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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성경공부 열왕기상 제24

 

 

공부할 내용: 열왕기상 1615-34

 

 

1.시므리가 이스라엘 왕 엘라를 죽이고 왕이 되었을 때에, 진중에서 그 소식을 들은 무리들이 군대 장관 오므리를 왕으로 삼고 시므리에게 복수하고자 하였습니다. 오므리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던 시므리는 디르사 성읍이 함락됨을 보고 왕궁에 불을 놓고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시므리가 죽자 이제는 디브니와 오므리가 싸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둘로 나뉘어서 절반은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좇았고 절반은 오므리를 좇았습니다. 두 진영이 내전을 하다가 오므리가 승리하여 왕이 되었습니다. 그와 같이 시므리, 디브니, 오므리는 왕위를 놓고 서로 치열하게 싸웠는데, 이러한 싸움의 원인과 결과에 대하여 서로 토론해 보십시오. (왕상16:15-23, 28:2, 26:52, 4:1-3)

 

2.이스라엘의 수도는 처음에 세겜이었고, 그 다음에 디르사였으며, 그 후에는 오므리 왕에 의하여 건축되어진 사마리아 성읍이었습니다. 오므리가 그곳을 수도로 정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오므리는 그곳 성읍을 사마리아라고 불렀습니까? (왕상16:21-24, 왕상12:25, 15:21, 16:8)

 

3.이스라엘 나라에서 가장 악한 왕이었던 아합이 행한 죄악들을 나열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의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호수아가 선포한 저주를 무시하고 여리고 성을 건축하다가 맏아들과 말째 아들을 잃었습니다. 이것이 주는 영적인 교훈은 무엇입니까? (왕상16:28-34, 6:26)

 

 

*참고성경구절

28:2 나라는 죄가 있으면 주관자가 많아져도 명철과 지식이 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장구하게 되느니라

26: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4:1-3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왕상12:25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왕상15:21 바아사가 라마 건축하는 일을 그치고 디르사에 거하니라

왕상16:8 유다 왕 아사 제이십륙년에 바아사의 아들 엘라가 디르사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 년을 위에 있으니라

6:261 여호수아가 그때에 맹세로 무리를 경계하여 가로되 이 여리고 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읽으리라 하였더라

 

 

  • 차우석 2020.07.31 21:42
    이번 주일 성경공부 문항입니다. 첨부파일로 성경공부교재(열왕기상-24과,한글파일)를 함께 올렸으니 성경공부를 위해 다운받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 차우석 2020.08.02 17:34
    그룹성경공부 열왕기상 제24과


