 있고, 예레미야가 멍에를 진 것은 포로생활을 상징하고 있으며(렘 28), 에스겔이 에워싸인 한 성읍을 그리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제정된 규례들을 의미하고 있다(겔 4). 많은 선지자들은 이와 유사한 일들을 했으며 때로는 이상한 일들을 하기도 했는데, 언제나 하나님의 의해서 지시된 것들이었다. 그 상징들은 하나님에 의한 것이었고 그들은 그것을 전달한 권위를 부여 받았다.

 

선지자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사람들의 정신, 감정, 의지를 향해 전인적으로 설교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머리가 아닌 마음에 설교를 하였고 정보를 전달하기 보다는 정서에 소구하기를 추구하였다. 또한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도덕법에 대한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위반인 특정한 죄(미 3:8)를 향해 설교하는 개혁자들이었다.

 

오직 나는 여호와의 신으로 말미암아 권능과 공의와 재능으로 채움을 얻고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 (미 3:8)

 

 

죄를 노출하고 규탄하는 것에 부가하여 선지자들은 회개를 촉구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언약적 요구에 대한 순종을 간절하게 외쳤다(렘 6:16).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 (렘 6:16)

 

 

모세 율법, 특히 신명기는 선시자적 설교의 성경적인 토대가 되었다. 선지자들의 신경이 된 신명기를 떠나서 선지자들을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들은 개혁자일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위한 중재자였으며(암 7:20), 회개가 없으면 도래하게 될 심판에 대한 경고를 하는 파수꾼이었다 (겔 3, 33).

 

선자자들의 개혁적이고도 경험적인 설교의 중심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선지자들의 설교의 주제였다는 것을 말씀하신 바가 있다.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눅 24:27)

 

 

또한 베드로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벧전 1:10-11)

 

 

그 설교들에는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에 대한 예언들이 들어 있다.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요소인 선지자적 예언을 고려할 때, 염두에 두어야할 것들이 있다. 비록 그 예언들이 머리가 아닌 마음을 향한 것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현재에 영향을 주기 위하여 미래를 계시하셨다는 점이다. 예언을 적절하게 활용하게 되면 미래는 언제나 현재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선지자들을 글에서 예언 부분을 대할 때는 다음과 같은 예언서의 목적에 대한 원칙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1.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예언은 하나님께서 섭리하신다는 것을 조망해 준다. 하나님의 시간과 상황에 대한 절대적인 섭리는 모든 것에 대한 그 분의 완전한 통치를 증거한다. 예언적인 선지서는 이러한 섭리를 드라마틱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하나님께서 직접 하신 일이기에 시작할 때부터 마지막을 다 알고 계시며 그것을 보증하신다. 어떠한 것도 그 분이 결정하신 것을 방해하거나 변경할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그리스도를 약속하실 때부터(창 3:15) 복음의 중한 요소가 되었고, 에덴으로부터 베들레헴까지의 모든 순간들을 통치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예언대로 때가 차매 오셨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그의 재림 시점에 모든 순간이 영원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통치를 계속하신다.

 

"All moments will disappear into eternity when He comes again"

 

 

2.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예언서는 확신을 불어넣어준다. 하나님께서 모든 시대를 통치하시기 때문에 현재 어떠한 모양으로 나타나건 간에 현재는 하나님의 계획이 실현되는 과정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을 준다. 하나님의 계시를 믿음으로 바라볼 때 현재는 미래를 향한 길에 꼭 들어맞고 있다는 것을 확신함으로써 현재의 예배와 의무들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된다. 예언서에 대한 적절한 적용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때까지 활기차고, 용감하며 강렬하고도 확신있는 의무의 수행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3.      하나님의 의지에 대한 갈망을 증대하기 위하여
 

예언서는 기대와 소망을 증가 키신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약속하셨는지를 아는 것은 그 약속을 경험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갈망을 강화시켜 준다. 우리가 그 약속을 더 많이 묵상할 수록, 우리는 그 약속이 실현되기를 더욱 원하게 된다. 예언적 선지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망을 살아있게 하시고 신뢰를 증가시키며 그분을 의뢰하게 만드는 도구이다. 시므온과 안나는 확실히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예언에 관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눅 2:25-26, 28)

 

 

4.      죄인들에게 회개를, 성도들에게 성화를 촉진하기 위하여
 

예언서는 거룩함을 촉진시킨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우리가 그분의 나타나심에 준비되도록 의무를 상기시켜 준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이 예언서를 활용하도록 가르친 것이기에 예언서는 우리에게 회개와 성화를 위한 동기를 부여한다. 예를 들어, 요엘은 하나님의 크고 두려운 날을 묘사한 후에 회개를 촉구하였다(욜 2:11-13).  성경에는 현재에 영향을 주지 않는 예언은 적절하지 않은 것임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미래는 언제나 그들의 설교의 부분으로서 적용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마지막으로, 예언서를 읽을 때 그들의 특별한 쟝르와 스타일에 주의해야 한다.

 

첫째, 예언서는 상징적인 용어를 쓰는 경향이 있어서 비유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상징을 해석할 대는 상징과 실제 참조된 것 사이의 연관성을 댓구식으로 찾으려 하지 않아야 한다. 상징의 의미는 표면에 드러나지 않으며 그 의미를 분별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접근을 요한다. 어느 정도의 주관성이 있기 때문에 너무 멀리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예언서는 임박한 용어를 쓰는 경향이 있다. 예언의 실현이 실제로 어느 정도의 먼 미래인지와 상관없이 예언은 그 실현이 바로 도래할 것처럼 쓰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도적이고 임시적인 모호함은 예언서 언어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이다. 실현의 시기가 구체화되어 있지 않으므로 적용 또한 제한을 받지 않게 된다.

 

셋째, 예언서는 특정 시대의 사건들을 하나의 예언적인 상황으로 연결하는 경향이 있어서 마치 하나의 사건처럼 보이게 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진행형 예언 또는 예언적 망원경이라고 불리우는데, 이를 통해서 선지자들은 사건들의 시대적 차이를 배제한채 여러 사건들을 함께 말하곤 한다. 초점은 어느 시대의 특정한 사전에 있지, 그 시대 전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source : The Reformation Heritage KJV study bible, Joel Beeke and editors, Reformation Heritage Books, Grand rapids, Michigan

  • 이지은 2017.08.07 15:43

     

    2003년 말씀 수련회에서 강문진 목사님께서 이사야서 강해를 8회에 걸쳐 하신 내용을 다시 들으며

    이사야서 전체를 개관해 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귀중한 보화와 같은 이 강해 설교들을 통해서 마음 밭을 잘 준비하고 이사야서 전체에 대한 이해를 더 높이기를 소망해 봅니다.

     

    ☞ 이사야서 강해 제 1편 듣기

     

  • 이성일 2017.08.07 23:43
    결국 구약의 선지자나 오늘날의 설교자나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주의 말씀을 대언하는 전인적 전달자라는 측면은 동일하군요 그런데 오늘날 강단의 권위가 훼손되고 있는 것은 성경이 아닌 인간 자신의 말을 설교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많아서가 아닐까요?

위로 JINRI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