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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문화를 개혁하라?

 

 

알 베이커 목사씀 (진리의 깃발 중에서)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 요한 3:36

 

 많은 책과 블로그에서 예수그리스도의 교회의 목적은 세상의 문화를 개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모토 뒤에는 이 세상이 영원할 것이란 개념이 숨겨있다. 그들이 비록 이 세상은 타락한 상태란 것을 인정하겠지만 그들은 여전히 교회의 역할은 세상의 문화를 구속하는데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말하면 이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인 정의를 실천하고 인종차별을 정체성 정치와 국가의 통제와 진보적 흐름을 통해 이 지상 낙원을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전도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자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실상 두개의 왕국을 주창하고 있다. 보다 상세하게 말한다면 우리 교회가 정의를 추구하고, 화해와 폭력과 압제의 피해자를 치료하고 인종차별을 없애는 데 앞장서야 하며, 환경보호운동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보존하고 사회와 문화적 시스템을 개혁하며 소수자들과 비주류에 대한 억압에 맞서야 한다고 한다.

 

나는 한동안은 서구 교회 안에서 이러한 직접적이며 의도적인 복음전도방식을 왜 꺼려하는지 의심해 왔었다.  물론 성경이 정의의 필요성과 가난한 자를 돕는 것과 과부와 고아를 돌보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결코 세상에서 물러나 동떨어지면 안될 것이다. 우리도 우리의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다. (소금은 부패를 늦추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어느 정도까지 교회가 이 이슈에 대해 개입해야 하는가이다. 이것이 교회 존재의 명분인가?

 

첫 대각성 시기에 죠지 윗필드와 죠나단 에드워드 및 여러 사람들은 거듭남에 대해 주목했다. 윗필드는 죠지아의 사바나에 베세다란 고아원을 세웠는데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일은 그의 주업은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복음 전파란 그의 주업의 한 작은 가지에 속했던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며 변화가 생긴다. 두번째 각성의 시기에 알미니안주의가 칼빈주의를 대신하여 전도운동의 연료로 사용되면서 하나님에 대한 부족한 시각들이 인본주의에 길을 내주고 말았다. 결국에는 복음 사역에 악영향을 주고 말았다. 어떻게 그랬는가? 알미니안주의는 기본적으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선택의 '카드'를 쥐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가 예수님을 따를 것인가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가 설교를 좌지우지 한다면 머지않아 설교자들은 그리스도를 위한 결심을 하기 위해 성도들이 듣고 싶어하는 것들을 설교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냥하고 친절한'복음은 독일 신학자 알브레히트 리츨의 자유주의 신학과 결합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사회적 행동을 통해 다가온다는 사상을 받아들이게 된다. 예를 들면 사람들에게 인종을 차별하지 말라고 설교하는 것은 쉽다. 머리를 쓸 필요가 없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당신은 지옥으로 가는 죄인이라고 설파한다면 이 세속적인 문화 속에서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얘기가 되고 만다.

 

1950년대로 돌아가 보면 크리스챤 투데이라는 잡지가 탄생하게 되는 데 설립자 크리스챤 스미스는 빌리 그래함과 칼.F.H 헨리, 에드워드 카넬, 해롤드 오켕가(풀러 신학교 설립자)들이 역설한 바는 학구적이며 보수적인 성경적 메세지로 제자도를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기에 이 자유주의적인 정치적 성향을 결합하였기 때문에 이 잡지의 아무월호를 뒤적여봐도 이러한 자유주의적이고 정치적이며 사회참여적 관점은 오늘날도 여전하다.

 

그래서 교회의 목적은 무엇이란 말인가? 물론 우리는 가난한 자들과 궁핍한 자들을 도와야 한다. 물론 우리는 정의실현을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이 땅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 때에 해야할 일들이다. 모순적으로 데이빗 웰스는 이렇게 언급했다. '문화 속에서 이미 얻을 수 있는 세속적인 것들을 교회들이 공급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 대체재로 전락한다.'

다시 교회의 목적이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답해 보자. 우리는 그리스도가 이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질문 보다는 그리스도가 과거에 어떻게 행하셨는가?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예수께서 사회의 부조리를 척결하려는 실마리라도 보이셨던가, 그 시대의 노예제도를 박멸하려고 하셨는가 아니면 로마 식민지의 잔악성을 고발하셨는가? 예수께서 대중적인 '굶주린 자들을 먹여 살리자'란 케치프레이즈를 걸고 단체를 조직하셨는가? 주님은 만난 모든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셨는가? 그는 오천명을 먹이셨고 병에 걸린 몇 사람들을 고치셨을 뿐이다. 그의 동정심은 그가 메시아 이심을 보여주는 표적이었다. 그는 오셔서 잃어버린 자들을 찾고 구원하셨다.(눅 19:10)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 모든 나라들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하셨다.(마태 28:18-20) 그는 죄사함의 회개를 설교하라고 하셨다. (눅 24:47) 거기에는 로마제국에게 노예제도를 폐지하라던가 가난과 억압과 부조리를 없애라는 일체의 명령이 없으셨다.

 

사도들은 어떻게 행했는가? 그들이 세상에서 목격되는 부조리에 항거했던가? 바울은 노예의 주인에 대해 꾸짖지 않았다. 그대신 그들의 노예들을 잘 대해줄 것을 당부했다. 그는 또한 노예들이 주인의 말에 순종할 것을 명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노예로 삼은 것을 질책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를 데려가라 하였다. 그렇다 사도들은 이 헬렌계열의 유대과부들이 차별받는 것을 보고 집사들을 세워 실제적 필요를 채우라고 명한 다음 교회에는 그들의 주임무가 기도와 말씀이란 것을 주지시켰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예수님의 교회는 오직 한가지 임무를 가지고 있다. 두가지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를 개혁하고 문화를 바꾸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과 모든 다양한 문화들은 멸망당할 것이다.(벧후 3:10) 우리의 임무는 부활하시고 영화롭게 되신 그리스도가 맡기신 데로 세계를 제자삼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잃어버린 자들에게 가야하며 그들을 직접적으로 복음화하고 가르쳐서 그리스도와 사도와 선지자들의 전한것들에 순종하도록 해야한다. 그리스도인 개개인들은 세상에서 믿음의 삶을 살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우리가 이 성경적 진리의 쓰나미 속에서 전진해 나갈 때 우리는 오히려 세상속에서 만나는 다양한 문제들을 작게 바라봐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유일한 목표인 모든 나라들을 복음화하는데 촛점을 맞추어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토록 하게 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이 세상사람 누구든지 가난한 자를 먹이고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오직 그리스도인들만이 영생의 떡을 나눠줄 수 있다. 우리의 시간과 자원을 세속적인 문화를 개혁하는데 허비한다면 그것은 마치 소독제 방울을 발라주는 것과 같을 것이다. 시체에 소독제를 바르면 일시적으로 좋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죽음에 뒤따르는 부폐의 과정을 거스를 수는 없다. 우리는 늘 가난한 자들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주님이 오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시기 전까지 늘 사회적 부조리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오직 두가지만 영원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들의 영혼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두가지에 우리의 삶을 투자해야할 것이다. 모든 자들은 오직 두가지 운명을 가지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그를 믿는 것은 영생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를 순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영원히 받게 될 것이다.  정의와 인종의 화해와 가난한 자들을 먹이는 것은 칭찬받을만 한 것이지만 어느 누구도 구원할 수 없는 것이다. 잘 먹인 사람들이 남들과 평화롭게 산다해도 잃어버린 상태로 남겨진다면 주님과 그의 영광 앞에 섰을 때 영원한 지옥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린 가장 중요한 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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