    공부할 내용: 열왕기상 16장 15-34절


    1.시므리가 이스라엘 왕 엘라를 죽이고 왕이 되었을 때에, 진중에서 그 소식을 들은 무리들이 군대 장관 오므리를 왕으로 삼고 시므리에게 복수하고자 하였습니다. 오므리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던 시므리는 디르사 성읍이 함락됨을 보고 왕궁에 불을 놓고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시므리가 죽자 이제는 디브니와 오므리가 싸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둘로 나뉘어서 절반은 기낫의 아들 디브니를 좇았고 절반은 오므리를 좇았습니다. 두 진영이 내전을 하다가 오므리가 승리하여 왕이 되었습니다. 그와 같이 시므리, 디브니, 오므리는 왕위를 놓고 서로 치열하게 싸웠는데, 이러한 싸움의 원인과 결과에 대하여 서로 토론해 보십시오. (왕상16:15-23, 잠28:2, 마26:52, 약4:1-3)
    답)매튜핸리주석-솔로몬은 “나라는 죄가 있으면 주관자가 많아져도(지금 이스라엘이 그러했다) 명철과 지식 있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장구하게 되느니라(지금 아사 치하의 유다가 그러했다)”라고 말한다(잠28:2).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날 때 안식과 평온도 함께 떠나는 법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시므리와 디브니와 오므리가 왕위를 놓고 서로 싸우는 것을 보게 된다. 교만하며 야심을 품은 자들이 상대방을 멸망시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이러한 혼란은 오므리가 왕위를 차지하면서 끝나게 되는데, 우리는 본 단락에서 오므리 위주로 살펴볼 것이다. I.오므리는 어떻게 왕으로 추대되었나. 로마의 황제들이 종종 그랬던 것처럼, 오므리는 전장에서 군대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다(지금 이스라엘 군대는 깁브돈에 진을 치고 있었다). 시므리가 왕을 죽이고 왕도인 디르사에서 스스로 왕이 되었다는 소식이 곧 그곳으로 전달되었다(16절). 그리하여 그들은 진에서 오므리를 왕으로 추대하고 즉각 왕을 왕을 죽인 것과 관련하여 시므리에게 복수를 하고자 했다. 비록 왕의 직무에 충실치 못하며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엘라는 그들의 왕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왕을 죽인 자에게 순순히 복종하지 않으려고 했다. 반역을 응징하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나답을 죽인 것과 관련해서는 바아사에게 복수하려고 하지 않었었다. 아마도 그것은 바아사의 집이 여러보암의 집보다 더 유화적으로 통치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므리는 격분한 군대의 복수를 피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깁브돈을 탈환하려는 계획은 또다시 포기될 수밖에 없었고(이스라엘이 서로 분쟁할 때 이득을 얻는 것은 블레셋이다), 시므리는 왕을 죽인 것으로 응징을 받게 되었다. II.오므리는 어떻게 시므리를 물리쳤나. 시므리는 7일 동안 왕이 되었다고 언급된다(15절). 그러나 우리는 그의 실질적인 통치 기간(즉 엘라를 죽였을 때부터 오므리에 의해 죽을 때까지)이 그보다 훨씬 더 길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다고 언급되는데(19절),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엘라를 죽인 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왕위에 올랐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디르사는 아름다운 성읍이었지만 그러나 요새화되어 있지는 않았으므로 오므리는 오래지 않아 그 성읍을 점령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시므리는 왕궁으로 퇴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곳에서 시므리는 오므리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그렇지만 항복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왕궁에 불을 지르고 그 가운데서 죽었다(18절). 그가 왕궁에 불을 지른 것은 자신의 대적(즉 오므리)이 그토록 호화로운 왕궁을 향유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므리의 손에 떨어지게 되면 살든 죽든 치욕적인 취급을 당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스스로 불을 지르고 그 속에서 죽었다. 인간의 악이 종종 그들을 얼마나 절망적인 상태로 몰아넣는지 주목하라. 악은 얼마나 급하게 인생을 파멸로 이끄는가! III.오므리와 디므니의 대립.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둘로 나뉘어 그 절반은 디브니를 따라 그를 왕으로 삼으려 하고 그 절반은 오므리를 따랐더니(21절). 아마도 시므리 편에 섰던 자들은 디브니를 따랐을 것이다. 그리고 진에서 추대된 왕이 아니라 백성들의 대표가 모인 회의에서 추대된 왕을 원하는 자들 역시 디브니를 따랐을 것이다(그들은 진에서 추대된 왕이 칼과 군대로 통치하는 것을 우려했다). 이러한 양자 간의 싸움은 몇 년간 지속되면서 양측에 엄청난 피의 대가를 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오므리가 처음 왕으로 추대된 것은 아사 왕 27년이었는데(15절, 그의 12년간의 통치기간은 이때부터 기산된다), 아사 왕 31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는 경쟁자 없이 혼자 통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디브니가 죽고(아마도 전장에서 죽었을 것이다), 오므리가 왕이 되었다(22절).
    박윤선주석-15-18절 “엘라”를 반역하고 스스로 왕이 된 “시므리”가 7일 후에 민중의 반란을 당하여 멸망한 사건이 이 부분에 기록되었다. 이렇게 북쪽 나라 이스라엘에는 반란이 계속되었다. 이 반역 행위는 특별히 바아사가 나답(여로보암의 아들)을 죽임으로 시작되었는데(왕상15:28-29) 바아사 자신이 그 아들(엘라) 시대에 보응을 받아 시므리의 반역을 당한 것이다. 그 후에도 이렇게 반역자 자신이 반역의 보응을 받은 역사가 거듭거듭 연출된 것이다. 19-20절 여기서는 “시므리”의 심판받을 이유에 대하여 말해준다. 그것은, 그도 역시 “여로보암의 길” 곧 우상주의(왕상12:26-33)의 죄를 답습한 데 있다는 것이다. 그가 그런 종교적 죄악을 버렸더라면 그런 심판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2.이스라엘의 수도는 처음에 세겜이었고, 그 다음에 디르사였으며, 그 후에는 오므리 왕에 의하여 건축되어진 사마리아 성읍이었습니다. 오므리가 그곳을 수도로 정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오므리는 그곳 성읍을 사마리아라고 불렀습니까? (왕상16:21-24, 왕상12:25, 15:21, 16:8)
    답)매튜핸리주석-IV.오므리는 왕이 된 후 어떻게 통치했나. 1.그는 사마리아를 건축했다. 그리고 이후 사마리아는 이스라엘 왕도가 되었다(디르사의 왕궁은 불타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마리아는 가나안의 중앙 부분(북쪽의 갈릴리와 남쪽의 유다 사이에 위치한 지역)을 일컫는 이름이 되고 그 지역의 주민들을 사마리아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오므리는 그 땅을 은 두 달란트로 샀다. 아마도 오므리에게 땅을 판 세멜은 그곳에 세워질 성읍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명명할 것을 조건으로 하여 매우 싸게 팔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성읍의 이름은 땅을 산 자(즉 오므리)의 이름으로 명명되었을 것이다. 성읍의 이름은 원래 그 땅의 주인이었던 세멜의 이름을 따서 사마리아 혹은 세메렌(히브리 원문대로)이라 일컬어졌다(24절). 이스라엘의 왕들은 몇 차례 왕도를 옮겼는데, 처음에는 세겜이었고, 다음으로 디르사였으며, 이제 사마리아가 왕도가 되었다. 그러나 유다의 왕들은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을 계속해서 고수했다. 하나님을 붙잡는 자들은 요동함이 없지만 하나님을 떠나는 자들은 끝없이 방황하는 법이다. 2.그는 매우 악했다.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25절). 그는 누구보다도 어렵게 왕위를 차지했으며, 왕위에 오르기까지 섭리의 은총이 두드러지게 작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로보암과 바아사의 집의 어느 누구보다도 더 참람하고 미신적이며 포악했다. 그는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면서, 백성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강요했다. 우리는 미가 6장 16절에서 오므리의 율례라는 언급을 보게 된다(너희가 오므리의 율례와 아합 집의 모든 예법을 지키고 그들의 전통을 따르니 내가 너희를 황폐하게 하며). 여로보암은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되 유혹과 모범과 부추김으로 그렇게 했지만, 그러나 오므리는 강압으로 그렇게 했다. V.오므리의 통치는 어떻게 끝났나. 27절과 28절을 보라. 그는 강력한 힘을 가진 군주였다. 악인임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힘을 갖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오므리는 여로보암과 바아사처럼 자기 침상에서 죽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죄의 분량을 채우고 그에 대해 값을 치르는 일 역시 그들(여로보암과 바아사)처럼 자신의 후손에게 남겨 주었다.
    (참조)이스라엘 역사(크리스챤 다이제스트, 존 브라이트)-1.오므리 왕가: 이스라엘의 회복. 이스라엘에 마침내 안정을 가져온 인물은 활동적인 오므리였는데, 그가 왕권을 장악한 것에 대해서는 이미 말한 바 있다. 비록 그의 통치 기간은 짧았지만, 그는 삼대에 걸쳐 집권한 왕조를 창건하고 또한 이스라엘에 어느 정도의 국력과 번영을 회복시킨 정책을 창출해 낼 수 있었다. a.오므리 즉위 때의 정치적 상황. 오므리는 너무 이르지 않게 제때에 전면에 등장하였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50년에 걸친 내정의 불안정으로 이스라엘은 적대적인 이웃 나라들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을 정도로 무력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적대적인 이웃나라들 가운데서도 특히 위험했던 나라는 다메섹의 아람족 왕국이었다...오므리는 영토가 줄어들고 외세의 위협을 받고 있던 이스라엘을 물려받았던 것이다....b.오므리 왕조의 외교정책. 성경은 오므리의 통치를 5,6절로써 대충 설명하고 넘어가고 있지만(왕상16:23-28), 그는 분명히 매우 유능한 인물이었다. 앗수르인들은 오므리 왕조가 전복된 뒤에도 오랫동안 북부 이스라엘을 “오므리가(house of Omri)”로 지칭하였다!...오므리 자신은 아합을 두로의 왕 이토바알(Ittoba’al,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혼인시킴으로써 이토바알(엣바알)과 동맹을 확증하였다(왕상16:31)....2.오므리 왕가: 국내 상황. 오므리 왕가의 박력 있는 정책은 북부 이스라엘을 재난에서 구했고 다시 한번 어느 정도 강력한 국가로 만들었다. 그러나 국내적으로 그러한 정책은 긴장을 불러 일으켜 그 동안에 얻은 유익한 성과들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였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상황을 조성하였다. a.사회·경제적 상황. 모든 증거는 오므리 왕가 통치하의 이스라엘은 상당한 물질적 번영을 누렸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이는 보여주는 가장 좋은 증거는 사마리아의 새 수도이다. 이 부지 - 높은 언덕으로서 방어하기에 이상적인 – 는 오므리가 구입한 곳으로서(왕상16:24) 예루살렘과 마찬가지로 왕의 자산이었다.

    3.이스라엘 나라에서 가장 악한 왕이었던 아합이 행한 죄악들을 나열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의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호수아가 선포한 저주를 무시하고 여리고 성을 건축하다가 맏아들과 말째 아들을 잃었습니다. 이것이 주는 영적인 교훈은 무엇입니까? (왕상16:28-34, 수6:26)
    답)매튜핸리주석-우리는 여기에서 아합의 통치가 시작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 가운데 가장 많은 기록이 남아 있는 왕이 바로 아합이다. 여기에서는 다만 그가 모든 왕들 가운데 가장 악했다고 하는 총체적인 평가만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를 통해 앞으로 그와 관련한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예상할 수 있다. 그는 22년을 통치했는데, 그러한 기간은 수많은 악을 행하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기간이다. I.그는 악을 행함에 있어 모든 전임자들을 능가했다.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30절). 마치 하나님과 이스라엘에 대해 특별한 적의를 품고 있기라도 한 듯이, 또 하나님을 모독하고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고 작정이나 한 듯이,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다(33절). 후계 왕들이 계속해서 전임 왕들보다 더 악했던 것은 이스라엘에게 너무도 불행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결국 어떻게 될 것인가? 아합은 과거의 악한 왕과 왕가들이 멸망을 당하는 것을 직접 목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통해 경고를 받는 대신 그의 마음은 더욱 완악해졌으며 그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더욱 격발시켰다. 그는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겼다(31절). 형상을 만들어 섬김으로써 둘째 계명을 깨뜨리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아예 다른 신들을 가져와 숭배함으로써 첫째 계명을 내팽개쳐 버렸다. 그의 새끼손가락이 여로보암의 허리보다 하나님의 율례를 더 무겁게 짓눌렀다. 작은 죄를 가볍게 여길 때, 우리는 큰 죄를 위한 길을 열게 될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의 죄를 합리화시키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결국 우리 자신의 죄를 더욱 크게 만들게 될 것이다. II.그는 악한 여자와 결혼했다. 그는 그녀가 바알 숭배를 가지고 올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그런 목적으로 그녀와 결혼한 것처럼 보인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가볍게 여기면서, 그는 이세벨을 아내로 맞아들였다(31절). 그녀는 열렬한 우상 숭배자였으며, 천성이 극도로 폭압적이며 악의적이었다. 그녀는 우상 숭배와 술수에 탐닉했으며(왕하9:22), 모든 면에서 악하기 짝이 없었다. 요한계시록 2장 20절에 등장하는 거짓 여선지자는 거기에서 이세벨이란 이름으로 일컬어지는데, 그것은 그 이름보다 더 악한 이름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떤 악을 행했으며 결국 그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 하는 것은 나중에 살펴보게 될 것이다(왕하9:33). 솔로몬의 모든 이방인 아내들보다 이 한 이방인 아내가 이스라엘을 더 많이 타락시켰다. III.그는 바알 숭배를 확립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버리고 시돈의 신을, 여호와 대신 제우스를,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태양을,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뵈니게 사람들이 신격화한 영웅을 섬겼다. 그는 금송아지들에 대해 싫증을 내면서 이제 그것들에 대해서는 충분할 만큼 섬겼다고 생각했다. 금송아지들은 그것을 가장 흠모하던 사람들조차도 결국엔 싫증을 낼 정도로(마치 간음을 행하는 자들이 쉽게 싫증을 내는 것처럼) 헛된 것이었다. 바알(lord,주)이라 일컬어지는 이 가짜 신을 존귀케 하고 또 그에게 예배하는 것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1.아합은 왕도 사마리아에 신전을 세웠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전이 유다의 왕도인 예루살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바알의 신전을 자기 가까이에 둠으로써 자주 다니며 보호하며 존귀케 하고자 했다. 2.그는 바알에게 제물을 드리기 위해 신전 안에 제단을 쌓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바알을 의뢰하면서 그에게 은총을 구하고자 했다.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보라! 헛된 신을 섬기기 위해 그들은 얼마나 큰 비용을 허비하고 있는가?...IV.아합의 신하 가운데 한 사람이 그의 오만을 흉내내어 여리고를 건축하고자 시도했다(34절). 그것은 오래 전에 여호수아가 선포한 저주를 무시하는 것이었다(수6:26). 이 사건은 인간의 불경이 어느 지경까지 – 특별히 벧엘에서 – 이르렀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한 사례였다. 벧엘은 금송아지 가운데 하나가 세워진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 감히 여리고를 건축한 자 역시 벧엘 사람이었다. 다음을 주목하라. 1.그가 한 일은 매우 악한 것이었다. 그는 아간처럼 ‘저주 받은 일’에 간여하며 나섰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려진 것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모두가 다 아는 저주를 무시한 채 여리고를 건축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러한 저주를 까닭 없는 것으로 여기면서 코웃음을 쳤든지 아니면 그것이 선언된 지 500년 이상이 지났으므로 더 이상 효력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저주가 일부 실행되었을 때에도 그것을 무시했다. 왜냐하면 건축하는 일을 시작할 때 맏아들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불경에 대한 하늘의 진노를 경멸하면서 계속 일을 진행시켰기 때문이었다. 2.그의 마음은 너무도 완악했다. 그는 자기 자녀들을 위해 여리고를 건축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무자하게 만드셨다. 그의 맏아들은 건축이 시작될 때 죽었으며, 막내아들은 건축이 끝날 때 죽었다. 그리고 나머지 자식들은 그 중간에 죽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나님이 저주하신 자들은 정말로 저주 받은 자들이다.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형통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금하신 것에 대해 주제넘게 나서서는 결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큰 범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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